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모임 성경읽기/요한일서 성경읽기

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10절 / 마포모임, 20년

박이레 2026. 4. 18. 22:13

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10절 / 마포모임, 20년

- 사회자 형제님 : 1장 마지막 절이 되겠습니다. 1장 10절이고요. 교제하기 앞서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1장 5절부터 읽겠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5-10).

다음 2장 1절도 읽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1장을 저희가 계속 교제하고 있는데요. 간단히 보면 1장, 시작하는 서론 부분은 사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도들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다. 이렇게 있고요. 그다음에 5절부터는 교제가 빛 가운데에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사귀는데 어두운 가운데에서 사귄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고, 빛 가운데 우리가 행한다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이미 깨끗하게 하셨다는 건데,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우리가 항상 교제된 대로 영지주에 대해서, 완전 성화에 대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제 문제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지적하고자 했었다고 교제를 했었고요.
9절에서 자백에 대해서 나왔고, 10절 오늘 교제할 말씀,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스토리가 있잖아요. 제가 생각을 해봤거든요. 이 죄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거냐, 사실 저희가 전에도 저희도 이제 그런 교제를 했었죠. 복음집회 때 우리에겐 죄가 없다. 이제 구원받으면은 의인이다. 이제 이렇게 많이 교제를 했잖아요. 죄와 상관이 없다. 그러면서 요한일서 말씀을 교제하면서 이 죄에 대해서 여기서 말하는 죄는 어떤 것이냐? 크게 두 가지로 교제를 했던 것 같습니다. 첫째 방법은 미래의 죄다, 미래에 형벌받을 죄다. 그러니까 그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그게 아니고 가족 간에 그러니까 형벌이 있는 죄가 아니고, 부모와 자식 간에, 가족 간에 이런 어떤 형벌과 상관없이 우리 어떤 그런 도덕적인 그런 죄다. 이 두 가지로 봤습니다.
그래서 미래 죄라고 만약 해석하면 우리가 물론 죄가 다 사해졌죠. 그걸 알죠. 그런데 어쨌든 간에 미래의 죄는 미래에 발생하니까 어쨌든 미래에 발생하면 그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된다는 그런 식으로 교제하는 게 한 가지가 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9절에서, 이제 만약 이 죄를 일관되게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9절에서 이 "우리 죄"라고 했을 때 이 죄도 그러면 형벌받을 죄냐? 미래의 형벌받을 미래의 죄냐 라고 하면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라고 돼서, 그럼 미래 죄를 자백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이제 이런 식으로 갈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방법은 가족 간의 죄다, 형벌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부모와 자식 간에 자녀 간에 있는 죄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죠. 그래서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좀 이렇게 다 말이 되는 것 같고요. 7절에서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렇게 하면 그러면 예수님의 피는 어떤 형벌에 대한 죄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 그러니까 뭐 예를 들어 가족 간에 우리가 지은 그런 허물들, 그런 것까지 다 예수님의 피가 깨끗하게 하신다, 이렇게 해석이 되겠죠. 죄를 일관적으로 그냥 쭉 일관되게 해석한다면, 조건부가 아니고 그렇게 해석이 될 것 같고요.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이제 그 두 번째, 왜냐하면은 저는 이제 이 요한일서가 큰 흐름에서 보면 이게 사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어떤 관계에 대해서, 관계 가운데서 발생하는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일서 1장 3절에 보면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이유는 뭐냐면 그 앞에 '아버지'가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신데, 예수님은 그분의 아들이죠. 그럼 우리는 형제죠. 히브리서에 나온 대로 진짜 이렇게 어떤 형제, 그래서 이 사귐의 전제가 어떤 그런 그런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또 예수 그리스도, 그 관계를 전제로 하고 여기서 그 가운데서 이렇게 죄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해석이 되고요.

