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나에 대해서, 또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씀하신 분

박이레 2026. 6. 12. 16:38

복음 : 나에 대해서, 또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씀하신 분 / 강성찬 형제님 / 26년 6월 7일 일요일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3-29).

특별히 이번 시간에는 이제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리 주님께서 직접 나아가시고 복음을 전하신 장면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가 읽은 부분에 이제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고 이제 고백한 여인입니다. 29절에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고백한 사람입니다.
참 이런 부분들은 참 귀한 부분인데요. 왜냐면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또 유대인도 아니고 유대인들에게 천대를 받는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참 이것은 우리에게 이제 여러 가지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유대인에 대해서는 잠깐 요한복음 10장으로 가서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10:23-26).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 참 이들은 바로 그 이제 사마리아 여인을 무시하고 "그들이 무슨 하나님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냐? 우리야말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다."라고 그런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왜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밝히 말했는데 너희들이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제 한번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헷갈린다. 정말 이분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했고 왜 이 사마리아의 여인은 왜 바로 "이분이 그리스도가 맞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정말 이 사람이 그리스도다!" 이렇게 증거하고 다녔는지 한번 이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사실 유대인들과 달리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그냥 이 일반적인 가사 일을 하는 이제 그러한 평범한 여인입니다. 많은 교육도 받지 못한 이 여인이 왜 바로 이분은 그리스도가 맞다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까?
이건 4장에 돌아와서 이렇게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4장 29절,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 여인은 이 예수님께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와서 한번 보라 당신들도 한번 와보라!" 그런 이제 확신 가운데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첫 번째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그분은 그리스도가 맞다. 우리는 이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요한복음 4장을 쭉 읽어봤는데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 대해서 뭘 말씀하셨습니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도대체 뭘 말했길래 이 여자는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했다." 이렇게 말한 것일까요? 뭘 말했습니까? 사실 보면 이 여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많은 것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했다." 이 정도로 하려면, "너 아침에 이거 먹었잖아." "너 지금 재산은 통장 계좌에 이런 이런 금액이 있잖아." 이 정도, 이렇게 다 정확하게, 꼬치꼬치 다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을 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 대해서 말씀하신 한 가지를 살펴보자면 이겁니다. 18절에 보면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내 남편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네가 결혼을 다섯 번 했고 그런데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게 이 여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한 가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여자는 "아, 이분이 나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구나.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말했구나." 이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의 잘못에 대해서, 그의 마음에 양심을 찌르는 그 잘못에 대해서 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지적하셨을 때 "참으로 이분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이렇게 고백한 겁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나의 잘못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게 왜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한 것이냐? 그게 왜 그분이 그리스도인 증거이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이 교회에 올 때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은 죄인이어서 죽으면 심판받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겁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쯤은 사실 조금 짜증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자꾸 죄에 대해서만 말하냐? 왜 내가 죄인이라고만 말하냐? 그게 뭔 큰일이라고, 내가 다른 여러 가지 일들도 했고, 나는 다른 여러 가지 측면도 있는데, 왜 죄에 대해서만 말하냐? 왜 내가 죄인이라고만 말하냐? 이제 이렇게 지금 생각하실 것입니다. 내가 그래도 때로는 교회에도 다녀보고, 성경도 읽어보고, 나도 나름 이 세상에 근실한 시민으로,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비방받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잘 생활해 왔는데, 왜 그것에 대해선 말 안 하고 다짜고짜 죄인이라고만 말하냐? 이렇게 화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여러분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파생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작은 한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것은 그냥 넘어가 주고, 그냥 그것은 우리 모든 인생의 기본 값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죄라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의 그 죄에 대해서 말한다면 사실 여러분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한 셈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삶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은 그냥 우리가 살짝 덮어놓고 지나가 버릴 이제 그러한 우리의 다른 한 어두운 측면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중심의 문제입니다.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돼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이 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을 때의 결과는 '목마름'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13절에 보면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려져 있다면 우리는 항상 목마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목마름을 해소할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우리 삶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계속적으로 목마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좋은 것을 여러분이 마신다 한들 여러분은 이 목마름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죄에 대해서 지적한다면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한 것이다.', '죄는 나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것을 인정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 죄에 대해서 지적할 때에 아니 그냥 잔소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금 다루고 있다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12절에 보면 이 예수님께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큰 사람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는 야곱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가축들과 그리고 그 야곱에게 속한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을 먹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사람이 큰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메시아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가장 중요한 그것을 말하는 사람, 바로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고 메시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정말 메시아고 하나님이지.'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면 지금 나에게 없는, 내 힘으로는 어떻게 구할 수 없는, 예를 들자면 어려운 병을 낳는다든지, 아니면 어떤 위기에 처한 내가 하고 있는 일들, 그런 사업이 다시 잘 굴러가도록 해주는 바로 그러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존재가 하나님이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정말 야곱처럼 자기의 가족들을 다 마시우는 그 우물을 판 사람, 가축들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는 그 우물을 판 사람, 정말 그런 사람이 큰 사람이지, 이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당신도 그와 같은 사람입니까? 당신도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그보다 더 큰 사람입니까?"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가장 중심에 필요한 것을 지금 채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 '죄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시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참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그 사람이 이 메시아를 정말로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는 죄를 지적하고 그 죄를 이제 깨달으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죄를 깊이 깨닫고 이제 뉘우치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이 '내가 얼마나 그간 무도한 죄인인가?' 