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하나님의 양육과 단 열매

박이레 2024. 9. 7. 18:03

< 하나님의 양육과 단 열매 > 강성찬 형제님

히브리서 12장입니다. 12장 1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17).

주님께서 읽으신 읽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제 아버지가 그 자녀들을 훈육하는 것, 여기서는 이제 징계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이제 아버지의 훈육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지난 이제 복음 시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아버지처럼 키우시죠. 그리고 이 히브리서 12장에서도 이제 믿는 우리를 또한 이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제 아버지로서 키우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그것을 여기 히브리서에서는 이제 "징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 이제 이 '징계'라고 우리 말 성경으로는 이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약간 오해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꼭 우리가 어떤 것을 잘못해서 받는 이제 그런 이제 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이제 아버지가 그 자녀들을 키우는 전반적인 그런 훈육의 과정을 말하고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동일한 단어가 이제 어떤 곳에서는 이제 "징계"로 여기처럼 이제 번역이 된 곳이 있지만, 또 이제 에베소서 6장 4절 같은 경우에는 이제 "교양"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런 말씀인데요. 제가 그냥 읽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여기서 이제 "주의 교양"이라고 되어 있는 단어가 여기서 나와 있는 이제 "징계"로 번역된 이 단어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서도 이 "주의 교양"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떤 교양이 있는 무슨 학식이 있는, 그 교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교양이라는 것이 자녀를 이제 키우는, 이제 그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 똑같은 단어가 에베소서에서는 이제 교양으로 번역이 된 거고 여기서는 이제 징계로 번역이 됐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징계라는 단어가 '훈련'이라는 것으로 번역이 되면 좀 더 그 의미가 전달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 주님께서 이제 고린도전서 11장에서도 징계를 말씀을 하십니다. 이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말씀하신 것인데요. 이제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어떤 잘못을 한 성도에게 이제 주님께서 형벌을 하시는 그런 부분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교회 안에서 그들이 그 주의 만찬에 대해서 이제 합당치 않게 대하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 특별히 이제 직접적으로 징계를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이 병들거나 자는 자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들고 때로는 심각한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는 그런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주의 만찬에 합당치 않게 참여한 이 자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형벌하시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여기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이제 그런 어떤 특별한 잘못을 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의 이제 일반적인 이제 하나님의 양육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 이후에 이제 삶 전체에 대해서 이제 설명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잠깐 디도서 말씀을 한 곳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도서 2장 11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2:11-12).

여기서 이제 "양육"이라는 것이 이제 히브리서 12장에서 이제 징계, 또 고린도전서 징예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2-13).

