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시편 1편, 복있는 사람의 특징(요약)

박이레 2025. 9. 14. 14:11

덕언 : 시편 1편, 복있는 사람의 특징 / 25년 9월 14일 일요일(요약)/ 원인수 형제님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1:1-6, 개역한글)

시편은 시작이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심판과 죄의 징벌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ㅏ나님은 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보면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시편의 처음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끝납니다. 1편에서 말하는 복있는 사람이 참되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할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이 입으로 아무리 여호와를 경배하고 찬송한다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절에서 복있는 사람이 하지 않는 세가지가 나옵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죄인의 길에 서 있지 않습니다. 세번째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2, 개역한글)

그리고 2절은 복있는 사람의 긍정적인 두가지 면을 말씀합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지키는 것도, 순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매일매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나로 하여금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6절) 의인이 앉는 자리는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공중에 주님께서 오셨을 때에 우리가 앉을 자리가 있습니다. 악인은 이 땅 가운데서 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이 땅 가운데 앉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악인의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의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여호와께서 인정하는 길을 가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인정하는 길을 가고 싶으십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묵상한다는 구절에 대해서 살피고자 합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시63:6, 개역한글)

1편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말씀합니다. 63편에서는 주님을 묵상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단순히 지식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 성경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시77:12, 개역한글)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일이라고 하는 단어는 단수입니다. 성경 모든 말씀에 대해서 하나 하나를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시143:5, 개역한글)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원어성경적으로 "모든 행한 것들을"이 맞습니다.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들을 묶어서 같이 생각해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주님을 묵상하는 것이고, 시편 1편으로 돌아가면 주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묵상하는 것 자체가 복있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이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시16:3, 개역한글)

땅에 있지만 땅에 속한 성도를 존귀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있는 그들이 왜 성도라고 불리울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않았는지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불리우는 그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주시는 복을 누릴수 없습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시107:30, 개역한글)

"소원"이라고 번역된 원어가 기쁨, 즐거움이라는 시편 1편의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이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서는 많은 풍랑이 있습니다. 그 풍랑 가운데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쁨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그 기쁨의 항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시111:2, 개역한글)

여호와의 율법을 기뻐하는 자들은 그것을 주야로 묵상할 뿐 아니라 이제 연구한다고 말씀합니다. 많은 형제님들이 말씀을 연구할 때에 먼저되신 형제님들의 주석책을 연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기보다 먼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시며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다 되어 시편 1편은 여기까지만 교제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