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7절 / 마포모임, 20년
- 김영권 형제님 사회 : 오늘은 성경 읽기 집회 후에 기도 집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수양회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성경 읽기 집회를 30분 동안 하고 나서 한 35분 정도의 기도 집회를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번 시간은 요한일서 1장 7절부터 공부할 차례입니다. 우선 제가 1장 전체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1-10).
그래서 사도 요한 형제님은 1장의 전반부에 이 말씀에 대해서 저희에게 증거를 해주신다라고 하셨는데, 그분이 듣고 또 목도하고, 또 손으로 만진 바를 교회에게, 여러 성도들에게 전학기를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를 쓴 목적이 우리 말씀에 대해서, 또 주님에 대해서 밝히 알고 사도가 경험한 그러한 은혜를 또 주님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1장의 후반부는 계속해서 우리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특별히 "하나님은 빛이시니라"는 주제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지난시간에는 6절을 공부했었는데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고 어두운데 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또 진리를 행치 않는 것이라라고 이렇게 공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믿지 않는 자, 그리고 어두운데 행하는 자를 이렇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과 또 빛이신 그분의 관계를 맺는 자들, 즉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대조를 하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어서 오늘 7절이 공부할 주제인데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지난 시간에 혹시 부족하셨던 부분이나 교제 미처 나누시지 못한 부분도 이어서 교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5절에 있는 "하나님은 빛이시니라" 라는 부분과 또 저희가 어떻게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 살 수 있는지, 또 어떠한 사귐이 그로 인해 가능하고, 또 이렇게 된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여기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피"가 이렇게 나오는데요. 또 피가 언급된 이유와 저희가 어떻게 깨끗이 되어 있는지를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7절 1절만 이렇게 공부가 나눠질 텐데요. 여러 형제님들께서 준비하신 부분 나눠주시고, 이렇게 초반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35분까지는 모두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7절 교제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형제님1 : 예, 7절은 한글 성경에는 안 나왔지만 "그러나"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난주에 6절을 공부를 할 때, 6절, 8절, 10절 해서 영지주의자들, 그러니까 거짓 교사들이 구원받지 못한, 그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저희가 살펴봤고요. 6절에도 보면 "만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 가운데 거하면" 그래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두움에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관련 말씀을, 그 앞절인 5절에 보면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은 같이 존재할 수가 없고, 빛이신 하나님은 어두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할 수가 없고 어두움이 없는 그런 존재들이라는 것들을 저희가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3절에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해서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희가 사귐을 갖게 된 것이고요. 그래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그래서 여기서 행한다라는 것은 걷다, 삶을 산다라는 그런 의미라고 교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성도들 간에 사귐을 갖게 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이 하실 것이요"라고 해서 이 사귐 가운데 있게 되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저희가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에 어떤 삶에서도 앞으로 우리가 짓게 될 모든 죄까지 다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로 말미암아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런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삶의 원천이 되고 그런 삶을 살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래서 그와 관련해서 나중에 공부할 건데 9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그래서 이런 하나님과 사귐,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과 또 구원받은 성도들간의 사귐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빛 가운데에 걷는, 거하는 삶을 살아야 되고 그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 가운데에서 죄를 자복하고 피가 계속 저희가 이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라는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전효진 형제님 : 예, 말씀하신 것처럼 어두움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 차단해 버립니다. 이 어둠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은 빛이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 이 7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빛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사귐 가운데 있다면 동일하게 성들 사이에서도 사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그러한 사귐이 또 주님과 제자들과의 사귐으로, 또 그 제자들은 다시 모든 성도들과의 사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이런 사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라는 말씀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자유를 누렸는지를 또 알게 해줍니다. 주님께서 밝혀주신 이 진리 안에 거하면 거할수록 우리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빛에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명확하게 볼 수가 있는 거죠. 사도바울이 주님께 가는 날이 다가올쯤에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 고백했던 그 간증은 실상은 우리들이 날마다 삶 중에 토해내야 되는 그런 경험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연약한 육신의 그러한 결과들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밝히 드러나는 죄를 이렇게 보면서 그 죄를 깨끗이 하신 주님의 그 보혈이 얼마나 더 놀라운 건지, 덮고도 남음이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우리 주님의 대속의 사역은 신분적으로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서 의롭다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삶 가운데 이제 문득문득 이렇게 새어나오는 타락된 옛 성품의 찌꺼기까지 그 빛 가운데 밝히게 드러나게 하시고 그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므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저희들을 지속적인 상인 가운데에 두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었음을 이러한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또 되새기면서 저희가 빛의 자녀로 예 살 수 있는 그 사귐을 가능하게 하신 주님께 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그런 말씀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 형제님2 : 7절을 읽게 될 때 이 부분을 이제 그대로 읽어보면 마치 우리가 어떤 거룩한 행실로 우리가 행해야지 우리가 성도들과 사귐이 있게 되고 우리의 죄가 깨끗해야 된다라고 이렇게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처음 부분에서 주어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그 6절과 저희가 비교를 해볼 때, 6절에서는 그 어둠 가운데 행하던 자들이 자기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스스로 자기가 주됨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빛에 계신 것 같이 저희가 빛에 있게 되고, 그리고 거기서 행하게 될 때 사귐이 있다고 이제 하는 것을 보고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제 중요하게 강조가 되는 것이 위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둠 가운데 있고,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이 강조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어둠 가운데서 빛 가운데로 옮겨지는 것은 저희의 행실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5절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볼 때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닌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그래서 주님께서 이제 35절에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빛에서 다니라고 하셨고, 36절에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것이 우리가 빛에서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같은 12장 44절에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그래서 우리 주님이 저희를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고 빛 가운데에 거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되고 또한 그것은 오직 우리 주님을 믿을 때 그렇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제 2절, 3절을 보게 될 때 3절에서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이라고 하시면서 2절에서 영원한 생명이신 우리 주님에 대해서 사도들이 전하였을 때, 그것을 저희가 믿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어둠 가운데에서 옮겨져 빛 가운데로 거하게 되고 하나님과 성도들과 사귐이 있게 되고 우리의 죄가 깨끗한 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이 사귐은 역시 3절에 나와 있는 대로 성도들 간의 사귐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임을 또한 보면서 감사가 되었습니다.
