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엘리야

< 엘리야 3. 엘리야와 오바댜와 아합왕 >

박이레 2021. 7. 22. 14:16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 엘리야 3. 엘리야와 오바댜와 아합왕 >

제가 계속 열왕기상 엘리야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도 열왕기상 18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인을 가져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가로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인을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왕상 18:1-16).

기근이 시작된지 신약성경을 근거로 보면 3년 반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왕에게 가라, 비를 내릴때가 되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가는데 바로 아합왕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도중에 오바댜를 만납니다. 이 오바댜는 성도님들이 아시는대로 구약성경의 오바댜와 다른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서 저희들이 두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번째, 하나님은 왜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가게 하고 있는데 도중에 오바댜를 만나게 하셨을까? 오바댜를 만나서 이렇게 나눈 대화는 무슨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가 하는 대목을 하나 살펴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이 대목에서 세명이 등장합니다. 엘리야가 등장하고요. 두번째는 오바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바댜의 말을 통해서 아합왕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세명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세사람을 이렇게 볼수 있습니다. 아합왕은 불신자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오바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는 아합왕 밑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오바댜는 그런 특징이 있고요. 세번째는 엘리야 입니다. 그래서 이 세사람을 이런 관점에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런 기준에서요. 엘리야는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에게 관심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오바댜는 하나님께 부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전적인 헌신을 하지않고 부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세사람의 특징들을 보면서, 저희들이 배울 수 있는 도전, 교훈, 이런 것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가지를 보았습니다.

우선 엘리야부터 보겠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자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아합왕에게 가라고 말씀하시니까 아합왕에게 갑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잠깐 보시면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몇번 말씀하셨냐면, 이 앞에 17장에서 보시면 두번 더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하나님이 하시는 세번째 말씀입니다. 첫번째 말씀은 뭐냐면,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순종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하나님이 사렙다 과부의 집으로 가라고 할때도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세번째로 아합왕에게 가라고 할때도 순종합니다. 엘리야의 특징,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엘리야가 생각할때에 다 이상한 말씀들입니다. 왜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하시는가? 거기 가 숨었더니,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주었습니다. 왕궁에서 아합왕을 만나, "내 말이 없으면 우로가 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선언했는데, 그 선언 후에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엘리야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종합니다. 거기 하나님의 내가 알지 못하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지금 내가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나보다 높은 계획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라고 하는 신뢰가 있어야 순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렙다 과부, 이것은 이방 땅이죠.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를 이방, 그리고 바알 선지자가 태어난, 그 시돈 지역으로 보냅니다. 그때도 엘리야는 순종합니다. 그리고 과부를 통해서 공궤하게 하겠다. 자기도 먹고죽을, 이제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 집에서 지내라고 하는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순종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아합왕에게 가는것은 문제가 아닌데, 지금 아합왕은 어떤 사람이냐면 엘리야를 찾으려고 , 엘리야를 체포하려고, 그가 이스라엘을 전부 뒤졌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옆에 있는 나라까지 전부 조사합니다. 여기서 잠깐 아합왕이 영적으로는 악한 왕이지만 그가 세상적으로는 능력있는 왕입니다. 이웃나라에 가서 엘리야 있는지 없는지 조사해 보겠다. 이웃나라가 그와같은 조사를 허용할까요? "당신이 왜 우리나라 땅에 와서 조사하느냐?"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조사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그때 강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문제가 있어도 세상적으로는 훌륭한 왕입니다. 성공한 왕입니다. 이스라엘이 강국이 되고, 그리고 비가 안와서 그렇지,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나중에 계속해서 보면, 길르앗라못에 가서 전쟁을 하고 그런걸 보면, 강대국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그가 국제적으로 다른나라에도 엘리야가 없는것을 확인하고, 너희들이 숨겨주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맹세하라, 그 맹세를 강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만약 엘리야가 거기 숨어있다고 하는 것이 알려지면 너희들 가만두지 않겠다. 엘리야 대신 너희를 죽이겠다, 하는 강력한 왕이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합왕에게 가라." 이 말씀을 순종하려면 뭐가 필요하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목숨에 대해서 헌신되어 있는 사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여러번 말씀드린 것인데요. 