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3절 / 마포모임, 20년
- 사회자 형제님 : 네 오늘은 요한일서 2장 3절부터 나갈 차례인데요. 먼저 나가기에 앞서 요한일서 2장 1절부터 6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요일 2:1-6).
네, 지금 요한일서 2장 이제 내용을 계속 저희가 나가고 있는데요. 이제 요한일서는 많은 성도님들 아시다시피 많은 영지주의자들의 그런 제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사도 요한 형제님께서 우리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려주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 영지주의자 같은 경우에는 육신은 무조건 악하고 영은 선하다 하여 그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거나, 혹은 육신적인 부분에 대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냥 육신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 즐겨도 된다라는 식으로 이제 그런 잘못된 교리에 빠질 수가 있는데요. 그래서 2절 첫 번째 부분에서도 사도 요한 형제님께서는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썼음을 얘기하고 계십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이 있으니 이는 곧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 되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셨고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생각할 때,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들을 생각할 때, 또 이제 뒤로 나오면서 저희가 영지주의자들은 이제 보통 '지식'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제 자기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이제 3절부터 계속 얘기해 주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3절부터 계속해서 참 그리스도인, 주님을 알고 행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얘기하고 있는데요. 3절과 4절 같은 경우에는 또 상반되게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은 자로,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대비를 이루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은 2장 먼저 3절부터 교제를 나가려고 하는데요.
또 이제 3절과 4절이 대비를 이루면서 하기 때문에 또한 같이 교제해 주실 내용이 있으면 같이 교제해 주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단 그럼 2장 3절부터 형제님들께서 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형제님 1 :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3절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부분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 크게 세 가지를 언급을 하고 있는데요. 3절에 보면 1. "계명을 지키면" 이라고 해서 계명을 지킬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 5절에 2.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그래서 그의 말씀을 순종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는 3.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래서 그 말씀을 따라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순종에 대한 근거는 제가 그 앞에서 배운 1장 7절, 이 말씀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빛 가운데 행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들을 근거로 해서 어떻게 행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인 부분을 말씀하고 있다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3절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해서 계명을 지키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언뜻 보면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저를 아는 줄 알 것이다" 라고 해서 뭔가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만 주님을 알 수 있다라고 오해를 할 수 있는 소지가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그 흠정역을 찾아봤더니 흠정역에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으로 보아 이로써 우리가 그분을 아는 것을 우리가 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계명을 지켜야 주님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을 아는 사람들이 계명을 지키게 된다라고 하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주님을 아는 그것을 나타내게 되고 그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 로 해석할 수 있고요.
그리고 여기서 보면 '계명을 지킨다'라는 것과 '안다'라는 것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것과 관련해서는 요한복음에도 몇 절 살펴보면 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에 보면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해서 그 계명과 관련돼서 말씀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15장 10절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라는 말씀이 있고요. 또 14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나의 명한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장 23절과 24절 말씀도 살펴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그래서 이 계명을 지켜야 아버지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계명을 지키고 말씀을 순종하고 한다라는 것들을 말씀하고 있다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 전효진 형제님 : 3절 말씀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안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아는 그러한 방법이 '하나님의 계명이 삶에 적용되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이제 입증되어 진다고 2, 3절 말씀으로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이건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 안에 참 지식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이중적으로 이렇게 아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렇게 두 사랑으로 이렇게 압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의 순종은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그런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고 또 알고 있다는 것,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분별하는 이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이 지식을 아는 것은 도덕적인 행위를 이 삶 가운데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임을 동반하게 되는 것을 3절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죠.
