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번제, 소제, 합당한 예배

박이레 2026. 6. 13. 19:37

번제, 소제, 합당한 예배 / 강성찬 형제님 / 26년 6월 7일 일요일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출 3:18).

이 부분은 어떤 말씀이냐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왕,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노예로 살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보내시면서 그 왕 바로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게 어떤 말씀이냐면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한다. 그래서 사흘길쯤 애굽 땅을 떠나 광야로 가기를 허락해 달라." 이런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이제 애굽에서 구속받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그 노예된 가운데서 구원받는 그 목적은 여기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한다."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이라는 것은 짐승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 그 제사를 드리려 한다를 그 노예된 거에서 해방되는 목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구원받는 그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를 예배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제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구약 성경에 이 처음 책들이 그러한 것들을 또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출애굽기 앞에 있는 책 창세기에서 첫 번째 책이죠. 여기서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죄를 범하고 이제 죄의 노예가 된 상태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두 번째 책, 우리가 금방 읽은 이 출애굽기에서는 그와 같은 노예된 죄인들이 어떻게 해방되는지,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애굽기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예비하시고 그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이 구원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받고 홍해를 건너 이제 애굽 땅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다음 레위기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말씀 다음에 레위기라는 말씀이 구약 성경의 세 번째 책인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 레위기에서 금방 출애굽기 말씀에서 읽은 것처럼 '예배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애굽 땅에서 나왔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이 레위기 말씀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기에 특별히 1장과 2장의 말씀을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1-9).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찌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찌니라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찌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찌며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레 2:1-13).

예, 여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레위기에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이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복음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자로 삼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목적'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동일하게 구원의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예배드리는 것이 사람의 창조의 목적이며 참으로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시간에 이 구약에 기록된 두 가지 제사, 금방 읽은 '번제'와 '소제'의 두 가지 제사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를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레위기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레위기의 원래 제목은 이 '부르시다'라는 것입니다. 이 부르신다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나에게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신데 어떻게 나와 같은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금방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아가는 근거로서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사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장부터 시작되는 7장까지 내용을 보면은 중요한 5가지 제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금방 읽은 번제와 소제와 또한 화목제와 속건제와 속죄제, 이 5가지 제사가 이 앞에 7개의 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5가지 제사는 우리가 어떠한 근거로 이 부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를 그 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유월절 양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고 구속함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연약이 있고, 그들 가운데, 또 그들의 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죄가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근거를 이 레위기 초두의 여러 장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제사야말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근거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근거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특별히 간단하게만 이 5가지 제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요.
이 다섯 가지 제사 중에 우리의 '죄를 처리하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게 이제 속죄제와 속건제입니다. '속죄제'는 죄인으로서, 우리가 한 죄인인 한 사람으로서, 이 '죄인'인 사람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채우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속건제'를 볼 때에 이번에는 우리가 행한 그 죄의 행동에 대하여, 죄는 항상 우리에게 손실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 죄를 당한 상대방에게 손실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에게도 손실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 속건제는 그러한 손실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하게 되는지'를 말하는 것이 바로 속건제입니다. 이 속죄제와 속건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제 그러한 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쁘게 해드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예물이 바로 우리가 금방 1장과 2장에서 읽은 번제와 소제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이 '번'이라는 단어가 '불에 태우다'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금방 본문을 읽어본 것처럼 어떤 짐승을 잡아서 그 짐승을 전부 다 불로 태워서, 그리고 그 가운데 나오는 향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을 번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만족케 하시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부를 돌려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금방 2장에서 읽은 것처럼 곡식을 제사로 드리는 '소제'가 나옵니다. 이 '소'자라는 단어가 이제 화학 시간에 배우는 '원소' 할 때 그 '소'자에 해당하는 그 작은 단위를 말하는 소자입니다. 그와 같이 이제 고운 가루로 되어 있는, 아주 잘게 모든 것이 균일하게 가루로 되어 있는 곡식을 가지고 나오는 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 번제는 짐승을 드려서 짐승을 죽이고 피를 흘리고 그 짐승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면, 여기서는 고운 가루를 이제 하나님께 드리는 이제 그러한 제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운 가루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이제 만족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서 가지고 나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번제와 소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족시키며 또한 속죄제와 속건제로서 사람의 필요를 만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만족하신 하나님과 또 필요를 채운 죄인이 만나서 함께 화목을 누리는 그 '화목 제사'가 세 번째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화목제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레위기는 이와 같은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를 누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사람의 필요가 만족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제 제사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우리가 레위기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인데, 구약의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행한 것인데 이게 오늘날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어느 누구도 짐승을 잡아 그것을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린다든지, 아니면 곡식을 가지고 나와서 그 곡식을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께 드린다든지, 이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을 이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오전 시간에 복음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받은 자는 항상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두 번째로 변하지 않는 원리는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통해서 동일하게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짐승들, 곡식이, 고운 가루가 언급되어 있지만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를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살펴보겠지만 이 각각의 제사들이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실제 짐승이 아니라, 실제 고운 가루가 아니라, 이 짐승이 상징하고 있는, 이 고운 가루가 상징하고 있는 예수님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임을 이제 이번 시간에 한번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시 40:6-7).

