복음 : 예수님의 양이 되어야 합니다. / 26년 5월 17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10:1-5, 개역한글)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10:16, 개역한글)
요한복음 10장에서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내가 양의 목자다."라고 하십니다. 왜 이와같은 말씀을 하셨을까, 그 배경을 살펴보고 나누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겔34:1-4, 개역한글)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목자를 두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가운데 인도자들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목자를 두신 이유는 목자들이 양을 잘 살피고 돌보게 하기 위해서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겔34:3, 개역한글)
이와같이 합당치 않은 이스라엘 목자를 주님께서 꾸짖는 것입니다. 그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 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겔34:15-1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두신 목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참된 목자가 없다는 강한 표현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인도자들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목적을 수행해야 하는데 완벽하게 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부족한 가운데 하나님의 양들을 먹이고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양의 목자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의 내용은 9장의 내용과 이어집니다. 9장에는 소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경에게 주님께서 명하시고 그대로 소경이 하자 그가 눈이 떠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인도자들은 그 소경이 어떻게 눈이 떠졌는지 캐뭍고 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그를 출교해 버립니다. 참된 이스라엘의 목자라면 그 소경이 눈을 뜬것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소경이 눈이 뜬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 자기들의 권력을 앗아갈까,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소경의 부모라 할지라도 그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두려워서 올바른 말을,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내가 목자다."라고 말씀하시기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참된 목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훈계하시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저희들에게 참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말씀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이방인들에게도 확장해서 적용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라고" '우리'는 양을 보호하는 울타리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우리는 '율법'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그같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잘못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1-22, 개역한글)
우리는 입으로는 상대방에게 나쁜말을 못할지라도 속으로 미워하거나, 나쁜놈, 죽일놈, 하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속으로 사람을 미워한 것만으로도 살인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살인을 한 것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심지어는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을 살인한 자가 아닙니까?
마태복음 5장의 말씀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율법의 참된 의미를 주님께서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칼로 사람을 찔러서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욕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것만으로도 이미 살인한 것으로 보십니다. 평소에도 잘 지내다가도 상대방의 어떤 말에 한순간 욱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돌아볼 때에 내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갈수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본문으로 들와서요.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가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지켰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내가 의롭다 함을 얻을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서 우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만일 선을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전부 절도요, 강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문지기가 문을 엽니다. 이 문지기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교제하지 않고 문지기가 문을 열었을 때에 목자가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김보영 형제님의 양이 있는 것입니다. 태우, 기정, 현진이가 있습니다. 장승훈 형제님의 양은 현준, 소은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들을 한 우리에 모두 넣고 문을 닫고 문지기가 지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에 김대현 형제님이 자기 양, 민원이를 부릅니다. 그때 민원 양이 대현 형제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3, 개역한글)
여기 표현을 보면 '양'이 있고, '자기 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양', 예수 그리스의 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으로 수천명을 살인한 자이며,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자인데, 수많은 간음을 한 자들입니다. 저희들은 다 이같이 수많은 살인죄와 간음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저희들의 행함의 대가를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을 때에 저희에게 참된 구원이 되고, 예수님의 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에 합당하게 반응할 수 있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가 이름을 부른 양들은 목자를 따라갑니다. 울타리는 율법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주님께서 저희들을 건져내셔서 자기 양들을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0, 개역한글)
저희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3:11-14, 개역한글)
저희는 주님의 이와같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이 요한복음 10장과 갈라디아서 3장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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