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일서 1장 2절 / 마포모임, 20년
- 사회 : 이번 주 성경 읽기 시간은 요한일서 1장 2절부터 교제하는 시간인데요. 우선 1장을 전체적으로 읽고 교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1-10).
네, 우선 저번 시간은 1장 1절 요한일서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과 목적에 대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우선 요한일서 주제로 '생명'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그 생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을 어떻게 생명을 사는가에 대해 믿지 않는 자들과 구별되는 삶을 나타냄을 교제하였습니다.
또한 '목적'으로는 첫째, 1장 4절에 나온 것 같이,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둘째 2장 1절에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셋째 2장 26절에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썼노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5장 13절에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함이라"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쓰심과 믿는 자녀들의 특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을 통해 영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지고 또한 그 나타남이 사귐, 곧 교제를 통해 나타남을 나누었습니다. 요한일서는 그 빛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명에 대해 많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을 참고하시고 교제하는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부터 4절까지는 그 인사를 나타내는 '서론'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1절에 대한 교제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나타내고 있고, 태초부터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성육신, 곧 복음의 시작 태초라고 나타냄을 교제하였습니다. 그 생명에 관하여 생명에 관하여는 '듣는 것',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보았고'는 주님의 기적이며, '주목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봄을, 마지막으로 '만진 바'는 부활 후 모습을 나타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1장 1절을 통해 생명을 주제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는 삶에 대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2절 교제를 시작하는 가운데 2절은 1절 말씀에 대해 더해주는 말씀을 말씀으로 볼 수가 있는데요. 이 생명이라고 시작하는 부분에 대해 1절에 나온 생명의 말씀을 나타내고 있으며, 1절과 같이 보았고, 증거하여 전하는 부분을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은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진 순서로 봤을 때 그 점점 확신을 주는 것으로 알 수 있었는데, 2절은 다시 우리가 보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는 부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전하는 부분이 어떠한 것인지는 다시 2장 말씀을 통해 통해 말씀하시고 이 부분이 요한일서를 통해 저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전하는 부분이 어떠한 것인지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는 말씀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들을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으며, 요한일서 4장 9절부터 10절 "하나님은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심인가를 다시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 생명을 나타내심을 볼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저희가 믿는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가를 볼 수 있었으며, 또한 그러한 주님의 사랑을 다시 알게 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보았고 증거하여 전하는" 부분이 주님을 앎으로 행함이 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요한일서 5장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니라"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볼 때 더욱 교제가 되는 부분이라 생각이 되어집니다.
오늘 교제할 부분으로는 제가 몇 가지 나눴는데요. 첫째로는 첫 부분에 "나타내신 바 된지라" 그리고 또 마지막 부분에 "나타내신 바 된지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나타내심'에 대하여 어 교제해 주시면 감사가 될 것 같고요. 둘째는, "보았고 증거하여 전하는 것"에 대해 다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생명"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이 나왔는데요. 이 생명이 이 생명이라는 말씀이 요한일서 주제인 그것을 봤을 때 이 생명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교제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묵상하신 형제님들 가운데 그 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형제님 1 : 예, 요한일서 지금 지난번에도 저희가 교제를 나눴는데요. 요한일서는 성육신 하신 주님에 대한 내용과 교제에 대한 내용을 요한일서에서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당시에 영지주의자들, 그러니까 그 말씀이 육신이 돼서 오신 주님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셨다라는 것을 목격한 요한이 확정적으로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이어지는 내용이고요. 여기 생명에 대해서 나왔는데,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그리고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생 을 주신 우리 주님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고요.
1절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셔서 창세 전부터 예비되신, 또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과 또 그 성육신에서 오신 주님을 나타냈다고 하면, 2절에서는 이 주님이 영생하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고요. 요한은 이제 주님과 함께 그 주님의 사역을 보면서 그 실제로 본인이 보았고, 또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옆에서 체험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내려와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되었다라는 것들을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체험을 갖고 있었던 그 제자였기 때문에, 이때 당시에 영적 제자들이 주님의 성육신에 대한 불신과 또는 예수님을 부정하는 부분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는 그런 실증적인 체험을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고요.
