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룻기 2장 : 친족 구속자

박이레 2024. 10. 25. 21:40

< 룻기 2장 : 친족 구속자 > 강성찬 형제님

이번 시간에는 룻기 말씀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룻기 2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룻 2:1-20).

하나님께서 우리 읽은 말씀을 통해서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룻기는 이제 성도님들이 잘 알고 계시는 내용이지만, 이제 잠깐 이제 배경 설명을 드리자면 이제 이스라엘 베들렘의 한 이제 이스라엘 가정이 있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그 두 자녀 말론과 기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들레에 기근이 들었고 그리고 이 엘리멜렉, 나오미 가정은 이제 모압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남편이 죽고 그의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 아들과 모압 땅에 있을 때 결혼한 모압 여인 둘이 남은 것입니다. 그 며느리의 이름, 그 자신의 아들,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의 이름이 한 명이 이제 룻이고 한 명이 오르바입니다. 그런데 이 나오미가 베들레에 다시 하나님께서 곡식을 공급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아 있었지만 다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이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의 이야기가 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단순히 어떤 한 가정이 기근이 들어서 다른 나라로 갔다가 이제 다시 돌아온, 그리고 그 사이에 이제 불행하게도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은, 이제 그런 이야기로 생각이 되지만 사실 여기에 이제 많은 교훈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이제 저희가 이제 외국에 다른 모임을 방문하는 기회가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가 외국에 방문할 때마다 외국 성도님들이 자주 교제하시는 주제가 이 룻기입니다. 제가 여러 형제님들하고 이제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제 어떤 형제님이 이제 룻기를 이제 교제하시고, 제가 이제 싱가포르에 수양회에 방문했을 때 그 수양회의 성경 읽기 주제가 이 룻기 말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좋아하고 또 많이 읽는 이제 그런 게 이제 룻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룻기가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가 잘 나타난 그러한 성경책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전체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제 그들을 회복시키는 그런 역사가 성경 곳곳에 사실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특별히 이 이제 룻기에 이제 그런 모습이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회복하시는 이제 그런 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 나타난 것으로는 이제 '보아스', 여기 우리가 2장에 이제 보아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읽었을 텐데요. 이 보아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정말 이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회복은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이제 안식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특별히 이 보아스를 '친족 구속자'라고 여기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친족이라는 것은 이제 '친척', 이제 혈연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 이제 '구속자'라는 것은 그 친족이 그 혈연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이 구원해 주는 이제 그런 사람을 친족 구속자라고 하는데요. 이것에 대해서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처럼 혈육을 입고 우리와 가까이 우리의 이제 친족이 되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십자가로 구원하시는 예수님, 그런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이 인류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다루어 가시는지 이게 이 룻기에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룻기는 이 4장밖에 안 되는 그 짧은 이 책이지만, 여기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그런 내용들이 상징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나오미, 엘리멜렉, 이스라엘 사람들이죠. 이들이 기근 때문에 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 기업으로 받은 것이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누리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겼다고, 기근이라는 어려움이 있었을 때 하나님이 주신 그 기업을 버리고 그것을 떠나서 다른 이방 땅으로 간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모압 땅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건 이스라엘의 실패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실패 가운데서 이방인인 모압 여인이 나오미와 함께 돌아오게 됩니다. 이방인이 이 이스라엘이 누리려 했던 그 복을 같이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룻기 마지막 장을, 4장을 한 번 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1-22).

성경을 이제 잘 모르시는 분도 여기 이제 다윗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다윗은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왕입니다. 이 왕이 누구의 후손으로 온 것이냐면, 우리가 2장에서 읽었던 그 룻의 후손으로 온 것입니다. 이게 룻이 말하자면 다윗의 할머니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죠. 이 룻이 다윗 왕의 할머니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이방 여인이었는데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메시아께서, 이 세상의 구주께서 바로 이 룻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다루시는 그 역사를 이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이 인류의 역사를 다루시는 그런 가운데서 제처짐을 받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그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이방인인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 말씀을 보면, 이방인들이 받는 그 복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기하고 다시 회개하고 돌이켜 이제 그들도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이 하나님의 다루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룻기에 이제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과 관련돼서 이제 2장 부분을 잠깐 한 군데 이제 살펴보겠습니다.

