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제사장의 의복 2 : 판결 흉패, 청색 겉옷 > 조나단 블랙 형제님
다시 한 번 출애굽기 28장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15절부터 35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장광이 한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세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네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찌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 둘이라 매 보석에 열 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 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하고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석류를 수 놓고 금방울을 간격하여 달되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출 28:15-35).
히브리서 5장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5장 1절입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1-4).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5절부터 8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5-8).
그리고 출애굽기 29장 말씀 보겠습니다. 19절과 20절입니다.
"너는 다른 수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수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찌며 너는 그 수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출 29:19-20).
여러분이 이 대제사장의 그림을 보실 때에 아론의 발에는 어떠한 것도 신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어떤 한 분이 저에게 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 이 사람은 그 발에 아무것도 신지 않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 서두에 먼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출애굽기 29장 금방 읽은 이 구절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대제사장 위임식에서 그는 세 군데에 이 피를 바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귀에 발라지게 되고 그리고 오른손 엄지에 발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오른발 엄지에 그 피가 발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피가 또한 보이게 찍혀져 있어야 됩니다. 그의 귀와 그의 손과 그의 발이 보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놀라운 장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바쁘게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위임식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를 따로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것이 이렇게 의미로 이 장에서 사용되는데, 그의 손에 무엇을 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도 우리 손에 무언가 담겨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제 아론의 아들과 아론이 거룩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하늘에서도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이제 거룩하게 구별되어 계십니다. 이제 그분께서 바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들도 제사장으로서 바쁘게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서두에서 이와 같은 실제적인 교훈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런 섬김에 그 손이 가득 차 있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집회 후에 이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오게 될 때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손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 그분 앞에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해야 될 그런 일들을 많이 계획하고 계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것을 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제사장의 귀와 손과 엄지에 그 피가 발라지게 됩니까?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이 죄인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이제 속죄일에 그 성막에 그 성서의 안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이제 그 백성의 죄로 인해서 그 해서 그 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는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는 이것을 1년에 한 차례씩 하게 되고 또한 그다음 해에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이 하늘에 계신 그 제사장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그분께서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제사 드릴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제사는 죄를 위하여 제사를 마치시고 그분은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온전히 만족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앉아 계시지만 또한 그분은 바쁘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5장에서 이 대제사장이 사람들 가운데서 택함을 받았고, 이 아론,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동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이 무엇을 겪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직면하는 여러 재정적인 어려움들이, 그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병에 걸려서 고통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론은 사람들이 피곤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사람 가운데서 택함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여러분과 저와 같은 그러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같은, 로마서 8장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인은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롬 8:3).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참된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지치고 그리고 피곤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신 분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하늘에 계신 그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데 때때로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너무나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실제로 우리를 얼마나 돌보고 계신지를 잊어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냥 지팡이를 들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를 때리는 그런 모습으로 상상하고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은 우리가 가지는 이 대제사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3장에서 이 아름다운 구절을 읽게 됩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아니하고 너희를 버리지도 아니하리라" 우리는 "주는 나의 돕는 자시니"라는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돕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매일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한 번 히브리서 13장에서 이 대제사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말씀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5절에서 "돈을 사랑하지 말고"라는 말씀이 먼저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족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참으로 그분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살아계신 이분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약 반대로 우리가 지금 불만족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을 지금 의지하지 않고 그분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만족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고 계시는 것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만족은 내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별히 나의 재정적인 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줍니다. 이 세상은 보다 더 많은 것, 뭔가 다른 것을 추구하라고 그렇게 자극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일 최신 핸드폰을 갖기를 원합니다. 