그리고 "너희에게 전하노니"라고 하는 말씀에서 지금 이때 당시에는 주님께서 이미 승천하셨기 때문에 요한은 주님을 경험하고 보고 만지고 확증을 했지만, 지금 이 당시에 있는 성도들은 주님을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본인이 경험하고 본 주님을 지금 영지주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또 휘둘리고 있는 그런 제자들에게, 성도들에게, 확정해서 전하고 있다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형제님 2 : 요한일서 1장 1절과 2절을 보게 될 때, 특별히 요한일서를 보게 될 때 이 베드로후서와의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또한 이 '거짓 교사들'에 대한 그들의 미혹과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경고하는 말씀들이 있었고, 또한 요한일서도 그러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바로 전 책인 이 베드로후서의 마지막 절을 우리가 배웠었는데요. 거기에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라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요한일서 1장 1절과 2절을 보면 이 거짓 교사들을 미혹하는 데 경고하는 이 책의 첫 번째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1절과 2절에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볼 때 다시 한 번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이고, 우리는 그러하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아야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영지주의자들의 주장 중에 하나가 이제 그들은 모든 물질은 악하고 비물질은 선하다, 그래서 신성은 육체와 같은 물질과 연합을 할 수 없다. 악과 선은 연합할 수 없으므로 예수의 성육신은 믿을 수 없다. 즉 '예수는 일종의 환상이었다'라는 '가연설'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과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예수님은 죽은 것이지 그리스도가 죽은 것은 아니다라는 이러한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주장의 시작을 가보게 될 때 이 '모든 물질은 악하고 모든 신성, 보이지 않는 비물질은 선하다'는 이러한 전제에서 이제 시작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전제는 틀린 것이고, 그러한 지식의 기본을 둔 이러한 주장은 이제 틀린 것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 요한은 이 예수님의 그 육신을 입으심이 환영이었다는 이 주장을 이제 대해서 1절과 1절에 "눈으로 본 바요", 2절에 "우리가 보았고", 또한 3절에 "우리가 보고"라고 기록함으로써 우리 주님은 환영이 아니라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또한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그러한 분이시다라고, 확실하게 그리고 그 가연설이 거짓됨을 이제 밝히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또한 이제 저희가 베드로후서를 살펴보게 될 때 사도 베드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려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쫓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험을 친히 본 자라"라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 "주님을 본 것"이라고 주님의 주님을 '본 것'에 대해서 이제 강조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한 이제 1절과 2절을 살펴보게 될 때 이 "생명"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나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제 "생명의 말씀", 그리고 "생명이 나타난 바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다"라고 생명이 이제 반복됨을 보게 됩니다.
이 영지주의자들은 또한 거짓된 복음을, 거짓된 구원설을 이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은 무조건 악하고 영혼만이 선하기 때문에 인간이 이 악한 물질 세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초월자로부터 계시되는 지식, '영지'를 소유해야 한다고 이제 그들이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틀린 것이었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영생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형제님 3 : 저는 이제 요한일서 1장 2절에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세 가지 동사, 이제 보았고, 증거하고, 전한다. 이제 이 세 가지 동사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 이제 요한이 이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이제 주목해서 살펴보았고, 그래서 이제 주님에 대해서 알아 분명히 알았고, 그다음에 이제 그걸 증거합니다. '증거'가 이 동사는 법정 용어입니다. 이제 증인, 그 재판에서 그런 분명한 사실을 말하는 그 증인을 말하는데, 그런 요한이 자기가 본 것을 증인으로서 확실하게 증거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다음에 "이것을 너희에게 전한다" 전한다는 거는 이제 그걸 분명한 진리를 분명한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런 보았고, 증거하고 전하는, 그런 삶을 살았고, 또 저는 각별히 1절부터 4절까지 그리고 요한이 "경험한 것", 이제 "우리"라고 했으니까 이제 그 요한을 포함한 사도들이 그 들었고, 보았고, 또 경험했던 것들을 전하고 이것을 쓰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이제 4절까지 계속 반복되어서 언급되어 있는 부분을 이제 생각을 하면서, 그걸 함께 경험했던 우리들 그 사도들이 이제 다 죽었죠. 