또 한 가지는 저희가 모임에서, 항상 저희 모임도 그랬죠. 맨 처음에 죄를 자백한다. 그러니까 죄에 대해서, 좀 성도들이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때 우리 복은 말씀의 히브리서에 "내가 저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 딱 이렇게 돼 있죠.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러니까 그렇게 항상 복음집자가 그렇게 했으니까,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죠. 이렇게 하면서, "그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데 왜 우리가 거꾸로 자백해야 되느냐?" 이런 식으로 해서 사실 이제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제 말씀 하면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는데요. 어쨌든 간에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좀 오해가 생기고 또 많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이제 그런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간에 제가 서두가 길어졌는데 10절, 제가 한번 다시 읽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2장 1절을 제가 아까 다시 읽었는데, 2장 1절을 읽은 이유는 이게 이제 내용이 좀 연결이 있어서 큰 흐름을 좀 보려고 2장 1절과 같이 읽었습니다. 어쨌든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10).

그래서 이것과 관련해서 형제님들께서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형제님 1 : 네, 10절 말씀을 보면 그 영기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그 3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했던 것들을 보면 6절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했고"요. 그리고 8절에 "죄가 없다", 원죄를 부정을 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죄의 행실에 대한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말씀들을 하고 있는데요. 그 죄의 행위를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원죄에 빠지게 되었고 또 그로 인해서 죄 행위들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말씀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몇 가지 말씀들을 살펴보면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같은 3장 9절 이하에도 그렇게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9절를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레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51편 말씀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또 시편 14편 말씀을 보면 1절에서 3절까지 말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와께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그리고 욥기 15장 15절 말씀 보시면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늘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마심같이 하는 가정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그리고 욥기 14장 4절 말씀 보면,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니까 하나도 없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말씀들을 통해서 봤을 때 죄가 없다, 죄 행위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구요. 그리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그런 주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들에게는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는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 라고 하는 것은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다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전효진 형제님 :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람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죠.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빛이 드러내고 또 성령의 양심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인간 전체가 범죄하였으며, 죄에 신음하고 있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하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성경통에서 하셨던 그 선언을 '무시'하는 것이며 자신의 악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전체를 또 부인하는 것이며, 또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도전 행위라고 이렇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서에서 형제님 쭉 얘기했던 것처럼 여러 해 전에 각 지역에 써서 보내졌었고, 또 그것이 여러 지역 모임에 돌려가며 읽혀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한다." 이러한 그 죄에 관한 그 말씀들이 이미 이제 다 알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 말씀은 내 속에 없다, 이렇게 입증을 하는 것입니다.
죄를 이렇게 부인하는 것은 구원을 받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빛 가운데 살 수가 없게 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의 은혜를 절대 그들은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부터 그 속에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그러한 구절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악 중에 가장 큰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그러한 입을 사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범죄한 나라다. 너는 허물진 백성이다. 행악의 종자다.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다." 이렇게 선언을 했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선언이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그러한 말씀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겼던, 떠나버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의 악한 주장을 계속 이어나가는 거짓 선지자들, 거짓 교사들, 이들이라고 보여집니다.

