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성도의 탄식(요약)

박이레 2026. 6. 14. 11:16

덕언 : 성도의 탄식 / 26년 6월 14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지난 시간에는 피조물이 왜 탄식하는가의 주제로 교제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8장 23절 이후의 성도의 탄식에 대해서 교제하겠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2-27, 개역한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23절) '성령의 처음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성경을 우리가 받았다는 자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가 됩니다. 또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증거가 됩니다.
"처음익은 열매" 이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거두게 될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이루게 되는 성화적 구원과 몸의 구속, 영의 구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탄식을 한다는 것은 사실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탄식하지 않으면 좋은데 탄식합니다. "그리고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힌바 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으로 옮겨진다면 어떤 삶을 살겠습니다. 죄도 없고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죄와 무관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견져내랴?" 이는 사도바울의 탄식입니다. 내가 온전히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데 경건하게 살지 못하니까 양심이 찔리고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미워하고 분노합니다. 그리고 그 미움과 분노속에 반드시 죄가 들어있습니다. 분노는 의로운 분노가 있을수 있지만 그 분노조차도 해가지기 전에 해결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휩쓸려 가는 성도라면 그런 생각이 없을수 있지만 그 양심에 찔려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부적은 충격으로 고난이 있습니다. 또 구원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질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자매의 질병으로 인헤서 탄식하지만 그 누구도 질병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이 없습니다. 저도 중국에 가서 갑작스런 폐렴에 걸려서 죽을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질병이라고 하는 고통을 당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탄식이 나옵니다.
또는 인간관계에서는 어떻습니까? 가까이 있는 성도들 간에 반목이 있을수 있습니다. 또는 가장 가까운 자식이나 아내와 반목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온전히 살지 못하면 언제든지 대립하고 반목하는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죽음에서 자유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드니까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죽음 자체를 보면 너무 어렵게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형제님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마지막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않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관문을 넘는 것이 험할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휴거되서 변화된 몸으로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해서 마냥 평안하고 마냥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시고 연단하시며 어떠한 사람을 만나서 반목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성도의 성화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현재 이룬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탄식하며 고통하며 주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24절) 미래에 있을 영화적 구원은 이미 이룬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얻은 사람은 성화적 구원을 반드시 이룰 것이며 또 미래에 반드시 영화적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확보괸 구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어떤 고통이 있을찌라도 참음으로 기다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겪는것들이 주님의 마음을 혼자만이 아니고 상대까지도 품지 못하면 반목하게 되고 오해하게 되 상처를 주고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길 가운데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고 참아야 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살아야 하는 그러한 의무가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2-3, 개역한글)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서 주님 안에서 주님의 계획된 은혜아래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데 그 어떤것도 방해할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취된다는 믿음을 확고히 할때 탄실할 때에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