이제 시편 말씀인데요. 이것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6절에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신다"라고 돼 있습니다.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신다, 여기서 이 '제사'라는 것은 짐승을 죽여서 그를 피를 흘리는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 레위기의 5가지 제사를 말씀을 드렸는데요. 거기에 이제 짐승의 피를 흘려서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가 그랬고요.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가 그랬습니다. 또한 화목제가 그렇습니다. 짐승들의 피가 흘려지는 제사입니다. 그 네 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또한 여기 이제 "예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예물이라는 것은 소제를 말을 하는 것입니다. 피를 흘려지는 제사가 아니라 피가 없이 드려지는 그 소제와 같은 제사를 예물이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고"라는 것은 앞에 말씀드린 그 5가지 제사를 전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은 그 레위기의 제사와 예물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제사와 예물이 실제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제사와 예물은 그림자고 상징이었고, 정말로 실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에게 있어서 장난감 차와 실제 차와 같은 것입니다. 이제 장난감 차가 차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우리가 타고, 그리고 그 차를 이용하고, 그 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실제 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물론 그 장난감 차가 즐거움을 주는 것이지만 실제 차에 비하면 그걸 바라본다면, 그 장난감 차는 여기 나와 있는 것처럼 기뻐 아니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 것이 있었을 때, 실제의 것과 비교했을 때, 그것은 기뻐하니 하는 것입니다. 바로 제사와 예물이 가리키고 있는 실제의 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올려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는 속죄 제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이 구절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아까 레위기 5가지 제사를 제사와 예물로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피 흘리는 제사와 피 흘리지 않는 제사로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이제 번제와 속죄제는 이제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하나님께 향기를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는 사람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우리가 레위기 5가지 제사 중에 하나님을 위한 제사,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번제가 그랬고, 소제가 그랬고, 그리고 화목제가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 제사에 대해서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제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필요를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제사가 속죄제고 속건제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번제와 속죄제가 그 5가지 제사를 전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제사이자 또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제사이기 때문에, 번제와 속죄제는 요구치 아니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때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그림자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의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제 하나님을 온전하게 만족시키고 "내가 왔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실 때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5장 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여기 신약 성경에서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향기로운 제사'가 되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구약에 나온 그 모든 제사의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 향기로운 제사가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이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를 속하는 그 속죄제와 속건제가 된 것입니다.
이제 구약의 우리가 금방 읽은 레위기 말씀으로 돌아가서 실제적인 구체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기 1장 말씀입니다. 여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번제를 이렇게 드리고 있습니다. 1장 3절에 보면 짐승을 예물로 드리는데 특별히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수컷을 택합니다. 그리고 흠 없는 수컷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구할 수 있는 그런 짐승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을 택한 것입니다. "흠 없는 수컷", 정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귀한 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흠 없는, 죄 없는 분으로서, 가장 값비싼 제사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분인 것입니다. 여기 번제의 예물이 되는 "흠 없는 수컷"이 그 예수그리스도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드리냐면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짐승을 잡게 됩니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사면에 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게 됩니다. 각을 뜬다는 것은 그 짐승을 각 부분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작은 조각으로 나누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위에 나무를 버려놓고 그 나무 위에 잘게 자른 조각을 올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불을 피워서 모든 것을 불살라서 이제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이런 모습을 볼 때 이것은 신약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에베소서 말씀을 읽은 것처럼 이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여기 이 짐승이, 그 흠 없는 비싼 그 짐승이 죽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불살라 드려진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였고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만족하셨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것은 다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1. 첫 번째로 우리가 하는 것은 '안수'하는 것입니다. 이 안수한다는 것은 그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의 머리에 손을 대고 안수합니다. 이것은 그 짐승을 '의지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짐승과 나는 하나다. 그 짐승과 나는 동일하다."라고 말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짐승에다가 손을 얹고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안수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짐승의 머리에 손을 대고 그거에 기대고 의지한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기대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행할 첫 번째 자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께 향기로 드려졌음을 생각하고 이제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이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 제물이 열납되고 그 제물을 드린 자가 열납이 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했을 때,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보실 때에 그리스도를 보시는 것 같이 보시고 여러분을 열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여전히 연약하고 많은 문제가 있지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동일시된 그리스도를 보시고, 마치 여러분을 그리스도처럼 보시고, 하나님께 향기가 되어서 드려진 그리스도를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첫 번째로 기억해야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말씀 한 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 개역한글)