- 형제님 2 : 이 구절을 보게 될 때 만약 이 영지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에게 빠진 자들이 이 구절을 읽었다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또한 받았어야 하는 구절임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잠시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의 문법의 구조를 살펴볼 때 이것이 '현재 완료형'으로써 과거에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만드는 것이니는 이제 '현재형'으로서 지금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있다라고 이제 이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거짓말하는 자' 이 단어가 요한일서에서 몇 번 사용이 됐는데요.  2장 4절에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요한일서 2장 22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 그리스도니" 4장 20절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그래서 이 단어가 거짓 교사들, 영지주의자들,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즉 이 범죄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5절에서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이신 이 하나님을 이러한 자들로 끌어내리는 행위이며 하느님 앞에서 매우 큰 죄임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 저희가 5장에서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잠시 5장 9절을 보게 될 때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저희가 이 1장 10절에서 본 것은 이제 아까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시편 14편이나 53편에서 "선을 행하는 자는 없노니 하나도 없도다"라는 이 하나님의 증거를 부인한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고, 여기 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들, 부인한 자들에 대해서 이들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씀들을 살펴볼 때 불신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 이기범 형제님 : 예, 10절을 이제 보게 될 때 저희 1장의 마지막 절이기 때문에 저희가 1장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특별히 5절부터 이렇게 저희가 이제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제가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5절, 7절, 9절을 저희가 또 읽게 되고 6절, 8절, 10절을 또 이제 한번 묶어서 이제 볼 수가 있겠습니다. 계속적으로 이제 이야기가 나왔지만 6절, 8절, 10절이 이제 "만일"이라고 시작이 됐고 영지주의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이제 10절은 영지주의자들이 가장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방금 형제님께서도 말씀을 해주셨지만 '완료형 시제'라고 이제 말씀해 주셨는데 이게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라고 영지주의자들이 그렇게 이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제 죄를 범했죠. 죄가 있는데, '범죄하지 아니하여 왔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했을 때 이 영지주의자들은, 저희가 영지주의자들을 갖다가 굳이 분석할 필요까지 있겠나 이렇게 생각이 들 수는 있겠지만, 1장 저희가 서두부터 계속 이야기를 했던 게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구분을 해서, 비물질적인 것은 굉장히 중시 여기고 물질적인 것은 하찮게 여기거나 아니면 경시하는 그렇다고 저희가 배웠습니다. 이사람은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가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그거는 이제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제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영지주의자들이 굉장히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이제 형제님들께서 여러 군데 이제 말씀을 해주셨지만 말씀 앞에 섰을 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과 비물질을 나누고, "나는 그래서 범죄하지 아니하여 왔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분명히 이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는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이렇게 말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러한 것이고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빛이시고, 또 빛 가운데 행하시고, 또 9절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자백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제 말하질 않습니다. 10절처럼 이렇게 극단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빛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가운데 행하기 때문에 그 모든 범죄는 이 빛 가운데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절처럼 자백을 하게 되는 것이지 "범죄하지 아니하여 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까 이게 한번 읽어주시긴 하셨는데 시편 14편도 한번 이렇게 좀 보겠습니다. 14편에 보게 되면 사실 이제 정확히 말하면 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해서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이제 무신론자들이죠. 그러니까 영지주의자랑은 조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무신론자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없다"하고, 그런데 사실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는 거죠. 무신론자들이고 3절까지 읽어주신 걸로 기억이 나는데, "다 치우쳤고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은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결국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는 무신론자들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부패하고, 가증하고, 선을 행하지 않는 것처럼, 이 영지주의자들도 "내가 죄를 지어오지 아니하여 왔다."라고 이렇게 말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무신론자들하고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인들은 단순히 물질과 비물질을 나누고, 좀 더 고급한 신앙을 갖다가 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저희가 시편 14편을 통해서 알 수 있고요.

그런데 아까 사회자 형제님이 2장 1절도 이렇게 읽어주셨는데, 2장 1절에 이제 요한일서의 목적 중의 하나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면 1장 10절하고 2장 1절을 읽어보면, 영지주의자들은 말은 범죄하지 아니하여 왔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죄를 지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 가운데 있고, 이 자백하는 저희에게는 이 요한일서를 통해서 죄를 범치 않게 하려고 이 요한 일서가 기록이 된 것입니다.
