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혈루증 걸린 여인과 야이로의 딸 / 26년 6월 14일 일요일(요약1) / 최재홍 형제님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쌔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막5:21-43, 개역한글)
마가복음 5장에는 절망 가운데 있던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그는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며 사람들 사이에 신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존경을 받든, 그 신분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렸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열두해동안 혈루증을 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율법으로도 부정한 사람이었고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기피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썼지만 모두 실패하고 돈도 모두 허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방법으로 모두 실패했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만이 그 문제를 해결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둘의 공통점은 둘다 12년이라는 시간이 나와 있습니다. 한사람은 살아있었지만 부정함과 고통가운데 있었고요. 다른 한사람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죽음을 앞둔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 한사람은 그 피가 계속 유출되고 있었고, 또 한사람은 피가 유출되지는 않았지만 그 피의 순환이 멈추게 될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유출되는 피를 유출되지 않도록 하시며 또 멈추게 될 피희 순환을 그대로 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레위기 17장에 보면 피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은 이 생명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새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살지만 실제로는 그 생명이 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죄의 문제는 사람의 손으로 해결할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앞에 있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보다 내 생각을 믿고 그리스도 되신 주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 주님께서 성령께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며 자신을 주인삼아 사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도 열두살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그 아이를 붇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동안 들려온 소식은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는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은자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 죄는 사람을 더럽힐 뿐 아니라 죽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죄를 씻을수도 없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자기 힘으로 생명을 얻을수도 없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처럼 우리는 죄로 인해서 무력해져 있는 자이고 야이로의 딸처럼 죽음아래 있는 자임을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죄에서 씻기는 것이 필요하고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것이 필요합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야이로가 예수님께 간구를 했고 그와 함께 가시는 길이었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또 많은 무리가 함께하고 예수님을 둘러싸고 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을 로마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녀도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고 그녀 안에서 믿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자신의 병이 나을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졌지만 몰래 뒤로 왔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드러내지 않고자 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만이 예수님의 몸에 닿은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이 여인만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것은 다른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들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것은 다른 것입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믿는것은 아닙니다. 먼저 나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즉시로 그 혈루의 근원이 말랐습니다. 열두해동안 전혀 멈추지 않았던 피가 멈췄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고칠수 없던 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보면 부정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일어났습니다. 이 여인의 부정함은 결코 예수님을 더럽히지 못했고, 오히려 이 여인이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낫는것은 죄인이 그 죄를 멈추고 깨끗함을 받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대신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 하나하나의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죄가 심판받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대신 치루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은 친히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시는 분이심을 말씀해줍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담당하신 구주시고 죽음을 이기신,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사실이 야이로의 집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의 사건을 다루는 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야이로에게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어찌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라고 합니다.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죽음이 오게되면 더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것이 끝났다고 절망가운데 빠집니다.
야이로의 입장을 잠시 살펴봐도 좋을것 같은데요. 자기의 딸이 죽은 소식을 들은 야이로는 주님께서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치기 위해서 시간을 써서 일이 지체되어 자신의 딸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혈루증 여인을 고치시고 그 사실과 여인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야이로의 믿음을 붇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 시간을 지체하신 것은 야이로의 딸을 고치실 시간을 놓친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이로의 믿음을 더 굳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고치심으로 주님께서 죽음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죽음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행할수 있음을, 그 사실을 믿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때 야이로의 딸이 죽었기 때문에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슬퍼하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 집가운데는 죽음의 냄새가 났지만 주님께서는 이 아이가 죽은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아이가 실제로 잔다고 생각하심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으로 죽은 아이조차도 다시 살리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율법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만지는 것도 부정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소년 즉시로 일어났습니다. 이는 죽음의 권능보다 크신 주님의 부활의 권능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소녀의 부모와 세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올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에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개역한글)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거듭나게 하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시고 죄인을 살리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그리스도되신 주 예수님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은 무리 가운데 숨어 있었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몰래 가는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 이는 몰라서거나 여인을 책망하기 위해서 부른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이 공개적으로 그 믿음을 드러내고 믿음의 확신 가운데 살아갈수 있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여인은 두려움으로 나왔습니다. 믿음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주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막5:34, 개역한글)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녀를 더이상 부정한 자로 부르지 않고 병든자로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공통체 안에 속하지 못하는 부정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구원은 저희의 감정에 있지 않습니다. 저희의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가 있습니다. 혈루증의 병이 낫는 것은 혈루의 근원이 마른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평안히 가라"는 것에 근거가 있습니다.
또 야이로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합니다. 믿음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 단순히 죄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죄라고 인정하고 내 마음을 버리고 구원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이 나를 죄와 죽음에서 건질수 있는 유일하신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끝까지 자기 생각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걸린 여인에게는 평안히 가라고 하셨고, 야이로의 딸에게는 먹을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으면 평안히 주님안에 거해야 하며 영적으로 자라가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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