그냥 신비한 지식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또 구원을 얻은 자들은 죄와 전혀 상관없는 없이 산다라는 그런 도덕적 폐기론을 주장하는 그런 영지주의자들, 그들의 그 이단적인 가르침이 그때도 있었고 또 현재에도 그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그들은 그 믿음의 그 대상을 대언자이신 주님이 아니라 그 자신의 잘못된 깨달음, 거기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잘못을 그들은 저지른 거죠. 그들에게는 이제 올바르지 못한 헛된 그러한 지식만 있고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행할 참된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식을 자랑하고 순종은 이렇게 거절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구원은 절대로 이렇게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며 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렇게 믿을 때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고 또 그 믿음의 증거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새로운 성품이 이렇게 삶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새로운 계명을 이렇게 순종함으로 입증되어지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아는 것이 그냥 지식적이고 또한 경험이 없이 이렇게 말로만 이렇게 주장하는 어떤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경험적이고 역동적인 것임을,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사도는 이렇게 3절, 또 이어지는 4절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제시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전에는 몰랐던 어떤 새로운 지식을, 새로운 사실을 지식적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영적인 관계로 들어가서 실제적인 삶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임을, 하나님의 그러한 성품들이 삶 가운데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증거인 것임을, 이렇게 제시함으로써 영지주의자들의 그러한 입을, 그 주장들을 막을 수 있는 구절이 이렇게 3절 또 이어지면 4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 형제님 2 : 3절에 "아는 줄로 알 것이요"라는 이 부분에 그 문법 구조를 잠깐 살펴보게 될 때 "아는 줄로"라고 돼 있는 이 부분은 이제 원어로 '완료형' 시제로서 과거에 어느 시점에 이제 알았고 그것을 이제 '계속해서 알고 있다'라는 것을 보이고 있고, "또한 알 것이요" 이것은 이제 현재형으로서 '지금 알 수 있다' 이제 이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완료형 시제로 쓰인 부분을 저번에 교제를 공부를 했었는데요. 1장 10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이 부분이 이제 완료형으로 돼 있어서 이 영지주의자들이, 거짓 교사들이 어떤 과거에 어떤 시점부터 자신들이 범죄하지 아니하다고 주장해 오면서 계속해서 현재까지 주장해 오는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까 사회자 형제님께서도 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이들이 이제 초월자로부터 받은 이 초월적인 지식인 영지를 이제 알게 되면,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제 주장을 하고 영혼은 본질상 선하고 어떤 상태에서부터 오염될 수가 없기 때문에 육체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해도 상관이 없고 그것은 죄를 범한 게 아니다, 이렇게 이제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 자신들이 그 영지, 그 지식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시점부터 자신들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이제 주장을 하고 자신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그 영지만 의지를 했을 거라고 이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주님을 알게 됐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주님의 이제 계명을 지켰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될 때 이 신약 성경에서 주님께서 하신 그 말씀들, 주님께서 하신 그 명령들을 유의해서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아까 형제님께서도 많이 그렇게 이제 보여집니다. 요한일서 저희가 3장 18절 말씀에 보면은 이제 형제를 사랑해야 된다고 하시면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이제 요한 형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현재, 지금도 알 수 있는 그런 방법이라고 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요한복음 또한 14장 21절 말씀에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계명들을, 저희가 명령들을 저희가 묵상하고 저희가 저희의 실질적인 삶에서 그것을 지키게 될 때 주님께서 그 자신의 그 사랑과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더욱 보이심으로 저희가 자연스럽게 주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고 보여집니다.
- 박성호 형제님 : 2장 3절과 5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두 가지 아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은 3절에 대해서만 하게 되는데요. 아는 것, 이제 확신한다는 건데 이 말씀과 각각 이제 반대쪽에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인데요. 1. 첫 번째 한 부류는 '지나친 거짓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요. 2. 두 번째 다른 한 부류는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는 저희가 계속 얘기해 오듯이 '영지주의자'들인데요. 거짓 확신을 가진 자들이에요. 이들은 자기가 특별한 경험을 했고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명과는 전혀 상관없이 죄를 짓는 부도덕한 삶이었고 또 자기를 높이는, 그리 하여서 신비한 지식을 모르는 성도들을 무시하는 그런 교만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제 이제 '거짓 겸손한 자들'이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말은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고 의로우셔서 나 같은 이러한 비천한 죄인이 어떻게 여기서 이 땅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감히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의 죄가 용서되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나는 단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혹시라도 하나님이 어여삐 봐주게 된다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은 죽어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을 확신한다라는 것은 교만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거듭나지 못한 종교인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올바르면서도 건전하고 담대한 확신은 구원받은 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 내용이 우리의 대언자이고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요. 어떠한 교리라든지, 어떤 지식이라든지, 그런 것을 안다는 거라기보다는 예수님이 그러한 인격과 사역이 우리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인지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의 사역을 근거로 죄 용서를 받았고, 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경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이제 사도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을 겨냥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신비한 지식을 갖게 되는 체험을 가졌다라고 이제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들이 하나님 아는 근거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2장 3절에서 사도 요한은 그러한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삶 가운데 계명을 지키는 행위'가 '하나님을 아는 증거'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상과 뜨거운 감정과 기적과 체험을 이런 가진 것이 증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렇게 유혹했을 때 주님께서 겸손하고 온유한 모양으로 "기록되었으되 사람이"라고 말씀을 인용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단에게조차도 사실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강력하게 역사하고 엄청난 지식을 내세울 수도 있는데요.