제가 이제 10절만 교제하고자 하는데 그 2장 1절도 뭐 다음 주에 교제가 될 때 또 이렇게 연결돼서 교제하면 또 많은 교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 박성호 형제님 : 성도님들 다 잘 아시는 얘기일 테지만 혹시나 해서 이제 말씀을 드린다면, 1장 10절을 이제 구원받은 사람을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 사람들이 썼던 논리는 3장 6절에서 9절까지 나오는 구절을 가지고 그 구절을 근거로 해서 이제 말씀을 해석한 경우가 있습니다. 3장 6절에서 9절 보면 이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다음 3장의 말씀을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범죄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이런 논리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글 성경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3장 6절에 있는 그 '범죄 한다라는 건' 지속적인 죄, 습관적인 죄, 계속 죄를 짓는 것을 얘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이제 신자에게 적용할 수 없는 구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해서 우리는 범죄하지 않았다라고 얘기해야 된다, 그러니 이 말은 우리한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라고 얘기를 하면은 잘못된 말이 되는 거죠.
다 형제님들 말씀하셨지만 이건 구체적인 죄를 말하는 건데요. 구체적인 어떤 실질적인 범죄를 행해 놓고 "이것은 육체가 한 것이니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 나는 죄가 없다. 죄를 지닌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인데요. 이런 어떤 실례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진 5장 같은 데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리제 헌금을 일부를 숨겼을 때 베드로가 질책했고 그것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얘기를 하는 거고요. 그것은 이제 신자의 마음 가운데 있는 양심이 성령의 조명을 받았을 때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 것, 이제 인정하는 것, 이것이 결여된 것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가 참 안 좋았던 것이고, 이제 그러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신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8장에서는 사단이 '거짓의 아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자녀들이나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단 같은 경우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이제 하는 자기 양심을 속이고, 성령께서 말씀을 비추실 때 그것을 부인하는 그러한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이상입니다.

- 이병호 형제님 : 예, 저희가 6절부터 계속 죄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이 죄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이 죄를 어떻게 다루는지 이런 부분들을 계속 살펴보는 것 같습니다.
10절에서 이제 "죄를 범치 아니었다, 이제 범죄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어떻게 보면 부인하는 것이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거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6절에서는 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될 때, 6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속였습니다. 하나님과 사김이 있다고 속였고, 그리고 8절에서는 자기 안에 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죄가 없다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고, 이제 10절에서는 하나님을 속입니다. 이 죄에 대해서 하나님을 속이고 그리고 앞서서 교제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죄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인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부인하고,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이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빛 가운데 또 진리 가운데 있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렇게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6절부터 10절까지 계속 "만일", "만일", 이렇게 이런 가정법을 통해서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로는 거짓 믿는 자들, 영지주의자들을 주로 말을 하겠지만, 살펴봤는데, 저희가 이제 베드로후서 2장에서도 거짓 교사들을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은 이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믿는다고 고백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말과 행동들, 또 각별히 죄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또 그걸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들의 영적인 상태라든가 영적인 실체들이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을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형제님 3 : 네, 저는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에 대해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앞서 선생님께서 요한일서에서 찾아주셨지만 또한 요한 사도가 쓴 복음서,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도 거짓말쟁이가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여기서는 사단, 마귀에 대해서 거짓말쟁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부분을 요한일서로 넘어와서 적용해보면 이것은 굉장히 소위 신성 모독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는 것은 저희가 쉽게 거짓말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세상에서는 있을 수 있는 정도로 거짓말쟁이 하면, 뭔가 귀여운 정도로 이렇게 약하게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성경에서 쓰는 '거짓말쟁이'라는 부분은 사단을 칭할 때, 또 처음부터 살인한 자를 칭할 때 이렇게 말하는 굉장히 악한 ,그리고 무서운 단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지주의자의 그러한 말로 인해서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그 말로 인해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하나님을 마치 사단으로, 마귀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물론 하나님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영지주의자들이 하는 주장으로,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또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하는 그 주장, 그 말로 인해서 그 결과가 하나님을 그 거짓말장이로 만든다 라는 그런 말씀으로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8절에 있는 부분에서는 "스스로 속이고"라고 나와 있지만 여기서는 자신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믿고 있는 분이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그러한 말이다라고 해서 이 말이 범죄하지 않아야 했다는 말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뒷부분은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8절에서는 "그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여기서는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 인생이 참으로 허무한, 그리고 의미 없는 인생일 것입니다. 