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히브리서 4장 : 참 안식

박이레 2025. 11. 9. 12:51

히브리서 4장 : 참 안식 / 25년 11월 9일 일요일(요약) / 장승훈 형제님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4:1-10, 개역한글)

여기서 자주 보는 단어가 '안식'입니다.
어제 성도님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는데, 산에서 경치를 보면 마음에 안식이 있습니다. 이같은 원리는 이미 창세기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1-2,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창조를 다 마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창조가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이라는 것은 창조된 아담과 하와에게도 동일하게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식이 그치게 된 이유가 창세기 3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개역한글)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땅은 사람에게 소산을 내도록 바뀌었습니다. 저도 시골에 내려가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가면 어머니는 할 일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땅이 저주받은 후에 사람은 땀흘 흘려서야만 먹고 살수 있습니다. 그와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저희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육체 가운데서의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누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흙으로 돌아갈 때에 그와같은 일은 그치고 참된 안식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저희들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16-20, 개역한글)

물론 이 말씀은 복음에 많이 활용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식과 관련해서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많은 준비를 해 놓으면 참된 쉼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같이 열심히 수고한 자가 정말로 평안히 쉬고 마실수 있습니까? 우리가 수고를 많이 할수로 그 가진 재물로 말미암아 염려를 합니다. 재물이 없을 때는 계속 수고해야 합니다. 반대로 재물이 있으면 염려함으로 안식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부 죄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가운데서 주님께서 안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개역한글)

이것도 역시 복음 시간에 많이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는 죄의 짐입니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인생의 짐도 생각하면서 저희에게 감동이 됩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짐이 없는게 아니라 가볍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의 죄의 짐을 대신 지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안식을 누립니다. 저희들이 죄로 인해서 영원한 멸망으로 갈 일은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히브리서 4-5장에서 말씀하는 안식은 현재의 안식이 아니라 장차 올 안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왜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4:1, 개역한글)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유대교를 나와 주님을 섬기는 곳으로 나온 자들에게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로 돌아간 가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섬기겠다고 입으로 말했을지라도 유대교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은 실제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대신 우리의 죄짐을 들고 가셨으므로, 죄의 짐에 대해서는 우리의 짐이 가볍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릴 때가 남아 있습니다.
출애굽한 1세대에들에게 내려졌던 복음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고 가나안 땅에 넣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이스라엘이 들은 복음이요, 안식입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4:2, 개역한글)

그러나 저희들에게 아무리 귀한 말씀이 들려진다 할지라도 듣는자가 그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사는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여 들어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할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한 단 두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1세대의 그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히브리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말씀을 읽는 저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히4:3, 개역한글)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는 모든 믿는자는 안식에 들어감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믿음에 화합지 못한 자들은 안식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은 창세기 2장에 이미 기록되고 제시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식이 지체된 이유는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말씀에도 만물이 구속될 날을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4절) 성경 전반부에서 이 안식에 대해서 이와같이 말씀하심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일하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는 가운데 일부러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죄를 해결하는 일을 위해서 지금도 일하십니다. 하늘에서도 저희들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6절),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9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식하게 하실 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 여호수아가 2세대를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참된 안식이 아니었음을 말씀합니다.(8절) 그 근거로 시편 95편을 말씀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찌어다 (시95:8, 개역한글)

여호수아 때도 마찬가지이고, 다윗의 때도 마찬가지이고 그 안식은 온전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온전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참된 인도자이십니다.
9절에 나오는 안식이라는 단어는 평강과 안정과 휴식을 말하는 안식이라고 합니다. 이는 에덴에서도, 여호수아의 때에도, 다윗의 때에도, 그리고 이 말씀을 읽는 저희들에게도 아직 실현되지 못했지만, 믿는자들에게 약속된 안식입니다. 그리고 그같은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계속 일하시는 이유는 저희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또 믿는 성도들의 죄의 문제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대언자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믿는 자로써 주님과 함께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비로서 거룩한 몸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대면하게 될 때에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저희들 가운데 낙오되는 분이 한분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