- 이병호 형제님 :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빛에 대해서 '저는' 계속 교제가 되어졌는데요. 빛의 역할이 어떤 실체를 드러내는 그런 역할을 하는 부분이 전에 교제가 되어졌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게 되면 이제 그런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런 새로운 본성, 그런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또 그것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또 8절, 9절, 계속 교제가 되어지겠지만, 또 동시에 우리 안에 또 죄가 있다는 사실도 그런 밝은 빛 가운데 또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또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빛이신 하나님과 그런 교제, 사귐 가운데 있는 사람은 우리 안에 비록 죄가 있지만 이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속 그런 사김이 유지가 되는 건데, 이 죄에 대해서 이제 8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죄를 인정하게 되고, 또 혹 우리가 죄 본성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자백하고 버림으로써 우리가 그런 빚 가운데 사귐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을 7절에서 말해주고 있고 이것이 빚 가운데 행한다는 증거다, 이런 부분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빛 가운데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또 사도들과의 사귐을 가지게 되는 거고, 또 성도들 사이에도 이런 사귐이 또 이어지게 되는 부분을 또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저희가 이제 하나님과의 그런 빛 가운데 교제가 잘 되어졌을 때 성도들과의 그런 교제, 사귐도 아울러서 잘 되어진다는 부분을 이제 이렇게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해 하실 것이요" 우리가 죄를 범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죄용서함을 받고 어둠 가운데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근거를 지금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주님의 그 보혈이 우리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깨끗해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늘 빛 가운데에 있음을 생각하며 감사가 되었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지난 시간에 교제된 대로 행한다는 것은 몇 번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떤 사람의 '삶의 전반적인 영역', '삶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가운데 있거나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거나 아니면 빛 가운데서 행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6절과 7절에서 각각 "만일 우리가 한다면", "만일 우리가 한다면", 이렇게 가정으로 된 것은 우리가 둘 중에 하나 가정으로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각각의 그런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참된 생명이 있는 자임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7절에 여기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김 가운데 있고 빚 가운데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정이 아니라 그 사람이 빚 가운데서 행함으로 그러한 사람은 우리와 서로 사귐이 있는 것입니다. 사귐이라는 것은 공통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공통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또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고 그 성품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서로의 공통적인 것이고 그 참된 지식 가운데서 또 행함 가운데서 그들은 서로 사귐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여기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흠정역에서는 '그리스도'가 들어가 있고요. 또 여기서는 "하실 것이요"라고 해서 마치 한글 개혁 성경에서는 조건에 따라서 미래형처럼 읽히지만, 실제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흠정역에 따라서 읽는다면 "예수 그리스도프의 아들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느니라" 라고 이렇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행위를 해서 그때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거듭날 때에, 회심할 때 한번 깨끗하게 된 것이 지속적인 효력 가운데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9절에도 깨끗한 하게 하신다는 단어가 있는데요. 9절에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사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하신다는 것은 형벌이라든지, 징계라든지, 신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문둥병자를 생각했을 때, 문둥병자는 부정한 가운데서 깨끗함을 입었을 때 그는 진 밖에서 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깨끗하게 되므로 그는 진 가운데로 들어와서 교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말씀을 생각하면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또 히브리서 9장 14절 말씀에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뇨" 그래서 '깨끗함'은 또한 '섬김'과 관련돼 있습니다. 우리의 교제가 가능케 하고, 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주님의 직임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고, '예수'는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하실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고, '그의 아들'은 그 피의 효력에 대해서, 그것이 참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피 흘리심이 바로 우리의 교제가, 사귐이 지속되도록 하고 또 빛 가운데서 행할 수가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은 이러한 사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하고 있다면 이후에 우리가 9절에서는 사람의 책임에 대해서 또한 이야기함을 우리가 이후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강성찬 형제님 : 금방 형제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 부분에 조건문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조건문이 앞에 말씀해 주셨지만 A'를 하면 B를 얻는다.' 이제 이런 게 아니라 'A면 B다.' 'A랑 B는 같은 것이다.' 이것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지난 시간에 봤던 것은 하나님과 사귐과 그리고 어둠 가운데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말했고요. 이번에는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과 우리가 서로 사귄다는 것,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한다는 것이 같은 것이다. 