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마가복음 15장 : 주님의 순종하심, 십자가에 달리심

박이레 2025. 10. 12. 12:45

마가복음 15장 : 주님의 순종하심, 십자가에 달리심 / 25년 10월 12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쌔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막15:21-32, 개역한글)

제가 계속해서 마가복음을 교제해 왔습니다. 지금은 15장에 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전체를 한절로 요약하면 마가복음 10장 45절이라 할수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개역한글)

마가복음은 종되신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장 45절은 주님의 종으로써의 사역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이는 마가복음 전반부의 사역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도 섬김의 일부입니다. 주님의 종의 사역의 절정이고 이와같은 내용이 11장 이후에 쭉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잡히시고 종교 재판을 받으시고 이제 빌라도에게 세상 재판을 받으십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죽이고자 했지만 주님을 죽일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주님을 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주님에게서 죽일만한 어떤 죄도 찾지 못했다고 여러번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놓아주려 했지만 사람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고 주님은 십자가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가시는 사이의 내용이 오늘 내용이 되겠습니다.

주님은 심문을 받으실 때에 육체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의 길을 갈 때에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를 지시지 못하자, 로마 병사는 그 옆에 지나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잡아서 억지로 주님이 지시던 가로 기둥을 대신 지게 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렉산더 루포의 아비"라고 마가는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롬16:13, 개역한글)

아마도 바울 형제님께서는 루포의 어머니를 말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루포의 아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아내는 바울에게 많은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루포와 그 어머니가 어떻게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을까요? 그것은 길을 가다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일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임에 온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도 처음부터 주님을 알기 위해서 그 자리에 나온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인도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막15:22, 개역한글)

해골이라는 것이 죽음을 나타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골고다 라는 언덕이 해골을 닮아서 그렇게 이름지어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골고다로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으로 보면 주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희롱당하신 내용부터 16-40절까지 그 앞에 and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도 처음부터 계속 and로 연결됩니다. 왜 성령께서는 이같이 성경을 기록하셨을까요?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기꺼이 순종합니다. 또 이삭은 그 아브라함의 순종에 동참합니다. 저희가 그 순종하신 내용들을 다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우리 주님을 예표합니다.
그리고 실체이신 주님께서 마가복음에서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부탁하신대로 여호와께서 주님께서 상함을 받기를 원하신 것을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가복음 15장 16절부터 and, and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순종의 길을 가셨습니까? 종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글 성경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영어 성경에는 이것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기 원했습니다. 이 모리아 산은 다윗의 범죄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해결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시는 골고다로로 연결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우리 주님을 비교할 때에 누가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까? 이삭보다도 주님은 더 위대하십니다. 그 위대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삭은 죽은것과 다름없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셨습니다. 수양을 대신 예비하셔서 그 수양이 죽었습니다. 그 수양도 주님을 예표합니다.
그리고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 근처이면서, 성 밖입니다. 그래서 성 밖에서 고난 당하신 주님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막15:23, 개역한글)

몰약은 마취제로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제가 이가 썩어서 아픈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통제를 받아와 그것을 먹으면 잠을 잘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진통제로 쓰이는 것이 몰약입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막15:25, 개역한글)

주님께서 못박히시기 직전에 몰약을 탄 포도주가 제공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절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는 것을 통해서, 주님을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을 경감시키기 위한 서비스를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모두 받으십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23:33, 개역한글)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눅23:36-37, 개역한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에 다시한번 신 포도주가 제공되었습니다. 이 군병들은 주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전혀 모르고 이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권자이신데, 먼지의 터럭만도 못한 군병들이 주님을 희롱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조롱을 받으실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조롱을 신포도주와 함께 거절하셨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28-30, 개역한글)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기 직전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신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어떻게 헤아릴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주님의 갈증은 제가 알수 없는 갈증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에 받으신 이 신 포도주를 받으신 것은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받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받으신 것입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시69:21, 개역한글)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쌔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막15:24, 개역한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행하셨던 여러 기적들을 이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속옷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해서 그렇게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도 성경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22:18, 개역한글)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막15:25, 개역한글)

마가복음은 히브리식으로 성경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정오부터 가장 이 세상에 밝음이 있어야 할 때에 이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와같은 조롱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 지났기에 27절까지만 교제하겠습니다.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막15:26,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자칭'이라는 말은 그 앞에 쓰라고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를 거절하고 내가 쓸것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유대인의 왕'은 실제로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왜 그렇게 썼을까요? 유대인들은 당시 로마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빌라도는 그것을 모욕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이루시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막15:27, 개역한글)

그리고 강도 둘이 주님의 좌우에 못박힙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명이 누가복음에 보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짦은 시간동안 주님을 조롱했던 자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보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달라고 구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도 이사야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주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는가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 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인도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지혜에 놀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