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아브라함의 믿음 / 26년 6월 21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13-25,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어떠한 믿음을 드러냈는지에 대해서 로마서 4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은 이방인이 죄인인 것을 말하고 있고, 2장은 유대인이 죄인이며, 3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9-10, 개역한글)
그러면서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만한 육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개역한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저희들의 양심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다다를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길입니다. 이를 붙드는 것이 오직 구원의 길이고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예시를 드는데요. 이 로마서는 일차적으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지고, 또 이차적으로 유대인에게 보내지는 서신이기 때문에, 너희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음을 말씀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신약성경의 여러곳에서 인용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어떻게하면 우리가 믿을수 있는가를 배울수 있습니다. 믿고 싶은 분들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믿었음을 로마서 4장이 설명해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처음 받았을때는 이것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자신들이 무자하고 육체적으로 자식을 생산할수 없다고 생각되니까 여러가지 인간적인 방법을 도입합니다. 집안의 종이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사라의 여종을 취해서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자녀를 줄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의 100세, 사라의 90세에 아들을,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의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수많은 자손이 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하고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말합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계속 말하니까, 한번 믿어볼까? 할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혹은 죽으면 어찌될지 모르니까 보험 차원에서 믿는것에 배팅을 해보자, 이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달리 표현하면 도박입니다. 이쪽이 확률이 크니까 투자를 해보는 겁니다. 아니면 말고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에, 사라가 89세에 자녀를 잉태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4:19, 개역한글)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자녀를 생산할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생각없이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그냥 믿는 것입니까? 뇌를 정지시키고 맹목적으로 믿는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녀를 생산할수 없음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다는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자녀를 생산할수 있는 때에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다고 하면 확률적으로 가능하기에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믿을만한 상황 가운데서 믿는것을 믿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불가능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믿는 것입니다. 또 뇌를 정지하고 맹목적으로 믿는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현실을 자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본래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서울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본토를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결코 가질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제가 믿을수 없는 것을 믿는것이 믿음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믿음에 대해서 다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이 꾀어서 하와가 먹고 또 아담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과일좀 먹었다고 지옥에 가는게 맞느냐? 할수 있습니다.
혹은 이천년 전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사건이 어떻게 나의 죄를 사할수 있단 말이냐? 할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내용들은 다 내가 믿을수 없는, 믿어서는 안되는 내용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자녀를 가질수 없는데 자녀를 줄 것이고,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많은 민족들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모든것을 주시고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믿었는가를 보겠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4:17, 개역한글)
그는 자녀를 생산할만한 상태가 아닌데 자녀를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렇다 할지라도 능히 자녀를 주실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우리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살아서 숨쉬고 있는데 우리의 시작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명석한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150억년전에 큰 폭발이 있었고 그 폭발이 확장해서 우주가 되고, 그 과정에서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지구에 생명이 만들어 졌다는 것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1-6일까지 만물을 지으셨다는 것을 믿으실지요? 사실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면 후자가 더 사실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성적이라고 한다면서 비이성적인 빅뱅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말을 믿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외로 참 비이성적인 존재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현실이 불가능함을 알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것을 믿고 확신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죽은자를 살리시고 없는것을 있는것같이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알다'라는 의미의 단어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직관적으로 아는 앎을 주십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후에 하나하나 알아가는 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적인 앎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성령님께서 직관적으로 알수 있는 앎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님들도 그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모임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가 정말 믿는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말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과연 그러하다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잘 묵상하고 상고하는 가운데서 주시는 믿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와같은 믿음 가운데 저희들이 거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요. 여러 형제님들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그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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