여기 이제 우리의 구원받은 순간이 있고요. 디도서 2장 12절입니다. 그리고 이제 11절에 이제 구원을 받은 것이고요. 13절에 보면은 이제 복스러운 소망이 나타나는, 이제 우리 주님께서 공중에 임하시는 그 복스러운 소망의 때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중간에 12절은 이제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까지 그 사이의 삶이 뭐냐, 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 중간의 삶은 뭐냐? 우리가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아니 구원받고 나서 그냥 바로 하늘나라 가지 않고 우리가 이 땅에서 이 삶을 사는 의미가 뭘까를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하늘나라로 데려가셔도 되는데, 왜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두시고 이 땅에서 살게 하셨을까? 사실 이 땅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인데, 이제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쉽지 않은 것인데 왜 우리는 이 땅에서 살게 하셨을까? 이걸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어떤 형제님에게 이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저와 이제 같이 이제 대학생활을 하고, 대학교 때 이제 제가 이제 복음을 전하고 이제 권유를 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형제입니다. 이제 그 형제가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때 복음을 들으라고 권유하면서 뭐라고 말했냐면, "복음을 들으은 그리고 구원받으면은 슈퍼맨처럼 된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지만, 아주 그냥 이제 슈퍼맨처럼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서 복음을 들으라고 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제 물론 이제 맞는 말이 있지만 좀 오해될 수도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았다고 해도 여전히 이 삶의 여러 가지 어려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살아야 되거든요. 그걸 다른 사람보다 더 하늘을 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힘을 가지고 면제받으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도 역시 이제 이 세상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 걸어 다니면서 살고 밥 먹고 또 밥을 먹기 위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회사 나가고 힘들게 돈을 벌고 살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런 과정들을 하나님께서는 양육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사실 저도 이제 구원받기 전에 그 반복적인 일상생활을 하면서 또 아침에 학교 가고 그 지하철에 뛰어가서 그 많은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시달리다가 학교 가고 이런 것들이, 이거 왜 이걸 이렇게 하면서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학교 다닐 때가 제일 편한 때였는데요. 그런데 이제 구원받고 나서도 여전히 또한 이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고 나서도 여전히 만 원 버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이제 시달리면서 아침에 이제 일어나가지고 학교 가거나, 직장 가거나, 이제 그런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일들을 하는 가운데에 이게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에 대해서 "양육"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양육이다. 그런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을 닮아가도록 만들어 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양육하심으로 근신하고, 또 의롭고,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도록 이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게 우리의 지금 삶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이제 그 양육에 대해서 이제 더욱 길게 이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히브리서 12장으로 돌아와서 좀 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이제 히브리서에서도 동일하게 그 양육을 말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이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 서신서를 받는 이 믿는 히브리인들은 사실 그냥 단순하게 좀 아침에 힘들게 학교 가고, 직장생활하고, 그걸 매일매일 이제 뺑뺑이 치고, 이제 이런 문제 정도가 아니라 정말 힘든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이 히브리인들은 사실 그들의 동족 유대인으로부터 "너희들은 지금 이상한 것을 믿고 있다. 너희는 지금 나사렛 예수, 그건 이단이다. 그건 전통이 아니다. 이상한 것을 믿고 있다." 이런 오해와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너희들은 지금 여기 성전을 떠나서, 여기 예루살렘에 번듯하게, 멋진, 화려한, 그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거기 안에 이제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제사가 있는데, 그 안에 제사장이 있는데, 왜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엉뚱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뭐 하는 것이냐?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이제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산을 다 뺏고, 내쫓고, 그 가문에서 "너희들은 이제부터 우리 집 사람이 아니다."고 내쫓고 이런 핍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 믿는 히브리인들에게 이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그 어려움은 그것은 너희가 벌받는 게 아니라 그건 하나님의 양육이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더욱 선한 것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그들과 동일한 수준은 아니지만, 동일한 성격으로 믿는 자로서 이 세상 가운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반대와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확장해서 우리 이제 일상적인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까지도 한번 이 시간에 생각을 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어려움이, 이 양육이 뭘 말하고 있냐면, 6절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마다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히 사랑을 증거하고 계시는 것이다. 너희도 생각을 해봐라. 사랑하는 아들에게 더욱 채찍질하고 그들이 그 채찍을 통해서 바르게 자라도록 부모들이 하고 있지 않느냐? 사랑하는 아들에게 더욱 개입하고, 간섭하고, 징계하고 있다. 이것은 그 부모의 사랑의 증거고 그리고 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의 증거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삶에 어떤 이제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다루시는 증거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는 증거다라고 두 번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불신자 유대인들은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지금 전통에서 떠났어. 너희는 이제 우리와 같이 기업을 얻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야.