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셨을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즐거이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자기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하는 방법은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 때 형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가,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지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 괴롭고 눌림이 있는 것입니다. 또 외부의 핍박과 또 유혹이 있을 때 그것들을 선택하지 않고 말씀을 지키는 것, 그것을 통해서도 자기 안에 생명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 이제 형제를 사랑하는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을 찾게 되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 조재훈 형제님 : 3절은 "그리고"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우리가 교제한 내용과 계속 이어지는데요. 우리가 앞에서는 이제 '교제의 필수 조건'에 대해서 이렇게 보았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고, 또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그의 죄를 발견할 때에 아버지 앞에 자백을 하고, 또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고 이 교제를 유지케 하는 것은 우리 앞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의로우신 대언자가 있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3절부터는 이제 그러한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참된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3절부터 6절까지는 이제 '순종', 그리고 7절부터 17절까지는 '사랑', 그리고 18절부터 이후에까지는 '진리', 이 세 가지를 통해서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참된 증거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순종은 앞에서 형제님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1. 3절에 "그의 계명을 지키면", 2. 5절의 "말씀을 지키는 자", 그리고 3. 6절에 "그의 행하신 대로 행하는 자", 그래서 이것은 점점 그 크기가 이제 커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순종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만, 그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 이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더 나아가서 그는 주님을 본받아서 행하시는 대로 주님을 닮아서 행하는, 그런 모습으로 순종을 이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이 이제 필요한 이유는 4절에 "저를 아노라 하고" 여기서 '아노라 하고'가 '말하고'입니다. "저를 아노라 말하고", 또 6절에 "저 안에 거한다 말하는 자" 이런 말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교제했듯이 이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또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자에 대해, 그러한 고백이 참된 고백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이제 3절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로써 이제 알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로써'는 이제 요한일서에서 계속 여러 번 나타내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고, 2장 5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다룹니다. 또 3장 24절에서는 우리 안에 이제 거하시는 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4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4장 13절에서는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신 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5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이제 '아는 것'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이고 말뿐인 고백인지 참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드러난 행동으로', '그 삶의 방식으로' 이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영적인 것들은 드러나는 것들로 알 수 있는 것을, 또 그의 하는 말과 또 그의 행동으로 알 수 있는 것을 이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표현을 "우리"라고 해서 사도 요한은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험해 볼 것을 이제 생각하게 합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현재형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현재 계명을 지키고 있는 삶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주님과 같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킨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고, 또 계속적으로 그런 삶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원하는 이유는 이미 교제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율법 하에서는 계명을 지키는 이유는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혜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구원받았고, 이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계속 지속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삶 가운데 있는 사람을 볼 때에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안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을 알았고, 또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삶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 '안다'라는 단어는 '에피그노시스'입니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점차적으로 알게 되는 지식을 뜻합니다. 반면에 '오이다'라는 단어에 '안다'는 직관적이고 온전한 지식을 뜻합니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표현하는 그런 지식입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 이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을 구원받을 때 참으로 알고 또 더욱더 알아가는 것입니다. 더욱더 알면 알수록 더욱더 계명을 지키길 원하고, 순종의 삶을 더욱더 살기를 원하고, 그러한 앎을 통해서 우리의 순종도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여기 3절부터는 이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자녀들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3절부터 11절까지를 생각했을 때에 두 가지 증거를 대표적으로 보게 됩니다. 한 가지는 첫 번째로는 3절부터 6절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게 첫 번째 증거입니다. 이제 5절에 "하나님의 사랑"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될 수가 있고, 이제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보는 것이 더 문맥에 맞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3절부터 6절까지 이제 첫 번째 증거는 그는 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7절부터 11절도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이제 동일한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7절부터 11절은 특별히 '형제를 사랑하는 이 계명'을 이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죠.
