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에디오피아 내시의 구원 / 25년 10월 5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행8:26-40, 개역한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53:7-8, 개역한글)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사56:3, 개역한글)
이사야 53장, 56장의 내용은 특별히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던 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시가 이사야 53장 7-8절을 읽고 있었고, 그때 빌립이 다가가서 그 말씀을 풀어주었고 그가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서 56장 3절을 이뤄주신 것입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는 지금도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높은 지위에 있는 내시가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살펴 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8:26, 개역한글)
빌립은 원래 사마리아 지역에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믿고 침례를 받았지만 특별한 상황 가운데 있었기에 사마리아 지역은 아직 성령침례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빌립의 전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빌립이 할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주의 사자가 갑자기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이해할수 없는 상황과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8:27, 개역한글)
이 말씀을 처음 읽는다면 이상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루살렘 남쪽에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의 아주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에디오피아는 사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땅끝'에 있는 나라입니다. 성령께서는 그곳에까지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이루시고 사람들은 그것에 참여하는 것 뿐입니다. 빌립은 이해할수 없었지만, 땅끝에 있었던, 하나님을 결코 알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사람 자체를 볼수 없는 곳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내시가 그곳을 지나가도록 준비하신 것입니다. 여기 어린 영혼들도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내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성전은 이방인은 이방인의 뜰까지만 들어가고 그 이상은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시는 아쉬움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 이사야서 말씀이 들려 있었고 그가 그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것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경을 얻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 내시는 이 이사야서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와 교제하시고, 경륜을 알려주시고, 사도들을 가르치시고, 사도들에게 전하신 내용이 흘러흘러 우리에게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에디오피아 내시는 가지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8:29, 개역한글)
빌립은 원래 예루살렘 지역에 있고 싶었지만 핍박을 받아서 그 핍박을 피해 흩어졌는데,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빌립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로 인도하신 것도, 이 모든것을 인도하신 이가 성령이십니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8:30-31, 개역한글)
두 사람 다 처음보는 사람인데 갑자기 성경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듣는 자들도, 아직 구원받지 않았을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사야서의 말씀의 내용은 아까 읽은 53장 7-8절입니다. 주님께서는 종교재판과 세상재판 가운데서 여러가지 모욕과 굴욕을 당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재판을 받으실 때에 조롱과 핍박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700년 전의 이사야는 기록하였습니다. 또 주님을 전혀 본적이 없는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53:7-8, 개역한글)
주님께서 고난과 형벌을 받으신 것이 마땅히 형벌받은 백성들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자기 죄로 인해서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이 어떻게 주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이사야서는 다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내시는 이 내용이 선지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묻습니다. 구약에는 감추어졌던 복음을 신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진리의 문을 여십니다. 구약의 말씀만을 가지고는 주님께서 누구인지 알수 없지만, 성령께서 오시고나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전도자가 이 내용을 풀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의 내용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는가, 실상은 어떤 고난을 받으셨는가, 세상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우하였는가가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어서 먼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4,000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약 100일을 꼬박 이동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 내시는 오늘로치면 재무장관입니다. 그는 할일이 많은 사람이었겠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100일이나 걸리는 길에 오른것입니다. 왕복하기 위해서는 200일이 걸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내시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기위해서 살고 있나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마음의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없는 믿음은 있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회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행8:36, 개역한글)
그리고 내시는 구원받고, 먼저 침례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개역한글)
이러한 복음을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했을 것이고, 내시는 이를 듣고 믿고 또 침례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분명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분명한 변화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와같은 일들이 이 말씀을 듣는 어린 영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대전 중구 모임(요약글) > 장승훈 형제님(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명기 개요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1) | 2025.11.02 |
|---|---|
| 마가복음 15장 : 주님의 순종하심, 십자가에 달리심 (0) | 2025.10.12 |
| 복음 : 38년된 병자, 미문앞에 앉은 앉은뱅이 (2) | 2025.07.27 |
| 성도 : 침례의 의미 (3) | 2025.06.08 |
| 히브리서 3장 7-19절 : 그의 안식들에 들어가는 자들 (1) | 2025.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