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조나단 블락 형제님

대제사장의 의복 1 : 에봇, 색, 견대, 띠

박이레 2025. 3. 15. 21:55

< 대제사장의 의복 1 : 에봇, 색, 견대, 띠 > 조나단 블랙 형제님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또 아내와 함께 여러분께서 7년간 또 제 영국에서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출애굽기 28장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14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찌며 그들의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찌며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찌며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찌니라"(출 28:1-14).

히브리서 4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히브리서 9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9장 2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13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제가 7년 전에 여기 한국을 방문한 이후에 또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희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 분은 결코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에 대해서 구약 성경에서 아주 아름다운 그림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28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큰 대제사장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한국에서 지금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늘에 계시는 이 한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저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아주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불안정한 그런 시대입니다. 정치적인 불안정함,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합니다. 하지만 이분은 결코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여기에 아론의 한 그림을 제가 걸어놨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론의 아들들의 모습을 함께 읽었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서 먼저 서론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론과 그 아들들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또한 성막에 관련된 진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막에 대해서 기록된 이 출애굽기 28장, 이 의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이 가운데에 위치한 것을 알게 됩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내가 그 가운데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이 없다면 그 성소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읽은 대로 이 성소의 그림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때때로 이와 같이 그림을 사용해서 가르칩니다.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성소를 통해서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이 성막은 그 하늘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으며, 또한 아론 이 대제사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여러분과 저에 대한 그림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읽어보게 될 때에, 여기에 제사장의 두 가지 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또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는 공적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방금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께서 모든 신자들이 이와 같은 제사장이라는 분명한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어떤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다스리는 한 사역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 사람은 오직 하늘에만 계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그분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예배를 공적으로, 또한 소리를 내서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잠잠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와 함께 그와 같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 모두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특별히 아론과 그리고 그가 나타내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서 이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여러분께서 이 성경책에 대해서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자 하겠습니까? 이 성경책은 구속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성경책에서 두 책이 이 구속에 대해서 보다 더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룻기입니다. 이 룻기는 그 구속자의 부유함에 대해서 강조해서 말해줍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는 유력한 자였습니다. 그가 그 구속의 대가를 치른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다 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신부와 함께 그 모든 것을 산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 책이 출애굽기인데요. 여기서는 그 구속의 사역을 볼 수가 있습니다. 1장부터 12장까지, 그것은 구속의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나라로서 구속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4절부터 15절은 이제 구속의 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구속이라는 것은 구별돼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풀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노예된 가운데서 자유롭게 놓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부터 12장까지 그들이 어떻게 자유롭게 풀려났는지를 말해줍니다.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을 때에 그와 같이 죄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구속에 대해서 네 가지 측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이와 같은 나라가 구속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구속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성경은 몸의 구속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직 우리는 많은 약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실 것입니다. 이제 어느 날,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천국에 대해서 노래를 하는데요. 그런데 이 구속이 이 하늘과 이 땅에도 새롭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몸이 변화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속이 말해주고 있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출애굽기의 부분을 살펴보게 될 때, 이 사람들은 이제 애굽에서부터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그들이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그들이 일어났을 때도 여전히 그들은 애굽에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애굽 밖으로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부터 구별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해 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제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가 거하는 곳에 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그분을 섬기도록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오늘날 어디에 임재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성막에 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분이 우리의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는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출애굽기 장에서 구속받은 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나왔고, 그들은 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이 바로 이 제사장으로 말미암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올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이 분을 이 한 분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대해서 두 번째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책의 이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책이 출애굽기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이 책의 헬라어 이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엑소더스'라는 것은 그 헬라어 단어 자체가 '나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밖으로 나온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책에는 그 이름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히브리어 성경에 원래 그 히브리어 제목, 특별히 모세 오경에 대한 제목은 각 성경책의 첫 구절을 이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애굽기 그 맨 첫 번째 구절을 살펴보게 될 때, 우리가 1장 1절을 보게 될 때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보게 됩니다. 그 이름들, 이것이 그 시작되는 구절인 것입니다. 그것이 이 구속의 비밀을 우리에게 열어주는 한 가지 열쇠가 되는 표현입니다. 이 책은 이름과 관련된 책입니다. 우리는 이 출애굽기 1장 첫 번째 구절에서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이라는 표현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1장에는 다른 여자의 두 이름이, 두 명의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에 '십브라'와 '부아'라 하는 자가 있습니다. 또한 2장에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의 이름, '모세'를 그 이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이름의 뜻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 2:10).

