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메튜 카인 형제님

성령과 성경 :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자라감

박이레 2026. 5. 6. 17:14

< 성령과 성경 :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자라감 > 메튜카인 형제님 / 26년 4월 13일

예, 안녕하십니까? 이제 마포에 다시 한 번 이와 같이 여러분들을 만나서 함께 교제할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어제 주일에 또 복된 시간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제 앞서서 찬송가를 선택을 해 주셨는데요. 그것은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입니다. 17세기에 이제 독일 한 신학자가 작곡한 그런 곡인데요. 이것은 저에게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아주 힘이 되는 그런 찬송가였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2장 말씀을 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 두 번의 시간 동안 저희는 '성령님'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성령님과 성령님의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 가운데 주님의 뜻이면 그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이제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님께서 특별히 성경을 주신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 마지막 부분에는 '왜 우리가 성경을 믿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2장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여기에 여러 번에 걸쳐서 '성령님', 또 '신령한',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9절부터 16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9-16).

우리가 9절로 다시 돌아가서 볼 때에 어떤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알려줄 수 없던 것들이 이제 10절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졌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이제 "우리"라고 되어 있는 것을 '사도'로서 이해하시기를 말씀을 드립니다. 이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들에게 알려진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또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은 계시를 사도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하는지를 13절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이제 13절에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에게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시고,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가 지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에 대해서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 그 가치를 이번 시간을 통해서 더욱 새롭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이 책의 놀라운 점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 10절과 11절에서는 바로 그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며 그리고 그 성령이 우리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이것에 대해서 별로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간을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깊은 것을 우리에게 알리신 이 놀라운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이와 같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에 한 가지 장애 중의 하나는 이제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또 말씀을 듣는 사람 사이에 이제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한국에서는 성도님들이 저에 대해서 많이 참아주시고 잘 대해주셔서 지금 같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이 땅에 있는 사람들 간의 그 차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의 간격도 어려운 것인데, 하나님과 이 땅의 사람 사이의 그 간격은 얼마나 얼마나 큰 간격이겠습니까? 그 간격이 너무나 큰데 어떻게 그 장애를 넘어서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깊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서 415번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라"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표현으로 360번에 걸쳐서 "이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다"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이 모든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바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진실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보배로운 사실이어서 우리가 그것을 말하고 있는 베드로후서 말씀을 잠깐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16-21).

베드로후서 1장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이제 이 시대의 사람들이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 비웃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랬었고, 이제 2026년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상태는 똑같습니다. 그들은 지금 많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많은 교육을 배웠지만, 여전히 그 사람들은 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해서 비웃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그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가 한 일들에 대해서 보고를 해야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헬리팩스 지역에 한 이란인 부부가 있습니다. 그때 이제 이란의 새해에 해당하는 기념일에 우리는 그들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집회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왜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우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페르시아어로 써져 있는 그 성경책을 이용하기로 생각하고 그것을 가져와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남편이 페르시아어로 그 구절을 읽었고, 그 여자가 그 구절을 영어로 다시 번역해 주었고, 저는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물론 성경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읽기 쉬운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그 외국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을 들을 때에 참으로 복된 광경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페르시아어로 된 성경을 그들에게 주었을 때 그들은 깜짝 놀라면서, "아니, 도대체 이것을 어디서 구한 겁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성경을 우리나라 어로 되어 있는 것, 그 책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불법입니다." 왜 그것이 불법이 된 것입니까? 왜냐하면 사람이 그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하고자 시도했지만, 성령께서는 그분의 능력으로 이 말씀을 보존하시고 계속해서 이 말씀을 사용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1장에서 말하고 있는 이 예언적인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에 아주 '근본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뿐만 아니라 이제 그분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참 이 세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우리 주님께서 그 수치의 십자가에 달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떤 불신자도 우리 주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 마지막의 모습은 그분께서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우리 주님의 모습을 다시 볼 때는 그분께선 영광 가운데 그분의 나라와 함께 임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휴거 때에 공중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휴거 때가 아니라 그 이후에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영광 가운데 강림하시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베드로에게 이와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어떻게 당신은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 단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것을 어떻게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본 자들이다. 우리는 거룩한 산에서 그분께서 변화되실 때에 그분의 그 영광의 모습을 미리 맛본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부터 18절까지는 "우리는 그의 크신 위험을 친히 본 자라" 이제 친히 본 자의 간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화나 동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 실제 산에, 실제로 분명하게 영광 가운데 서신 것을 본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진짜의, 그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잡지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제 곧 사라져 버릴 그 영광을 가지고 있는 유명인들의 영광이 아닙니다. 