많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큰 재정적인 빛을 지고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탐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으로 이 세상의 광고와 그런 마케팅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당신도 추구하라고 우리를 자극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그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만족해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분의 뜻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것 이상을 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만족하라고 하신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너무나 경쟁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서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인정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 분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항상 "나는 더 이것도 필요한데"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돌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지금 주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의 돌보심을 인정하는 그 태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이 가장 잘 아신다. 이것을 인정하는 삶이 참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내가 좀 더 큰 차가 있으면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텐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더 많은 돈이 있으면 행복할 텐데,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정말로 필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직장에 대해서, 여러분의 취직에 대해서 정말로 관심을 쏟고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또한 대학교에서 무엇을 배울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그분이 신경 쓰지 않은 사소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가장 여러분에 대해서 관심 있게 생각하는 부분은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대제사장의 의복을 통해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받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이제 판결 흉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그 판결 흉패의 목적을 말씀을 드립니다. 이 '판결'이라는 것은 선고를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론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그 가슴에 이 이름이 기록된 판결 흉패를 붙이고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의 어깨에도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고 그것은 그 힘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30절에 그 가슴의 판결 흉패가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정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슴이라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 담겨 있는 장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서는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어떤 사람에게 좀 잘못 말을 했을 때, 어떤 침체돼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가운데서 아무도 나를, 지금 내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라고 느끼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이 대제사장은 여러분이 무엇을 지금 느끼고 있는지를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아론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올 때에 그의 가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을 새기고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이 판결 흉패의 먼저 모양을 말씀을 드릴 때에 그것이 정사각형으로 된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그 색깔은 우리가 앞 시간에서 말씀드렸던 그 동일한 색깔이 사용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공교히 짜서"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많은 섬세한 기술로 만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한 이 특별한 장에서 이 작업, 어떤 "만들되"라는 그 표현을 또한 살펴볼 때에 조언을 받을 수 있습니다. 11절에 보면은 여기서는 인을 새기는 작업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기록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2절에서는 노끈으로 땋는 작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힘을 강력하게 가질 수 있도록 땋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32절에서는 깃을 짜는 그런 작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안전한, 이것은 꽉 결합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신성과 인성도 나눠지지 않도록 온전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제 흉패가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아주 동그랗게 만들어라 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이 그림의 물두멍을 성막에서 볼 수가 있는데요. 그 물두멍은 동그랗게 모양이 생겨 있습니다. 이 정사각형이라는 것은 이제 온전함, 모든 면이 동일하게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막에서 4가지가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집니다. 이제 그 성막뜰 문으로 들어오게 될 때, 먼저 놋 제단이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그 화목 제사가 온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성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 금향단이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금향단은 기도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출애굽기 28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번제단과 금향단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또한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지성소에 세 번째로 정사각형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의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온전히 만족돼야 됩니다. 이제 이 판결 흉패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것이 온전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건 또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판결을 말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 의로우신 판결과 그리고 동일하게 하나님의 온전하신 돌봄이 함께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어떤 사람을 돌본다고 말할 때에,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을 돌본다고 말하면서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판결을 내리실 때 온전하게 판결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또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또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저에게는 한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을 이제 키우는 가운데 이제 그에 대해서 한 판결을 내리고 그를 책망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에 대해서 아니 이것은 공정하지 않은 그런 형벌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불만을 토해서 제가 그 징계를 내리지 않는다면 그에게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낼 것입니다. 제가 그를 책망하는 이유는 제가 그를 돌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망할 때,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니다" 거절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에게 대하여 잘못 판결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는 분입니다. 그분의 이 판결과 그분의 돌보심은 온전한 것이고 온전히 조화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두 가지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순종할 말씀을 주시고, 우리가 이 말씀을 불순종했을 때 그분은 막대기를 들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그 잘못을 하고 그냥 넘어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큰 대제사장께서 돌보시는 그러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판결 흉패는 완전히 정사각형으로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판결 흉패의 크기에 대해서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의복 중에서 오직 이 흉패만 그 크기가 정확하게 기록된 것입니다. 