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2장 2절 / 마포모임, 20년
- 최경환 형제님 사회 : 1절을 마치므로 2절부터 성경 읽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2장 1절부터 6절까지 성경 본문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요일 2:1-6).
요한일서 1장 1절부터 2장 1절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과 특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요한일서의 특징 중 하나는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을 영접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 5장 21절 마지막 절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라"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사는 삶 속에 우상을 멀리해야 될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우상에 대해서는 큰 파급을 일으켰던 영지주의를 기억하게 되는데요. 모든 물질 세계와 그 육체는 악한 것이고 영적인 지식과 비물질 세계가 선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육체의 죄된 욕구를 완전히 절제하는 금욕주의와 또 반대로 육체가 이끄는 대로 죄악된 삶을 살아도 영혼에게는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한 무리들입니다. 사도 요한에 이 서신서를 썼던 AD 90년경에 이런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볼 때 말이 안 되는 그런 일들로 보여지지만, 당시 성도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크고 그 파급력은 상당했다고 합니다. 그 요한일서 1장을 통해서 기쁨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사귐에 대해 우리는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또 지속적인 사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두움의 일과 죄 속에 빠져서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2장 들어오면서 1절에 하나님으로 기록되기보다 아버지로 말씀하시며 '가족적인 관계의 특징'을 말씀하십니다. 또 우리에게 계신 대언자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두 분의 도우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을 기억할 때 죄를 즐기거나 용납을 원하시지 않으시며 점진적으로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또 성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2절을 통해 우리의 죄와 또 온 세상의 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목 제물이 무엇이며 그 필요에 대해서 또 교제 나눠볼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그 전체 카톡 공지에서 교제 나눴는데요. 또 이 구절을 통해서 이교 사상, 즉 세상 종교 가운데서 우상신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사람을 제물로 들였던 인신 제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화목 제물과 전혀 다른 차원의 제물이었던 것을 봅니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다시금 교제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형제님 가운데 교제 나눌 내용들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형제님 1 : 네, 2절은 "저는" 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1절에서 언급되었던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화목 제물'이라는 단어는 같은 단어가 그 4장 10절에 한 번 더 언급이 됩니다. 그래서 4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울이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해서 여기 나온 '화목제'와 여기 '화목제물'이 같은 단어입니다. 화목제물이라고 하면 '화목하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뭔가 잘못으로 인해서 노여움이 생겼고 그 노여움을 풀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화해시킨다'라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고요. 그런데 그럼 무엇에 대한 화목인가가, 앞에 "우리 죄를 위한 화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저희 사이에 어떤 사귐이 끊어져 있는, 화목하지 못한 그런 것들을 화목하게 하기 위한 제물인 겁니다. 그래서 화목 제물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이는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릴 때 바치는 어떤 물건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화목하기 위해서 무엇인가가 희생이 된 돼야 된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주님께서 저희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음을 말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물과 관련돼서 주님께서 저희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말씀과 관련해서는 고린도서 5장 1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는 말씀이고요. 그리고 히브리서 2장 9절 말씀에 보면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에 고난 받으심으로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희생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요.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세주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온 세상'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 다른 민족들, 온 지구에 있는 모든 민족들이나 백성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게 공간적인 의미도 있지만 시간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래서 과거, 또 현재, 미래에 대한 죄까지도 다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전효진 형제님 : 의로우신 하나님이 공의로운 방법으로 용서하신다는 것은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혀 있었던 그 담장을 허물기 위해서 흠이 없는 그런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화목 제물은 죄의 책임이나 형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노, '하나님의 노여움'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한 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있는 그런 것입니다. 죄에 대한 용서는 주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신 그런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아서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이 '화목'은 원수되었던 그런 사이에서 갈등이 해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평화로운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그런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셔서 속죄 제물을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그 희생을 통해서 원수되었던 인간과 또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화목을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평화가 시작되었다." 얘기하는 거죠. 