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 26년 5월 31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5:6-10, 개역한글)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히7:1-2, 개역한글)
오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주님에 대해서 교제하겠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5장 앞부분에 대해서 교제한 적이 있습니다.
5장 1절에서 대제사장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사람 가운데서 취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사람으로 오셨기에 이 조건에 부합됩니다. 사람 중에 대제사장을 택하는 이유가, 대제사장이 육체의 연약을 알고 있어야 죄 가운데 나오는 죄인을 용납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을 참으로 동정하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마르다, 마리아가 슬퍼하고 많은 사람들이 슬퍼함을 보실 때에 주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5장 2절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관련해서 시편 말씀이 인용되었습니다.
그리고 5장 6절에서 "다른데 말씀하시되"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편에 말씀하시되'라고 해도 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와같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인용해서 사용할수 있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수 있음을 히브리서 기자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용한 구약의 말씀은 시편 110편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대제사장이신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 제사장을 말씀하시기 훨씬 전에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살렘왕이며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론 제사장이 먼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자기가 취한 십분 일을 드립니다.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모세와 아론 중에서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레위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은 비교가 불가합니다. 레위의 반차를 좇은 것은 주님의 대제사장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레위의 대제사장직을 보이셨다고 봅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은 주님의 실제적인 사역을 말씀합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시편, 그리고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창세기는 이 세상의 인류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아름다운 시가 적힌 책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믿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교리가 적인 서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책의 주인공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주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주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실현하시는가가 7-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 개역한글)
6절은 주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왕이시며 대제사장인지를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7절에서는 슬픔의 사람이신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누가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온전한 사람으로 오셨는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또 이 복음서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어떠한 고난을 당하셨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22장에서 주님께서 얼마나 큰 슬픔과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셨는가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을 히브리서 5장 7절의 내용으로 이해해 볼수 있습니다.
"내가 날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시편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하나님께 의존하셨는가를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굳이 하나님을 의존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하게 되지만, 주님은 날때부터 하나님께 의존했고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의존하십니다. 또 십자가를 앞두고 어려운 순간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그럼에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기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하셨을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들으심을 얻었느니라"(7절)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내 문제만 보입니다. 우리의 시야가 닫힙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보이신 기도의 눈물은 극히 그 어려움의 일부분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물과 통곡의 기도가 들으심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위안과 격려가 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5:8, 개역한글)
"그가 아들이시라도" 그분은 하나님의 집에 맡아들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집의 종으로 충성되이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고난과 사망이 필요 없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순종하셨습니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순종을 보고 순종을 배웁니다. 주님은 사실 순종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순종입니다. 그렇기에 육체를 입고 순종함을 행하셨는데, 이를 배우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서 주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는 칭함을 얻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저희들을 구원하시고, 저희가 필요로하는 대제사장이시며 메시아가 되셨다는 것을 "온전하게 되었은즉"(9절)으로 말씀합니다.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5:9-10, 개역한글)
이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또 온전하게 되심을 6-9절에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레위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써,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이 큰 위안이 됩니다. 저희의 잠시 받는 고난은 그치는 것이고 주님과 누릴 영원한 영광이 있다는 것은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더욱이 큰 환난 가운데 히브리 성도들에게는 매우 큰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이를 기억하며 한주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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