그것은 한 뼘 길이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 판결 흉패의 크기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말해줍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손 한 뼘의 크기가 또한 심장의 크기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론이 그의 손을 그의 가슴 위에 덮을 때에 그의 신장과 그의 손은 같은 크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한 뼘의 크기는 그분의 심장의 크기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큰 심장일 수 있겠지만, 또 그들은 작은 손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그것은 사람들을 향한 공감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그 손은 항상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가 있습니다. 시편 31편에서는 나의 손이 항상 그들에게 가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의 구원이 그분의 손 안에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 구원의 안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고 이 판결 중패에 붙은 보석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기에 열 두 이름이 기록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이름이 연치대로,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파별로 기록이 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어깨에 붙은 보석에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된 이름을 말씀을 드렸을 때 그 하나님의 가정 안에 있는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슴에 붙은 열 두 이름을 언급하게 될 때는 우리 주님께서 그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돌보시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앞에서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여기서는 나라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흉패의 이름을 살펴보게 될 때 두 개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레위 지파가 먼저 빠져 있고, 왜냐하면 그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와 함께 계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셉에 이미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 대신에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이름이 기록되게 됩니다. 그들은 요셉의 아들들입니다. 하지만 이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야곱의 아들들인 것처럼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48장에서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서 데리고 나온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들에게 대해서 말하기를 이제 그들은 마치 루벤이 내 아들인 것처럼 아들들이 될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요셉은 그의 장자인 므낫세를 왼쪽 편으로 데리고 와서 야곱이 오른손으로 그를 축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손을 어긋맞겨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는 에브라임을 먼저, 그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을 먼저 축복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영적인 축복이 자연적인 출생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은 우리의 자연적인 권리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출생에 따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지역에 와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 여러분은 "당신의 아버지가 누굽니까?"라고 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우리의 아버지는 요셉이다."라고 대답하겠죠. 그런데 이 성막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당신의 아버지는 야곱이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마치 다른 야곱의 아들들처럼 입양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그와 같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가정에 입양된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4-6).
우리는 이 구속의 진리를 살펴보게 될 때에 또한 거기서 입양과 관련돼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기도하며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공항을 거쳐서 여기 오게 됐는데요. 우리는 거기서 다른 신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분들이 성령께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라 인식하면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적으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께 그와 같이 기도한 것을 우리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기도의 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베소서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이 서울의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어떤 사람을 이제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 사람은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아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렇게 부르냐고 할 것입니다. 왜 나를 아버지라 부르냐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가정에 속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고 아들로서 하나님의 가정 안에 들어오게 됐다는 놀라운 진리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우리가 "산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판결 흉패에도 각각 다른 돌이, 보석이 박혀 있습니다. 각 지파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49장에서 각 지파에 대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격을 묘사하면서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르우벤은 물의 끓음과 같이 이제 불안정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아마도 이 판결 흉패의 첫 번째로 언급된 돌일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찬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운데 이 보석이 이 지파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때때로 어떤 그림에서는 4개의 열로 보석이 놓여져 있는 것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것은 4개의 열이 이와 같이 둘러싸인, 그런 4개의 열로 또한 놓여질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12개의 지파가 4개씩 놓여져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민수기 2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2장에서 성막 주위에 그들이 이렇게 4개의 변으로서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판결 흉패의 그 보석이 놓여지는 방식을 그 진이 놓여지는 방식과 같이 그렇게 4개 줄로 둘러싸인 식으로 놓여지는 것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생각할 때에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들이 둘러싸여져 있는 그 진의 형태를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제사장의 판결 흉패의 모습을 보게 될 때에 그들은 또한 그들이 실제로 진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진의 순서와 같이 유다, 그 찬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다 지파가 첫 번째 보석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납달리가 그 진의 마지막에 언급된 것처럼 마지막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홍보석이 첫 번째고, 그리고 벽옥이 마지막인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0장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이 보석이 다시 한 번 반복돼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이것이 그 새로운 도성의 기초석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것은 아주 값진 그러한 보석입니다. 우리는 성막이 하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하늘의 친히 들어가신 분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붙어 있는 이 보석들은 하늘의 그 모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늘 도성에 대한 묘사를 읽게 됩니다. 