또한 3장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름이 나타나 있습니다. 3장 13절과 14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3-14).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바로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게시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그리고 그 이름이 이 나라에 계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통해서 그 이름이 온 세상에 계시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구속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이해하게 하는 것.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지고 계신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이 큰 대제사장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28장에서도 많은 이름들이 여기 언급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 제사장의 어깨에 6개씩 이름이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가운데 흉패에는 12지파에 그들의 이름이 또한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아론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그 관의 패에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 아론의 목적은 그가 대제사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섬기는 것이고, 바로 그 백성들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데려오는 것이 그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인 것입니다. 이 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섬기게 됩니다. 그들을 이제 하나님의 임재로 데려오는 것, 이제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말하는 것, 세 번째 직임은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러 직분을 혼합해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웃시아 왕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은 당신이 여기서 여기서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웃시아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두 개의 직분을 혼합해서 네가 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예외인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시며, 그리고 또한 그분은 선지자이십니다. 그분은 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왕이십니다. 참으로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이 위대한 분에 대해서 동일하게 동의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분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임재에서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제 아론은 특별한 의복을 입고 참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임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의 특별한 의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의복이라고 거룩한 옷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거룩하다는 것은 '특별하게 따로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가운데 있는 젊은 성도님들께 이 성경책 중에서 이 거룩에 대해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책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레위기라고 이렇게 대답하셨길 바랍니다. 베드로는 그 레위기를 인용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그 말씀을 인용해서 우리가 거룩해야 될 것을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거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그냥 우리의 친구들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약 성경에서 거룩에 대해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거룩하신 성령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두 가지 것을 주시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그리고 거룩하신 말씀.
이 아론의 거룩한 옷은 영화롭고 아름답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 성막을 방문하게 될 때에, 그들이 아론을 보게 될 때에, 그들은 아론이 다른 어느 누구도 입고 있지 않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갖지 않는 이 영광을 아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과 그 아름다움을 그 옷으로 말미암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옷을 입으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 주님께는 그 영광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하여 다른 옷을 입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그 영광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9장에서 변화산의 일을 보게 될 때, 그분 자신이 그분이 입고 있는 옷에 그 영광을 주었었습니다. 그 옷이 빛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그 영광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세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그 색깔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5절에서 5개의 다른 색깔을 보게 됩니다.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이 있습니다. 이 베실은 흰색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 에봇을 지을 때에 이 색깔들이 다시 한 번 언급이 됩니다. 그리고 8절에 에봇 위에 매는 띠를 언급하게 될 때에 이 색깔들이 세 번째로 다시 언급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색깔을 선택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이것은 모세가 선택한 색깔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가 적당한 색깔을 골라봐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선택했다면 "아, 나는 초록색이 좋아."라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아론도 "그 초록색이 좋지."라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아마 초록색으로 옷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바로 그 색깔을 택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그분께서 친히 선택하신 그 색깔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색깔은 하늘에서부터 지정된 것입니다. 첫 번째로 말씀하신 색깔은 금입니다. 금색, 그리고 청색이고, 자색, 그리고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 저의 두 번째 질문은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색깔들을 선택하셨는가입니다. 여기 아주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색깔들이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는 색깔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설명을 드리자면, 금을 보게 될 때에, 그 색깔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청색을 선택하신 것은 이제 우리들이 그 색깔을 보고 하늘을 생각하기 바란 것입니다. 그리고 자색을 보게 될 때, 이것은 왕의 색깔이며 그 왕권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리고 홍색은 물론 그것은 피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 베실은 의로운 흰색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색깔들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28절부터 35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눅 9:28-3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눅 9:27).