이제 반대로 거짓 교사들은, 영주주의자들은 말로만 거짓말을 합니다. 이제 그들은 대표적인 게 자신들이 하나님을 안다라고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고, 그리고 빛 가운데 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게 다 그들이 그들의 하는 행동으로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진리가 그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 임을,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선 '계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봤을 때, 이 계명이라는 단어가 사도 요한이 자주 사용하는 그런 단어인데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는 십계명하고 유사하니까, 이제 마치 율법처럼 이렇게 느껴지지만 사실 율법의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나중에 뒷부분에 7절, 8절 보면 이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계명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게 뭐 새로운 것을 자기자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원래부터 그들에게 가르치신,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이고 그리고 또한 특별히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율법처럼 우리의 밖에 있는 어떤 의문에 써진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써진' 그 계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지키는 것'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이제 단지 어떤 어떤 몇 개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한 태도, 그것을 사랑하고 보물처럼 아끼고 바라보고 즐기는, 이제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말씀하신 것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 그러한 내용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받은 이들의 당연한 반응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그런 계명들에 대해서 사랑하고, 그것을 보물처럼 아끼고, 마음에 품고, 그것에 기쁘게 이제 따르기를 자원하는 그런 것들이 계명을 지킨다는 것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이 새 계명이라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게끔 하는 그 능력이 또한 주어져 있는 그런 계명임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제 '주님의 능력'으로 또한 이것을 지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켰을 때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을 안다"고 돼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앞에 말씀해 주셨지만 첫 번째 나오는 '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를 안다" 이것은 '완료형'이고 이것은 과거에 한 번 있었던 사건인데 그것이 영원토록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에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그것은 계속적으로 영원토록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특별히 여기서는 "우리가 저를 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게 놀라운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단지 구원 받는다는 게 지식적으로 어떤 사상을 그냥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한 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경험한 것이죠. 우리가 거듭나는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사건을 우리가 "저를 아는 것을" 그 사건을 계속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구원은 단지 먼 과거에 있었던 그냥 잊혀지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고, 그 구원의 그 복과 기쁨과 특권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제 현재형으로 두 번째는 "알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계명을 지킬 때에, 우리가 주님의 그 계명을 말씀을 지킬, 때에 우리는 우리 속에서 그 계명을 사랑하고, 또 우리 속에서 그 계명에 대한 능력이 나타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을 볼 때에 우리는 경험적으로 '정말 이것이 구원이구나.' '정말 구원받은 자가 이런 거구나.', 이런 것을 더욱 이제 알아가는 것입니다. 점점 더 앞에 형제님이 교제해 주신 대로 그런 경험은 계속해서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계명과 주님의 말씀, 그리고 주님이 행하시는 대로 그 본을 점점 더 확장해서 더 성숙한 경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그 사람의 속에서 온전하게 되는, 성숙하게 되는 것을 이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이 계속적으로 정말 우물처럼, 계속 그것을 더욱 경험하게 되는 것을 이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에도 말씀해 주셨지만 "이로써 안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로써 안다", 사도 요한은 안다라는 단어를 경험적으로 안다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또한 "이로써"라는 것을 또 같이 붙여서 사용합니다. 그냥 논리고 어떤 사람이 만든 사상이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것이고, 실제 작동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봤을 때 이로써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 형제님 계속 찾아주셨지만 그렇게 이로써 알게 되는 것들이 우리 가운데 이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예, 저희들이 지난 시간 이장 2절까지 이제 그 내용을 조금 살펴보면요. 요한일서 1장부터 저희들이 살펴본 내용은 "영원한 생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과 이제 교제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저희들이 배웠고요. 그리고 저희들이 교제하는 그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그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빛이시다." 이런 내용을 배웠고요. 그다음에 그러한 교제를 방해하는 것들, 특별히 죄에 대해서 저희들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교제하는 자들의 책임, 저희들의 책임과 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제를 유지하시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저희들이 2장 2절까지 배운 것 같습니다.