그것은 또한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판결 흉패가 정사각형이듯이 그 새로운 예루살렘 성이 정사각형인 것입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와 있는 그 새 도성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그 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치수가 정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물리적인 도성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때때로 이 치수가 나와 있는 것은 그것은 실제로 물리적인 그 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성막 주위를 둘러싸여서 모여 있는 것처럼 지금 그렇게 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운데 계시고 그리고 우리가 그 주님의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주님이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아론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게 될 때에 오직 한 이름만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아론을 쳐다보게 될 때에 그의 이마에 오직 여호와의 그분의 한 이름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 가운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역 교회로 모이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모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에게서만 우리가 영광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과 저에게서 이와 같은 다른 영광과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서 어떠한 영광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것들, 판결 흉패 보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깨에 붙어 있는 보석처럼 그들은 금테에 물려 부착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다시 한 번 인을 새김과 같이 그 이름이 영원히 기록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23절부터는 4개 고리와 그리고 거기 연결된 사슬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28절에 기록된 것처럼 "붙여 떠나지 않게 하려" 그것이 딱 붙어 있도록 그와 같은 고리와 사슬로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하나님께서 이 금사슬과 같이 우리의 안전을 견고하게 붙잡고 있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분량에 걸쳐서 이 제사장 의복에 이와 같은 것들이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 있도록, 많은 분량 동안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슬은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여러분과 저와 같은 신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그 경고한 안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6장에서 우리의 영원한 닻이 되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 영혼의 닻과 같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한 안전을 제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배가 그 닻을 내리게 될 때에 그 배는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닻은 바다 깊숙히 내려서 붙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닻은 어디에 놓여지게 됩니까? 이것은 이 세상의 땅에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닻은 하늘에 박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먼저 들어가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아론이 속죄일에 성막 안으로 들어가게 될 때, 이제 백성들은 그 밖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그들을 제사장 따라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제사장을 따라서 들어간다면 그들은 다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막 안으로 우리 자신이 들어간다고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기서 아론을 보게 됩니다. 그 속죄일에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아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서서 그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아론은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아론은 다시 나와서 여러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이제 아론이 "나를 따라 들어와라." 이렇게 말한다면 말이 여러분은 "저는 들어갈 수 없어요."라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가 "아니 들어올 수 있다, 들어와라."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친히 들어가셨습니다. 성막에서 이제 사람들은 아론의 뒤를 따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그들이 드린 그 짐승의 피로는 그 죄를 온전히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이제 우리도 그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6장은 이것보다 더 놀라운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실제 사람으로서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따라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하늘에 이제 곧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며 얼마나 안전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출애굽기에서 28장 29절에 보면, 이것은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출 28:2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계속적인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고 30절에서는 다시 한 번 "항상"이라는 단어로 영어 성경에서는 이 구절이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그분의 대제사장직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판결 흉패와 관련된 아주 작은 실제적인 교훈을 하나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판결 흉패에 기록된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여기 어깨에 기록된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실제적으로 아론을 그들의 눈으로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름을 실제적으로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은 아론에게 이렇게 가까이 올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러분과 저에게도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우리가 알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을 실제적으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와 같은 축복을 실제적으로 누리겠습니까? 어떻게 대제사장이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느끼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제 그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제사장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이름을 알고, 그분과 가까이 교제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30절에는 우림과 둠밈이 언급됩니다. 이 판결 흉패가 두겹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판결 흉패는 주머니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머니 안에는 우림과 둠밈을 담아두게 됩니다. 이 우림은 '빛'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둠밈은 '완전함'을 말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그 주머니 안에는 빛과 완전함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림과 둠밈이 이렇게 생겼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져야 되는지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록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보게 됩니다. 민수기 27장 18절부터 21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민 27:18-21).
이제 모세를 이어서 여호수아가 그의 일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제사장 엘르아살은 이제 그것을 승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21절에 그와 같은 일로써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림의 판결법은 이 특별한 상황에서 대제사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 물은" 그 응답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 상 28장에서 또 다른 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 내었었더라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삼상 28:3-6).