우리는 이 변화상을 기록한 장면에서 이 색깔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록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주색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얼굴이 밝게 빛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이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해보다 더 밝게 빛났더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분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고, 금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파란색이 또한 나옵니다. 우리는 '하늘이 열렸다'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늘색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디에 홍색이 나와 있습니까? 31절에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시는 것, 그분께서 죽으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금색과 청색과 자주색과 홍색이 나와 있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옷이 또한 희게 되고 빛이 났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의로우심을 말해주고 있으며 흰색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이 색깔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색깔들이 우리의 구주에 대해서 그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영광이라는 것은 뭔가 무거운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는 그 영광이라는 단어는 밝게 빛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왜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금을 선택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이라는 것이 그 밝게 빛나는 금속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에 그 애굽 왕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워드 카타라는 분이 그것을 발굴해 내었습니다. 그 무덤을 열었을 때 그 안에 수십억이 되는 그 금이 거기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이 그 금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금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을 발견했을 때 금들은 거기 남아 있었지만 하지만 그 금이 그 사람은 하늘나라로 데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속받은 것이 썩어질 금이나 은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 우리가 성경에서 금에 대해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입니다. 하지만 그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모든 금들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구속해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금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6절에서 이 대제사장의 의복 중에서 에봇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에봇의 그림을 보게 될 때에 세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에봇이라는 단어의 뜻은 '앞치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앞치마처럼 이렇게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부분은 이 어깨에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에봇의 세 번째 부분은 띠입니다. 그것을 두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이 어깨 부분에 에봇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에봇이 말하고 있는 교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아론을 만나러 다가오게 될 때에, 이제 그들이 먼저 배워야 되는 첫 번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 나를 살피는, 보살피는 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론을 보자마자 그것을 즉시 알게 되는데, 그의 어깨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2개의 견대가 부착이 되어 있는데 6개의 이름씩 각각의 보석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에 기록된 대로 그들의 연치대로 그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이 기록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출애굽기 1장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1장 1절에서 읽었듯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태어난, 그로부터, 야곱으로부터 태어난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가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태어났을 때는 우리는 그 아담에 속하여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분의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레위 지파에 속해서 태어나야 됩니다. 특별히 아론의 자손이 돼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태어났으므로 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된 것입니다.
특별히 이 이름들이 보석의 인처럼 새겨집니다. 여기에 이 '새기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을 새기는 것은 영구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그 호마노 보석입니다. 제가 이 보석이 이 정도 크기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사실 이것보다 더 작을 것입니다. 여기에 6개의 이름이 새겨져서 부착이 됩니다. 사실 이 작은 보석에 6개의 이름을 다 새긴다는 것이 참으로 기적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주 정밀하게 그들은 그것을 헤냈습니다. 어떤 전동 기구가 없었는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만들 수 있도록 그들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것은 놀랄 그런 기적인 것입니다. 참 이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그분의 어깨 위에 두고 계시는가입니다. 아론은 단지 12개의 이름을 그의 어깨 위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각각의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을, 그들의 모든 이름을 다 알고 그의 어깨에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이름을 그분의 어깨에 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어깨라는 것은 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흉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가슴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를 공감하시는 그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는 분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지만 그분은 강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큰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공감하시고 우리를 체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죄를 범할 때에도, 그때 우리는 이 아론, 이 대제사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는 그 대제사장.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나를 돌보고 계시는 건가? 의심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을 때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가정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 어떤 관계가 어려워졌을 때, 또한 학교에서 또 대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러한 일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돌보고 계시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돌보심을 결코 의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곳에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지금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일은 갈보에서 그때 다 끝난 것 아닙니까? 