내가 잘못한 일들 하나하나 생각해 보고, 내가 얼마나 그렇게 잘못한 일들을 많이 해왔는가, 참 그것을 기억해 내고 자책하고 여러분의 가슴을 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 죄가 여러분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라는 것을 인정하도록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뜻대로 산 그 삶이 여러분에게 참된 만족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여러분에게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정말 나에게 참된 만족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산 삶이 나에게 참된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하였구나.' 이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산 삶이 결코 나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첫 번째입니다. 이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는 결혼을 한 번 하였고 그 가운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자기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그 결혼으로 인해서 자신의 만족을 얻을 거라 생각하고 또 결혼을 하였습니다. 거기서도 어려움을 겪고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결혼합니다. 이렇게 다섯 번이나 하게 됩니다. 그는 참 자신의 길로 가는 것이 자기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정말 느리게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것을 결코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주님 앞에서 그는 그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도 내 뜻대로 사는 것이 결코 마르게 목마르지 않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 주님께서도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뜻대로 사는 삶, 내 계획대로 사는 삶이 결코 나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는 만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나에게 참된 만족을 주실 수 있다라고 나오는 것, 이게 정말 죄를 깨달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15절에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실 이 시점에서 이 여자는 주님이 주시는 그 영원한 선물이 무엇인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께 나아오고 있습니다. '아, 이분이 나한테 정말로 참된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구나.'라고 인정하고 이제 그분 앞에 나가고 있습니다. 참 여러분도 이와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직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완전히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나온다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더욱 분명하게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더욱 잘 알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정말 저도 그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 정말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 이렇게 돌이켜 나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참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참 이와 같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참 죄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한 번 짓고 나면 더욱더욱 그 가운데 빠져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냥 한 번만 하고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행했을 때 우리는 점점 더 그 길로 가고자 하게 됩니다. 이게 죄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점입니다. 죄는 반드시 그것을 행한 사람을 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더욱더욱 죄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힘을 가지고 그를 붙잡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다섯 번이나 결혼한 여자를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길로 향했을 때 계속해서 그 길로 더 강력하게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더 나빠집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결혼식이라는 것을 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결혼도 안 하고 살게 됩니다. 이제는 결혼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이제 분명한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죄는 죄를 범한 사람을 붙잡고 더 나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죄의 힘을 죄 앞에서 무력한 내 자신을 느끼지 않습니까? 죄가 얼마나 나를 더 아래로 이끌고 가고 있는지 그 두려운 힘을 느끼지 않습니까? 정말 여러분이 이것을 느끼고 있다면, 정말 정직하게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요. 정말 여기서 건져주십시요."라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러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죄인임을 말하고 죄를 깨달으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돌이킴, 이러한 절망 가운데서 주님 앞에 나아오도록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죄 앞에서 무력한 내 자신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 이것을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가 지금 죄인임을 지적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주님 앞에서 주님께서 나에 대해서 죄인임을 지적하실 때, 내가 그 앞에서 완전히 무력함을 인정하고 나왔을 때, 여러분도 동일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였다. 이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제 또 한 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5절에 보면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오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여기서도 이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것을 고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도 모든 것을 말하시는 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앞에 살펴보았던 것은 내 자신에 대한 모든 것,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한 이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앞에 이제 문맥을 살펴보면 주님과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대화 끝에 이 사마리아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모든 것을 고하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두 가지를 이제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첫 번째로는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신다면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다. 그리고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내가 '죄인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2. 그리고 이제 두 번째로 앞에서는 이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였다면, 두 번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시는 분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 예수께서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우리가 이제 신학 교리 책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였다면 그런 교리적인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 또한 하나님의 의롭게 행하심, 또 하나님의 사랑, 참 이러한 것을 그 목차대로 쭉 말씀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딱 한 가지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예배'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는지 우리에게 핵심적으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말하는 것은 정말 사람이 죄인이고 구원자가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것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였다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이 참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 왜 '예배'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까? 이거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 관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가장 온전해집니다. 그의 존재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냥 사람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온전해지는가, 사람이 언제 그 목적을 완성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에는 어떤 존재를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다른 존재를 예배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몇 가지 구절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여기서는 이제 사람은 둘 중에 하나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거나 재물을 섬기거나, 입니다. 이 둘 중에 하나를 섬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 둘 중에 하나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가, 아니면 돈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가, 간단하게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두 그룹 중에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사람은 어느 한 존재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한 군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3).