왜, 어떻게 해서 엘리야는 아합왕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만나려고 가고 있을까요? 이게 계속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우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거꾸로요, 사람이 두려우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여기 엘리야는 순종할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장 두려운 분입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셨어도 그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런 면에서, 엘리야에 대해서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가?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스스로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저희들 모두가 이 말씀 앞에서 나는 엘리야처럼 헌신되어 있는가? 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할 담대함이 있는가? 그런 것을 살펴보고, 주님께서 저희들을 도우셔서 저희들도 엘리야처럼 주님 앞에 전적인 헌신을 보일수 있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는 이런 것을 보겠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는데요. 엘리야가 세번째 순종을 합니다. 그릿 시냇가에 순종하고, 사렙다 과부의 집으로 가는 순종을 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아합에게 가는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엘리야의 믿음은 강해져 갑니다. 그래서 믿음이 처음보다, 지금 믿음이 굳건해져 있는가? 순종을 통해서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었는가?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더 알고, 사렙다 지역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바알의 본거지에서 사렙다 과부를 먹이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순종을 통해서 점점 그의 믿음이 돈독해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들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믿은지 오래 되었지요. 그동안 주님을 신뢰해온 세월만큼 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대목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가지 엘리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는데, 이제 비를 내릴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고자 하십니다. 원래 우로가 없게 하셨습니다. 왜죠?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미리 신명기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서, 만약 너희들이 우상을 숭배라면 너희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잘 살고 있을찌라도, 우상을 숭배하면 내가 그 땅에 우로를 내리지 않겠다고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비를 내리려고 하십니다. 원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비를 내립니다. 그러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금 회개 했나요? 아직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비를 내리려고 합니다.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비를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비를 하나님은 엘리야 없이도 내립니다. 엘리야 없이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다시 비를 내리는 이 사건을 만들기 위해서, 엘리야를 하나님이 사용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자기의 목숨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와 같은 순종은 그가 이미 앞에 두번이나 순종했기 때문에 그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커져 있기 때문에 순종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순종하는 사람을, 믿음이 성장한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엘리야를 통해서 저희들이 배울 수 있는 영적인 교훈들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오바댜입니다. 오바댜는 누구냐 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대로 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구한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아합왕 밑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모순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람을 성경에서 보자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입니다. 그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살았죠? 심판의 땅 소돔과 고모라에서 삽니다. 베드로는 그의 심령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악한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심령이 날마다 상했다고 말합니다. 롯은 왜 소돔에서 살수밖에 없었나요? 그가 아브라함에게 왔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오바댜도 마찮가지 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합왕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 성경이 세가지를 말합니다.
부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 구원받지만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특징 세가지 입니다. 첫번째, 그는 그의 삶이 가치없는 일로 도배됩니다. 그는 지금 뭘 하고 있느냐면, 풀을 찾아, 하나님이 기근을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는 이제 시내도 없고 강도 안 흐르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이 다 말라버립니다. 그곳에서 혹시라도, 습기라도 있어서, 짐승들이 먹을 수 있는 풀이 있는가를 찾는데 자기 생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받았다 할찌라도 세상 속에서 살면 그의 인생은 무의미한 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데 풀이라고 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3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그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생애를 주님이 평가하시고 상을 주시는데, 금은 보석으로 채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 풀, 짚으로 세운 사람은 타버릴 것입니다. 오바댜는 자기의 생애를 다 태워버릴 것으로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타협한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지 않은 사람의 삶의 모습 첫번째입니다.