물론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에서 또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하지만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길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요한은 기록하기를 그분이 우리의 대언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젊은 성도님들이 어느 때에 범죄하게 되었을 때에,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에게 대언자가 계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나서, 그리고 나서 그분에게 가야 될 그것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못했을 때 그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그 구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언자가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이 '보혜사', 그 단어가 말하고 있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돼서 '대언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보혜사'라는 단어는 바로 그 사람 옆에 가까이 다가와서 그를 위해서 일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말하는 그것이 바로 대언자의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우리의 큰 대제사장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죄는 뭐 괜찮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사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대제사장이,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에봇이 말해주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보석이 금테에 물려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보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그 이름을 메어서" 우리가 이 기념 보석이라는 표현을 보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저는 어떤 이제 죽은 사람에 대해서 이제 그를 기념하다, 이런 표현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념하시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기념하십니다. 만약에 아론이 죽었다면, 아론은 그와 같은 보석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민수기 20장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요. 이제 모세는 아론을 데리고 호르산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 아론의 이 대제사장 옷을 다 벗깁니다. 그리고 아론은 죽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아론이 행했던 그 모든 일을 이제 더 이상 못하게 되는 백성들은 걱정하게 됩니다. 그 아론이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여기에 이제 그 옷을 입고 그와 같은 일을 해줄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아론의 아들 엘리아살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새로운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야 됩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 새로운 사람에게 이제 다시 나의 모든 것을 ,사정을 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를 신뢰하고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은 결코 죽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그가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를 위해 살아 계시는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보석은 금테에 물려서 안전하게 거기에 계속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큰 대제사장은 100% 온전하게 계속 그 자리에 계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전파합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그 진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 구원이 온전히 그분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영광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그것이 안전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반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서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양에게 영생을 주노니 결코 멸망치 않을 것이요"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의 손 안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누구도 우리를 자신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꽉 잡으신 그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그 손에서 뺏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 보석이 여기서 떨어진다면 아주 큰 재앙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판결 흉패가 금 사슬로 매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견고하게 여기 부착돼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양쪽의 두 어깨에, 그 다른 쪽에서도 그와 같이 견고하게 부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히브리어 단어에서 '교제'를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판결 흉패가 이 금 사슬로 그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28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출 28:28).

우리는 이 금 사슬이 왜 여기에 사용됐는지를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 흉패가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금 사슬은 우리에게 무엇을 또한 말해주고 있습니까? 오늘날 여러분과 저에게 이와 같은 안전을 제공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그 금 사슬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 안전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광이 담겨 있는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이 사슬과 관련된 몇 가지 예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금사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본 것을 기록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거룩한 자에 대해서 보고 그는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에 그 거룩의 사슬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마치 사슬처럼 그 거룩의 사슬이 제공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동일한 그 금사슬을 신약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죄를 범치도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아니하시고" "그 안에는 죄가 없다"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슬을 보게 될 때, 그 사슬의 한 고리만 깨져도 그 사슬 모두가 다 쓸 수가 없게 망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때, 그분과 관련된 모든 것은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분이 단 한 번이라도 죄를 범할 수가 있었다면 여러분의 구원과 저의 구원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범치 않으시고 그분 자신이 죄를 범하실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과 관련된 아름다운 다른 금사슬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이 사슬의 3개의 연결고리가 이와 같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결코 변하지 않은 분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안전한 것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에보의 띠에 대해서, 그 벨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8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에봇을 짜는 것과 동일하게 만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에봇을 만든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것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분이 동일하시다는 것을, 그것의 아름다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어떠한 손실도, 어떠한 