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겸손하신 주님의 대관식과 그 본 > 강성찬 형제님
마태복음 말씀 21장 4절부터 보겠습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마 21:4-17).
예,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부분에서는 이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특징적인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제 '겸손한 왕'으로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분께서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타시고' 들어오고 계십니다. 주로 왕들은 이제 말을 타고 그 성에 입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특별히 나귀, 그중에서도 이제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그 인격이 얼마나 겸손한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여러 왕들의 그런 대관식을 보면 굉장히 화려하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많은 이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왕의 대관식보다도 바로 이 장면이 가장 영광스러운 그 왕의 대관식인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리시고 또 말씀하셨던 그 이 땅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실 그 메시아, 그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그 참된 왕께서 그 나라의 성으로, 그 수도로 들어오시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깐 다니엘서를 함께 살펴보면 그 중요성을 더 인식하게 됩니다. 다니엘서 9장 말씀 잠깐 보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단 9:24-26).
바로 이 다니엘서 9장에서는 우리 주님의 그 예루살렘 입성, 그 마태복음에 기록된 그 입성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25절에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이것은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간 후에 이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고 이제 예루살렘 성벽이 다시 건축됩니다. 그런데 이 기록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 하는 영이 날 때" 예루살렘 성벽이 중건되는 영이 기원전 454년도에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를 내려서 그 성을 중건케 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7이레와 62이레가 지난 다음에, 그래서 총 69이레가 지난 다음에, 이 '이레'라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이제 성경에 예언적인 그런 표현으로서, 7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69이레에 해당하는 7년을 곱하기를 해서 계산을 해보면 483년이 지나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예루살렘 성경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정확히 483년이 지난 후에, 바로 그날이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때 이 기름 부음받은 왕이 그 나라의 수도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성경 학자들이 그 윤년과 여러 가지 횟수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보니, 정확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유월절로부터 5일 전,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바로 그날, 그날이 483년이 된 날이었던 것입니다.
참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 성에 입성하는 것을 얼마나 성경이, 또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예언하고 다루어왔던 일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 온 땅을 회복하실 그 왕이 그 보좌에 올라가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 다니엘서에 기록된 것처럼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끊어져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이제 거절하고, 이제 그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되고 멈추게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이 온 땅에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계획은 잠시 멈춰지고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 은혜의 시대, 교회 시대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교회가 휴거된 후에 다시 그 시간표는 시작이 돼서 7년 환난이 흘러가고, 그리고 그 후에 우리 주님께서 이제 그 보좌에 앉으시고 온 땅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제 다시 마태복음으로 가서 그 중요한, 성경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 대관식에 우리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그 장면을 다시 이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대관식에 겸손하게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단지 그 모습만 겸손하게 들어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나서 그 성 안에 들어가셔서 하시는 일을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 가지는 그 '성전을 깨끗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린 아이들의 찬송을 격려'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겸손하신 왕께서 하시는 일이고 그분의 성품을 또한 드러내는 일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왕이라면, 그 놀라운 왕이라면, 그 보좌에 앉은 다음에 하는 일이 이것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명령하고, 시키고, 그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부리는 일을 하는 것을 시작을 할 것입니다. 그들이 또한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어린 아이들을 자기에게로 나오게 허락하시고 그들의 찬송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위상과 걸맞은 높은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이제 그들과 만나고 그들과 교제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참 그분의 다스림에 있어서도 그 겸손하신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우리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다스림의 목적이고 뜻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성전에 돈 바꾸는 자, 비둘기 파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옛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단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강도의 굴혈'이라고 한 것처럼 자신이 어떠한 힘만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억지로 이익을 취하는 그 강도의 그 본거지로 이 성전을 바꿔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참으로 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십니다. 이것은 이제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요. 거기서는 특별히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돼 있습니다. 누구나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곳, 우리 주님께서 그 보좌에 앉아서 이루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특별히 이제 고자, 이방인들, 그 하나님께 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을 부르시고, 참 그들이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때를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이 바로 그러한 모습인 것을 보게 됩니다. 참 이 겸손하신 왕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십니다. 참 그들의 연약한 입술로 드리는 찬송을, 참 그들의 불완전한 그런 예배를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격려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더욱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도록, 참 그들이 기도를 드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왕께서 하시는 두 가지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이와 같은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모시는 분이 어떠하면, 그 밑에 있는 우리는 더욱 그 모습을 닮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왕께서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시고, 기도하러 초청하고 계시고, 그들의 찬송을 인도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 반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도 더욱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고, 이걸 반대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나에게 의지하도록 만들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이용하는 이제 그러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더욱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분께 의지하고, 기도하도록 만드는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더욱 하나님께 기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해서 기도하도록 만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찬양을 드리도록 그들의 마음을 격려하고, 또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마음을 북돋아주는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참 오늘 다시 한 번 우리 주님께서 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그 장면을 살펴보면서 그 장면이 얼마나 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이었는지, 하지만 그러한 중요한 순간 가운데서도 우리 주님의 그 겸손하신 성품이 드러났음을, 그리고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그 겸손하신 성품대로 일을 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도 그분을 닮아서, 또 그분이 하시는 그 일을 또 이 땅 가운데서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계속해서 또 이어가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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