너희들은 이제 거짓된 아들이야." 이렇게 비난했지만 사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이 믿는 히브리인들이 이들이야말로 참 아들이다. 그들이 지금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그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참 아들이다. 이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눈에 보이는 일이 잘 돼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여러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관심을 두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우리를 양육해 가시는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는 것을 이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10절에 중간에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이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도록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어려운 것들을 사용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유익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적은 1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이 징계하는 것이 이 훈련과 양육이 우리가 그 어려움을 받고 있을 때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하지만 반드시 그로 말미암아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이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여기 이 이제 열매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고자 하는데요. 이것과 대조적으로 15절에는 쓴 뿌리가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여기 이 "의의 평강한 열매"와 "쓴 뿌리"가 대조돼서 나와 있습니다.
제 주위에 농사를 짓는 분들이 좀 있어가지고 종종 가뭄이 들었을 때 식물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듣게 됩니다. 제 주위에 특별히 이 선인장을 키우시는 분이 있는데요. 이제 가뭄이 들면 선인장이 특별한 것을 낸다고 합니다. 선인장에 꽃이 피고 열매가 난다고 합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지금 이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에 선인장은 특별히 꽃을 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주위에 또한 수박 농사를 짓는 분이 계시는데요. 또 이제 가뭄이 들면, 비가 안 와서 물이 없으면 이 수박은 그 뿌리를 깊게 낸다고 합니다. 사실 아마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식물이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물이 없는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이 식물은 더욱 물을 흡수하기 위해서 뿌리를 더욱 깊게 더 뻗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뭄이 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이제 어려움을 만났을 때 두 가지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는 그 가뭄 가운데서 단 열매를, 더욱 단 열매를 내는 경우가 있고요. 또 한 가지는 이제 땅속 깊이 뿌리가 내려지는 것입니다. 더 살려고 이 뿌리가 내려가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뿌리에 독이 있고 쓰게 되는 게 축적이 됩니다. 그것을 이제 쓴 뿌리라고 말을 하는 것이죠.
여기서도 이제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한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 이제 동일하게 이제 어려움이 처해졌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가운데서 쓴 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쓴 뿌리 내는 것을 경고하시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내도록 격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하나님의 양육 가운데서 이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에, 우리 가운데 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내도록 이 단 열매를 내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제 우리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저기 어려운 일이 생겨가지고 제 마음에 쓴뿌리가 생겼어요. 그 마음에 그냥 좀 불만 원망 이런 거 이런 게 생겼어요." 할 때 이제 보통 이제 그렇게 표현을 하죠. 그런데 사실 이 히브리서에 여기 "쓴 뿌리", 이 성경에서 쓴 뿌리는 그거보다 훨씬 더 심각한 그런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히브리서에서는 사실상 이걸 '배교'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쓴뿌리가 난다, 이게 여기서는 "이제 하나님 안 믿어!" 이렇게 떠나버리는 것을 이제 쓴뿌리가 났다, 이렇게 말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려우니까, 지금 예수님 믿어서 내 가진 거 다 뺏기고 내 가문에서 쫓겨나고 나는 완전히 지금 망하게 됐어.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안 믿어. 예수님 안 믿어!"라고 하는 것을 이제 쓴뿌리가 났다. 이것을 이제 주의하라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제 그리스도인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는 이제 불평하고 원망이 됐을 때는 여기 나와 있는 것처럼, 앞에 읽은 것처럼 "피곤하고 낙심하였다" 이게 이 히브리서 12장의 표현으로는 더 적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왜 어떤 경우에 어떤 사람들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제 쓸뿌리가 나는지, 이걸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그런 쓴뿌리라는 표현이 신명기 29장에도 나와 있는데요. 그 부분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29장 16절부터 보겠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 어떻게 거하였었는지, 너희가 여러 나라를 어떻게 통과하여 왔었는지 너희가 알며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찌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신 29:16-19).

