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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31장 31-42절(요약)

박이레 2026. 5. 13. 21:08

성경읽기 : 창세기 31장 31-42절(요약)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얻지 못하매 라헬이 그 아비에게 이르되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얻지 못한지라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쌔 야곱이 라반에게 대척하여 가로되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두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내가 이 이십년에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 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31:31-42,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라반이 드라빔을 찾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후에 야곱이 라반에게 분노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20년 동안 라반에게 어떠한 대우를 당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또 야곱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인정하는 부분이 나와 있습니다. 또 야곱은 라반의 양들을 성실하게 쳤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경고의 말씀으로 선악간에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라반이 하나님께 이 경고를 들었으면 야곱을 만나지 않고 그냥 다시 자기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야곱을 만나서 자기의 생각이나 힘으로 야곱에게서 뭔가를 더 얻을수 있다고 생각해서 야곱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31-42절까지 먼저 자유롭게 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본문 내용을 보면 저희들도 구원을 받았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종종 억울함과 불공평함을 경험합니다. 라반과 야곱 사이에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외삼촌과 조카, 도 사위와 장인 사이의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20년간 야곱이 라반을 섬기는 동안 라반은 여러번 야곱을 착취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자 라반은 그를 따라잡고 왜 알리지 않고 도망쳤느냐고 물어봅니다. 야곱은 솔직하게 라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믿음의 사람인 야곱도 세상 일에 인간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 했음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떠났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따라 섬길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끝까지 붙드심을 보게 됩니다.
드라빔에 대해서는 야곱은 그 드라빔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발언은 이후 라헬의 죽음을 복선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이 내용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것은 아니지만, 라헬은 이후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드라빔을 깔고 앉아 있는 라헬의 모습을 볼 때에 그녀에게는 여전히 인간적인 집착이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지난시간 질문해 주신 "아람 사람 라반"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람은 갈대아우르에는 떨어져 있고,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과는 떨어져 있는 중간지점입니다. 그래서 갈대아우르라는 패역한 세상과는 벗어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으로 가지 않는, 애매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반은 특별히 두세대에 거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인물들과 함께 했습니다. 리브가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요. 또 야곱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아람 사람'으로 불리웁니다. 이처럼 라반은 야곱과 완전히 분리되어 각각의 독립된 가정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야곱에게는 "벧엘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하나님과 야곱과의 관계가 돈독하고 분명함을 알게 됩니다. 20년 전에 야곱을 선택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라반에게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라반은 그냥 아람 사람인 것입니다. 어떤 약속이나 축복없이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다루심이 있습니다.

