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요한이 기록한 하나님이신 주님 / 26년 6월 21일 일요일(요약) / 전의석 형제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1-5, 개역한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개역한글)
요한복음은 사도요한이 기록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이라는 말에 나와 있지 않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좁혀 나가다보면 사도요한이 이 복음서를 쓴것을 알수 있는데요.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함께 한 제자, 또 주님의 십자가에서 다른 제자들이 흩어졌지만 요한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와와 함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명령을 들었던 제자입니다.
요한은 자신을 요한이라고 말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기록합니다.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입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침례요한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주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침례요한을 소개합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사람은 침례요한이었고요. 그리고 주님이 죽으시고 승천하시고 주님의 길을 기록하고 마지막까지 요한계시록을 남긴 제자가 사도요한이었습니다. 이 두 요한이 그와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요한복음 읽으면 읽을수록 두 의문을 남기는데요. 주님을 가까이서 보았던 요한은 주님에 대해서 그렇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과 비슷하게 시작합니다. 갑자기 주님께서 육신을 입으셔서 주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있기 전에 주님께서는 선지자셨고, 하나님이셨으며, 말씀이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형제님께서 많은 언급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과는 다르게, 주님께서 어떠한 족보 가운데서, 어떠한 가정 가운데서 그를 거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음을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되심으로 요한복음을 바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7가지를 말하는데요. 7이 세번 반복되는 21장으로 끝납니다. 또 나는 누구다, 무엇이다라는 주님의 설명이 일곱번 기록되어 있고, 주님의 위대한 기적이 7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주님의 많은 것을 드러내셨지만 요한은 많은것을 생략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쓸것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쓰려고 해도 기록하기에 부족하다고 기록합니다. 주님의 가장 가까이에, 주님을 가장 잘 알던 제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드는 생각이 요한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그같은 일에 있어서 그 일을 보았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을,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근심하시며 고통가운데 기도하시는 것을 요한, 그리고 세 제자만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들이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제자들이 이 세상 끝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겟세마네의 기도도, 또 주님께서 승천하심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다락방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발을 씻긴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가르침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이분이 육체를 가지고 오신 하나님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 악한 것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향해 "네가 어떻게 하나님이냐?"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모든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셨을 떄에 사람들은 또 악하게도 주님의 인성에 대해서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부분을 네 복음서를 통해서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심을 균형있게 말씀해 줍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네 날이 나옵니다.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네째날입니다. 첫째날은 침례요한이 이분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분임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침례요한에 대해서 너는 누구냐고 묻고 침례는 자기에 주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1:26-27, 개역한글)
그 다음날은 주님이 정말로 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주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소개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개역한글)
셋째날은 침례요한이 본것을 두 제자에게 말합니다. 그 두 제자는 안드레와 요한입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35-36, 개역한글)
두 제자가 주님께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사람들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네번째날은 빌립을 만나셨고 빌립을 통해 나다니엘을 보게 됩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요1:43, 개역한글)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1:46, 개역한글)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1:49, 개역한글)
점점 이분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에 대해서 구체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1:51, 개역한글)
예수님은 하늘 위에 계실 뿐만 아니라 이 땅위에 계신 하늘과 땅의 통치자이며, 창조주이십니다. 이 사일간을 통해서 점점 더 주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1, 개역한글)
다섯번째 날과 여섯번째 날이 생략되고 일곱번째 날이 있습니다. 그날은 혼식식이 있는 날입니다. 기쁨이 있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나 사람이 줄수없는 주님이 주시는 포도주를 마십니다. 이는 장차 올 일의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섯번째 날은 오순절을, 또 여섯번째 날은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환난의 시대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정해진 날대로 나아가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베대와 그의 아들들은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같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척의 배가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는 안드레와 요한을 부르셨고 그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저희들도 주님께서 부르실 때에 버려야 할 것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버리고 좇는것이 버리는 것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에 대해서 다른 제자들이 적은 세가지 복음서에 기록된 것들을 보완해 주고 또 기록되지 않은 중요한 내용들을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에 기록하면서 주님께서 복음의 시초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기록하였습니다. 제가 요한이었다면, 야이로의 딸의 일과 변화산상의 일과 겟세마네의 일을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더 자세히 기록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한주간 주님에 대해서 더 깊은 주님을 깨닫는 가운데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은 기쁨을 누린다면 더 복된 한주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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