이제 여기도 18절에 보면 이제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제 여기서도 그게 이제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 쓴뿌리가 나는 것을 이제 배교로 말을 하고 있죠. 그런데 이게 어떻게 생기냐면, 이 사람들도 16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들이 어떻게 애굽 땅에 있다가 어떻게 그 나라에서 건짐을 받았는지 그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본 것은 그 이방의 다른 우상들을 또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 우상들을 이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었는데, 이 사람들이 그것은 잊어버리고 그들이 본 다른 것들 우상을 선택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이제 동일한 그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다 보고 또한 경험했지만, 그것을 안 본 게 아니지만 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깨닫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참으로 누가 사시고 참된 하나님인지 그 깨닫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 조금 앞으로 가면 여기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29장 2절부터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2-4).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지적하고 계시는 것은 그들이 그 모든 것을 보았다. 그들이 안 보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들 눈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지만, 4절에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같은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그들은 이 하나님의 손길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여기서 이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이제 구원받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이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우리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말로는 하고 그리고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어려움을 만날 때에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 안 믿겠다고 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린다면 그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그 깨닫는 마음을 얻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이건 참으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되는 문제입니다. 그냥 우리가 어떤 것을 동일하게 경험한다고 해서 전부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 사람이 거듭나고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하셔야지만 그가 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 그 고난이 그에게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구원받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시고 그분께서 그가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 구원받은 사람도 계속해서 깨닫도록, 계속해서 깨닫도록, 성령님께 의지하고 또 말씀을 묵상하며 또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이 깨닫는 마음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어려움에 대해서 이 시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야고보서 1장을 보게 될 때에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시험이 닥쳐올 때에 먼저 우리가 구해야 되는 것은 지혜입니다. 이 깨닫는 마음, 이 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지, 그것을 깨닫도록 하는 그 지혜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2-5).

