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고대하는 것(요약)

박이레 2026. 5. 17. 12:56

덕언 :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고대하는 것 / 26년 5월 17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18-26, 개역한글)

말씀속에 "탄식하며 고통한다" 또 "탄식하며"라고 세번에 거쳐서 탄식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1. 첫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합니다.(22절) 2. 또 우리도 탄식하여 양자될 것,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합니다.(23절) 3. 세번째는 성령께서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을 말씀합니다.(26절)

22절에 피조물이 함께 고통하며 탄식하는 것은 허무한데 굴복해서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것에 대해서 해방되기 위해서 고통하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에 썩어짐에 종노릇 하는데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많은 피조물들이 인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끄시고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지키고 그것을 다스리라" 자연을 다스릴 통치권만 주신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키고 살펴야 하는 임무까지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했을 때에 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개역한글)

인간의 범죄는 즉각적으로 피조물에게까지 저주가 내려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창조될 때에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대리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섯째날에 인간을 제외한 모든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6일째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창조된 인간은 온 우주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범죄 했을 때 모든 피조물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피조물들의 탄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지상재림을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실 때, 천년통치를 시작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만 피조물이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영광안에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피조물들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많은 쓰레기들, 또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가 녹고 있습니다. 또 그로인한 수많은 질병들이 생길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또 빙하가 녹음으로 인해서 해수면이 올라갑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에 피조물들의 탄식과 고통은 피조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23절) 여기서 원어적으로 '고통'은 산고를 겪는 고통을 말합니다. 피조물들의 고통은 멸망을 위한 사망의 고통이 아니라, 희망적인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에 회복된다는 확신적인 측면에서의 고통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말로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이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구원을 포함하신 것이라는 그 놀라운 사역의 범위를 깨닫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 피조물들이 구속되는 때에 어떻게 변하는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6-9, 개역한글)

완전히 동물의 세계가 변했습니다. 주님께서 천년 통치를 시작하시면 급격하게 자연 환경이 변할 것입니다. 메마른 사막에 샘이 솟고, 아름다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짐승이 지금의 양육강식의 법칙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질서를 따라서 다른 짐승을 먹지 않고 채식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년왕국의 회복은 영원히 지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죽으셨을 때 주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인간의 죄를 구속할뿐 아니라 영원한 새 창조를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새 창조는 백보좌 심판 때에 이를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늘과 땅이 없어졌다고 사도요한이 말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21장에서는 새하늘과 새땅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22장에서는 강물이 수정과 같이 맑고 생명나무가 그 강가를 두르는 영원한 새 창조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2-14, 개역한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벧후3:18, 개역한글)

피조물의 고통만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피조물이 바라는 것처럼 동일하게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할 지를 베드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말세에 어려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주님께서 오실날이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의 오실날을 바라보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데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