2장 1절에 보면은 '보아스'라는 이름이 이제 등장을 하는데요. 이 보아스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냐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라"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이 보아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혈연 관계에 있고, 그리고 그로 인해서 이제 아는 사이다, 이런 의미가 이 친족이라는 단어에 이제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보아스는 원래 나오미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친족'이라는 의미에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이제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 '가족'이고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룻이 먼저 보아스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2장 부분에 읽은 것을 보면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보아스를 만나고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그리고 룻이 그것을 경험하고 돌아와서 룻기 2장 19절과 20절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시모가 그에게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고 하자 룻이 "보아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후반부에,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 물을 자 중 하나이다." 이제 룻이 경험한 그 은혜를 보고 나오미는 그가 우리의 기업 물을 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 물을 자라는 것은 성경에서 이제 특별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제 여기가 이제 우리가 이제 '구속하다', '무르다' 이제 이런 단어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특별히 룻이 경험한 그 은혜를 보고 아 이 보아스는 단지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그냥 우리의 친척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은 기업 무를자다 이렇게 나오미가 말해줍니다. 이방인들이 먼저 경험한 은혜를 보고 이제 이스라엘은 참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임을, 바로 그 그리스도 임을, 바로 그 기업 무를 자임을 그들은 이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기업 무른다는 것에 대해서 이제 조금 이제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요. 이제 이스라엘에서는 이제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다 이제 기업으로 나눠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잘 보존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한 가족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 자기 땅을 지금 당장 돈이 궁하니까 팔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팔았을 때 그 가문의 기업은 이제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그 가문에게 주신 그 기업을 그대로 잘 보존하도록 기업 무를 자를 말씀하십니다. 기업 무른다는 게 뭐냐면 그래서 그 가난해진 사람, 그 가정에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가 부자여서 대신 돈을 내주고 사주는 것입니다. 그 땅값을 치르고 다시 그 땅이 그 사람의 소유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기업 무를자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의 그 가정에 이 기업 무를자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이 기억 물를 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혈연 관계에 있어야 됩니다. 가족이어야 됩니다. 두 번째로는 돈이 많아야 됩니다. 돈이 있어야 그 땅을 사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보아스가 딱 그 조건에 맞는 사람입니다. 여기 기록된 것처럼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고 그리고 2장 1절에 보면 '유력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력한 자, 이 유력하다는 것이 여러 자원이 많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특정한 자원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그러한 자원입니다. 그래서 이 유력하다는 것이 사사기에서는 기드원에게 이렇게 사용되었습니다. "큰 용사라" 그가 이제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는 이제 그럴 때 이제 유력한 자가 이제 그렇게 번역이 돼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력한 자라는 것은 부유한 것을, 돈이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 또한 우리에게 대적의 위협 가운데 있을 때 그 대적을 제압하고 이길 수 있는 그 용맹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2장에서 보아스는 많은 은혜를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덕목을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덕목에 있어서도 도덕적으로도 훌륭한, 이제 그것을 또한 유력한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살펴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이 유력한 자다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울 수 있는 그런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 앞에 나오는 자들의 그 간구를 들어주신 분, 그 유력한 분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우리와 친족 관계에 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처럼 혈육을 입고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고 죽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사망을 맛보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참으로 친족이고 또한 유력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 친족 구속자의 필요한 조건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속해주기를 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와 가까운 친족이고 돈이 많아도 별로 도와주고 싶지 않은데,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도, 저에게도 돈 많고 부자고 그런 분이 저희 친척 중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별로 도와주고 싶지 않은데 하면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죠. 실제로 룻기에 그런 친척이 이름 친척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룻기 4장에 보면은 가까운 친척이 한 명이 더 나옵니다. 이 나오미하고 이 엘리멜렉하고 가까운 친척이 한 명 더 나옵니다. 그런데 그 친척은 도와주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와주면 자기한테 손해가 남으로, 하지만 보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룻 4:6).

그 가까운 친척은 도와주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보아스는 자기보다 먼저 권리가 있는 그가 거절하자 자기는 기꺼이 나오미와 룻을 돕겠다 하면서 그의 기업을 이제 물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우리의 친족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그분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또한 유력한 자이며, 그리고 우리를 기꺼이 구속하기를 원하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제 룻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보아스와 룻이 나중에 이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기업을 무른다는 것이 단지 이 돈을 주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부가 된 여인과 결혼해서 계속해서 그 가문의 씨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고 이제 후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후손 가운데 다윗이 있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족보 가운데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룻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자면 이 룻은 첫 번째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장 14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나오미가 고향으로, 이스라엘로, 베들렘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에 그 두 며느리가 따라옵니다. 그런데 나오미에게는 며느리를 행복하게 해줄 만한 어떠한 것도, 인간적인 눈으로 봤을 때는 없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따라오면은 고생한다. 그냥 돌아가라.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고 너희 부모 곁에 있어라라고 이렇게 말을 해 줍니다. 이것에 대해서 그들은 이제 소리를 높여서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룻 1:14).