다 죽고 사도 요한 혼자 남아 있는데 그런 상황 가운데 이제 사도 요한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이런 부분을 좀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앞서서 이제 베드로후서와 그런 유사한 부분에 대해서 형제님이 말씀하셨는데, 베드로후서 에서 이제 베드로와 관련해서 이제 요한복음 21장에 이제 여러 번 언급된 부분들을 이제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요한복음 21장에서 이제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또 주님께서 베드로를 이렇게 회복시키신 그 경험이 베드로를 실제적으로 강하게 하고, 굳게 하였다는 부분들이 여러 번 교제가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이제 그 후의 내용이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주님께서 말하게 되고 그러면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베드로가 이렇게 물어봤을 때 요한복음 21장 22절부터 24절까지 읽어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로라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지 않노라" 이렇게 사도 요한이 이제 그 주님께서 하신 말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정확한 뜻은 사도요한을 주님 오실 때까지 살게 하신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제 결과론적으로는 죽지 않고 여기에 나와 있는 "우리들 중에" 그 사도들 중에서 요한만 순교하지 않고, 이제 그 말씀대로 혼자 이렇게 죽지 않고, 그런 살아 있는 상황 가운데 있는데,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 흥미로운 것은, 요한복음 21장 읽었는데 24절에 "이를 증거하고 이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요한복음에 보면 그 '증거'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요한복음의 '증거'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서신서 이제 로마서부터 이제 유다서까지 21개 서신서 중에서 히브리서 다음으로 증거라는 말이 요한일서에 가장 많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요한일서보다 더 많이 사용됩니다. 증거, 증인이라는 말이 사용되어지고 있는데, 요한은 이제 증거, 증인, 이런 말을 그런 요한복음 서신서 또 계시록에서 많이 사용을 하는데, 요한은 주님께서 요한을 끝까지 순교당하지 않고 이렇게 이 땅에 남겨두신 이유를 이제 분명히 알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한계시록에 보면 "충성된 증인"이라는 말이 이제 그런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 먼저 주님께 대해서 이제 충성된 증인으로서 주님께서 하신 부분에 대해서 주님을 이제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요한이 이제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주님께서 이제 그를 살려두신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충성된 증인으로서 이제 그 자기가 보았고, 이렇게 경험한 것들, 그 주님에 대해서 그 주님에 대해서 충성되이 증거하고 있고, 또 교회를 지금 보호하고 지키고 교회를 변화하는 그 일에 있어서 참 요한이 그런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살았다. 베드로의 삶이 있었고 요한의 삶이 있었는데, 요한 또한 충성되이 그 부분을 지금 담당하고 있고 또 그거를 지금 증거하고 이제 전하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또 개인적으로는 또 많은 도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전효진 형제님 : 형제님들 교제하신 것처럼 사도들이 경험한 이 경험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다가 사도들은 순교를 하는 거죠. 죽음과도 바꾸는 이 주님의 부활을 사도들은 증거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또 직접 들었고, 능력이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사역이 자신들의 생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을 증거하는 데 조금도 이렇게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전하여 준 이 사실을 이제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주님의 말씀을 물리적으로 직접 못 들었어도 사실은 들은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이렇게 보여주신 그 능력을 비록 눈으로 이렇게 경험하지 못했어도 실제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과 그 부활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준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된 것이 그 증거인 것입니다. 사도들이 증인이 되어서 목숨을 걸고 전하여 준 그 증거가 이제 우리에게 이렇게 전하여 준 것처럼, 이제 우리도 이제 우리에게 나타난 그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2절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조재훈 형제님 :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제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비교해 보면 여기서는 "이 생명이 나타나신 바 된지라" 이렇게 되어 있고요.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교제에 나왔듯이 요한복음에서는 이제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또 여기 요한일서에서는 이제 "생명"으로, 우리 주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것은 이제 주님께서 초림하신 것을 나타냅니다.