어떤 프로 선수들이, 또는 유명한 K팝 가수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잠깐 있다가 없어져 버리는 그런 영광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의 영광, 그분의 사랑하시는 그 아들의 영광을, 그 실제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 영광을 보았고,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고, 우리가 그와 함께 있었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한 아기가 그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이제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한, 이 분명한 사실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고, 저를 포함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19절부터 21절까지 이 또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21절 후반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그래서 이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이 성령의 감동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는 이제 정확한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제 다른 단어가 사용됐지만 그 똑같은 개념이 여기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우선 20절 말씀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약간 해석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말씀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우선 여기서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푸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여기서의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먼저 이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어떻게 저자들에게 왔고,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기록을 하는', 그때에 '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성경의 다른 저자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들은 어떤 하나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개념을 받아서 이제 그들이 개인적으로 해석해서 '사사로이 쓴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환상이나 계시를 보고 이제 그들이 나름대로 이해해서 그들의 생각으로 그것을 사사로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말한 것이다. 여기 성령께서 베드로후서에서 이 군데에 한 번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하게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구절인 것입니다. 바로 이 성경의 예언과 기록들이 바로 이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임을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베드로는 이 베드로후서 1장에서 구약에 그 성경들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말해주었고, 이제 고린도후서 2장에서는 사도 바울은 신약이 또한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부분 모두 성령님의 감독 하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성경에 있어서 '동시에 기록하는 내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감동시키시고, 그리고 오류 없이 그 사람은 그 내용을 성령의 감동으로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또 개인의 그 경험이 어울려져서 이 성경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윗은 많은 고난과 괴로움 가운데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은 그와 같은 개인적인 괴로움의 그런 경험들 가운데서 그는 이 성경 말씀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통해서 영감하사 그로 하여금 기록하게 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은 여러 지역 교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신서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를 예를 들어서 이제 그 고린도 교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을 돕기 위해서, 또한 그의 마음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그 성경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갈라디아 교회들에 대해서, 그들의 잘못된 실수에 대해서 정말 불타는 애정을 가지고 그 서신을 쓰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그 열정과 그 고통과 고뇌가 담겨 있는 그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이제 성령께서 영감하시고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그냥 아무 감정 없는 로봇처럼 받아 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한 그들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받아쓰기 로봇처럼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감해 주시고 그리고 그들은 또한 그 그대로의 말씀을 자신의 경험으로 기록하게 되는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이 '성경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 대해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비교하게 될 때에 교훈을 받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는 '성육신 하신 말씀'이라고 우리가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성육신 하신 말씀'과 또 이 '기록된 말씀'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 두 존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웁니다. 주 예수께서는 사람의 방법으로 이 땅에 나셨습니다. 바로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과정은 또한 성령님의 역사와 감독 가운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또한 이 성경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방법을 통해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양피지나 또 동물들의 가죽의 껍질의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들은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사람들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 특별히 이 말씀에 대해서 비치는, 이 말씀이 '빛을 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어두운 데 비치는 등불과 같다"고 이 말씀을 아름답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편 119편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가 잠깐 이런 생각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서울에 있는 모든 전기가 나가서 모든 불빛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교통도 마비되고 여러분은 어두운 가운데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저는 어떠한 상황도 집으로 혼자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사실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제 손전등을 가지고, 그리고 없다면 휴대폰에 손전등을 켜서 잘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오늘날의 이 시대를 '어두운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감사하게도 이제 그 어두움은 점점 끝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 때입니다. 그래서 19절에서 "어두운 데 비치는 등불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라"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우리는 어두운데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작은 등이 있다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집으로 잘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등불'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른 길로, 옆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항상 여러분을 '의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성경과 모순되는 길로 결코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확한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에 "성령께서 그래도 이쪽으로 인도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 자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을 성령님을 통해 이 말씀을 따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사용하시고, 그리고 여러분이 그 말씀을 따라오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통해 등불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고린도전서 2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 우리가 신자가 되었을 때 이 하나님께서, 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에게 즉시로 이용할 수 있게끔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성경 말씀은 방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고, 우리는 이 가운데서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것을 다 알고 계신단 말입니까? 우리는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어떠한 길을 걷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더 잘 알게 된다면, 우리가 성경 말씀을 더 순종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의 많은 선택들이 이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와 같은 말씀 집회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계속 배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울 때가 있지만 때때로는 반복적으로 똑같은 것을 배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말씀 집회를 통해서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가 직장에서 사업해서 정직하게 해야 된다는 그 같은 내용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운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올 때에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다시 그 뜻에 따라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길로 나아가 버리기 쉬운 그런 양과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가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교정받아야 되는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데 실패하지 않는 인도자가 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바로 이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영어로 된 단어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몇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그런 요약 단어인데요. 이것은 우리가 성경 교리에 대해서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것은 이 '스캔'이라는 단어인데요.