2장 3절부터는 그러한 교재를 누리는 사람들이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가, 아마 지금 앞에서도 다 형제님들이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은데요. 그러한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삶의 특징을 나타내는지를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게 이제 요한일서 전체적으로 조금 이렇게 문단을 나누는 것이 좀 쉽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제가 이해한 대로 조금 말씀을 드리면 3절에 저희들이 오늘 배우는 "저를 안다", 6절에 "저 안에 거한다." 또 9절에 "빛 가운데 있다" 이런 표현들이 전부 다 교제 가운데 있다라는 표현으로, 이제 비슷한 의미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을 추적해서 가다 보면, 그런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1. 하나님께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합니다. 지킵니다. 그리고 2.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그리고 3. 빛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12절 이하에서 이제 끝부분까지도 그러한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자녀들아"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특징을 또 보이냐면, 아비들, 청년들, 아이들, 이제 이렇게 나눠서 언급을 하고 있는데요. 그들 안에 영적인 성장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알았음이요." 아비들도 13절에 "너희가 앎이요." 그래서 그들은 앎으로써 시작합니다. 앎으로써 시작하고 점점점점 더 알아가고 그 앎이 더 친밀해지고 이제 깊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악한 자를 이기고, 흉악한 자를 이기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또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를 지키는, 이러한 특징들을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3절에서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 알 것이요." 이제 제가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아갑니다. 그의 삶의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지, 교제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4절에서처럼 그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앞에서 이제 여러 동사들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 이건 진짜 그것을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그것을 아끼고 정말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정말 귀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기쁘게 순종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이제 앞에서도 계속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희들이 앞에서도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되신 하나님과 그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저희들이 교제한 기억이 나는데요. 이게 계속적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밀하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기 때문에,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반대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뒤에 부분에서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면 알수록, 하나님과 교제하면 교제할수록,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얼마나 이것이 귀한 것인가를 알게 되고, 그 가치를 알게 되고, 기꺼이 그의 명령을,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참 이게 어떻게 보면 선순환적인 것이죠. 저희들이 정말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과 지금 교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3절에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 형제님 3 : 이제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이 요한일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라고 생각이 되고요.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이제 우리가 구원을 얘기할 때, 그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까 내 구원이지."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이제 모든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셨고, 여기 2장 2절에 써 있죠. 그런데 이제 물어보는 겁니다. 그것을 그 말을 하기 전에 "오케이,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셔서 죗값을 지불하셨어." 거기까지는 딱 됐는데, 그런데 "너랑 예수랑 무슨 상관인데?" 이 예수님께서 돈을 내셨는데, 이 돈을 너를 위해서 내셨는지 어떻게 알아요?
딱 그 두 번 하나의 질문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이제 인격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날 위해서 돌아가셨냐? 이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죄 값을 지불하신 건 알겠는데, 그 값이 나를 위해서 지불하신 거냐? 이제 이것을 물어볼 때 "아, 그렇다.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것을 내가 인정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전에 보면 이제 예를 들어서 요한일서 1장 7절에서도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돼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물론 이제 다 중요한 단어죠.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이 부분이 있는데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의 자녀이고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하고 예수님하고는 그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을 때 그 아들이다. 그래서 죄사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예수님이 희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랑 인격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게 없다고 그러면, 그 부분을 설명 못하면은 예수님은 나랑 아무 관계가 없죠. 그러니까 물론 당연히 그건 사실이 아니죠. 사실이 아니죠. 나는 이제 그걸 알고, 예수님께서 내 구주가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였고, 이런 것들을 다 알고, 그런 인격적인 관계로 들어왔죠. 그게 구원인데 이 영지주의는 뭐냐 하면, 구원을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구원이 믿음이다. 이렇게 딱 알잖아요. 그런데 영지주의는 구원은 앎이다, 딱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알면 구원이다, 이거죠. 그러니까 인격적인 부분이 딱 배제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내가 구원 받으면 끝이에요. 예수님하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구원 받았으니까 난 자유한 거죠. 난 알았으니까 다 해결된 거죠. 그런데 사실은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나랑 예수님하고 어떤 관계에 들어간 겁니다. 그러면 나는 인격적인 관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권위 아래 계속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의 권위 아래에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 그 뒤에 보면 2장 1절에 보면 어떻게 말하냐면 요한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이렇게 쓴 목적이 뭐냐 하면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이 보면 이상하죠. 왜냐하면 알면 구원인데, 왜 내가 그 구원을 받았을 때 죄를 안 짓게 되지? 