형제님들이 교제해 주셨듯이 영지주의의 주장과 달리 참으로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대로 이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나타나셨다는 것은 이제 요한일서에 몇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장 5절에서는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 나타나셨고, 또 3장 8절에서는 이제 마귀의 일을 멸하라 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2장 28절에는 이제 주님께서 다시 한 번 나타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또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초림 때 오셨듯이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자기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 생명은 이제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이제 주님의 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이 영원한 생명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주님의 신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성육신을 통해서 사도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이제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렇게 표현하고 있고, 여기서는 이제 하나님라는 단어 대신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이제 '함께'라는 단어는 이제 요한복음 2장 1절에서 '아버지 앞에서' 그 전치사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단지 아버지 옆에 계신 분이 아니시고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앞에서 계셨던 분이십니다. 이 뜻은 주님께서 영혼 가운데서 아버지와 친밀하고 능동적인 사귐 가운데 있으셨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이제 영원이라는 시간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사귐을 먼저 보게 됩니다. 이 교제 가 이제 나오고, 이 교제가 우리가 이제 이후에 3절에서 우리의 사귐과 또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으로 확장되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그러한 교제 가운데 계셨던 주님께서 이제 육신을 잊고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되신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주님을 증거하고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형제님께서 교제하셨듯이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우리 속에 주님을 나타내셨고 또 우리도 이 세상에서 주님을 이제 아는 자로서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주님을 전하여야 함을 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1절에서는 그 생명을 생명의 말씀이 성육신을 하셨고 사도들이 그분을 직접 경험했다. 친밀하게 들었고, 보았고, 주목해서 만졌다라고 설명하고 있고요. 2절에서는 그 생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1장 2절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고요. 이제 우리나라 성경에는 이게 이제 번역이 조금 어순이 잘못돼 있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어순대로 한번 제가 번역을 해서 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다.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고, 너희에게 선포한다. 그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뭐냐면 이 "영원한 생명을" 이라고 된 우리나라 성경에는 이 목적으로 된 이 문구가 실제로는 "이 영원한 생명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이렇게 해야 이 문장에 담겨진 의미를 저희들이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희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시간 순서대로 배열할 수가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원한 생명이 성육신 하셔서 사도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그 성육신 하신 영원한 말씀을 보고, 영원한 말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알게 된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보았다고 이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너희에게' 그러니까, 이 당시 독자도 될 수 있고 이제 저희들도 될 수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증거하고 있고, 전하고 있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게 시간 순서가 되겠고요.
이제 이 "영원한 생명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이 표현이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제 앞에서도 계속 형제님들이 말씀하셨지만 함께 계셨다라고 하는 것은 이 함께라고 하는 것은 이 사용된 전치사가 단순히 그냥 옆에 있다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이게 그렇게 번역하면 잘못 번역하는 것이고요. 이게 번역하기가 참 어려운데 '향하고 있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아버지를 계속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좀 이상하죠. 이게 예를 들어서 저랑 자매가 이렇게 있는데, 이게 같은 이렇게 옆에 자리에 있다고 하면 이건 향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향하는 거냐면 그러니까 저희들이 아는 대로 이 말씀은 아버지 품 안에 계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것이 향하는 것이 아니고, 제 마음이 계속 이 제 자매에게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향하고 있고, 내 사랑이 향하고 있고, 내 관심이 향하고 있고, 내 마음이 예를 들어서 그 말씀이 아버지를 계속 높이고 있고, 아버지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고, 계속 그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간 것입니다. 그 말씀이 그 생명이 영생입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 시간에도 잠깐 나왔지만은 그냥 시간상으로 영원해서 영생이 아니고 그 생명은 아버지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영생입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은 아버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고, 아버지를 의지하는 것이고, 이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본 것입니다. 제 앞에서 계속 형제님들이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단순히 성육신 하신 주님만 본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영생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론 제자들이 그 영생을 알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성육신을 하셔야 됐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 삶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시는 것을 통해서 '아! 저게 영생이구나!'라고 안 것입니다. 그 영생의 본질은 뭐냐면은 아버지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향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고,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 요한은 그것을 본 것입니다. 정말 영혼 전부터 있었던 그 아드님과 아버지 사이에 있던 그 사랑의 관계, 그분을 위해 그분을 높이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것을 성육신 하신 주님을 통해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그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났다"라고 얘기합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나타났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라는 말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성육신 하시면 저희들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의미로 의미도 물론 포함이 돼 있습니다만, 주님을 통해서 그들은 참된 생명을, 영생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저희들에게 적용을 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정말 구원받았다고 한 것이 무엇인가,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죄 용서받고 하늘나라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은 지금도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 그 영혼 속에 살아서 계속 하나님을 향하여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것이 영생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지금 요한 사도는 계속 그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너희 안에 있는 그 영생이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나타나도록 해야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이렇게 해야 된다라고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영생의 본질에 대해서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고요. 이게 정말 주님 안에 있었고 그리고 지금 거듭난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이 생명이 있습니다. 이게 정말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이제 아까 잠깐 "보았고 증거했다", 전했다라는 말에 대해서 잠깐 형제님께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이제 '보았다'고 하는 말은 '현재 완료형'으로 돼 있습니다. 이제 과거에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본 것을 이 사도 요한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거했다, 전했다고 하는 것은 '현재형'으로 돼 있습니다. 이제 증거했다고 하는 단어도 이제 사도요한이 잘 쓰는 단어인데요.증거했다고 하는 것은 뭐에 초점을 맞추고 있냐면, 그 내용이 진리이다, 참이다라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내가 너희들에게 증거한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사실이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고요. '전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사도로서 권위 있게 그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 말씀을 진리의 말씀,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도로부터 받은 그런 말씀으로 이제 받을 수 있고요.