여기 이제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서 알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두 가지 반응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지, 참으로 그분을 높이고 그분을 찬양을 할지, 아니면 반대로 썩어질 사람, 짐승들, 아니면 벌레들, 그런 존재를 오히려 높이고 그들이 영광스럽다고 말할지, 이 둘 중에 하나를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놀라운 영광을 보여주셨는데 그런 하나님을 오히려 거절하고, 오히려 썩어지는 사람을 영광스럽다고 말하고, 아니면 짐승을 영광스럽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벌레들을 영광스럽다고 말하고, 그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그 앞에 절하고 그것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에는 다른 한 존재를 영광스럽다고 말하고 그를 경배하는 존재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다면, 참으로 그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다면, 결국에 그 사람은 다른 썩어지는 사람, 다른 짐승, 다른 벌레를 숭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높였을 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높인다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을 순종하고 이게 내 뜻이 아니라 나보다 더 높은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는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이제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못한 존재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낮은 존재, 자기와 같은 존재, 그가 신이다라고 말하고 그래서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높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자신이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기 위해서 그 예배하는 자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한 분을 경배하고 영광스러운 자를 경배하는 것이 사람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존재의 목적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운 분을 찬양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요한복음 4장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 가장 중요한 예배의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은 가장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방 로마서 말씀을 읽은 것처럼 이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가장 모르고 있습니다. 이 여자의 말에 있어서도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여자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

이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너희는 예배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예배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말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우리들은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배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각각 자기 생각으로 말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의 인구 수만큼 예배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그런데 그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하나 있습니다. 공통적인 건 뭐냐면 정성을 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정성만 드린다면 이렇게 드리나, 저렇게 드리나, 같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어떤 것을 정성스럽게 빌면 들어준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들어주신다. 그래서 새벽에 목욕하고, 물도 놓고, 정성스럽게 비는 것입니다. 여러 번 절을 하면 들어주신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성이 들어갔으니까, 정성이 들어갔는데 이것을 외면하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모습은 다르지만 각자 생각하는 대로 정성을 다합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교회에 가서 기도하였는데 이건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정성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한다. 예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내 말을 믿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위 있는 말로, 이 말을 듣고, 이 말대로 하라. 예수님의 말대로 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이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는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진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진정'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정성을 들렸으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그대로 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예배하는 데 있어서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기 이 교회, 이 교회 당,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장소를 아주 경건한 분위기가 나도록 만듭니다. 그럴듯하게 여기 가면 왠지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 것 같은 아주 멋진 성당을 만들고, 이제 거기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것 같은 그런 장소를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 드리는지', 그 '대상'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여러분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정말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누구에게 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전혀 엉뚱한 다른 존재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참되고 사신 하나님 그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는 누구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나를 낳아주신 분, 나하고 같은 생명을 가지신 분, 그 같은 생명을 가지신 분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내가 하나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게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구나. 그래서 내가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구나.'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나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아낌 없이, 제한 없이, 내가 아버지께 뭘 드려서가 아니라 정말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모든 것을 베푸시는 바로 그분, 그분을 아버지라고 우리가 부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이와 같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정말로 사랑하셔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 사랑을 베푸신 분으로 알고 믿고 있습니까?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이 예배는 '구원'과 관련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이 예배는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 아버지로부터 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이와 같은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아직 내가 그와 같은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면 이 예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예수께서 그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 예수께서 이 아버지의 사랑을 여러분이 온전히 누리도록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예배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내가 지금 이 땅에 와 있는 바로 지금, 바로 지금이 그러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때가 이르렀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이 예배를 드리게 하시도록, 드릴 수 있도록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여러분과 저와 같은 죄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그 은혜를 받들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가 이르리니 곧 이때라."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은 예배를 말을 할 때에 자기의 생각대로 예배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그건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많은 돈을 싸가지고 들어가서 거기서 100일 동안 기도를 하면서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다 이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배를 말씀하실 때는 그것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왔다. 내가 그 예배를 이루기 위해서 왔다. 내가 그 예배를 이루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디 가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 예배를 이루기 위해서 여기 왔다. 너하고 지금 말하는 내가 바로 그 예배를 이루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뭘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놀라운 예배를 내가 이루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여기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하여 한 번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의인으로서 여러분과 저희와 같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었지만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예배자로서 나아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분과 동일한 생명으로 그분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이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어서 가장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참 이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것을 말씀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이 이 예수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만나기 바랍니다. 참으로 나의 죄를 지적하시고 이 참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신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 같이 바로 이분을 그리스도라 믿음으로 고백하는 일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