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아브라함이 드린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예배

박이레 2025. 12. 14. 12:41

아브라함이 드린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예배 / 25년 12월 14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창18:1-6, 개역한글)

저희가 이 부분을 성경읽기를 했고, 또 올해 수양회를 할때에 추가 공부했던 내용입니다. 창세기 18장은 아브라함이 천사들과 주님을 어떻게 접대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마크 스위트넘 형제님이 쓰신 예배라는 책에서도 이 18장의 아브라함의 접대를 예배로 다루고 있습니다.

"몸을 땅에 굽혀"(2절) 18장 본문에는 예배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이 몸을 땅에 굽히다'라는 단어가 예배로 많이 번역된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아브라함이 주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입니다. 성경의 최초 언급의 법칙을 볼 때에, 창세기 18장에서 예배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기에 예배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다룰수 있는 것은 18장 1절에서 아브라함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헤브론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있으라 지시하신 곳입니다. 그는 세상과 분리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나타나고, 또 그와같은 자는 주님을 바로 알아봅니다.
19장에 가면 반대로 롯은 어떠한 상황에 있었는가가 나옵니다. 그는 소돔 성문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자이지만 심판이 임박한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롯이 거하면서 그의 심령이 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거하였지만 그의 심령은 평안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음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살아 생전에 사라의 장례를 위해서 막벨라 굴만을 소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으실 성을 바랐기에 나그네의 삶을 기꺼이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사람 셋이 나타납니다. 나머지 둘은 천사입니다. 저희들이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에서는 처음 예배가 언급된 곳이 창세기 18장이고,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2장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찾아가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드렸습니다. 성경에 처음, 신약 구약에 언급된 예배의 대상이 모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저희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천사가 아닌 우리 주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창18:2, 개역한글)

"땅에 굽혀" 이 단어가 예배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저희가 오늘 아침에도 형제님들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가 형제님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형제님들께서 예배를 드리릇이 동일하게 자매님들도, 입술을 열지는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중요한 것이 지금 이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분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감히 나갈수 없는 분 앞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왕께서 계시며,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계시며,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지하고 그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입니까? 저희들의 입술의 예배를 들으시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저희들의 마음에 있는 예배를 먼저 들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형제님들이 입술을 열어서 유창하게 감사를 드렸다고 그것을 더 기쁘게 받으시고 자매님들의 기도를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불공평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입술을 열어서 아무리 유창하게 감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예배에서 떠나있고, 주님이 아닌 사람을 의식하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라고 할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임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몸을 땅에 굽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저희들이 참으로 하나님이신 주님 앞에 저희들의 마음이 엎드려 굴복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정말로 주님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주를 살며, 또 주님을 담아서 주님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개역한글)

저희가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 저희들이 마음으로 굴복하여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저희들이 일주일간의 삶동안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모임에 나와서 형제님들께서 드리는 예배의 내용은 문제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형제님들의 마음이 자매님들도 합당하게 아멘할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삶이 합당하게 아멘할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이 일치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고, 매순간 하나님께 나와서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될 때에 저희들을 영적인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예배를 드리고나서 섬깁니다. 저희들의 섬김은 참된 예배를 드린 후에 섬길수 있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합당하지 않은 상태로 예배를 드리면 합당한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도 아무렇게나 섬길수 없습니다. 주님에 대한 합당한 이해를 가지고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주님께서 섬기게 하십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3, 개역한글)

신령과 진정은 영과 진리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가를 묵상하고 한주를 살아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한 주님을 이 자리에 가지고 나와서 진심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같은 자들을 찾으십니다.
이러한 내용이 창세기 18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을 알아보고 참된 섬김을 했습니다. 그리고 18장 17절에 보시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말씀하시고 소돔성의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곧,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에 대한 더 나은 앎은 주십니다.
저희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가식적입니까? 또 얼마나 연약이 많은 자들입니까? 아브라함도 연약이 있을진대, 저희들은 얼마나 더 부끄러운 자들입니까?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게 될 때에 더욱 놀라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배는 저희를 첫번째로 섬길수 있게 하십니다. 두번째는 더욱 귀한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레위기에 번제에 대한 제물로써 소, 양, 염소, 집비둘기, 산비둘기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제물을 말씀하신 것은 이 예배가 특정 계층에만 속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가 집비둘기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소나 양, 염소를 드리는 자들의 예배와 같이 기뻐 받으십니다.
만일 현준이가 구원받고 예배를 드리는데, 김보영 형제님처럼 드린다면 이상하게 들리지 않겠습니까?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감사히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저희들도 기쁘게 아멘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예배가 대전중구 모임에 드려지고 하나님께 영광되고 기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