아까 앞에서 형제님, 잠깐 비교를 해 주셨는데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 이 함께도 방금 제가 설명드린 그러한 의미를 가진 전치사입니다. 거기서는 이 말씀 요한복음에서의 말씀은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있냐면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8절에 품 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에 있는 그 말씀만이 하나님을 올바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말씀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에서는 그 생명이, 이제 생명이 하나님의 영생이 어떤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참 영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참 이것이 주님 안에 있었는데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지금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하나님과의 그 영원한 관계를 저희들도 거기에 이제 포함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3절 4절에 또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러한 축복 가운데, 은혜 가운데, 특권 가운데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또 감사드리게 됩니다.
- 한봉래 형제님 : 이제 형제님 교제한 내용 이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그 생명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기록하는 거죠. 주님을 보았을 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생명은 육체의 생명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주님이 가지고 있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고, 영적인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그러니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삶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그것을 보고, 이제 증거하고, 전한 건데요.
여기서 이제 우선 '이 생명의 특징이 뭐냐?' 했을 때 이제 저번 시간에도 요약을 했었는데, 이 생명의 특징이 뭐냐 그러면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룩'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너희 가운데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 이 참된 생명은 거룩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놀랍게 도전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없는데요. 주님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혹시 이제까지 삶 속에서 책 잡을 수 있는 게 있으면 대봐라." 주님의 말과 선택 가운데 누군가가 "나는 이것 때문에 못 믿겠다. 이게, 이건 문제다."라고 할 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주님이 그 생명을 사신 거고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삽니다. 그게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요한일서 1장, 2장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쯤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그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신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죄인들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 세상에 자기 사람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죄인을 향한 사랑, 이 주님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가 이 생명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일서 3장 4장에서 다루어집니다.
그래서 이제 빛, 사랑,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이 주님의 생명의 특징이 순종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입니다.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기를 즐거워한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요한일서 5장에 나옵니다. 그래서 무엇이 구원받았냐? 무엇이 구원받은 사람이냐?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냐?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생명, 이 세상에는 없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 이때까지 없었던 생명, 그게 뭐냐 그러면 거룩과 사랑과 순종입니다. 이걸 주님이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묘사했고, 그다음에 요한일서에서 다시 이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생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하나는 이제 "보았고" 그다음 절에서 보았고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다음에 "증거하고 전한다"라고 했는데요. 이게 이제 사도들은 주님이 선택합니다. 사도의 조건이 뭐냐? 예수님이 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이 직접 선택하니까 사도가 된 거죠. 성경에 보면 이제 교회가 택한 사도들이 나옵니다. 바나바, 뭐 이런 경우 고린도후서에도 보면 이제 헌금을 가지고 가기 위해서 여러 교회에서 택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건 이제 소문자 사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경험은 주님이 권위를 준 것입니다. 그들의 경험의 권위입니다. 이건 자기들이 좀 알고 싶다 그래서 본 게 아닙니다. 주님이 열두 제자로, 열두 사도로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그들이 전했는데요. 그들이 이제 주님을 전합니다. 어떻게 전했?냐 복음을 증거하고, 또 교회가 복음 집회를 통해서 증거하고, 이렇게 혹은 성경으로 증거하고 이렇게 하죠. 그런데 이 증거도 이제 내가 주님을 봤으니까, 내가 주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든지 아무에게나 가서 그 이야기를 막 풀어놓는 게 아닙니다. 이게 전부 주님의 통제 아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그래서 이게 다 주님 어떤 주님이 부여한 권위, 그 권위를 순종해서 보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런 면이 이제 이 2절에서 이제 강조되어 나타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입니다.