룻은 계속 시어머니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 1:15-18).

룻은 자기의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계속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사실 룻의 입장에서는 그의 남편도 이미 죽었고, 그가 그 어머니를 따라가야 될 그런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룻은 그 나오미를 계속해서 따라서 자기가 가본 적도 없는 다른 나라인 이스라엘, 그 땅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는 이제 유교적인 국가여서 이제 이런 것을 보면 이 며느리가 이 시어머니를 잘 쫓아갔구나, 이제 이런 의미로 이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사실 성경은 물론 그것도 훌륭한 부분입니다마는 성경은 그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룻은 여호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 땅으로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따르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 룻의 믿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특징을 우리는 살펴볼 수가 있는데요. 그 믿음의 특징은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이제 그 이 똑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똑같은 사람들이 내가 함께할 사람들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똑같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괜찮은데 성도님들과 함께 교제하는 거는 좀 어색해요." 물론 이제 청년이라서 그런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 든 성도님들의 경우에도 다른 성도님들하고 원만하게 계속 교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그 가운데 생기게 마련인 것이죠. 그래서 성도님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데 다른 성도님들하고 함께 지내는 것은 싫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룻의 믿음을 보면 그런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이 내가 있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느 한 부분만, 자기가 원하는 것만 딱 취하고 내가 하기 원하는 어려운 것은 빼놓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모든 것을 다 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과 함께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함께 있는 그 장소에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만약에 어느 한 부분이 내가 지금 어려워하고 조금 싫은 부분이 있다면 왜 그런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이제 안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부분들을 고치고 교정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믿음은 이 모든 것을 다 함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그 믿음의 특징을 보면, 2장 2절에 보면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이삭을 줍겠나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삭을 줍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취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비유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난 믿었어, 난 중요한 결단을 했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밭에 가서 계속적으로 이삭을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에서 구원받은 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을 말씀을 듣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고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 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2장에 읽은 대로 룻은 열심히 합니다. 그것을 쉬지 않고 계속합니다. 잠시 쉰 것 빼고는 계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이 말씀을 사모하고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믿음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또한 믿음의 중요한 모습으로 한 가지를 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믿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 2장 2절에 보면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룻은 계속해서 그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항상 구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항상 여전히 은혜가 정말 은혜답게 그는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뒤에서 보면 13절에 보아스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룻 2:13).

여기서도 룻은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겸손한 태도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좋은 것을 은혜를 받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차이점이 입니다. 제가 앞에 복음 시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것을 받게 되면,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교만하게 되고 자기가 당연히 받아야 되는 것으로 권리로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믿음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은혜를 구하고, 간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기 보면 "나는 당신의 시녀와 같지 못하오나" 또 역시 이제 겸손한 말이죠. 보아스가 자기에게 그러한 은혜를 베풀 이유가 없었는데 이제 그런 은혜를 베풀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말하는 것이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이제 우리 말 성경에는 이제 '이 시녀'라고 되어 있는데 이제 흠정역을 보면 "당신이 당신의 시녀를 위로하시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약간 이제 말이 이상한 거죠. 나는 당신의 시녀 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그런데 룻은 또한 "당신의 시녀를 위로하시고" 자기를 이제 당신의 시녀라고 또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믿음은 겸손한 것이지만, 또한 믿음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후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겸손한 모습과 또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그것을 주장하는 면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룻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요.