여기 신약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1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의 피를 힘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그 구속 사역을 근거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그 '번제'를 우리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두 번째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레위기 2장으로 돌아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기 2장 2절입니다. 우리가 이제 읽은 부분인데요. 다시 한 번 주목해 보기를 원하는 표현이 있어서 2장 2절로 돌아가서 잠깐 그 부분을 한번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이제 '소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데요. 이 소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념물'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고운 가루를 가지고 오는데, 2장 2절에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여기서 왜 이제 '기름 가루'라고 하냐면 이제 고운 가루에다가 기름을 붓고 유향을 섞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고운 기름 가루가 된 것입니다. 기름이 그 가루에 섞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특별히 이 고운 가루를 가지고 왔는데 기름을 섞고 이제 유향을 넣게 됩니다. 그러면 그 고운 기름 가루와 유향 전부를 이제 제사장은 손으로 들고 제단에 놓고 불사르게 됩니다. 거기서 이제 향기가 나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그 제사장이 한 줌으로 든, 그 단에서 태우는 그것을 '기념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이 부분에 대해서 이제 기념물이라고 이제 언급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과 관련해서 신약 성경에 가서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여러분은 혹시 이 교회에 참석하게 됐을 때에 이곳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님들이 가운데에 떡과 잔을 두고 만찬 예배를 드리는 장면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왜 이런 것을 행하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셨을지 모르겠는데요. 우리가 그와 같이 행하는 그 이유가 금방 읽은 이 말씀에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제 "그렇게 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이 만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때 떡을 떼시면서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떡을 떼어 나눠주시고 이 떡을 떼어 먹으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떡은 이 땅 가운데 사람 몸을 가지고 오신, 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떡을 너희가 떼어 먹을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잔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그 잔에 담긴 포도주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흘리신 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잔을 마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상 위에 놓인 떡과 잔을 나누면서 우리는 이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주님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피를 흘리사 새 언약을 세우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운 가루를 한 줌을 그 단에 태워 드리므로 기념물로 드린 것처럼 우리도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을 믿는 것이고, 두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그 예배인 것입니다.