저희가 진리를 가지고, 또 빛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살아가고 있기에 저희의 삶이 가치가 있고, 또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또 그의 말씀이 진리가 속해 있지 않다면, 참 아무것도 아닌 인생으로, 참 죄가 없는 인생보다 참 허무한 것도 없는 결과가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예, 10절에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이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죄된 행동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죄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요. 앞에 형제님이 '완료형'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 것처럼 이제 이 사람이 자신이 범죄하지 안 했다고 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이제 어떤 시점부터 자신이 이제 범죄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이제 사람의 논리와 이론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논리와 이론을 가지고 그 순간부터 자신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평가를 반대로 해서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가하시는 그 말씀에 대해서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만든 그 논리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은 그것을 "범죄하지 않았다 말하면"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요. 주장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제 어떤 거룩한 삶이라든지, 경건한 그런 행실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그것을 단지 말로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제 저희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이 모임에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행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경건한 삶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한 이 죄가 범죄가 아니다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앞에 말씀하셨던 이제 요한일서 3장이라든지, 또한 이제 로마서 6장, 7장, 이런 말씀들을 이용해서 항상 말하는 내용들이 거의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죄가 아니고 이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더 이상 이 죄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라고 이런 성경을 이용해서 모두 그렇게 논리를 말하는데 주장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이게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정말 거룩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정말 말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고 오히려 잠잠하게 주님을 닮은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 진정한 거룩인 것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 요한일서 말씀을 통해서 볼 때는 첫 번째로는 '자백하는 것'이 정말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백한다는 것이 어떤 신앙을 실패한, 이제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빛 가운데 있는 사람들, 정말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깝게 있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기준이 뭔지를 아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동일하게 말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회하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고, 이 자백하고 또 그것에서 회복이 되고 이러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경건한 사람들이고 거룩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한 이제 이후에 보겠지마는 두 번째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죄를 짓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 이제부터는 죄를 안 지어. 그건 죄가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정말 말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로 거룩한 사람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범죄하지 아니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인데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거꾸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기서도 현재형으로, 거짓말하는 자로 지금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은 이런 이런 존재야."라고 과거에 말씀해 놓으신 것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 범죄하는 사람들 양심에 성령님을 통해서 책망하는 것을 이 사람들은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제 '현재형'이라는 것이 그것을 암시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현재 양심을 책망하는 그 성령의 그 말씀에 "에이, 그건 아니죠. 그건 그거는 잘못된 생각이야." 성령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라면서 자신의 자신이 개발한 논리로 그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이 거짓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짓말하고, 자신을 속이고 여기서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평가하고, 이런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가장 심각한 상태이고 실제로 우리가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이제 죄를 짓지 않아.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가장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반적인 사회의 평균적인, 그런 도덕적인 기준에도 못 미치는 그런 상태의 삶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 양심이 화인 맞은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운데에 들어간 것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예, 저희가 6절, 8절, 10절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아니면 혹은 저희들이 계속 교제하는 대로 영지주의자들의 거짓 주장,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제 계속 저희들이 교제하고 있는데요.
이게 6절, 8절, 10절의 말씀을 이렇게 보면, 그 앞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빛이시다"라고 증거합니다. 그분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죄 없으신 분입니다. 6절에 보면 "어둠 가운데서 행하면서도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빛이시다" 라고 하는 그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제 성도가 이제 빛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은, 저희들이 빛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행했을 때,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합당하지 않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기 위해서는 그분의 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피를 의지해서, 나를 여전히 깨끗히 하시는 그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지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그 주님의 피가 필요 없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본성의 죄가 없기 때문에, 나는 이미 본성이 깨끗하기 때문에 그 피가 필요 없다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거절하는 것이고요.