이제 2장에서는 이 룻 뿐만 아니라 몇 사람이 더 나오게 됩니다. 여기 보면 6절에 보면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나옵니다.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제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종으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그런 종들이 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종으로서 이삭에게 그 신부를 인도한 그 무명의 종이 나옵니다. 성령님을 이제 상징하고 있는 것이죠. 성령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지는 않지만, 그 신랑에 대해서 말해주며, 이삭에 대해서 말해주며 그 신부를 신랑에게로 인도하시는 그 역할을 하는 그 성령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도 그 베는 자들을 감독하는,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그 일꾼들을 감독하는 사환을 말을 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또한 여기서도 성령님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보아스의 밭에서 보아스를 위해서 수고하는 많은 일꾼들, 베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이 여기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 이 이제 지역교회와 지역교회 감독들에 대해서도 이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이 룻기 2장은 보아스의 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보아스와 룻이 만나고, 또한 보아스와 그 베는 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보아스와 룻이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가 이 밭을 볼 때에 신약 성경에서 고린도전서 3장에서 지역교회를 하나님의 밭이라라고 부른 구절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이 심겨지고, 그리고 성도들이 구원받고 자라고, 여러 가지 열매를 맺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제 하나님의 교회, 이 지역 교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 나와 있는 그 사환이 그 지역교회에서 성도들을 감독하는, 그 성도들을 인도하는, 그 일의 방향을 지시하는 이제 감독자들, 이제 장로들을 이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무슨 일을 하냐면 보아스가 그 밭에 와서 룻을 보고 이제 못 보던 이 여인이므로 이 여인이 누구냐라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이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이가 누구라는 것을 정확하게 말을 해줍니다. "어? 누구죠? 어떤 못 보던 사람이 여기 같이 일하고 있네요." 이렇게 말을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사환은 정확하게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이것이 또한 이제 감독들이 각 성도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의 상황을 알고 또한 정확하게 고해야 되는 그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 그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또한 역시 그도 과부로서 있는 그 여인, 더군다나 모압 소녀, 이제 이런 일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말, 그리고 그가 한 행동들을 고합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그리고 그가 한 말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이 지역교회의 감독들의 모습이고 또 우리가 본받아야 되는 모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지역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보아스의 밭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몇 가지 이제 중요한 특징들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보아스가 룻에게 첫 번째로 한 말이 8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룻 2:8).

보아스가 그 사환의, 그 감독의 말을 듣고 이제 룻에게 첫 번째로 한 말은 이것입니다. "내 딸아 들으라" 그리고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 이제 우리는 이 말의 중요성을 한번 자세하게 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여기 이제 다른 밭이라는 것은 그 보아스의 밭 말고도 이제 여러 이제 다른 밭들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거기 가서 또 여러 곡식을 주울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 곡식을 줍는다는 게, 이 이삭을 줍는다는 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런 법을 말씀을 해놓으셨습니다. 이제 과부들은 자기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경작해서 구할 수가 없으니까, 또한 이제 나그네들도 그와 같이 할 수가 없으니까, 밭 주인이 그 밭을 곡식을 베면 거기서 이제 낱알이 이렇게 떨어지잖아요. 그 낱알들을 과부들이 줍도록 해놨습니다. 그 땅 주인들이 떨어진 이삭까지 다 주워가지 말고 이제 과부들이 그것을 주워가도록, 나그네들이 그걸 주워가도록 그래서 곡식으로 삼도록 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룻이 그것을 주으러 다니는 것이죠. 룻은 이 밭에서도 그 곡식을 주울 수 있고 다른 밭에서도 그 곡식을 주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이 밭에서만 이제 주워라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제 이제 상징적으로 이제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이 지역교회에서 나와서 여기서 이삭을 죽습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이 지역교회 주님의 이름으로만 모이는 이 지역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수가 있고요. 또 다른 곳에 가서 말씀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는 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지역교회가 아니지만, 거기도 말씀을 잘 전하시는 유능하고 은사 있는 분이 있어서,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어떤 성경 박사라든지, 그런 분들이 어떤 이제 강연을 여는 이제 그런 곳, 아니면 주님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이제 교단의 이름을 건 이제 그런 곳, 이제 그런 곳에서 말씀을 들을 수가 있죠. 거기서도 말씀을 전하니깐요. 그런데 거기서 말씀을 듣는 것과 이 지역교회에서 말씀을 듣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왜 보아스는 여기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에 있으라고 한 것입니까? 그 밭에만 보아스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밭은 보아스가 없는 것이죠. 다른 밭에는 친족 구속자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이 지역 교회 안에만 주님이 임재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고 있는 그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아스의 밭에만 보아스가 있는 것이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지역교회에만 주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밭으로 가지 않고 보아스의 밭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지역교회에 나와서 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보아스가 이것을 룻에게 명령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 명령한 것입니다."내 딸아 들으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이 믿음의 특징이 여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믿음의 특징은 잘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명령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특징은 이렇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13절 후반부에 보면 보아스가 이런 말을 쭉 한 것에 대해서 룻은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우리가 아까도 읽었지만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은 아니 왜 다른 밭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그 명령 가운데서 은혜를 발견하고, '아, 이것은 나를 더 좋게 하려는 것이구나,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구나, 나를 보호하고 정말로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것이구나'라고 알아듣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의 여러 명령들을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우리를 제약하려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아끼기 때문에 "내 딸아 들으라" 정말 애정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정말 옳게 이해한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룻처럼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것은 내 마음을 위로하시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보아스의 밭에서는 보아스가 있기 때문에 특별한 점들이 있습니다. 여기 2장에 남은 시간 동안 우리가 다 살펴보지는 못하겠지만, 이 보아스의 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이제 보아스가 그 밭 베는 자들하고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 굉장히 아름답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아스가 그 베는 자들에게 대해서, 그러니까 말하자면 회사 사장이 이제 근로자들한테 와서 인사를 나누는 거죠. 그런데 사장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그 인사입니다. 사장의 인사고, 그리고 그 일하는 사람들의 인사는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인사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이 사장과 그 직원들의 관계는 사실 이런 관계가 아니죠. 사장은 그 직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왜 이렇게 안 하는 거야, 하고 직원들은 그 사장의 눈을 피하고 눈가림을 하려고 하고 이렇게 하는 모습이죠. 그런 모습이 아니라 서로에게 복을 비는, 특별히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시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길 원한다." 정말 마음에서 나오는, 정말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제 그런 인사가 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사람들의 모임을 가도 이런 분위기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오랜만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하고 만나면, 물론 거기에 이제 친밀감이 있지만 있지만, 그 나오는 말 자체들이 이제 욕도 하기도 하고 그냥 세상적인 그런 말들, 심지어 고3 친구들이라서 지금 졸업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너는 그때 몇 등이었잖아,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게 이제 이 사람들 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 보아스가 있는 밭에서는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그 복을 구하는 이제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상 이제 마지막 부분만 한 가지를 더 보도록 하겠는데요.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룻 2:14).