다시 이제 레위기 말씀으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번제와 소제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실제적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일, 그분이 하신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여기 번지와 소제에 나온 이제 여러 가지 부분들과 일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로 번제에 있어서는 그 짐승을 잡습니다. 그 짐승을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번제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 '희생 제물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에서 대해서 기억할 때 첫 번째로 우리의 머리를 강하게 채우는 것은 그분께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이 예물을 드리는 자는 그 짐승을 데리고 와서 자기가 직접 그 짐승을 죽이게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 짐승의 죽음이 정말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 머리를 강렬하게 사로잡게 되는 것은 그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셨다는 것,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번제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짐승을 단순히 죽일 뿐만 아니라 가죽을 벗기고 그 부분 부분을 나누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부분 부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 우리는 처음에는 그것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죽으심의 여러 가지 의미들을 더욱 자세하게 나누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할 때에 이 예배를 더욱 풍성하게 더욱 향기롭게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제사장들은 나무와 그 잘게 나눠진 그 짐승의 부분들을 버려놓습니다. 이 버려놓는다는 것이 체계적으로 질서 있게 버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버려놓다는 단어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이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기억할 때에 '체계적'으로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최근에 이제 구원받고 또 여기서 현준이가 침례를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이제 곧 또 주님이 인도하심 가운데에 모임에 더해지겠죠. 또 모임에 더해져서 이제 입술을 열어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이제 그때 좀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리자면 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묵상하고 그분을 기억할 때에 정말 나무와 그 짐승의 각 부분들이 질서 있게 놓여진 것처럼, 주님에 대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 풍성한 향기를 내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를 불태울 때에 그냥 한 군데다가 그냥 장작을 쏟아서 불로 태워놓으면 불이 잘 안 붙습니다. 어떤 것을 태우려고 커다란 짐승을 통째로 갖다 놓고 태우려고 하면 또 잘 안 탑니다. 하지만 그 나무를 잘 놔두고, 그 짐승의 각 부분을 잘 놓았을 때 온전히 잘 타고 풍성한 향기를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질서 있게 생각한다는 건 이제 이렇게 해보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이제 간단하게는 이제 이제 열거식으로 1번, 우리 주님은 이런 모습이 있었다. 2번,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이런 모습이 있었다. 3번, 주님의 모습에서 이런 부분을 찾을 수 있겠다. 이렇게 열거식으로 간단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조금 더 나아가다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열거가 될 뿐만 아니라 어떤 시간적으로 좀 배열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시간적으로 이런 모습, 그 이후에는 이런 모습, 또 그 이후에는 이런 모습, 또한 더 강조되는 모습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죽음에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제 이렇게 어떤 한 방향성을 가지고 배열해 볼 수도 있습니다. 또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비교를 하는 부분으로 또 배열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비슷한 부분, 신약에서 비슷한 부분, 또 대조적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또 다른 죽음의 대조되는 부분, 이제 이렇게 어떤 구조와 체계와 질서를 잡으면 여러분의 예배가 더욱 풍성하고 향기를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이제 균형을 잡기 위해서 소제에 나온 그 제사장이 이제 한 줌을 잡아서 단에 불살라 태우는 것을 같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제사장은 이제 한 줌을 그 가루를 쥐고 단에 태우게 됩니다. 여기 소제에 대해서 보면은 짐승마다 정해진 그 가루의 양이 성경에는 또 있습니다. 항상 이 소제는 피가 없는 제사지만은 이제 번제라든지, 화목제, 이 피 흘리는 제사와 같이 드려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각각의 제사마다 어떤 짐승을 드리냐에 따라서 소제의 곡식 가루의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양을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 정작 단 위에 세워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그 손에 한 줌을 드리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줌이라는 것은 정해진 도량형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각의 역량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역량대로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각각의 제사를 모두 기뻐하시고 그 향기를 흠향하시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균형을 잡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정말 우리는 값 비싼 것, 또한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연구를 하고, 묵상을 하고, 체계를 잡아서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너무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정해진 어떤 형식을 따라야 된다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정해진 도량형이 아니라 그 제사장의 '한 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그 한 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제 기뻐하시고 또한 흠향하실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계속해서 그 한 줌이 더욱 커지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에 또 힘써야 될 것을 함께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이제 소제에 대해서만 잠깐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 이제 이 시간을 마치고자 하는데요. 소제라는 것은 이제 '고운 가루'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메튜카인 형제님이 오셨을 때도 덕언 시간에 그 고운 가루에 대해서 우리 주님과 비교해서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정말 고운 가루를, 아마 여러분이 밀가루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알 것입니다. 그 밀가루를 제가 어렸을 때도 그 봉지 안에 담겨져 있는 그 밀가루를 보는 것을 좋아했었는데요. 한번 만져보면 굉장히 특이한 느낌이 납니다. 정말 손에 거치는 것이 없는, 그 부드러운 감촉이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 주님의 인격이 그와 같습니다. 그 안에 어떤 손을 거칠게 긁고 나가는 어떠한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는 그 부드러운 그 인격이 있었을 뿐인 것입니다. 그 안에 어떠한 죄도 살펴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덩어리져 있는 딱딱한 것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살펴보게 될 때에 이 '화덕'과 '번철'과 '솥'에 삶은 것이 나옵니다. 이건 특별히 우리 주님의 그 인격이 주님의 전체적인 삶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이제 그러한 내용들입니다. 화덕이라는 것은 밖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이제 그러한 것입니다. 열을 가하는데 그 안에 어떻게 요리되고 있는지 볼 수가 없습니다. 번철이라는 것은 이제 철판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열을 가하는데 어떻게 요리 되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솥라는 것은, 이제 우리가 솥라고 했을 때는 뚜껑이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솥은 뚜껑이 없는 열려져 있는 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볼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약 33년의 시간을 사셨습니다. 주님의 생애 가운데 어떤 시간은 우리가 전혀 볼 수 없는 그런 기간들이 있었습니다. 화덕에 있는 것처럼 분명히 그것은 주님에게 있어서 열을 받는 것과 같은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그런 온전한 제물로 또 동일하게 계셨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번철, 우리 주님의 공생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러한 생애였습니다. 그것은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각각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 각각의 사건들을 통해서 주님이 그때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가운데 우리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일부분만 보여진 그런 시간의 때를 사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따로 떨어져서 기도하실 때에 우리가 그 부분에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전부를 다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난 가운데 계실 때에도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주님의 인생 전부를 놓고 볼 때에 어느 한순간도 하나님께 향기가 되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기록된 또한 서신서에 기록된 우리 주님의 모습들을 통해 보게 될 때에 그러한 것을 계속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소제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와 같은 예배를 드리도록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이와 같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모두가 구원받고 하나님께 합당한 향기를 올려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또 주님을 묵상해서 우리가 이 예배를 합당히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