두번째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합왕에게 가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라." 그러나 오바댜가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합은 틀림없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선느 엘리야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이 그를 어딘가로 데려가 버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러면 자기는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호하시지만 하나님은 자기는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그를 다른 곳에 옮기시는 기적을 통해서라도 그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위해서는, 자기의 생애를 위해서는 역사할 것으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절반만 헌신된 사람의 특징입니다. 자기 생애에서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능력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 세번째, 엘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기있다고 아합왕에게 알려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보이고 서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는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 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왜 기쁜 소식이냐면,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그리고 엘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비를 내릴것이다."라고 하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우로를 없게 하는 징계를 하셨을찌라도, 이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로 결정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비를 주실 것이다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소식을 전하기를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절반쯤 헌신한 사람의 세번째 특징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되는데, 그는 전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자기 목숨이 날라갈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너무 얽매여가지고 영적인 소식을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절반쯤만 헌신된 사람의 세번째 비극입니다. 그는 풀과 같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는 생애를 삽니다. 이게 오바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모습 앞에서 저희들이 저희들 자신을 다 점검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그와같은 측면이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고 가치있는 인생, 그리고 주님의 인도를 받는 인생, 그리고 주님이 사용하는 생애를 살도록 주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오바댜의 인생에 대해서 살퍄 보았고요. 엘리야가 오바댜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첫번째는 엘리야와 오바댜가 딱 만나니까, 오바댜는 엘리야를 보고 "내 주여" 이렇게 부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주에게 가서 말하라." 아합왕을 '너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바댜의 생애의 모순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엘리야가 보기에 오바댜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고 아합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든지, 세상을 섬기든지, 가운데는 없다. 이것이 엘리야의 단호한 지적입니다. 그래서 오바댜는 살펴봐야 합니다. 그가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지만 하나님이 내 생애의 주인인가? 저희들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이 하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의  주인은 아닐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목을 엘리야가 오바댜에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바댜에 대해서 한가지만 지적해 보면요,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 100명을 구한적이 있습니다. 50명씩, 50명씩 해서 그들을 숨기고, 그들을 떡으로 먹였습니다." 떡으로 먹인 이 돈은 아마 오바댜의 개인적인 돈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그는 목숨을 걸면서 살려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앞에, 주님이 반드시 칭찬하시고 보상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오바댜가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할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일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자랑하자고, 사람에게 인정 받자고 한 일이 아니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을 생각하면서 했다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바댜가 이 일은 이야기 한 것은, 그 일을 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것을 말한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이와 같이 칭찬받을 일을 했지만, 그것은 인정되지만 그것을 근거로 해서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협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그와같은 영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 조금 타협하더라도 괜찮지 않느냐라고 사용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헌신은 계속적인 헌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순종하고, 순종하고, 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바댜는 한번 선한 일을 하고 이제 이 정도 했으니 나머지는 적당하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 쪽으로 나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와 같은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그 다음에 세번째로 아합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아합왕은 첫번째로 그는 점점 더 악한 왕이 되어 갑니다. 이 대목에서 아합왕에 대해서 첫번째 지적은, 그는 자기 아내 이세벨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입니다. 성경이 금한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아내가 바알, 아스돗 이런 우상들을 들려왔지요. 그것이 그가 잘못한 첫번째 죄목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이세벨이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을 그가 방관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라는 것 하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한걸음 더 나간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을 섬길뿐만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일을 아합왕은 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허락없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악한 일 가운데 빠져들어 갑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그는 가축을 위해서, 말과 노새라고 되어 있는데요. 성경에서 성도님들이, 말 하면 금방 생각나는 것이 있지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에게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에게 하나님이 두지 말라고 하신 것이, 금은을 쌓아두지 말라. 그리고 두번째 말을 많이 두지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전쟁을 해서, 말은 전쟁용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해서 말을 많이 포획하게 되면, 전리품으로 많이 얻게 되면 말의 아킬레스건을 다 끓어버렸던 것입니다. 