9절에서는 빛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셨을 때 그것을 '자백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그 죄에 대해서, 저는 10절 후반부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있는 죄된 행동, 죄된 말, 죄된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지적하셨을 때 그는 그것을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그 죄에서 용서해 주시고 불의해서 깨끗케 주십니다. 그는 죄를 버리고 더욱 정결한 대로 거룩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10절에 있는 사람은 '자백할 죄가 없다'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죄를 범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백할 필요가 없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있는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10절 말씀을 이렇게 잘 읽어보면 이게 9절하고 완전 반대로 돼 있다는 것을, 대조가 돼 있다는 것을 좀 확인 발견할 수가 있는데요. 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가 얼마나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이고, 하나님께서 그 죄를 정죄하셨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 희생을 통해서 해결돼야 되는 그 죄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십니다. 그럴 때 이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 하나님 맞습니다. 그것이 죄입니다."라고 시인을 합니다. 그런데 10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거 죄다."라고 지적하셨을 때 하나님 아닙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분명히 죄라고 지적하시는데,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제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은 당연히 이제 말씀이 그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고, 하나님 교제 안에도 이제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거기 이제 8절에 보면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0절에는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진리가 그 안에 없는 사람은 스스로 속습니다. 자기가 진리가 없기 때문에, 참된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거짓말하십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이 8절 말씀이나 10절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좀 생각을 해보는 것이 죄에 대해서 저희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죄를 정말 판단하고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이 구도자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대부분 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심을 통해서도 그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런데 이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다.'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다'라는 걸 이런 말씀을 보면 그가 정말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참 인식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도 저희들의 행위에 대해서, 저희들의 삶에 대해서 정말 말씀에 비추어 보고 그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인지를 늘 이런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점검해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5절부터 10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또 저희들이 교훈받을 수 있는 것이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여기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고, 정말 거룩하신 분이고, 그분은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그 앞에서, 거룩하시고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이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절에 보면 저희들이 빛 가운데 행했을 때 정말 그분과 교제할 수 있고, 정말 주님의 피가 늘 저희를 그 빛 가운데 서게 할 수 있고, 그리고 9절에 보면 그는 죄를 자백하고 그리고 그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그 죄에 불의에서, 그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해짐을 입는 특권을 누리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한봉래 형제님 : 형제님이 그렇게 문맥을 쭉 훑어주셔서 참 좋습니다. 이제 제가 이해한 것, 그러니까 이제 앞에 있는 절하고 연결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이해해 보겠습니다. 이제 6절, 8절, 10절이 이제 틀린 말을 하죠. 그런데 이제 구조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6절을 보시면 이제 어떤 사람이 틀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삶은, 자기는 지금 어둠 속에서 복음이 없는 그 진리가 없는 쪽에서 살면서 "나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게 이제 첫 번째로, 그의 진술입니다. 이렇게 그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을 하고 그리고 나서 거기에 대해서 이제 사도 요한이 지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6절, 문제점이 뭐냐면 "거짓말하는 거다." 둘째, "진리를 행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그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7절에 와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주님이 빛 가운데 있는 것처럼 빚 가운데 행해야 된다." 그러면 이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사귐이 있고, 이렇게 돼 있고요.
8절도 구조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본 건데요. 8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된 사람이죠. "우리가 죄 없다." ,"나는 죄를 짓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인제 진술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이제 지적합니다. "스스로 속이는 거다. 진리가 없는 거다." 그리고 나서 9절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죄를 자백해야 된다." 이렇게 하고요.