여기 그 보아스의 상이 있습니다. 여기 이제 이 교제가 있는 것이죠. 보아스와 함께하는 교제, 거기에서는 이 떡 조각을 이제 초에 찍어 먹고, 볶은 곡식을 먹습니다. 그냥 떡만 먹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나는, 여기 초가 특별히 그 떡을 더욱 그 향미를, 풍미를 더해주는 그런 소스를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볶은 곡식은 막 수확한 신선한 곡식을 또한 불에 구워서 그 구수한 향기가 나는 이제 그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식초와 볶은 곡식이 모두 어떤 향기를, 더욱 그 교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향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냥 떡만이 아니라 나는 준비한 것이 이제 떡만 있었다 할지라도, 그 보아스의 상에서는 더욱 그것을 풍성하게 해주는 초가 있고 볶은 곡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교제를 나눌 때에, 그 보아스의 상에 둘러서 교제를 나눌 때에, 성도님들과 함께 서로 말씀으로 교제를 나눌 때에 우리는 더 풍성해지는 교제를 이 경험하게 됩니다.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배불리 먹는 것이고 또한 남아서, 여기서 이제 남았다라는 번역보다는 이제 다른 영어 성경에는 '따로 떼어놨더라' 이렇게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따로 떼어놔서 나중에 이제 시어머니한테 가져다주는 것을 보게 되죠. 그리고 시어머니는 그 가지고 온 것을 보고, 따로 떼어서 가지고 온 것인데도 배불리 먹고 가지고 온 것인데도, 그 양이 많아서 "누가 이렇게 많이 주더냐?" 이렇게 놀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제가 넘쳐서 이 교제에 미처 참여하지 못한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줄 만큼 그 넘치는 교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자면 3절에 2장 3절에,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룻 2:3).

여기 이제 "룻이 '우연히' 그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더라" 이렇게 된 것을 성경이 특별히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알지 못하고 그 보아스의 밭에 간 것이죠. 그리고 그게 어떠한 결론으로 이어지냐면,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고 보아스와 루스 사이에서 그 다윗의 조상이 나오고, 그 가운데 이제 그리스도가 나오는 이 일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룻 입장에서 보자면, 룻은 겸손하게 그냥 이삭을 주으러 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 것이죠. 또한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교훈을 하나 또한 받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놀라운 역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위대한 일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냥 우리가 평범하게 우리의 믿음 생활을 계속해 가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룻도 그 이삭을 주으러 이 밭에 가서 열심히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룻을 사용하시고, 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서 위대한 일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왕이 나오고 메시아가 나오는 그런 위대한 역사가 생긴 것입니다.

참 우리도 이러한 이제 모임 생활, 이러한 믿음 생활을 계속해서 이제 성실하게 또 해나가길 바랍니다. 또 주님께서 또 주님의 때에 여러 가지 일들을 또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 가실 것을 또 믿고 또 기다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