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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2장 22-28절(요약)

박이레 2026. 6. 17. 21:01

성경읽기 : 창세기 32장 22-28절(요약)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2-28, 개역한글)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32장 11절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 밤을 지새웁니다.
그리고 22절에서 야곱은 가족들을 얍복나루를 건너게 합니다. 얍복의 이름은 씨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강의 이름이 이 일 이후에 지어진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야곱은 홀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합니다. 이 씨름은 그냥 씨름이 아니라 지면 죽을수도 있는 씨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려고 하자 야곱이 나를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한다 합니다. 그래서 이 이떤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 사람이 왜 씨름을 걸어왔고, 왜 환도뼈를 쳤는지도 그 내용을 말씀해 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오늘은 29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야곱은 가족들을 모두 얍복나루 너머로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만 남아 있습니다. 지난시간 야곱이 홀로 남은것을 보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계략이라고 교제되었는데요.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이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독으로 야곱을 만난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모세를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만나셨고, 엘리야도 홀로 있을때에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인도하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나가야 하는 때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밤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합니다. 어둠 속에서 예고도 없이 씨름이 시작되는데 날이 새도록 씨름은 계속됩니다. 이 씨름에 야곱은 당연히 지쳤을텐데 야곱은 그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집요함이 야곱의 본성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고,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버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야곱에게 씨름을 거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를 알지 못하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것을 아시는 가운데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환도뼈는 야곱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의지했던 모든것의 상징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건드리셨고 야곱의 환도뼈는 어긋나게 됩니다. 야곱이 의지했던 생존방식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하던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시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더이상 자기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야곱은 환도뼈가 어긋났음에도 그 씨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가려 했지만 야곱은 상대방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왜 놓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볼때, 야곱이 어느순간부터 이 씨름의 상대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차렸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분에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환도뼈가 멀쩡할때는 그는 자기의 능력을 의지했지만, 그 환도뼈가 어긋났을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도 종종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것이 틀렸다고 우리를 치실 때에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즉시로 기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어떤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이시라고 표현해 주셨는데요. 저는 확실히 해 보겠습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12:3-4, 개역한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 주님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과 야곱이 씨름을 하였고, 주님께서 야곱을 이길수 없는 상황에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주님께 축복을 구한 상황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에 종종 그 상황에 맞게 나타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소돔을 방문하시기 전에 나그네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나그네였습니다.
여호수아도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전에 멀리서 군대장관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격려하십니다.
여기서는 야곱과 씨름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이 무언가와 씨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야곱보다 힘이 없어서 지신 것이 아니고요, 야곱이 붙잡을 분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저희가 붙잡을 분이십니다.
또 한가지는 씨름에서 이겨서 축복을 받은것이 아니라 붙잡고 놓지 않은 것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야곱이 이 과정을 통해서 그가 정말로 얻고 싶었던 하나님의 복을 제대로 주실 분에게 구하고 받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이상이나 형의 복을 빼앗는 것이나, 라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이제서야 참된 복을 얻을 분에게 구하고 얻습니다.
야곱은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그 이름을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그 이름은 벧엘에서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벧엘에 가야만 하나님께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보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가야만 하나님께 경배할수 있고 하나님을 배울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Q. 제가 질문이 있는데요. 32장에서 주님과 야곱이 씨름을 했는데 결국에는 누가 이긴 것입니까?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고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주님이 이겼다는 건지, 야곱이 이겼다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전의석 형제님 : A. 28절에서 주님께서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기었음이라"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인정할수 없지만, 주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에 야곱이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Q. 주님과 사람이 싸워서 사람이 이길수 없잖아요? 그럼 어떤 측면에서 이겼다고 말씀해 주신 것일까요?

호세아서 12장 4절에서도 야곱이 이긴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저는 이 부분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최종적인 승리가 확정된 것인데요. 조금더 생각해 보자면요. 야곱이 사실 주님께 진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님께 자신을 굴복시킨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승리했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도 싸우면 먼저 사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겼다고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어떠한 특정한 영역에서 "네가 이 부분에서 잘못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 사람의 이 부분에서는 왜 말씀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떠한 것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나의 어떤 부분이 먼저 굴복되어야 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강한 부분이 위골되었고, 주님께 졌지만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이겼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지난시간에 질문한 '밤'에 대해서 형제님들께서 교제가 되지 않았는데요. 이 밤에 대해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서서 어느것이 이기고 진 것인가에 대해서도 장승훈 형제님께서 교제해 주셨는데요. 저도 명확하게 어느것이 이겼는가, 졌는가 하는 그 기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28절에서 그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은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기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이름의 뜻은 속이는자, 붙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또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에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 밤을 보내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서 24절에 날이 새도록 씨름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Q. 그래서 이 씨름에서 어느것이 이기고 어느것이 진것인지에 대해서 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4절에 야곱이 홀로 있을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멀리서도 야곱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책망하실수 있지만 야곱에게 가깝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붙잡고 그를 다루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주체가 되서 일이 진행됩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있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함을 보이십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이는 야곱이, 또한 우리 자신이 우리의 고집을 꺾지 않고 붇잡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의 생애가 계속해서 자신을 붇잡고 버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을 때, 야곱은 더이상 걷지 못하고 주님을 붇잡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힘이 강할때 하나님을 붇잡지 않고 자신의 것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치셔서 하나님을 붇잡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약해진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해진 것입니다.

27절에서는 야곱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삭에게 자신을 에서라고 속였지만 이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고백합니다. 자기가 속이는 자이고 빼앗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같이 물으신 것은 네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고 성향을 인정하고,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된, 누가 참된 승리자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참된 승리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굴복하는 믿음이 축복은 간구하는 믿음이 승리라고 생각하고 됩니다. 야곱은 평생 경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서와도 경쟁했고, 라반과도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과 겨룸으로써 믿음의 축복을 받고, 사람들과의 문제에서도 이기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사람과의 문제에서 이긴것은 자기의 방식이나 생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이긴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는데요. 이는 언약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를 예배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브니엘에서 있었던 일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됨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할수 밖에 없는 백성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누가 있겼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요. 야곱은 그의 육체의 모든 것을 다해서 씨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육체의 씨름에서는 야곱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심으로써 그는 모든것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육적인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께 모든것을 매달립니다. 그래서 저는 결론적으로 야곱이 이겼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야곱이 자신의 육체의 것으로 주님과 싸울 때에 주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그때 야곱은 이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주님께 모든것을 의뢰하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저희도 모임 안에서 분란이 있을 때에, 앞서 재홍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오십니다. 그때 저희가 야곱의 교훈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요. 그리고 야곱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삭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가 거짓말했던 것을 정직하게 말하게 하시고요. 또 그의 가장 강한 의지했던 곳을 치십니다. 구약에 '야곱의 환난의 때'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젠가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때 이 야곱의 환난의 때를 이스라엘이 겪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야곱의 사건은 그림자적으로 이처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