그다음에 10절은 동일한 구조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라고 말을 합니다. 말을 하면 이와 같은 그 사람 주장을 이렇게 서술해 놓고 그렇게 주장하면 어떤 문제가 나오냐 그러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거다, 또 말씀이 없는 거다,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러면 이제 10절의 경우는 뭐가 없냐면 이런 구조로, 이런 틀로 쭉 봐오면 어떤 잘못된 진술이 있고 사도요한이 그 진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 사람에게 이렇게 해야 된다. "빛 가운데 행해야 되고 죄를 자백해야 된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10절 하나만은 이렇게 됩니다. 그의 진술을 이렇게 서술하고, 그다음에 그 진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10절과 같이 말하는 사람은 사도 요한이 교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정이 불가능한, 그러니까 저희들이 지금 6절, 8절, 10절을 이렇게 쭉 살펴보면서 점점 발언이 더 문제가 되는, 그래서 10절은 가장 문제가 되는 발언을 지금 말하고 있다고 이제 그렇게 구조를 볼 수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범죄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이제 이걸 첫 번째로,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제 가장 단순하게는 구원받은 후로는 나는 죄 안 지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런데 이제 이 진술에 보면 그와 같은 시점이 표현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냥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죄짓지 않았다.' 이렇게 되는 거죠. 이건 아까 형제님들이 말씀하신 로마 3장 20절하고 모순이 되는 거죠. 그다음에 세 번째로, 저희들이 계속 이해하는 것은 '어느 한 시점' 구원이든지, 아니면 어떤 영적인 깨달음이 있었던 어떤 시점부터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고, 그다음에 저희들이 세 번째로, 이해하는 것은 죄를 범해 놓고, 죄악된 행동을 해 놓고 그것을 죄가 아니다라고 이제 강변해 가는, 포장해 가는 그런 행동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이해하기로는 하여간 세 번째, 죄를 지어놓고도 어떤 죄를 죄가 아니다 라고 여러 가지 논리로, 여러 가지 다른 근거로 이렇게 해 가는 사람은 교정할 수가 없다. 이런 게 문장 구조상 이렇게 보여지지 않나 이렇게 느껴집니다. 예, 이상입니다.

- 사회자 형제님 : 10절에, 시간이 다 돼서 뭐 이게 교제할 건 아니고요. 지금 여기 보면 그의 말씀이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했다라고 말하면" 그런 교리를 주장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 뜻이 되고요. 그다음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또한 그 다음 구절이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래서 그렇게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많은 말씀들이 많은 성경에 있는 많은 부분들이 실은 우리가 자백해야 된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이걸 보면 제가 생각나는 게 있어요. 예전에 그때 저희 모임에서 많은 청년들이 출교가 됐을 때 이제 어떤 형제님은 군대에 있어가지고 그걸 몰랐어요. 이제 나중에 한참 얘기하게 됐죠. 그래서 이를 "이차저차 해서 이제 출교가 됐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아니 그러면 이 성경에 수많은 구절들이 우리 보고 하라고 계속 명령하고 계신데, 그걸 어떻게 적용할 거야, 그 사람들은?" 딱 그러더라고요. 만약에 우리가 그런 부분이 없다면, 예를 들어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이런 많은 구절들이 있는데, 그런 구절들을 어떻게 할 거야? 딱 그렇게 물어보는데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니까 많은 구절들이 우리에게 우리의 그런 육신의 정욕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되고, 또 제어해야 되고, 이런 많은 명령들이 있는데, 그 수많은 구절들을 어떻게 하냐 이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이 범죄하지 않을 때 이렇게 가게 되면 결국에는 이런 많은 말씀들, 대부분의 많은 말씀들을 벗어날 수밖에, 그런 부분을 무시하고 할 수밖에 없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말씀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말씀의 그 안에 많은 부분들, 특별히 성도들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신데, 이렇게 조명해 주실 텐데, 그래서 많이 지적하실 텐데, 심지어 성도는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는데, 얼마나 무서운 말이야.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다 무시하고 그냥 "우리는 이미 다 거룩해졌으니까 죄가 없고" 이렇게 해버리면 성화라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고, 더 이상 나갈 게 없으니까 이렇게 되는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좀 많은 생각이 드는 구절이었습니다. 여러 형제님들께서 좀 잘 정리를 해주셔서, 문맥에 맞게 교제가 된 것 같고요. 다음 주는 2장 1절 말씀을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