's'에 해당하는 것은 '성경의 충분하심', 서피션시를 말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충분한 것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사는 데 충분한 것입니다. 저는 더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더 다른 자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성경책이 내가 구원을 얻고 경건한 삶을 사는 데 충분한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은 비록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되는 필요한 것들은 모두 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대학 교수도, 어느 박사들도 줄 수 없는 그러한 놀라운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에게 주는 책입니다. 이 성경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러분이 더 세상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구원을 얻는 지혜를 얻도록 하는 것이며,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는 경건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참 성경은 이런 것들을 위해서 충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c'라는 것은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많은 비평론자들, 이제 회의론자들은 이 성경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아니, 성경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너무나 어려운 책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 수가 없다. 어느 누구도 그 오래된 책의 의미가 정말로 무엇인지를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거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말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공격하는 말입니다. 이 성경의 명확함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뜻을 나타내고 이해시킬 정도로 지혜로우신 분인가, 명확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인가, 라는 그 질문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말씀이 불명확하다고 말하고 있는 이 사회의 특징은 이 문화의 특징은 그 하나님의 입을 다물게 해버리려는 그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을 따라 방황하도록 내버려 두기 원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또 우리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명확하게 그분의 뜻을 알려주시기를 원하는 분입니다. 참 하나님의 그 지혜와 하나님의 선하심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전달하십니다. 참 이 성경의 명확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읽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 나와 있는 그 '일곱 별'에 대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지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의 대답은 'no'입니다. 제가 금방 성경은 아주 분명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5개의 이것을 한번 '검증해 볼 수 있는 조건'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물론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한 번에 즉시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히브리서에 대해서는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 위기에 나와 있는 속죄일에 대해서 공부를 하였을 때, 그러고 나서야 '아, 이제 히브리서의 내용이 이거였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지금도 여러분 저에게 오셔서 히브리서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연구하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 말씀이고 책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고 연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겸손한, 그 '순종하는 마음 없이는 또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참으로 너희가 이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리고 네 번째로 '성령님의 도움 없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그리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계속적으로 성령님께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나에게 잘 적용할 수 있는지 성령님의 도움을 또한 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에 가장 중요한 요소, 그 모든 것에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아주 명확하게 알려주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명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이 복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분명한 어떤 권위가 있어야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이 권위가 이 말하는 내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말씀을 기록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래서 이 세 번째 'a'에 해당하는 단어는 어니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그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n'에 해당하는 단어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로서 우리는 때때로 이 성경의 '충분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회의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이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이제 자기 마음대로 이 말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에는 분명한 우리가 변경할 수 없는 '권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회의론자들에게는, 그리고 무신론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 가운데서는 이 하나님의 빛이, 이 분명한 말씀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참으로 바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 그것을 우리가 이미 갖고 누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들에게 빛이 될 수 있는 이 말씀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서는 이 어그러진 세대 가운데 우리가 빛들로 그들에게 나타나야 