이 화목 제물은 그래서 하나님께 나오는 영혼들을 위해서 언제나 중재자로서 화목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시는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의 변호, 그 중재가 한 나라나, 또 한 민족 또 어떤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거쳐서 모든 인류를 거쳐서 다 적용될 수 있는 그런 풍부한 은혜인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한 하나님의 이름 앞에 나오는 모든 인류를 위한 사역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는 온 세상 사람들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그런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담을 허무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넘쳐나는 거죠. 이 권능이 광야를 시내같이 흘렀던 반석에서 나온 물과 같은 것입니다. 원하는 자는 누구나 그 물을 마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목마른 자는 물로 나와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구원의 기회가 그 시대에 주어졌던 것처럼, 화목 제물이 되신 우리 지놈으로 말미암아서 온 세상에 죄가 다 이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외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다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선물인 것입니다. 화목 제물이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화목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드리는 삶을 절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목을 누리는 비결이 하나님의 양식으로 우리 속 사람을 다 채우고, 또 거기에서 나오는 영적인 에너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품으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그 자녀 사이에 그 화목한 삶이 유지된다고 보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인 삶 가운데서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주님을 닮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와 성도가, 자녀가 화목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만찬 예배 때 이 화목의 증거가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주님의 몸을 나누며 주님의 피를 마시며, 주님의 어떠하심을 입술과 또 심령으로 고백할 때, 그렇게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모습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버지와 화목을 누리는 최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화목 제물로 이렇게 십자가 들으셨음을 볼 때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 이기범 형제님 : 2절에는 '화목 제물'이 이렇게 나옵니다. 저희가 화목제물에 대해서 아까 4장 10절에도 이게 나온다는 걸 저희가 이제 교제를 들었고요. 로마서 3장 25절을 한번 이렇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도 이제 화목 제물이 나오는데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해 지은 죄를 간과하시므로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이제 3장 25절과, 로마서 3장 25절과, 그다음에 이제 오늘 교제하고 있는 요한일서 2장 2절을 같이 보게되면 화목 제물에 대해서 좀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화목 제물은 이게 '피'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 그리고 이 화목 제물은 '하나님 쪽'에서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 다른 형제님들께서 교제를 해주시리라 생각을 합니다마는 '대속'과 '화목 제물'의 차이가 있습니다. 화목 제물은 하나님께서 만족을 하시는 겁니다. 방향 자체가 하나님 쪽을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속'은 '사람 쪽'으로 방향이 가게 됩니다. 사람이 대속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화목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족을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화목되시는 거고, 사람은 대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가 있고요.
그다음에 화목제물은 '피'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제 화목 제물을 만족하시는 것인데 저희가 이제 4장 10절하고 같이 보게 되면 이런 그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게 되는 이 적절한 화목 제물을 하나님께서 제공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 쪽에서 이걸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이런 화목 재물을 이렇게 저희를 위해서 주셨는가?'라고 했을 때 다음에 이제 4장 교제할 때도 이제 교제가 되겠습니다마는 '사랑' 때문입니다. 4장 10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화목 제물은 하나님께서 만족을 하시는데, 그 화목 제물도 하나님께서 보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장 2절에 보게 되면 이 화목제물의 '효력'에 대해서, '효과'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이 화목제물은 우리만 위하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화목 제물의 효력이 미치는 어떤 대상이라고 할까요, 이것이 '무제한적'인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우리만이 아니고 온 세상을 죄를 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시간적'으로도 이것은 '무제한적'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라고 해서 '현재형'으로 표현이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화목 제물은 계속적으로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화목 제물의 효력이라는 것이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주님의 피를 통해서 만족하셨습니다. 그 만족하시는 근거는 우리만이 아니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그것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셔서 제공하신 그 화목제물의 그 효력은 무제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2장 1절과 2절을 함께 보게 되면, 주님에 대해서 저희가 '두 가지 자격'을 보게 됩니다. 2장 1절은 '대언자'입니다. 그리고 2장 2절은 '화목제물'입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대언자이고, 그리고 또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입니다. 이 두 가지로써 이렇게 대언자이고 화목 제물이시기 때문에 저희가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교제가 된 것처럼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로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화목제물로써 우리를 위하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시기 때문에 저희가 또한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아까 이렇게 화목 제물하고 대속에 대해서말씀을 한 가지 차이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저희를 위해서 하나님이 만족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효력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제한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2장 2절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화목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고 그 효력은 무제한적이지만, 사람은 이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저희가 생각을 해보면서 이 2장 1절과 2절을 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대언자이고 화목 제물이기 때문에 저희가 이 요한일서 1장에 나온 것과 연결을 해보게 되면 저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가 배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입니다.
