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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2장 13-21절(요약)

박이레 2026. 6. 10. 21:04

성경읽기 : 창세기 32장 13-21절(요약)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세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고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창32:13-21,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13절부터 야곱은 양떼 가운데 에서에게 보낼 예물을 택해서 보내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경야하고 22절에 얍복 나루에 가족들을 보내고 24절부터 하나님과 야곱이 씨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먼저 13-23절까지 교제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창세기 32장은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점환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야곱은 라반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길에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기쁨도 잠시 뿐이고 야곱은 에서가 400명의 무리를 데리고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떼를 두 무리로 나누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란 성숙한 기도였지만, 그는 기도 전에도 자신의 꾀로 양떼를 두 무리로 나누고 기도를 끝낸 후에도 계속해서 에서에게 보내는 예물을 줍니다. 그 양은 550마리가 넘는 어마어마한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떼를 각 무리로 나눠서 에서에게 보냄으로 에서의 화를 누그러뜨리려는 야곱의 계략이었습니다.
"내가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풀고"(20절) 감정을 풀다는 것은 원어적으로 속죄, 덮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람의 능력으로 진정한 속죄를 할수 없다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것은 야곱에게만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주일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만 주님 외에 다른 내가 생각하는 삶의 안전장치를 예비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형제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에 저도 공감합니다. 그러한 부분을 생각하면서 저는 야곱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번주에 형제님께서 이 모든 문제는 이삭이나 에서로부터 나온것이 아니라 야곱으로 시작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삶에서의 문제도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해결하게 하십니다.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성장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란에 갔을 때에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왜 하란에 오게 되었는지 많은 질문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해서 잘 대답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할수 없는 부분을 에서와 해결하는 것입니다. 저는 20년이나 지났으니 에서가 이만 죽었으면 좋겠다, 에서를 안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그 목표를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서 한발짝씩 나간다는 것입니다. 군대 생활을 생각할때 행군을 할때 20km갈때 처음에는 오와열을 맞춰서 갑니다. 그러나 계속 진행하게 되면 다들 지켜서 오와열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교관들이 아무말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낙오하지 않고 그 목표점까지 끝까지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궁금해서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550마리의 가격이 얼마인지, 최소 5억에서 10억까지 보더라고요. 이 당시에는 이 사람들이 이것으로 살기 때문에 사실 돈보다도 더 큰 가치였을텐데요. 그것을 다 에서에게 주었습니다. 하란에서 수고해서 어렵게 얻은 재물이었을텐데, 그것을 모두 에서에게 줘버립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하나님이나 자신을 위해서 쓰는것이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준비합니다. 13절에 "그 소유 중에" 라반의 집에서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키시고 그 소유물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맡기신 소유물입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유물을 잘 관리하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청지기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유물을 에서의 화를 누그러뜨리는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모두 불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보낸 예물은 대략 600마리인데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야곱을 축복하셨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예물 가운데 암컷을 더 많이 보냅니다. 그렇게 암컷을 많이 보낸 이유는 에서가 그 예물들을 받고 재산을 더 증식할수 있는 미래도 내다 보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야곱은 에서에게 종과 예물들을 보내면서 종들이 받을 질문들도 생각해서 보냅니다. 이를 보면 야곱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야곱이 에서를 만나려는 의지가 분명하지만 계속 두려움 가운데 행동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21절에 경야했다고 나와 있는데요. 밤을 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또 브니엘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벧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을 주신 밤이었고, 브니엘은 야곱을 꺾으시는 밤입니다. 밤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과 분주할 때에 우리를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밤에, 고요할 때에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있을 때에 우리를 다루심을 교훈받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야곱이 에서를 위해서 보낸 동물이 550-600마리 정도 된다고 교제해 주셨는데요. 그 가치가 매우 높음을 교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내용들을 성경이 기록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암염소가 수염소보다 귀합니다.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또 앞에서 말할때는 종자와 소와 양떼라고 했는데요. 여기서는 암염소, 암양, 수양, 젖나는 약대, 새끼들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떼를 두떼가 아니라 아홉개로 나눕니다. 그리고 그 떼마다 종들에게 그 할말을 넣어주는데 이 말을 여러번에 거쳐서 합니다.