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집회 가운데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했던 만 6천 킬로가 되는 그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여행의 초기에 우리는 워싱턴 DC에 방문해서 '성경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박물관의 전시 구경을 마칠 때에 아주 흥미로운 한 쇼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언어로, 얼마나 많은 성경이 번역돼서 출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박물관은 여러 가지 지원을 해서 아직도 자신의 언어로 성경책을 갖는 갖고 있지 않은 나라들을 위해서 번역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없는 가운데 있다면, 그런데 여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읽지 않는다면 그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책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우리말로 된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아십니까? 참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래서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혼자 있다 할지라도, 만약 여러분이 이 성경책과 같이 있다면 여러분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성령께서는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께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싶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집으로 돌아가셔서 이제 혼자 큰 소리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큰 소리로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서 50장에 그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듣게 될 때에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마다 내 길을 통하여 말씀하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 그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아름다운 모습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양식'과 같은 것으로 비유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내가 먹었더니" 그래서 우리는 지난 금요일에 우리 주님께서는 광야에서 비록 주리셨지만 그분께서는 영적인 양식으로 배불리셨으며, 그것을 양식으로 소화하시고 그 힘으로 그 시험을 이기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고, 우리를 힘을 나게 하는, 우리를 계속 보존하는 그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 젊은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제 젊다는 것은 47세보다 어린 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여러분의 뇌가 젊을 때에, 정말 생생하게 이 말씀을 기억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이 말씀을 암송하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기를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제 인생 가운데 아주 제 마음이 낙심될 때가 있었습니다. 마치 제 등에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이 올라와 있는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잠깐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은 너무나 무거운 것이어서 여러분의 어깨에 스스로 짊어지려고 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 이사야서 40장을 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제 그 뒷뜰에 나아가서 거기서 이 성경책을 펴고 이 말씀을 묵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이와 같은 집회에 오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있는 여러 성도님들이 그 이사야서 40장, 제가 읽은 말씀들을 인용해서 저에게 격려해 주시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젊은 분들이 그 이사야서 40장 말씀을 암송해서 말씀하는 것을 들었는데요. 저는 그러한 가운데 참 이 어렸을 때에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950년대에 이제 공산주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소규모로 나눠져서 이제 어떤 집을 빌려서 거기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외에 다른 어떤 곳에 그리스도인들이 또한 존재하고 있는지 서로 알 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님이 이제 모스크바에서 젊은 이들을 모아서 함께 모이는 시간을 갖도록 그런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참 그 수양회를 계획한 형제님은 참 큰 대가를 나중에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이유로 나중에 3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에 수많은, 18세부터 30세의 700명의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어느 누구도 이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는 청년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각각의 가정 집회에서 많은 말씀들을 배워서 말씀을 알고는 있지만. 이 기록된 말씀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강사는 그 청년들이 이미 그 말씀을 그들이 스스로 다 소화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와 같은 한 가지 도전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주중에 집회를 하러 모였을 때에, 한번 서로 확인을 해서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글로 써서 4개 복음서를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한번 써보라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한 주간 동안 그들이 그와 같이 함께 모여서 자신들이 기억하는 말씀들을 함께 써 내려갔을 때, 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전체를 다 기록하였습니다. 오직 한 12 구절에 빠진 구절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참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도 있길 바랍니다. 그와 같은 태도가 우리에게도 있길 바랍니다. 그들은 말로 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먹고, 소화하고, 그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거기에 더해 우리는 이 기록된 말씀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이 말씀에 대해서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우리의 에너지로 삼아야겠습니까?