- 조재훈 형제님 : 2장은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과 2절이 연결이 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언자로서 대언하실 수 있는 근거는, 그리고 바로 그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특히 "저는"이라는 단어가 강조가 되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의로우신",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바로" 이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대언자이시면서 바로 친히 화목 제물이시므로 그 효력이 우리 가운데 계속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전반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화목 제물에 대해서 이번에 한번 더 생각을 해보면은요. 이 화목제물이라는 단어는 '힐라스모스'라는 헬라어인데 남성 명사형으로는 여기와 또 아까 말씀하신 대로 요한일서 4장 10절에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화목제물, 화목제, 이렇게 번역이 되고, 중성 명사로서는 아까 나온 로마 3장 25절에 "화목제물" 그리고 히브리성 9장 5절에선 "속제소"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동사형'으로서는 이제 누가복음 18장 13절에 세리가 이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불쌍히 여기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고, 또 히브리서 2장 17절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에서 '죄를 구속하다'가 동사형이 되겠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이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게 하는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방 종교에서는 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사람이 어떤 제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화목제물은 그와는 다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화목제물로 친히 주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아들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갈보리 십자가를 위해서 속죄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실 수 있으며 위롭게 용서하실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것이 '화목제물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화목제, 화목제물 이렇게 번역된 것이 그 단어의 뜻이고요. 그외에 '명사'로 '화목', 또는 '화목하다', '화목을 얻은 자', '화목하게 하라' 했을 때, 그 화목은 다른 단어입니다. 그것을 '카탈로스'라고 해서 관계적인 의미입니다. 원수였던 사람이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화목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그 단어입니다. 그래서 '화목제, 화목제물' 할 때는 우리가 그것과는 다른 뜻으로서 오히려 화목의 뜻이라기보다도, '속제 제물'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의 속죄 사역을 통해서 죄인에게 의롭게 용서하실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그 제물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화목 제물인 것입니다.
그 대상은 말씀하신 대로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에 죄를 위하심이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원어에서는" 온 세상에 죄를" 해서 '죄'가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는다면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을 위하심이라" 이렇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님의 속죄 사역의 대상은 말씀하신 대로 '온 세상을 위한 속죄'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고, 모든 사람이 이 주님을 믿는다면 이제 그것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제 '믿었을 때' 입니다. 앞절에서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라고 해서 현재형으로 돼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라는 여기서 이 사람들은 이미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이 화목제물의 효력이 효력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그들의 죄가 온전히 용서됐으며, 또 죄를 범했을 때에도 이 화목제물의 영원한 효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가 언제든지 이제 아버지 앞에서 용사하심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아직 그런 상태는 아닙니다. 온 세상을 위해서 속죄 제물이 되셨지만 믿는 자에게 그와 같은 현재형으로서의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 박성호 형제님 : 화목 제물에 대해서 앞서서 형제님들이 인용한 구절들이 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다른 측면을 좀 교제를 해 보겠습니다.
그 구약에서는 이제 화목 제물의 용례가 있는데, 첫 번째 이제 앞서서 형제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화목 제물이 '속죄소', '속죄하다', 이러한 뜻이고 이제 '덮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그렇게 번역이 됐고요.
그래서 처음 이것이 쓰여 있는 곳은 노아의 방주에 있어서 '역청으로 방주의 안팎을 칠한다'라는 그 부분에서 쓰였습니다. 방주를 역청으로 덮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주 안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그러한 장치였고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진노을 만족시키는 우리 주님의 피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약에서 쓰인 용례는 이제 주로 '피흘림'이라든지, '죄에 대한 속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로 나가서 피를 속죄소에 뿌리게 되는데요. 저희가 요한일서 1장 1, 2, 3절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교제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사귐이 있고, 그곳에서 저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 지성소에서 속죄소가 있는데요. 하나님 임재가 빛으로서 지성소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고요. 레위기 16장 34절에서는 대제사장이 피를 들고 속죄소에 나아가 속제소에 피를 뿌린 것, 그다음에 14절, 15절에서는 피를 뿌리고, 그다음에 속제소 앞에서 피를 뿌리고,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속제소에 뿌릴 피를 위해서 희생제물이 필요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연약하고, 실패하고, 넘어져도 저희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그러한 근거가 하나님의 속죄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희로 하여금 참소자들의 공격에서 보호해 주고, 설령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자백했을 때 즉각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제 다 앞서서 형제님들이 얘기하신 것처럼 로마서 3장 25절에 있는데요. 이제 요한일서와 로마서 3장 25절과의 차이는, 3장 25절은 '칭의'의 어떤 근거로서 얘기를 한 거고요. 요한일서 2장과 2절과 4장 10절에서는 주님께서 변호하시는, 저희를 위하여 '대언'하시는 근거로서의 화목제물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자백하기 이전에 이미 주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저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라는 그런 그런 부분을 얘기를 하고 있고요. 또 이제 앞서서 형제님께서 얘기하셨던 것처럼, 히브리서 2장 17절에 대제사장의 그 사역에 대해서 얘기할 때 또 이 구절이 쓰였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지금까지는 화목 제물에 대해서 살펴봤다면 이제 또 뒷부분에 있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번 좀 살펴보겠습니다.
