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요약)

박이레 2026. 5. 24. 12:46

덕언 :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 / 26년 5월 24일 일요일(요약) / 전의석 형제님

오늘은 누가복음을 쓴 누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눅1:1-4, 개역한글)

저희들이 믿는 바는 이 성경을 쓴 유일한 이방인인 누가가 쓴 누가복음의 내용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서신에서 믿는 할례당인 유대인을 언급하고 그 다음에 누가를 언급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누가가 이방인이었다고 믿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완전하고 온전하신 사람이셨습니다. 그럼 왜 주님의 사람이심을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나 유다가 누가복음을 기록하지 않고 이방인인 누가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유대인을 뛰어넘어서 온 세상 만민 가운데 뛰어나신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이어 오신 왕으로 기록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계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뛰어넘어 아담의 계보까지 가십니다. 이 완전한 사람은 유대인을 뛰어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추적하고 그 근원부터 자세히 살펴가면 점점 더 하나님으로 가까이 가게 되고, 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갈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서신을 받는자는 '데오빌로 각하'입니다. 그는 로마의 관리였던것 같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데오'가 헬라어로 '신', '빌로'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이방신을 생각했겠지만, 그리스도인인 누가에게 있어서 데로빌로의 이름의 뜻은 달랐습니다.
누가는 이 데오빌로를 향해서 이 편지를 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편지를 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일에는 특별한 계시나 환상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서 이 일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누가의 데오빌로를 향한 관심과 헌신이 참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할 때에,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에 주님께서는 그 일을 놀랍게 사용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행16:10-13, 개역한글)

15장, 14장,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것은 바울과 실라, 바울과 디모데, 등으로 3인칭 시점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16장에서는 처음으로 "우리가"로 자신을 포함한 2인칭 시점으로 기록됩니다. 그래서 16장에서 누가가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16장은 빌립보가 그 배경인데요. 루디아라는 여자가 처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귀신들린 여종과, 빌립보 간수가 구원받습니다. 누가는 빌립보에 그냥 남습니다. 그래서 17장에서는 다시 3인칭 시점으로 "저희가"로 사용됩니다.
그러면 누가가 왜 빌립보에서 이와같은 일을 겪게 되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는 바울과 실라와 함께 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매우 놀라운 결과로 나타납니다. 빌립보 간수가 구원받고, 놀라운 얘기를 듣습니다. 이제 누가는 바울을 버리지 않고 빌립보에 남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떨어지지 않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계기는 하나님께서 감옥에서도 함께하시는 놀라운 사역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놀라운 사람이었지만, 왜 그 육체에 가시가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바울이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또다른 이면으로는 그 가시를 치유하기 위해서 의원인 누가가 바울과 항상 함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자세한 행적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누가와 바울은 20장에서 다시 함께하게 됩니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5-7, 개역한글)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갈것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바울을 아끼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면 잡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갈것을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줄 아노라 (행20:23-25, 개역한글)

바울은 이를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행24:24-27, 개역한글)

벨릭스라는 사람은 2년동안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잡혀서 2년동안 구류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누가가 낙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도가 2년이나 잡혀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더 큰일을 준비하심을 믿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2년이라는 시간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 일은 바로 누가복음을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누가복음을 기록합니다. 누가복음만이 주님의 어린시절과,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마리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마리아 본인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마리아의 찬가라든지, 목자들 앞에 나타난 천사들이 주님의 탄생을 찬양했던 일이든지, 나인성의 과부의 일이라든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라든지, 이 각각의 개인의 일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도들을 만난 후에 기록한 일이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바울이 구류된 일은 그 일 배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다른 뜻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일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있을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