어떤 부분을 집중해서, 그리고 일관성 있게 계속해서 읽어가는 것은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제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여기에 한 가지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제 유럽 화가와 같이, 이제 모네나 그와 같은 화가가 그리는 거다 생각하시고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이제 액자까지 그려서 이것이 이제 미술관에 걸려 있는 거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반고흐의 이제 보물을 여러분에게 소개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있는 앞에 박용수 형제님은 제 그림을 또 사진 찍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고흐의 그 유명한 그림이 걸려 있다면 저는 그 앞에서 제가 금방 쑥 지나가 버린 것처럼 한 번 곁눈질로 보고 지나가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 앞에 서서 여기 이 이 웃음은 뭘 의미하는 걸까,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왜 왼쪽 팔이 오른쪽 팔보다 더 조금 길까? 생각할 것입니다. 그 그림을 주시해서, 그 그림의 각각의 요소들의 그 상세한 것들을 생각할 때에, 저는 그 그림의 깊이를, 거기에 있는 심오한 것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이 말씀 앞에 멈춰 서서, 이제 '집중해서 그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모두 다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거보다 더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읽을 때, 여러분이 읽고 있는 것 앞에 멈춰 서서 그것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워야 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라도 배울 수 있는 기술입니다. 여러분이 이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멈추어 서서 묵상하는 것, 그러면 여러분은 그 뜻을 알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분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기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과 영광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바로 "이 성경이 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원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참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특권 중의 하나는 '예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에 참 여러분이 암송하고 있는, 여러분이 마음속에 두고 있는 그 말씀으로부터 참 넘쳐 흐르도록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그 말씀들을 통해서 감사를 드리도록, 그와 같은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이 이곳에 방문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도 저에게 아주 많은 좋은 영향력을 끼쳐주셨고 또 성경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요. 그것은 저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30년 전에 제가 들은 말씀인데요. "내가 이 지역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마음으로부터 주의 만찬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 예물을 들여서 유익한 것이고 또 내 자신의 영혼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어떠하심을 묵상하면서 그분을 닮아가고 그분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메튜 당신은 가스펠 홀에서 자라났고 그래서 당신의 생각은 세뇌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보는 이 영광은 실제로 분명하게 있는 것이고, 그것은 분명히 어떤 세뇌로 우리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것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우리는 거기 나와 있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그 영광을 보고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것은 실제이고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7살이었을 때 여러분이 저에게 "메튜 네가 성경을 믿느냐?"라고 물어본다면은 저는 그때도 "그렇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때 저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하시고, "그러면 메튜, 어떻게 그 성경이 사실인 것을 너가 알 수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어, 글쎄요.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저희 주일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강단에서도 전도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는 사실인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어렸을 때는 아주 타당하고 적당한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돼가면서 이 세상에서 많은 공격 가운데 노출되어 있을 때에 더 이상 그것은 정당한 방어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7년 전에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거기 있는 한 도서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요한복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이 고대의 그 잘 보존되어 있는 성경 사본들은 얼마나 이 성경이 사실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주 놀라운 자료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럼 사도바울이 기록한 것은 또 어떤 것이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이 이런 성경이 사실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제 "이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을 볼 때에 우리가 성경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을 보면 아무리 오래된 것도 한 100년 안에 다 인쇄된 것뿐인데, 어떻게 스가라서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전에 기록된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이 또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된 사건들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히 우리의 믿음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걸로만으로 이 성경이 사실인 것을 다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믿고 있는 이 성경이 사실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경이 사실임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바로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성경에 대해서 그냥 신문을 읽는 것처럼 다가오신다면, 그런데 이 책이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치고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이제 이런 식으로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먼저 이 성경 말씀을 이제 여러분은 회의하고 시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분이 인격적으로 실제 하시는 분임을 느끼게 되며, 그리고 이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참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은 이 성경이 사실인 것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난 후에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이 성경의 저자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게 되면서, 또 그분께서 이 말씀을 통해 내 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생생한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더욱 이 성경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실제로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역사하시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주 말하자면 거칠게 이와 같은 주장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아주 놀라운 선언을 하신 것이 모두 사실임을 우리는 그분을 믿을 때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성경이 사실임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실임을 믿기 때문에, 저는 그분을 알고 배울 때마다 더욱 큰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께서 저를 실제적으로 돌보고 계심을 느끼고 있으며, 그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그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는 그 부활도 아주 객관적인 사실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제가 개인적으로 맺게 되는 그 경험이 저로 하여금 분명한 확신을 제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참 이 가운데 아, 정말 꿀이 달다라고 알고 계시는 분 한번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면 그 꿀이 어떻게 단지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어떤 화학적인 성분을 분석해서 아, 여기 단 성분이 있으니까 꿀이 달다라고 알고 있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꿀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 꿀이 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달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달다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에서 "주의 말씀이 내 입에 꿀과 같이 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성경이 사실임을 증거하는 아주 많은,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증거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 성경을 통해 경험하는 것들이 사실임을 '우리 자신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성경이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제 안에 성령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성경 말씀을 읽음으로써 성장하게 됩니다.

이제 베드로전서 3장 말씀 마지막 구절을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벧후 3:18).

이것이 여러분을 위한 저의 기도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