영주의자들이 어떤 특별한 신비한 그러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만 구원받는다라고 얘기한 것에 대한 어떤 이게 반론 구절이기도 한 것입니다. 주님의 구속 사역이 모든 죄인을 위한 것이었고, 제한 없이 충분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반론이 될 수 있고요. 또 주님께서 육체로 입고 오시고 제물로서 피를 흘리셨다라는 그것도 이제 영지주의자들의 가연설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이건 참고로 할 수 있는 얘기인데요. '칼빈주의'가 가지고 있는 교리 중에 어떤 것이 있냐면 '제한속죄설'이 있습니다.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죽으셨다'라는 그러한 교리인데요. 그 부분에 대한 이 구절이 또 반박 구절이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잘 아시는 '스펄전'이 있고요. 그래서 스펄전의 책을 볼 때는 좀 이런 부분을 조금 조심해서 봐야 될 측면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영권 형제님 : 네, 저는 여기 2절이 앞서 형제님들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 1절과 계속 연관되어서 이렇게 보는 부분이라고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 요한일서를 쓰는 목적에 대해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이라고 말씀을 해주셨고, 또 1절에서 "죄를 범치 아니하려 함이라" 라고 설명을 하시면서 그렇게 대언자인 그리스도를 나타내셨고, 또 2절에서는 계속 왜 쓰시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이 화목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십니다.
화목 제물에서 앞서서 많이 설명해 주셨지만, 화목 제물일 뿐 아니라 속죄자이신 우리 그리스도를 이렇게 그분을 나타내는 데 초점이 있다고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계속2절에서는 뭔가 저희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케 하시는 말씀이라는 부분이 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2절에서도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강조되어 있었는데, 이제 설명을 하시면서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그 앞에서 1절에서도 "나의 자녀들아"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2절도 그리스도 교회가 귀하지만, 주님께서 뭔가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무리들이고 저희가 정말 그 은혜를 받았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자칫 우리가 뭔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뭔가 잘해서 구원받은 거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화목 제물이신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그 근거가 있다'라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해주시면서,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 세상 하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온 그 말씀을 떠오르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지금 교회인 자들만 위해서 주님의 피가 흘려진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 모든 세상을 위해서 주님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우리를 위해서 화목 제물이시다라고 하는 말씀이 맞지만, 또 더욱 저희가 생각하고 저희를 겸손케 하시는 것은 우리의 공로,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심이다. 라는 부분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이 요한일서를 쓰면서 한가지 또 다른 면에서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도 이렇게 귀감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계속 뭔가 자녀들에게만 말하고 있고, 또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만 말씀하시고 있다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보혈이, 주님께서 걸어가신 사역과 주님 그 자체가 모든 세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충분히 그 피가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둘 다, 성도들과 아직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화목제물이 되십니다. 물론 앞서서 형님들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이 이 주님의 그 보혈 근거만으로, 화목제물 근거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했을 때 주님의 그 은혜가 효력을 미친다는 것을 저희가 알 수 있습니다.