이제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되겠죠. 이제 대표적인 예가 그 간음하다 잡힌 여인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예수님께서 도와주셔가지고, 사실 아무런 하등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도와주셔가지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여인이 이제 목숨을, 예수님께 생명을 빚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인격적인 관계에 들어갔고, 예수님께서 그때 이 가늠한 여인에게 마지막으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렇게 말하는 이 상황이 딱 나오는 거죠. 그러면 이 여인은 자기가 그 죄를 죄를 짓지 않냐? 짓지 않을 수 있냐, 없냐, 예수님께서 이 계명을 내가 지킬 수 있냐, 없냐, 그런 걸 따지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 여인은 이제 이 예수님의 권위 아래 들어온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의 방향이 딱 결정된 겁니다. 예수님께서 딱 그렇게 말해 주시는 거예요. 그걸 지킬 수 있냐, 없냐, 그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은 이렇게 단순히 내가 어떤 걸 이렇게 획득한 게 아니고, 그분과의 어떤 관계를 통해서 같이 사는 겁니다. 이제 같이 이렇게 계속 사는 거죠. 그분의 권위 아래에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2장 3절을 보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이렇게 딱 돼 있는데 저는 이제 이 부분에서 핵심이 계명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요한 거는 "그의 계명"입니다. 구약 시대는 그의 계명이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계명이 많죠. 뭐, 뭐, 하지 마라. 뭐 해라. 뭐 이렇게 율법의 계명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걸 어떻게 지켰냐면 그분의 계명으로 지키지 않고 '내 계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키는 겁니다. 내가 지켜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거예요. 계속 그래서 그렇게 계명을 지키면 이게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더 멀어지는 거예요. 하나님하고, 내가 높아지고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리고 선민의식을 갖게 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달라. 나는 높아. 난 특별해. 이런 식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계속 얘기를 하시고, 결국 다시 2장 3절에 이제 영지주의 자들이 말하는 자유라는 게 뭐냐?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이냐? 진정한 자유는 내가 알고 끝, 해서 이제 자유롭게 사는 막 사는 그런 게 자유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에서 그분의 계명, 곧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자유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다. 뒤에 교제를 할 텐데,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딱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 관계를 말하는 데,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너한테 있냐? 그냥 알고 끝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너한테 계속 남아 있느냐?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계속 너 안에 있으면 살아계시면 너는 생명이 있는 거고, 그분이 하고 이제 그때 만나고 끝 하면 생명이 없다는 겁니다. 너는 알고 그치면, 영지주의자들 너희는 생명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다분히 인격적인 것이며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 그러니까 그분의 권위 아래에서 우리가 능력을 가지고 계명을 지키게 되는 이런 생명이 있다. 이런 인격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입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어떤 사람이 교제 가운데 있는지 이제 아는 방법이 1. 첫 번째 '순종하고 있느냐' 하는 거죠. 그다음 문맥은 2. 사랑하고 있는가, 이제 그 다음은 3. 세상과 성별돼 있는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데요.
1. 우선 첫 번째로 보면 그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에베소서 2장을 보면, "불순종의 아들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를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순종하는 자식"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느냐, 구원받지 않았느냐를 가르는 게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받을 때 했던 질문이 두 개입니다. 저희들이 사도행전 9장에 나오고, 그다음에 계속 나와야 되는데 이제 한글 성경은 약간 빠져 있는데, 사도행전 22장 같은 데를 보면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뵀을 때 그가 한 질문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1. "주여 뉘시오니까?" 이 질문을 하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 질문이 2.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입니다. 두 가지 질문이 구원받을 때 나옵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면 구원 자체가 순종입니다. 저희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죠. 그런데 이제 믿음이 순종이라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이 대표적인 대목이 로마서 1장 5절입니다. "믿어 순종케 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전해서 믿어 순종케 하려고 한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이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대조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거기서 믿는 사람의 반대가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첫 번째 믿음이 첫 번째 순종입니다. 저희들이 침례가 구원받은 성도의 첫 번째 순종의 걸음입니다. 그러듯이 이 믿음 자체가 순종입니다. 그래서 이제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순종하는 사람이다. 순종하는 자녀다. 이게 이제 구원의 특징이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불순종합니다.
다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면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곳이 이제 세개 있는데요. 이제 교회, 가정, 그리고 국가가 있습니다. 가정은 이제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이제 '가정'을 허락해 주셨죠. 결혼하고 자녀를 낳게 돼 있죠. 그런데 이때 하나님이 만든, 저희들이 맨날 말했던 건데요. 하나님이 만든 이 세 가지 곳에서는 순종과 권위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해서 말씀을 전하거나 행정 일을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순종하게 돼 있습니다. 이게 깨지면 교회가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면 가정입니다. 가정은 이제 부모님이 계시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가정이 행복하냐, 마냐, 어디에 달렸냐면 자녀들이 순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나가서 식사할 때 안 들어오고 그러면 부모가 둘이 밥을 먹어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들은 '하나님의 가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이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계시고, 또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서로 교제하고 옵니다. 이 관계를 생각할 때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이 하나님의 가정은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순종에 대해서 성경이 말을 하고 있고요.