말씀드린 대로 이 시험을 만나는 가운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이며 이것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후히 주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그 지혜를, 그 깨닫는 마음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한 가지 예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침례요한인데요. 왜 특별히 이제 침례요한을 예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냐면, 이제 침례요한도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제 말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그 마음 가운데 어려움이 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흔들리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십니다. 특별히 어떻게 깨닫는 마음을 주셨냐면, 우리가 읽은 이 히브리서 12장에 나와 있는 이 말씀을 통해서 그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제 히브리서 12장에서 이제 이 부분을 읽었는데요.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2-13).

"그러므로 너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이게 이사야서 35장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35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히브리서 기자가 사용해서 한 것입니다. 이게 징계를 받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제 그런 말씀인데요. 침례요한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주님께서 이사야서 35장의 말씀을 인용해가지고 침례요한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 부분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절부터 읽겠습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2-6).

이 침례요한은 주 예수께서 분명하게 능력을 가지고 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그 일을 시행하지 않자 그는 그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침례요한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그가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는 그 흔들리는 마음 가운데서 제자들을 보내서 이제 주님께 물어보도록 합니다. "정말 당신이 내가 기다리던 그 메시아가 맞습니까?" 이 침례요한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또한 그러한 침례요한에게 그 어려움 가운데서 이 순간에 그에게도 깨닫는 마음이 필요했습니다. 그 침례요한에게 주님께서는 이사야서 35장을 인용하셔서, 5절,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은 이사야서에 나와 있는 그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냥 단순하게 "네가 기다리는 사람이 내가 맞다." 이렇게 대답하실 수도 있었지만 이제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말씀을 인용해서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항상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서, 그리고 의심 가운데서 흔들리고 어려워하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어떤 것을 사용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바로 이분이 예수님이 맞구나! 더욱 확신 가운데서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 그래서 더욱 이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기를 바랍니다. 더욱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 그 확신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방법으로 이제 우리에게 힘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이사야서 35장은 특별한 장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서가 66권으로 이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 이사야서 66권이 이 성경의 구조하고 같은 면이 있습니다. 이 성경이 구약이 39권이고 신약이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9+27 해가지고 성경 전체가 66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이제 39장이 끝나고 이제 40장이 딱 시작할 때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그 복음서의 시작 부분인 그 침례요한의 외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이사야서는 40장부터 그 신약의 시작을 동일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이사야서 앞쪽에 이사야서 39장 까지 내용을 살펴보면, 1장부터 35장까지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36장부터 39장까지는 이제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은 이사야서 1장부터 35장까지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래서 이사야서 35장이 그 예언의 마지막 부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 예언의 절정인 부분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사야서 35장을 읽어보면 이제 하나님께서 그 메시아를 통해서 그 모든 역사를 완성하시는, 그 주님의 나라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거리가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읽은 것처럼 그 영광스러운 나라를 바라보고, 우리의 늘어진 손을 힘을 내서 손을 들어올리고, 우리의 힘 없는 무릎에 힘을 내서 굳게 서는 그 격려가 또한 35장에 같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역사를 볼 때에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이 삶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 가운데서 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리가 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서 주님 앞에서 그 모든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났던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런 많은 일들에 대해서 실질적인 그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그것을 주님 앞에 갔을 때 우리는 듣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온 역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미리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지 그것은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를 세우실지 그 전체적인 그림을 우리는 지금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이 그랬고 또한 그것을 통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 믿는 유대인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많은 낙심과 피곤을 겪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이래서야,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아서가 아니라 그것은 여전히 미스터리고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묻어놓고 가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볼 수가 있고,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볼 수 있고, 오히려 나의 그 짧은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그 역사를 다루심, 그것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볼 때에 놀랍게도 그 안에서 나의 그 짧은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힘을 내는 것입니다. 그때 내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을 닮는, 그 의의 평강한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어려운 순간에 그냥 원망과 낙심으로 쓴 뿌리를 낼지, 아니면 그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그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찬양하며 의의 평강 열매를 맺을지, 그게 이제 우리가 이 양육 가운데, 이 훈련과 징계 가운데,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특별히 이제 그 의의 평강한 열매에 대해서 이제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 의의 평강한 열매라는 표현이 조금 어려운 표현입니다. 이 성경에 이제 "의의 열매"가 있는데 "의의 평강한 열매"는 뭘까를 이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힌트를 야고보서에서 얻고자 하는데요. 야고보서 3장 18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여기 약간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특별히 야고보서 3장 앞부분에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성도들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기와 다툼과 자랑이 아니라 정말 하늘로부터 온 그 지혜를 따라서 화평을 이루는, 이제 그것을 이제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의 평강한 열매가 무엇이냐면, 다른 사람들과 화평한 관계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이걸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실제로 우리가 히브리서 읽은 말씀에 보면 이제 의의 평강은 열매를 맺으라라고 하신 다음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이건 이제 그 당사자가 하는 거죠. "너희 발을 위하여 굳은 길을 만들라" 그것도 이제 당사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35장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요.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이것은 이제 다른 사람까지 돕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기가 자기의 피곤한 손과 그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그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그러니까 의의 평강한 열매라는 것은 자기만 어려운 가운데서 굳게 서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그도 일으키고 올바른 길로 걷게 만드는 이것을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또한 야고보서에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화평케 하고 그리고 화평으로 심어서 의의 열매를 맺는 이것을 이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식물은 생존을 위해서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그런데 동일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어떤 식물은 단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이건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나만 살겠다고 했을 때는 그 마음 가운데 원망과 쓴 게 나오고 쓴뿌리가 나옵니다. 내가 살아야 되는데라고 했을 때, 하지만 그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오히려 그 가운데 단 것이 나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 후반부 우리가 읽은 말씀인데요. 특별히 이제 여기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히12:14-15).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6).

그러니까 14절부터 이 17절 말씀을 보면, 그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무리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쓴뿌리가 나지 않도록, 그들 가운데서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지 않도록, 너희들은 서로 돌아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쓴뿌리와 의의 평강한 열매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어려움 가운데서 그것을 인내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주님을 닮은 모습을 나타낼 때,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단 열매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되는, 그들이 힘을 얻게 하는 이제 그러한 좋은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 가운데서 쓴뿌리를 냈을 때는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보면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의 문제로서 우리에게 의의 평강은 열매를 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고 마치고자 하는데요.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우리 주님에 대해서 이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 우리 주님에 대해서 "그는 주 앞에서 자라가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가 '줄기'라는 것이 이 '뿌리'와 같은 단어입니다. 앞에 이제 신명기에서 본 독이 있는 뿌리에서, 그 뿌리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뿌리가 어떤 경우에는 독이 있거나 쓴 뿌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똑같이 마른 땅에서 났지만 우리 주님과 같은 그 뿌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가 이 주님을 닮아가길 바랍니다. 그분은 가뭄 가운데서, 이 마른 땅 가운데서도 독이 없는, 그 가운데 죄가 없는 다른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 그 쓰지 않는 뿌리였습니다. 그 뿌리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구원을 얻게 하는 그 뿌리였던 것입니다. 참 우리도 이 주님과 같은 이 뿌리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주님을 닮는 이러한 것들, 이런 열매가 더욱 맺히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