- 강성찬 형제님 : 그 화목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조금 더 보충해서 드리자면요. 이제 이 '화목 제물'이라는 개념이 좀 어려운데 왜냐하면 이제 한글 성경도 그렇고, 영어 성경도 그렇고, 이 '화목'이라는 단어를 자꾸 혼용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앞에 형제님께서도 이 화목 제물이라고 나와 있는, 그 화목 제물에 해당하는 그 '원어'가 나와 있는, 또 동족어들이 나와 있는, 신약에 나와 있는 6가지 부분을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것을 성도님들이 '여기 나와 있는 것은 이제 요한일서 2장에 나와 있는 그 화목 제물을 말하는 거구나.' 이렇게 기억을 해 놓으시면 좀 헷갈리지 않고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 말씀해 주신 대로 누가복음에서 18장이었죠. 그 세리가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제 여기 한 번 나왔고, 그리고 로마서 3장 25절에 "화목 제물로 세우신", 그리고 히브리서 9장에 동일한 단어가 "속제소"로 사용됐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과 히브리서 9장의 "속제소", 또 로마서 3장에서는 "화목 제물"로 사용된 단어가 같은 단어고요. 그리고 히브리스 2장 17절에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니라" '구속', 거기서 구속으로 사용되었고, 요한일서 2장과 4장에서 '화목 제물'로 두 번 같은 단어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게 다르냐를 봤을 때 로마서 3장을 한번 가보겠습니다. 레위기에3장에 나와 있는 화목 제물하고 이 화목 제물은 다른 것입니다. '레위기'에서는 '평화'를 말하는 화목이고요. 그리고 이제 여기 나와 있는 단어는 이제 문자적으로 하면 '죄를 누그러뜨리는', '기쁘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글로 어떤 단어가 적당할까를 생각해 봤는데, 이제 앞에 형제님 말씀해 주신 대로 '속죄', 또 이제 그 '화목'도 많이 근접한 단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제 마땅히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또 이 '화목'이라는 것이 에베소서 2장에 나와 있는 "화목케 하신" 것이라든지, 고린도후서 5장에 나와 있는 "화목케 하신" 이런 화목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앞에 말씀해 주신 대로 이제 에베소서나 고린도 후서에 나와 있는 화목은 '하나님께 대하여 원수된 사람이 바뀌는 것'이고, 여기서는 이제 '하나님이 만족'을 얻으시는 화목 제물을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을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화목 제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첫 번째 25절 후반부에 "자기의 의로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성경적인 정의라고 생각이 듭니다. 화목 제물은 '하나님의 의로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원리를 하나님 스스로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지키시고, 그것을 높이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이 화목제물의 첫 번째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물이 있기 때문에 이제 오직 믿는 자들이 의록다 함을 받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게 되는 것이고, 구속을 받는 것이고,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요한일서 2장 2절에서는 "이것은 모든 세상을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맞게, 당연히 맞는 것이죠.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세상을 위한 것이고, 하지만 그들이 자동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죄 용서를 얻고, 화목케 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화목 제물에 근거해서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개념이 이제 구약에서도 많이 나왔습니다. 레위기 6장 7절을 보면 속건제에 대해서 나온 것인데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 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잘못을 범한 사람이 속건제를 가져왔을 때, 그 흠없는 수양을 속죄 제물로 들였을 때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 '속죄'가 이 신약에 해당하는 '화목 제물', 그리고 구약의 여기서는 영어로 하자면 '어톤먼트'라고 말 되는 또 아까 전에 박성호 형제님 말씀하신 '덮는' 그런 단어가 사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 제물이 먼저 드려지고 그다음에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요한일서에 나와 있는 그 화목 제물이 있고, 이제 여러 가지 레위기에 있는 다섯 가지 제사가 있는데, 그런 게 있는 게 아니라, 번제 안에도 보면 그 화목제, 이 속죄하는, 덮는 제사의 그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피 흘리는 것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속제 제물, 화목 제물로 받으시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제일 분명하게 나와 있는 것이 레위기 16장에 나와 있는 속죄일에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 속죄일에 '속제'라는 단어 자체가 이 신약에 나와 있는 그 '화목제물'에 해당하는 그 '어톤먼트'라는 그런 단어입니다. 1년에 한 차례 있는 그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제소 위에 피를 뿌리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만족을 얻으시고 그리고 이제 회개한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카톡에도 이렇게 번역이 잘못된 것을 올려드렸는데, 어떤 분들은 이게 이방신에도 그런 개념이 있으니까, 이제 우상신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사람이 무엇을 주는 그런 개념이 있으니까, 이 단어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논란 가운데서 주석의 저자의 코멘트가 있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설명이 된 대로 성경에 나와 있는 화목의 개념은 그런 우상신에게 있는 개념하고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움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때문에 나오는 것이고, 의로우신 요구이고요. 그리고 그 의로우신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도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 요구를 만족시키는 화목 제물을 제공하신다는 점에서 완전히 그런 이방 종교와는 다른 개념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의로심을 먼저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먼저 만족을 하신다는 것인데, 저는 그게 요한일서 2장 2절 이 부분에 특별히 언급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요한일서에서 두 번 언급이 되는데 2장 2절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여기에 화목 제물이 언급이 되어 있고요. 그리고 4장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4장에서는 그 화목 제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데 말해지고 있습니다. 4장 10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장에서는 '사랑'을 나타내는데 화목 제물이 사용되고요. 