그리고 에서를 주라고 부르는 부분이 4-5절에 나오는데요 또 18절에서도 에서를 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지만 야곱은 에서에게 나갈때 에서가 자기의 주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볼때에 야곱이 에서에게 나갈때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가졌는지, 또 얼마나 자신의 생각으로 이러한 문제를 풀려고 했는지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이 부분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8절에 야곱은 에서가 와서 양떼를 치면 다른 할떼는 피하리라 하는 피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고서 그 마음이 조금 변해서 13절에서부터는 어찌되든지 에서의 화를 풀고 일단 만나야겠다고 그 생각이 바뀐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지난주에도 그런 교제를 나눴는데요. 이해하기가 참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형제님이 교제해주신 것처럼, 저희 자신도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주일 저녁에는 다른 삶을 살잖아요. 이해 안되는 저희 자신을 돌아보면 야곱이 또 이해가 됩니다.
32장에서 야곱의 변화라는게 참 다양하게 변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32장 초반에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언제나 함께하시며 지키며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야곱이 400인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에 대한 소식을 듣고 굉장히 두려워하고 양떼를 두떼로 나누고 그리고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희 삶 가운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어려움은 죽음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문제가 안올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그 문제가 닥치면 굉장히 혼란스러워 합니다. 저희도 주님을 믿고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하지만 갑자기 죽음이 임박하면 매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행동이 이해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야곱이 죽는것은 괜찮지만 야곱의 아들들이 죽는것은 안됩니다. "네 시로 바다의 셀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2절) 야곱은 이 기도를 하면서 큰 평안 가운데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수많은 재물을 의지하지만 그런것은 사람들에게 참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뢰할 때에 참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3절부터의 말씀이 꼭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에서에게 보내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내게 이러한 축복을 주셨기에 이 축복을 형과 나누고 싶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군데군데 야곱의 두려운 마음이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20절에 야곱은 형의 안좋은 마음을 풀고 형을 대면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수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야곱이 준비합니다. 6절의 종의 보고를 듣고 야곱은 답답하고 심히 두려워서 무리를 둘로 나누고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11-12절)
그런데 13절에서 야곱은 또 형을 위해서 예물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데도 자기의 지혜와 계산으로 암컷, 수컷의 비율과, 또 예물의 종류까지 나눠서 준비합니다. 그리고 각 떼를 종들에게 맡기고 상거가 뜨게 하라고 합니다. 이는 성격이 급한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에서를 주인처럼 섬긴다는 말을 앞에 가는 종들에게 주지시켜 줍니다. 아직도 야곱은 철저하게 자기의 지혜와 계획으로 행합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야곱은 갑자기 밤중에 일어나서 가족들을 먼저 보냅니다. 왜 밤중에 보냈는가 생각할 때에 먼저 가족들을 안전한 곳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홀로 남아있는 야곱은 어떤 사람과 씨름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 사람과 씨름하기 위해서 홀로 남은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야곱은 순간순간 자기의 지혜를 쫓지만 결국 24절 이후에 이러한 것을 다루시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의 이름의 뜻은 속이는 자, 발목을 잡는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름을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고 자기를 지켜주신다는 뚜렷한 증거들을 많이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늘의 군대를 준비시켜서 야곱을 지키려고 하는 상황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야곱은 또 두려워하고 12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습니다. 이는 벧엘에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13절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리고 22절에서 가족을 먼저 보내고 자기만 혼자 남습니다. 이는 또 비열한 행동입니다. 여차하면 자기만 피하려고 하는 악한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부정적인 측면 가운데 한가지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합니다. 그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서가 너무 두려우면 에서를 맞딱뜨리지 않고 다른곳으로 떠나버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24절 이하에 하나님과 씨름하고서 그제서야 변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의지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방금 형제님께서 교제해주신 말씀처럼, 처음에는 피하려고 했지만 기도한 후에 피하지 않고 형의 감정을 풀고 만나려고 하는 야곱의 자세를 보게 됩니다.
야곱이 기도한 후에 다시 인간적으로 행동한다고 교제를 드린것이 아니고,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방식을 얹은 것처럼 그러한 경향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순간순간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지혜와 세상의 것을 의존하는 경향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지만 그렇지 못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에서로 하려고 하는 방법들이 저희들이 글로 읽을때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이는데, 저희들의 실제적인 삶에서 하는 행동들과 생각들이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적인가, 아니면 말씀적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