그러면 다시 이제 보면 제가 요즘에 이제 그런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말하고 다니는데요.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할 때부터 '순종'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부터 예를 들면 이렇게 전하면 안 됩니다. 윌리암 맥도날드 형제님이 쓴 글에 '복음의 딜레마'라고 하는 글을 읽어보니까 맥도날드 형제님이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셨어요. "당신은 죄인입니까?" 시인하죠.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예" 합니다. "이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예" 합니다. 그는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거 맞습니까? 이게 복음을 굉장히 단순하게 만든 거거든요. 당신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속죄를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습니다. 그래서 그를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이제 이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복음에 빠진 게 뭐가 있죠? 회개가 빠져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믿음만 가지고 들어온 거죠.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들어온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이제 맥도날드 형제의 표현에 의하면 6개월 후에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복음의 뭐가 문제인가? 왜 이 같은 뭐랄까, 단순한 복음. 왜 복음을 단순화하냐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이게 단순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복음의 요소를 배제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요한일서 2장 3절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아느냐? 순종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으면 그가 뭐라고 말해도, 어떤 간증을 했어도 그거는 가짜입니다. 그래서 이제 맥도날드 형제님이 이제 이런 복음을 전할 때의 문제점을 기록하셨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는 제가 어떤 분을 생각하냐면 저희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임'이라고 하는 책을 쓴, 노만 크로프트 형제님이 쓴 이제 '복음을 전할 때 피해야 되는 함정'이라고 하는 글이 있어서 제가 한번 읽어봤는데요. 이제 그 형제님이 간증을 하셨어요. 자기가 청년 때 어떤 말씀이 마음에 감동이 돼서 텐트 집회 때 이제 복음을 전했대요. 그랬더니 이제 청년이니까 앞에 전했겠죠. 후반부에 전하는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셨던 형제님이 이 젊은 형제에게, 노만 크로프트 형제님에게 충고를 해줬는데 그 간증을 이야기하는 거죠. 복음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가야 된다. 이 세 개의 요소가 빠지면 안 된다. 1. 첫 번째는 죄인이라고 하는 걸 전해야 되고, 사람이 죄인이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2. 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전해줘야 되고, 그래서 저희들이 주일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니까, 혹시 복음을 이렇게 준비하시는 특별히 청년 형제님들은 이런 요소를 다 집어넣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제 그 복음이라고 했을 때 이 세 가지 요소가 꼭 들어가 줘야 합니다.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이 그 죄를 해결해 놓으셨다는 것, 그다음에 3. 세 번째 사람의 책임입니다. 믿어야 된다는 것,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것도 빠지면 복음의 메시지가 아니다.
이제 이런 젊었을 때 그런 교제를 듣고, 이제 형제님 마음속에 계속 그동안 주님을 섬겨오면서 이와 같은 말씀들이 계속 마음에 남고, 그다음에 지금 현재 그 모임이 전하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 형제님이 많이 고민하시면서 쓴 글입니다.
1. 죄라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이 죄인이다라고 했을 때 왜 죄인이냐 그러면 저희들이 빼놓지 말아야 되는 성경 구절이 요한복음 16장입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합니다. 그러니까 그가 죄인인 것은 자기가 양심으로 생각해 보니까 어렸을 적에 부모님 말 안 들은 것도 있고, 뭐 이렇게 살다 보니까 거짓말도 좀 했고, 그래서 로마서 1장의 죄의 목록을 쭉 보니까 아이고 이것도 죄네, 수근수근해도 죄네. 이제 이래서 하는 게 아니고 자기 양심이나 그 사회의 도덕 때문이 때문에 자기가 죄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그래서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거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게 없으니까 그냥 믿기만, 믿고 쑥 들어온 거죠. 그런데 이제 삶의 변화가 없는 거죠.