결함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소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균일하게 동일한 것들이 담겨져 있는 그러한 고운 가루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여러분이 어느 측면에서 살펴보든지 우리는 동일하게 그분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것은 요셉의 생애에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색깔 있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여러 옷을 입었고, 또 여러 한 장소의 집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나 그는 의롭게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동일하게 그는 의로운 간증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바로의 집에 있을 때도 요셉은 동일하게 의로운 간증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바로가 요셉에게 흰 베옷을 입힌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는 동일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동물들이 있는 베들레헴의 구유의 나실 때에도 거기에서도 우리는 그분의 의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소년 시대에 나사렛의 그 동네에 있을 때에도 동일하게 그분의 의로우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베다니에 있을 때에도 마리아와 마르다와 그 집에 있을 때 여전히 동일하게 의로우신 모습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분께서 지금은 어느 집 가운데 거하고 계십니까? 아버지의 집에 거하고 계십니다. 여전히 동일하게 그분의 의로우심 가운데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분께서는 거룩하시고 더러움이 없이 있으시고 죄에게서 떠나 계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죄에게서 떠나 계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와 같은 어느 상황에서도 동일한 간증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내가 한국에 있을 때나 또는 영국에 있을 때에도 동일한 간증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오늘날 젊은 성도님들은, 여러분이 학교에서나 여러분의 침실에서 동일하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있는 형제님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직장에 있을 때나 여러분이 가정에 있을 때나 동일하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여성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지대에 있을 때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모임에 있을 때랑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여기에 이 거룩한 옷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그 아론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그 거룩한 옷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거룩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 거룩의 비결은 사적으로 있을 때에도 거룩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혼자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내가 거룩한 생각을 그때에도 하고 있는가? 그럼 내 생각은 어떻게 거룩할 수 있는가? 바로 이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거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때, 우리의 마음이 순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동일하게, 항상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간증을 나타낼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오늘날 말하고 있는 세상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뭐 다를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느 때라도 그리스도를 닮는 그 동일한 모습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거룩함은 변하지 않는 거룩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제사장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오늘날도 동일하게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아론에게 이 거룩한 옷을 입혔을 때나 동일하게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서로 도와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누군가를 도우시는 한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이 띠를 두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모든것을 이제 다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 자리에 딱 있게 놓아주는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 대해서 모르지만, 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이 거룩함이라는 것은 때때로 어려운 것입니다. 때때로 내가 생각하는 어떤 생각들이 내 자신을 실망시키게 됩니다. 내가 말하지 말았어야 되는 말을 하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어떤 것을 보지 말았어야 되는데 보게 되는 그런 것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우리가 다 제자리에 둘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이루어내는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변합니다. 많은 유행이 있습니다. 많은 옷의 유행이 있습니다. 그 머리의 모양도 매번 바뀝니다. 하지만 이 그리스도인과 관련돼서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말씀이 우리의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두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혼의 그 제도를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혼 외에 다른 성관계를 갖지 말도록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여전히 동일한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세상은 이것에 대해서 다르게 변화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이 오늘날 여러분의 핸드폰에 대해서 조심해서 다뤄야 됩니다. 그 아담과 하와에게 이 죄가 그들이 벌거벗었을 때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제 스스로 그것을 감추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부끄러운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도 동일한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날 이 핸드폰에 그 벌거벗은 사진이 있어선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도 동일한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봐야 됩니다. 우리가 지역 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게 될 때, 또한 복음의 말씀을 보게 될 때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복음을 전했을 때부터 결코 변화되지 않는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또한 머리됨의 진리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여자들은 머리를 가리고, 남자들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뀌는 게 아니고 그것은 여전히 동일한 기준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만약 이 띠에 대해서 다른 색깔로 만들기를 원했다면, 모세는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 이 금색과 청색과 자색과 홍색으로 동일하게 만들어야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동일하게 쫓아가기를 도우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이 안전이라는 것은 우리가 동일하게 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 다른 것을 해서, 새로운 것을 해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우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살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그분께서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다라고 의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 큰 대제사장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 판결 흉패와 그리고 에봇 겉옷에 대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