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큰 경건의 비밀이신 주님

박이레 2026. 5. 13. 21:23

덕언 : 큰 경건의 비밀이신 주님 / 강성찬 형제님 / 26년 4월 26일 일요일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5-16).

여기 우리가 금방 읽은 부분에는 16절에 이제 "경건의 비밀"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사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이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이제 '비밀'이라고 언급된 것은 그 전까지 사람들이 그것을 온전히 알 수 없었던 것이지만, 이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감춰져왔던 것이 온전히 드러났고, 이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3장에서는 이제 '비밀'이 또 한 가지가 나오는데요. 9절에 "깨끗한 양심의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여기서도 이제 비밀, "믿음의 비밀"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이제 경건의 비밀이 이제 우리가 어떻게 이 행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면 여기 이 '믿음의 비밀'은 우리가 어떠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어떠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건의 비밀은 이제 어떻게 이제 행하는 것을 말했다면, 믿음의 비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 그 행동의 기본이 되는 그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이제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런 주관적인 믿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한 지금 우리가 읽은 것처럼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대상, 그 믿음의 내용을 말할 때도 이제 믿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내용도 우리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아직 온전히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제 예수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 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우리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우리에게 계시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다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이제 '믿음의 비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르침에 우리의 믿는 그 내용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시고, 또한 우리의 행하는 그 본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제 구절의 믿음의 비밀은 교회 안에서 이제 '집사들의 자격'을 말하고 있을 때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교회 안에서 필요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 믿음의 비밀을 붙들고 있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제 '경건의 비밀'과 관련해서는 15절과 관련돼서 그 하나님의 집에서 이제 '어떻게 행할 것', 그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은 하나님의 집에서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경건의 비밀'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역 교회, 이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행할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경건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건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에 어렴풋하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데, 그것이 정말로 무엇일까? 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으로 경건이 무엇인지는 바로 경건의 비밀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보면 됩니다. 우리는 그분을 본받고 또 그분을 높이는 것입니다.

여기 16절에 처음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하는 이 없도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믿는 자들이 동의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 마치 표처럼 외치는, 그것을 붙들고 주장하는 이제 그러한 우리의 캐치 프레이즈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사도행전 19장에 이제 "크도다, 아데미여!"라고 그 에베소 사람들이 자기들의 우상 신을 높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이 하나님의 집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께 온전히 기쁨을 드리는 경건한 삶을 사셨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그 아데미를 높여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적인 손해가 나지 않도록 그 아데미를 높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적인 소득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높여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아서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도록, 높이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소득이 아니라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우리는 그분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26절 후반부에서는 이제 그분의 이제 경건의 모습을 6가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얼핏 읽으면 '이런 부분들이 이 무슨 내용이지?', '이게 어떤 경건한 부분이지?' 이제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계속해서 자세히 또 이 시간 이후에도 또 각자가 한번 살펴보기를 바라게 됩니다.
여기서는 우리 주님의 여섯 가지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 주님께만 해당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육신으로 나타낸 바 되시고" 이제 우리 주님의 '성육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신 그 부분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온전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만 해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님께서는 그 주님의 본을 따라서 우리도 그와 같은 성격을 행하기를 바라시고, 그것을 경건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제 배우고자 하는데요.

우선 첫 번째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우리 주님의 성육신에서 배울 수 있는 경건의 모습은 '낮아지심'입니다. 경건의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이제 경건한 모습을 말하면서 자신을 높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의 경건의 모습은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그 종교적인 외향을 가지고, 자신을 높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경건의 모습은 아닙니다. 정말로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굴복시키고, 낮아지고, 순종하는 모습이 그 경건의 첫 단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의롭다 함을 입으시고" 우리는 구원받았을 때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살아야 됩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정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잘했다고 칭찬하시는, 이제 그런 부분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심판자처럼 그 안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큰 소리로 말씀하진 않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의롭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우리 안에서 평안하게 우리 마음을 인도해 주시면서, 그 마음 가운데 '의롭다'라고, '잘했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령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정말 내 한 발걸음을 성령께서 의롭다라고 하고 계시는지, 우리 주님의 발걸음은 그랬습니다. 그 모든 발걸음마다 비둘기처럼, 그 순결한 성령께서 그분 위에 내려오셨으며, 그 성령과 조화되게 우리 주님께서는 걸어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매 걸음은 영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그 걸음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도 그 성령님에 민감하게 행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또한 "천사들에게 보이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 가운데 여러 중요한 시점마다 이제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광야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또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도, 또 승천하실 때에도, 이제 천사들이 가까이에서 그분을 보고 계셨음을 보게 됩니다. 천사들은 우리 주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천사들은 어떻게 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낮아지시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기이히 여기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장 아름답게 창조된 그 천사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는 사단으로, 타락한 천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을 얻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겸손히 순종하고 계신 모습은 참 천사들에게 기이한 장면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사들은 교회를 또한 주목'하고 보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천사들이 실패한 그 순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그들은 이 모습 가운데 기이히 여기면서 가까이에 우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 천사들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집회 가운데 모일 때에,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에, 또 천사들이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우는 존재로서, 우리는 이 영적인 존재를 인식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사는 모습입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이 영적인 존재를 인식하면서, 우리가 함께 모이고, 또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를 드리고, 이제 이런 것들이 경건한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만국에서 전파"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이 얼마나 범우주적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의 가치가 얼마나 범우주적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창조주의 피의 가치는 놀라운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 제외하지 않고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그 보배로운 피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이 세상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차별합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외모로 차별하고, 이 사람만, 나에게 가까운 사람만 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따르게 될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고, 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그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한 삶입니다.

또 "세상에서 믿은 바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 우리 주님은 미쁘신 분입니다. 믿을 만한 분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는 이제 "세상에서 믿은 바 되었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입니다. 그것에 반대하는 세상입니다. 믿으면 오히려 핍박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그리스도는 그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을 더욱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 가운데서도, 그런 시험 가운데서도,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더 기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이제 경건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에 대한 믿음은 모든 세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또한 반드시 보답을 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습니다. 여기 우리는 모든 '경건한 자의 그 결국'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경건한 자를 영광으로 대우하십니다. 우리는 낮아졌지만, 모든 경건한 자의 그 끝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게 경건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이제 반대로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그리고 그 끝은 낮아집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의 끝은 이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했고 낮아집니다. 하지만 경건한 자의 그 끝은 자신을 스스로 낮추었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것입니다. 이게 경건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경건이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경건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이것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와 함께 동행하심으로써, 또 우리 안에서 능력을 주심으로써, 이 경건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여기 대전 중구 모임 성도님들이 모두 이 복된 경건한 삶을, 또 그 경건한 행동을, 또 이 하나님의 집에서 이루어 가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