2. 그다음에 두 번째 이제 하나님의 해결책은 십자가죠. 이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죄인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은 이렇게 간증을 하시더라고요. 어떤 사람한테 복음을 전할 때 저도 이런 걸 읽고 굉장히 좀 도전을 많이 받았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 형제님은 당신을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다라고 말하면 안 된대요. 아직 이 사람이 뭐 믿지도 않았는데 왜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죄인을 위해서 죽으셨다'라고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 그렇게 안 하고 모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 어린 양이다." 딱 해놓고 세상 속에다가 당신의 이름을 넣어주세요. 우리는 자꾸 그렇게 전하잖아요. 근데 노만 크럽 형제님은 정반대로 하셨더라고요. 당신을 위해서 죽었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고 죄인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당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당신이 거기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가 죄인인 것을 알고 들어와야지, 아 나를 위해서 죽었구나, 해서 이걸 이 선물로 거저 받는 이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반대하시는 것을 듣고, 이게 꼭 옳다기보다도 저희들이 전하는 복음이 잘못하면 복음을 전할 때는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했다가 그래사 이제 영접되려고 보니까 복잡한 거죠. 순종해야 되고, 교회에 들어와야 되고, 그러면 이 영혼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면 꼭 속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맥도날드 형제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 맥도날드 형제님이 지적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하나는 '회개'가 빠졌다. 2. 그다음에 두 번째 '주되심'이 없다. 3. 그다음에 세 번째 '제자의 도'를 말하지 않았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쫓아야 된다라고 하는 제자의 도를 뺐고, 예수님이 주인 되신다라고 하는 것을 빼버렸고, 회개를 뺐다.
이 메시지, 이제 맥도날드 회장님은 그렇게 세 가지를 반성을 하셨어요. 그리고 노만 크로포트 형제님은 죄에 대해서라고 했을 때 그 죄가 그 양심에 있는 문화적인 죄가 아니고 성경의 빛으로 비춘 죄여야 된다. 그다음에 예수님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나를 위해서 해결해 놨다 하면 안 된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가 나를 위한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 죄인을 위해서 하신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죄인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오는 거지, 죄인을 설명하면 자기가 들어오는 거지, 이걸 막 당신을 위한 거라고 해서는 안 된다.
3. 이렇게 이제 해놓으셨고, 그다음에 이제 저희들이 이제 '책임'을 말해야 되는 것은 이런 겁니다. 저희들이 복음을 전할 때 보통 어떻게 전하냐면 접근을 할 때 거듭나야 된다. 이렇게 이제 시작합니다. 거듭나야 돼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강조가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냐면 "그럼 나는 뭐 하냐?" 하나님이 거듭나게 해주셔야 되면 그럼 나는 뭘 하지? 그럼 하나님이 거듭나게 해 주실 때까지 나는 기다리면 되나? 그냥 기도하고 기다리고 그냥 주님 구원해 주세요, 하면 되나? 이제 이런 식의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도 이제 한옥순 씨 같은 경우에 참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럴 수가 있는가, 그 오랫동안 그 복음을 듣고도 꼭 이렇게 됩니다. 잘못하면, 자기는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데 하나님이 구원해 주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이제 말이 안 맞잖아요. 하나님은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시죠. 그런데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거죠. 이건 뭐 따지는 말하면 이 방향 그런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의 책임에 대해서, 하나님이 안 해주셔서가 아니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될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있는, 그래서 이 가지 세 가지를 이야기해야 된다.
이게 이제 노만 크로프트 형제님이 했던 이제 복음에 관한, 그래서 제가 요즘에 이제 복음에 대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가? 이게 교리적으로도 문제없이 전해져야 되기 때문에 이런 면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하여간 2장 3절에 관해서만 말을 하자면 '순종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복음도 이렇게 순종을 의미하는 내용들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그가 순종해야 합니다. 이 첫 번째 순종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순종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의 자연적인 특징은 순종입니다. 믿을 때 순종했고, 그 후에 믿은 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어떤 관점에서 보냐면 지금 현재 지금 요한일서가 보고 있는 것은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법정에 재판장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재판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고, 이제 우리는 가족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을, 저희들이 가정에서 가정 생활을 해서 알지만, 경험하고 있지만, 가정에서 하나님이 권위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이 관계가 파괴되면 그래도 가정이지요. 그런데 평안이 없는 거죠. 깨지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이 정말 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와 올바른 관계가 있기 전에는 절대로 평안이 없습니다. 어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이 있고 직원이 있는 거죠. 직원과 사장 간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으면 그 회사는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성도가 하나님이 세워준 권위 있는 사람들하고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으면 평안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정말 이 순종은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거죠. 정말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위하여 하신 말씀이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신뢰하고, 그 말씀을 순종할 때 평안이 있고, 그 순종의 관계가 이제 하나님과 우리 관계해야 된다. 이상입니다.
- 사회자 형제님 : 네, 교제해 주신 성도님들 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한일서 2장 그러면 3절까지 교제한 것으로 하겠고요. 주신 시간에 대해서 한 분 형제님 기도해 주심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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