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덕언 말씀

덕언 : 그리스도께서 주신 기업

박이레 2025. 4. 25. 23:12

< 덕언 : 그리스도께서 주신 기업 > 강성찬 형제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우리가 히브리서 9장 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것은 복음 전할 때 우리가 자주 인용한 말씀으로 또 잘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는 특별히 이 구절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 28절 말씀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28절은 이제 "이와 같이"라고 해서 27절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28절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죽으셨고,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한 번 죽으신 것으로 온전한 제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가 죽으실 필요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께서 다시 한 번 오실 텐데, 그것은 죄와 상관없이 오신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27절에 나와 있는 것은 사람은 한 번 죽는다는 것입니다. 참 우리가 너무나 잘 경험하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제 경험하게 되는 그러한 일들입니다. 정말 죽음에 대해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정말 이 말씀이 사실임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에게 단지 죽음과 그 후에 이제 심판이 있었던 그러한 인생이었는데 이것이 완전히 이제 다른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7절과 28절은 그런 면에서 대칭적으로, 대조되는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한 번 죽는 것과 그 후에 심판이 있는 것이었는데, 이제 28절은 전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았다면 이제 모든 사람에게는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이 있는 것인데,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는 그 이후에 구원이 있음을 대조적으로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무엇입니까?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그리스도께서 한 번 그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 온전한 속죄 사역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그 죄에서 구원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앞에 나와 있는 그 심판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심판과 대조되는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심판의 대조되는 것은 우리에게 큰 하나님의 상급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서 9장은 우리가 받게 될 상급, 기업에 대해서 이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절)

이제 영원한 기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게 되는 그 영원한 기업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단지 심판뿐이었을 텐데,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기업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에 말하고 있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제 한 가지 더 대조되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앞에서는 이제 죽음이었습니다. 27절은 죽음과 심판을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28절은 구원을 말하고 있고 그 구원은 말씀드린 대로 상급입니다. 우리가 받을 기업입니다. 그러면 이제 죽음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의 반대로 28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를 바라는 자들", 그리스도를 바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대조적으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 그것을 이제 바라고 있는 것, 이게 우리에게 대조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들에게 주님을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이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죽음과 주님을 바라는 것을 좀 부주의하게 비슷한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죽는 것을 주님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굉장히 대조적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앞에 보면 죽음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열렬하게 기대하고 그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을 이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것을 그냥 단순히 이 삶을 끝내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 삶을 끝내고 하늘나라에 가는 걸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인생의 전체적인 모습이 얼마나 큰 차이가 생겼는지를 또한 말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 때문에 우리는 일생 동안 종 노릇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일생 동안 종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왕처럼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는 것은 주님께서 오실 때에, 여기 보면 "나타나시리라" 되어 있는데, 그분의 놀라운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놀라운 영광을 가지고 이 땅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후사로서, 왕으로서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럴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지금 사는 인생의 성격을 바꿔버립니다. 죽음은 우리가 이 인생을 종처럼 살게 했다면, 주님을 바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인생을 지금 현재 왕으로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 땅에 선전하는 그 왕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인생 가운데 이것을 이미 맛보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을 바란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그것을 이미 맛보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죽음도 미래의 일이지만 우리가 현재 맛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시간 문제지 언제 우리는 다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도 지금 죽음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바라는 것도 지금 이 순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그 기대와 소망은 우리는 그때 일을 지금 맛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그 주님을 경험하고,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7절에서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은 단순하게 이거였습니다. 그냥 살다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종처럼 살다가 그리고 죽고 그 이후에는 심판입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8절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을 바라보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놀라운 몸으로 변화되어 구원을 온전히 누릴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약속하신 그 기업과 상급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완전히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참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참으로 이 땅에서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죽음에 두려워하여 종노릇하는,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 그런 삶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바라는, 우리의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이제 그러한 삶을, 그리고 그 이후에 주님을 만나 놀라운 구원의 상급을 누리는 그러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