이제 사울은 여호와께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응답도 얻지 못합니다.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 우림이라는 것이, 때로는 선지자와, 때로는 꿈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과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응답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아론이 여러분과 제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 정권이 그의 어깨 위에 있다라고 기록한 것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그 정사를 매신 분입니다. 또한 동일한 이사야 선지자는 그분이 모사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다는 증거가 되는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돌보고 있다고 제자들이 의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떠나시고 이제 자신들만 남겨져 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보혜사를 보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보혜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동일한 그런 능력의 분입니다. 주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는 부분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령께서는 이 기록된 성경 말씀을 사용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머니에 담긴 우림과 둠밈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있으며 또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수 없다라고 누구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 제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핸드폰에, 우리의 주머니에도 그 성경을 가지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 성경 말씀을 읽어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이 성경 읽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에 이 성경을 읽으셨습니까? 참으로 우리가 우리 하루에 맡은 일들을 이 성경을 읽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에 아침 식사를 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늘에서 내린 이 만나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필요한 그 모사의 아름다운 그 지혜로운 지혜를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파란색 겉옷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에봇 받침 겉옷'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에봇 밑에 입게 되는 것이고 이 위에 모든 에봇과 다른 것들이 입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전부 청색으로 하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청색이라는 것은 그 하늘의 파란색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북아일랜드의 하늘은 항상 이렇게 맑은 파란색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파란색은 분명히 하늘을 말해주고 있는 색깔입니다. 성경은 주의 깊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속한 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이요" 하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들어가신 첫 번째 사람인 것입니다. 천사들은 어느 누구도 하늘에서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처음으로 하늘에 들어가신 그 사람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청색의 겉옷을 생각하게 될 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아론은 이 겉옷을 머리로 이렇게 써야 됩니다. 그리고 이 목 주위에 특별히 구멍을 내고 거기에 깃으로 짜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32절에 보면은 그 목적이 "찢어지지 않게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찢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할 수 없는 두 가지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의 모자라고 할 수 있는 이 관이 항상 그의 머리에 쓰여져 있어야 됩니다. 그는 그의 겉옷을 찢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그가 겉옷을 찢는다면 그는 이제 제사관직에서 파면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죽을 때뿐입니다. 그는 얼마나 그 겉옷을 소중하게 다뤘을지 여러분은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에 그때 대제사장은 누구였습니까? 가야바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성 모독을 했다라고 고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야바는 그의 옷을 찢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실상은 자신이 이제 그로 인해서 제사장직이 끝났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실제 대제사장 앞에 서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군병들이 와서 그의 겉옷을 취하고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그 겉옷을 찢지 말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겉옷을 찢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은 찢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전에 있는 그 휘장은 하나님께서 찢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옛 것에 속한 제사장직이 이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0장은 말하기를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제 하늘로 친히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큰 의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형제들이 그의 옷을 취해서, 그리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버렸다는 것을 르우벤이 발견하게 됩니다. 르우벤은 그것을 바라봤을 때 그의 옷을 찢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요셉의 옷을 들어다가 야곱에게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피를 묻혀서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순간에 자신의 옷을 찍고 큰 슬픔을 표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중에서도 그 요셉의 옷이 찢어졌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짐승이 그를 죽였더라면 그 옷이 찢어졌다고 되어 있어야 되는 게 마땅한데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제가 마치면서 한 가지 교훈을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론은 단지 이제 보이게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이제 소리에 있어서도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겉옷 밑에 금방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석류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움직일 때 소리가 나게 됩니다. 34절과 35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출 28:34-35).
우리가 이 겉옷의 가장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가 그 사역을 완성하는 순간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옷을 입게 될 때 이제 다 완성된 옷은 항상 이 가장자리 깃이 풀리지 않도록 완성이 돼야 됩니다.
만들어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혈루증 든 여인이 주님께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금바울이 달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속죄일에 성막 안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이제 아무도 볼 수 없게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대제사장에게 있어서 가장 큰 책임입니다. 만약에 그가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실수로 언약궤를 손을 댄다면 그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안에서 매우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됩니다. 그리고 그 성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은 그가 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론이 그 가운데서 죽는다면, 더 이상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 아론이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 벨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가 다시 나오고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한 해가 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히브리서에서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를 바라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다시 한 번 오실 것을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그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그 소리를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하신 약속의 그 소리를 우리 귀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하늘에 지금 살아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다시 돌아오시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그분은 오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가 다시 오리라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외국 형제님 > 조나단 블락 형제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제사장의 의복 4 : 의복의 재료들과 옷을 만드는 일 (2) | 2025.04.11 |
|---|---|
| 덕언 - 대제사장의 의복 3 : 금패, 여호와께 성결 (0) | 2025.04.10 |
| 대제사장의 의복 1 : 에봇, 색, 견대, 띠 (1) | 2025.03.15 |
| 구원간증, 전심으로 부르심 (0) | 2022.09.28 |
|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냐 (1) | 2022.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