이 빛 가운데에서 행한다는 것, 사귐, 그리고 깨끗게 한다는 것이 같은 것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 요한은 그것을 통해서 구원이 이것이다, 생명이 이른 것이다라는 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돼서, 하나님의 빚되심과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돼서, 그 생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단지 죄 형벌에서 구원받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구원의 최고 수준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사귀는 것이고, 그 구속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고, 이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가장 먼저 다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식하고 그 가운데서 죄를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해주신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는다"라는 요한복음 12장 말씀처럼 이것은 모든 구원받은 사람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이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그런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을 계속 사용하지만 6절에 나온 조건의 형식과 7절에 나온 조건의 형식이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6절은 이제 사실이 아닌 것을 그렇다면 가정하는 조건문이고요. 7절은 일반적인 사실인 것을 가정하는 조건문 형식이 사용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것은 또한 서로 사귀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요한서신서에서 특별히 서로 사귀다라는 것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모두 성도들과의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사랑하느니라" 해서 그것도 생명의 특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또한 다른 성도들과 사랑의 사귐을 나누는 것을 보게 되고요. 그것이 또한 우리의 구원의 한 모습인 것을 생각하게 되고요.
또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구원받은 사람은 "나는 이제 죄랑은 상관없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구속에 얼마나 큰 대가가 치러졌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그 피라는 것은 그분의 고난과 그 죽음의 희생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 피의 가치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고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 땅 가운데 계셨던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에서" 현재형으로 "깨끗하게"라는 동사가 사용이 됐는데요. 지금도 계속적으로 그가 믿을 때에 그 피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지만, 또한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정말 주님께서 구속한 효과를 누리고 있는, 참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온전히 이기는, 그 힘에서 벗어나는 그런 모든 효과를 누리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구원이고, 빛 가운데 행하고 사귀는 것이고, 이제 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이것을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저가 빛 가운데에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에 행하면" 하나님께서 빛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빛 가운데에 계십니다. 이 차이를 조금 묵상을 해보면 "하나님이 빛이시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그분의 본질이 이제 '절대적인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빛 가운데 계시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존재 방식, 제가 좀 약간 설명이 될 제가 이해한 바를 잘 설명했으면 좋겠는데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본성에 맞게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나 그 본성에 맞게 거룩함 가운데 거룩하게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존재하시는 방식이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희들도 그 행실이 이제 빛 가운데에서 거룩하게 이제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하면" 그래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그 완전한 거룩함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사도 요한은 두 가지 축복을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는 성도들과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뒤에도 살펴보겠지만, 정말 거짓이나 미움이 없이 정말 사랑 안에서 성조들과 함께하는, 또 그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 함께하는 교제 가운데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는 "예수 그분의 아들의 피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이게 왜 그러냐면 하나님의 거룩함 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늘 자신의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교제하기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늘 인식합니다. 자기가 안에 여전히 죄가 있고 그리고 세상 가운데서 죄의 영향을 받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제가 정말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늘 인식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보혈이 자신을 교제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그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완전하게 모든 죄가 다 깨끗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는 늘 하나님 앞에 가게 되고, 그 보혈을 힘입어서, 보혈을 근거로 해서 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은 성도들과 빛 가운데서 교제할 뿐만 아니라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보혈이 늘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로써 좀 생각을 해봤고요.
여기 보면 이제 우리나라 성경에는 "그 아들 예수의 피"로 되어 있는데, 이제 이게 이제 사본에 자가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한데요. "예수 그분의 아들의 피"라고 저는 읽겠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것은 아시다시피 그분의 인성을 입으신 사람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실제로 사람이 되셨고, 사람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그 피가 영원히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지금도 그 피를 근거로 해서. 그 피로 깨끗함을 입어서.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것이죠.
반대로 영지주의자들은 이것을 공격합니다. 예수님이 입었던 것은 다른 사람 몸이다. 예수님이 흘렸던 피는 가짜 피다라고, 그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아니다라고 이제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사람이 되셨고, 사람으로서 피를 흘리셨고, 그 피가 계속적으로 저희들에게 효과가 있어서 너희들로 하여금 늘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빛 가운데로 갈 수 있게 교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에게 교훈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입니다.
- 김영권 형제님 사회 : 교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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