32절에서는 야곱이 라헬이 드라빔을 도적한 것을 알지 못하고 찾으면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을 라헬이 들을 때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라헬은 라반의 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33절을 보면 드라빔을 라반이 찾는 순서가 나옵니다.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의 장막에 들어갑니다. 야곱, 레아, 여종들, 그리고 다시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그 후에 라헬의 장막에 마지막에 들어갑니다. 아마 가장 아끼고 예뻐했던 딸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그 자기 아버지를 속입니다. 속고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했을 때 20년간의 일을 말하면서, 자기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것에 방점이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내가 이렇게 축복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야곱을 지키시고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저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을 성실하게 섬긴 야곱의 모습은 저희들이 본받아야 될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저도 전의석 형제님이 교제해주신 내용과 비슷한데요.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 것이 '아람사람'에 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20절에 "아람 사람"이라는 표현이 영어로는 '아람 사람들에'라는 표현이기도 하고 현재로는 '시리아지역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곧, 시리아 지역 사람들이면서 아람 민족이라는 뜻이 구분없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형제님께서 교제하신 것으로 그 지역이 구분되는 것, 달라지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또 "그가 밧단아람에서 얻은 짐승들"이라고 야곱이 얻은 재물들을 표현합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만난 하나님을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람에서 벧엘을 향해서 나갑니다. 그래서 이러한 표현들이 라반이 속해있는 지역과 야곱이 속해 있는 지역이 나눠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9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내가 너를 해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32절에 야곱이 말하기를 "어젯밤에 하나님이 외삼촌을 책망하셨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31절에서는 야곱이 두려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라반을 막고 계시고 야곱을 계속 보호하십니다. 32절에서는 "우리 형제들 앞에서"라고 합니다. 야곱이 양측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조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것을 몰랐고 야곱 자신이 떳떳했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보면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고, 34절에 라헬은 그 드라빔을 숨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변명을 합니다. 죄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죄를 끌고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라반이 드라빔을 찾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찾다'는 것은 만지고, 더듬어서 살피다는 뜻입니다. 라반은 손으로 만져가며 장막 전체를 세밀하게 수색했으나 드라빔을 찾지 못합니다.
35절에서 라헬은 라반을 "내 주"라고 부릅니다. 겉으로는 공손하게 아버지를 부르지만 그 속은 전혀 다릅니다. 라헬은 아버지를 기만하고 거듭해서 속이고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29절에 "어를 해할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라는 내용이 있는것으로 봐서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하신 말씀은 선악간에 말하지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야곱을 해하지 말고, 또 라반을 책망하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사실 라반이 할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자 형제님 말씀대로 자리를 털고 돌아가야 하지만, 돌아가지 않을 빌미를 라헬이 드라빔을 훔침으로 제공했던 것입니다.
라반은 이런 부분을 굉장히 잘 활용할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만일 야곱의 무리 중에 자기의 드라빔을 발견한다면 하나님께 따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헬은 야곱이 당당한 말에 대한 결과로 심판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또 라반은 라헬을 매우 아꼈던 딸인것 같지만 자기의 손으로 라헬을 심판해야 했을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저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야곱의 행동이나, 라헬의 행동을 그저 책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믿음의 길을 가면서 부분 부분에서 믿음이 연약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라헬의 연약을 책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34절에 보면 라헬이 드라빔을 약대 안장 아래에 넣고 앉습니다. 이것은 라헬에게도, 야곱에게도 큰 위기를 모면한 일입니다. 그 당시에서 신을 도적질을 하면 죽음이라는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나중에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이를 좀 억지로 연결해본다면, 자기가 의지하려 했던 드라빔, 숨기려 했던 드라빔을 깔고 앉았고, 낳고 죽은 것이다, 라는 것으로 볼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태어난 것은 베냐민이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난 유명한 사람이 사울왕이고, 신약에서는 사울(바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총리도 베냐민 지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한 얘기같지만 저희들에게 굉장히 많은 교훈들을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라헬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야곱에게 가장 큰 위험요소였습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저희들의 인생에도 그런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가장 아끼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의 명수인 라반을 라헬이 속입니다. 그래서 그 아비에 그 딸이라는 부분들을 생각해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31절에서 야곱이 드라빔을 '외삼촌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라반이 직접 제작한 우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드라빔을 만들 때에 나무를 깎기도 하고 은이나 금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의 보물과 같은 위치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그 드라빔을 훔치지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라헬은 아비를 속여서 가나안 땅으로 드라빔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실 라반에게 들켜서 가나안 땅에 드라빔이 들어가지 않는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가나안에 드라빔이라는 우상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라헬이 이 우상을 가지고 들어간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또 야곱의 저주대로 아내(라헬)가 죽게 되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도 불행을 낳게 됩니다. 스가랴 말씀에서 "드라빔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라고 합니다. 드라빔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여겼습니다. 또 드라빔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오랫동안 끼쳤습니다. 이처럼 라헬의 범죄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37절에 "내 물건"과 "외삼촌의 가장 집물"이라고 야곱은 말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의 모든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일하게 라반의 아들들도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았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41-42절에서 야곱은 사람들 사이에서 판단하라고 말하고, 또 하나님께서 판단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볼 때에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라반은 드라빔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숨겼지만 이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38절을 보면 야곱은 자신이 얼마나 20년동안 라반을 충성되게 섬겼는지를 말합니다. 이는 야곱이 라반의 재산을 훔치거나 먹지 않았고, 암염소와 암양떼를 잘 돌봄으로써 라반의 재산이 잘 증가할수 있도록 충성스럽게 돌봤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라반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계속해서 야곱을 도둑으로 봅니다. 그러나 야곱은 충성스럽게 라반에게 일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정직한 노동과 그 보상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아무리 열심히 돌보더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에 양들이 낙태하지 않고 다치지 않고, 들짐승들에게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참된 섬김은 상대방이 나에게 합당하게 대해준다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도 정직하게 섬기는 것이 참된 섬김임을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야곱은 목자의 좋은 본과 청지기로써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형제님께서 교제해주신 그 내용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저는 첨언하고자 합니다.
야곱은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두 딸을 위해서 14년, 또 자기의 양떼를 위해서 6년을 일했습니다. 그 목적으로 일했지만 참 충성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야곱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주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볼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양들과 염소의 생명을 참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또 함부로 그 양을 먹지도 않습니다. 또 도적질을 당한것을 자기가 계산해서 다 채웁니다. 또 맞과 밤을 충성스럽게 수고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이와같이 돌보십니다. 저희도 저희들에게 나타난 양상은 다르지만 충성스럽게 임할때에 저희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드러나심을 교훈받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41-42절까지 교제되었는데요. 저도 이 부분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41절은 라반이 얼마나 자기 부를 위해서 악하게 행했는지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42절에서 야곱은 라반을 책망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하신 일을 말함으로써, 같은 조상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라반의 머리속에 깨워주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조상을 가졌지만 야곱과 라반은 아주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라반이 야곱을 쫒아올 때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쫒아왔는지를 43절에서 가장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라반은 야곱이 일군 재산 자체를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라반을 책망하시고 모든 재물을 야곱이 가지고 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42절에서 "내 고난과 내 수고를 감찰하시고"라고 야곱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과 모든 수고를 다 지켜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했기 때문에 그가 이룬 모든것은 야곱이 가지는 것이 합당함을 인정하셨고 라반이 그것을 빼앗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감찰하셨다"라는 단어를 생각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의 삶을 하나님께서 감찰하십니다. 다윗의 시를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이 모태의 배속에 있을때부터 아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디에 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각각의 모든 면모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묵상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는 생각하게 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김민원 형제님 : 37절에서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서 무엇을 찾았나이까"라고 야곱은 말합니다. 라반은 드라빔을 찾는데요. 저도 처음에는 드라빔을 라반이 가지고 있는 우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문자적으로는 '수호신들'이라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드라빔이라는 표현 자체가 영어로는 '하우스 올드 갓'이라고 해서 어떤 작은 조각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집물'은 야곱이 생각하는 라반의 드라빔을 말한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신을 가장집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라헬이 깔고 앉을 수 있는 라반이 섬기는 신, 드라빔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사위였지만 사위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에게 착취를 당하는 종처럼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라반이 야곱에게 하는 말들을 볼 때에 평소에도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이 양들을 칠 때에 일반 목자들이 받는 부담보다 더 많은 부담을 가지고 양을 쳤으며 라반은 매우 엄격한 목장주였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며 다 갚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