- 강성찬 형제님 : 사실 앞에 형제님들이 다 이제 교제를 하셔서 비슷한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여기에 이제 생명에 대해서 이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 요한복음과 다르게 여기서는 '생명'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생명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정말 그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이제 주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그리고 그것을 그 생명을 받은 자들이 그것을 증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생명이 무엇인지, 그 표본을 이제 우리 주님께서 이제 보여주신 것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이제 "나타내신 바 된지라"가 이제 두 번 나옵니다. 이제 2절 초반부에 이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그리고 또 후반부에도 이제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자니라" 이렇게 돼 있는데, 그 차이를 한번 생각을 해보자면 앞부분은 이제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제 일반적인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또 이제 그 앞에 말씀해 주신 대로 성육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무엇인지 그 성육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나타내 보이신 것이고요. 그리고 후반부에 나와 있는 이제 "나타내신 바 된 자"는 이제 "우리에게"라는 말이 이제 특별히 들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그 생명을 저게 바로 그 하나님의 생명이구나, 영원하신 생명이고 하나님 아버지와 조화롭게 교제를 나누신 그 생명이구나라는 것을 알고 받은, 그 믿은 자들에게는 이제 특별히 이제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라" 이렇게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특별히 이 두 번째는 이제 그것을 개인적으로 그것을 받은 그런 부분들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이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 이 주님께서 이 땅에 2천년전에 오셔서 그 영원토록 계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그 놀라운 생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셨는데, 그것을 이제 받은 자들은 그것을 보고 증거하고 너희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특별히 이제 그 영원한 생명을, 이들이 증거하는 이 생명에 대해서 특별히 "영원한 생명을 보았고 이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 이 사람이 그 보고 증거하고 전하는 것이, 단지 그냥 생명이 아니라, 단지 어떤 교리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 아니라, 이제 영원한 생명을, 그 하나님에 속한 그 생명을 이제 사람이 이제 전한다는 것을 그 특권을 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제 "증거한다"고 했을 때, 이것이 단지 말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돼서 이제 그들이 그 생명을 받아서 그 생명을 가지고 증거하는 것임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증거한다는 것은 '증거물'이 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이 주님을 정말 믿음의 눈으로 제대로 본다면 저게 바로 영생이구나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제 우리도 이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증거할 때 이제 그런 같은 반응이 나오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이제 '전한다'는 것도 앞에 말씀하신 것처럼 누가 보내서, 보냄을 받아서 그 내용을 전한다는 것을 이제 보게 됩니다. 특별히 그 생명을 먼저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주님에 대한 권위와 또한 주님에 대한 내용을 전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전한다는 것이 그 보낸 사람, 그리고 그 내용이 있음을 말하는 이제 그런 표현인데요. 우리는 이 말할 내용이 있다는 게 참 감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이제 그런 철학이나 사상을 말하는 그게 내용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토록 계셨던 그 영생, 이제 그것를 우리가 그 풍요로운 내용을 가지고 이제 전한다는 것, 참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을 마치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다 적기에는 이 세상도 그 책이 둘 장소가 부족하다"고 말하였는데 참 이 영생에 대해서는 풍성한 내용이 있는 것을 이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보았고 증거하고 이제 전한다"라는 그런 내용으로 이제 생각이 되었습니다.
- 사회 : 네, 교제 감사합니다. 그 오늘 교재는 요한일서 1장 2절까지 나눈 것으로 하고요. 다음 주 다음 시간은 요한일서 1장 3절부터 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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