또한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1장부터 계속 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은 빛이시라" 이 부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구절이 2장 2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화목제물이 하나님이 빛대신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가,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화목제물입니다. 그래서 2장 3절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그 다음 구절에 그 다음에 이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화목 제물이 필요했냐면 사람들이 전부 그 계명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높으신 계명을 사람들이 어기고, 무시하고, 귀히 여기지 않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계명을 사랑하시고, 높이시고, 또한 그 계명에 대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계명을 어기는 것은,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이 '화목 제물'이고 그리고 우리가 이 화목 제물을 생각할 때에 이제 이 다음 구절부터 나와 있는, 정말 이 화목 제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은, 우리들은 다시 그 계명을 높이고 귀하게 지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예, 2장 1절에서는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범했을 때 대언자로서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언자로서 일을 하실 때에 근거가 되는 것이 화목 제물입니다. 이제 주님 자신이 그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2장 1절에 보면 주님이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제가 요한일서 1장에서 배운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도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성도들의 죄를 대언하는 사역을 하실 때 '의로운 근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를 또한 '만족'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본인이 화목제물이심을 근거로 해서 그 사역을 이제 하시는 거고요.
앞에서 계속 형제님들이 언급해 주신 대로 4장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화목제를 우리에게 주신 동기가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계속 화목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이게 굉장히 성도님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냥 저는 개인적으로 이미 나온 단어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하고, 4장 10절에 '화목제'라는 단어가 나오고요. 로마서 3장 25절에 '화목제물'이라고 나옵니다. 이 세 개는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 나오는 '화목'이라는 단어는 다 다른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 나오는 화목제, 번제, 화목제, 소제, 속건제, 속죄제, 거기에서 나오는 '화목'과도 다른 의미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고요. 그러면 이걸 왜 하필이면 화목이라고 번역을 했나, 혼란스럽게,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안을 했습니다만, 그냥 속죄제, 혹은 '속죄'라는 의미로 저는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저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고요.
그러면 이 요한일서 요한 2장, 4장, 여기 나오는 '화목하다'는 의미는 이제 앞에서 형제님들이 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통치자이시고,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법을 가지고 통치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 법이 불순종되었을 때, 사람들이, 죄인들이 그 법을 불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 불순종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의로운 진노를 품으십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의로우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의로운 진노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제 저희가 지금 배우는 화목제의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진노를 누그러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 중에, 저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그 의로운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그 의로운 표준을, 의로운 진노를 이제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누그러뜨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이 화목, 이걸 저는 속죄라고 다시 번역하겠습니다. 이 주님의 속죄 사역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가 있습니다. 죄인들을 의롭다라고 칭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또는 죄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다른 의미의 화목'입니다.
아까 '화목'이라고 하는 것이, 저희가 지금 배운 화목 말고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화목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대적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로, 주님의 속죄 사역을 근거로, 죄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평화를 누리는 이 화목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의 속죄 사역을 근거로 나머지 은혜들이 주어질 수 있는 거고요. 앞에서 성도님들이 다 말씀을 해주신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 화목, 이 속죄의 범위는 정말 모든 인류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서 이 주님께서 이와 같은 속죄 사역을 하신 거고요. 그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영원한 시간인 것입니다. 주님은 그 갈보리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완성된 속죄 사역은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현재형 동사로 나와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이제 아까 히브리서 9장에서는 '속죄소'라고 돼 있었고, 그래서 저는 이제 속죄라고 하는 단어를 제가 더 선호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고요. 요한일서 저희 배우는 2장에서는 그 주님의 속죄 사역이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께 회복되는 데 있어서 그 사역을 하시는 그 범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는 그 근거가 또한 주님의 속죄 사역이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최경환 형제님 사회 : 네, 오늘은 성경 읽기 시간을 요한일사 2장 2절로 마치고 다음 3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제 나눠주신 형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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