솔로몬도 말을 많이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금한 말을 그는 기어코 살려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뭘 의미하냐면, 그는 왕입니다. 왕은 백성들을 살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는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고통 가운데 있을때, 자기 왕궁에 있는 가축들을 먹이려고 풀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치 평가에 있어서 악한 일입니다. 신약성경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거라사 지방에 갔을때, 거기 군대 귀신들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덤가에 있어서 밤낮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이 쇠사슬로 그를 묶었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귀신들이 이렇게 주님께 호소합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천년왕국 때에 우리를 쫓아 내시지, 지금은 아직 그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렇게 호소 합니다. "우리를 저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요." 주님이 허락합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 공동으로, 돈을 걷어서 공동으로 돼지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마을 기금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이 돼지들이 전부 물에 빠져 죽어버렸습니다.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요청했느냐? "우리 지방을 떠나가 주십시요." 그리고 여기 고침받은 거라사 광인이 주님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고, 친족들에게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불쌍히 여겼는지를 전하라. 그래서 나중에 주님이 다시 그 지역에 갔을때, 그 거라사 광인의 간증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이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얼 원했느냐? 돼지 가축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거부했느냐? 예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가축이 주님보다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여기 아합왕도 똑같습니다. 가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백성들보다, 사람들보다. 이게 가치관이 역전된 슬픈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아합왕의 나쁜 모습은 오바댜는 아합왕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궁내대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개인 왕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바댜가 이렇게 두려워 합니다. 내가 일을 한번만 잘못하면 나를 죽일 사람이다. 그는 자기 신하들을 공포정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하다가도 한번만 잘못하면 죽여버릴 수 있는 왕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 목표를 이루는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합왕이 보이고 있는 악한 모습들 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로 그는 엘리야를 만나기만 하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아합왕이 보이고 있는 불신의 태도 네가지 입니다.
이 아합왕과 대조하기가 아까운데, 대조할만한 이스라엘의 왕으로는 다윗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합왕은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음으로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가 돌이켜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없다.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 징계할때, 이것을 아버지의 손길로 알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돌이키기는 커녕, 점점 더 강팍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킨 왕을 보겠습니다. 다윗왕입니다. 다윗은 사단이 그 마음을 움직여서 이스라엘의 백성의 숫자를 셉니다. 계수를 합니다. 계수하면 안됩니다. 계수하면 반드시 속전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속전도 드리지 않습니다. 다윗이 범죄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세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그래서 그가 3년기근, 석달 전쟁에서 쫒기는 것, 그리고 삼일동안 전염병, 그랬을대 그가 삼일동안 전염병에 걸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삼일간 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입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했지요? 그가 회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죄는 제가 범했는데, 왜 이스라엘 백성이 죽는 것입니까? 저를 치십시요." 이렇게 회개합니다. 이것이 양심있는 사람이 말해야 하는 대답이여야 합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십니까? 그리고 그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그곳에서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성전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것, 그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할수 있는 성전, 하나님이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곳, 그 곳을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준비합니다. 이것이 다윗입니다. 아합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사람을 살펴봤고요. 엘리야, 오바댜, 아합, 세 사람의 특징을 보았습니다. 불신자는 계속해서 악해져 갑니다. 엘리야는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주님께 헌신합니다. 오바댜, 절바만, 구원은 받았지만, 순종하지 않는 사람, 그의 특징들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두번째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가 바로 아합왕을 만나지 않고 길 가는 도중에 오바댜를 만나게 했을까요? 저희들은 이렇게 짐작할수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준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이제 바알 선지자 사백명과 그리고 엘리야 한명이 어떤 신이 참 하나님인지 내기를 할 것입니다. 시합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합의 결과도 여러거지를 하는데, 엘리야에게 이렇게 미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일하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바댜와 똑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합왕이 우상을 숭배라하고 하니까 기꺼이 그 길을 가버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오바댜를 통해서 장차 그가 본격적으로 사역하게 될 그 이스라엘의 백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그가 어떤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그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주님께서 미리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적용해 보고 마치겠습니다.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성경은 약간 문학적인 표현을 합니다. "제 삼년에" 이렇게 하지 않고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라고 표현합니다. 삼년이라는 세월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짧은 세월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지 않는 그 삼년에, 그 삼년동안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날이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 보통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합니다. 칠십, 팔십을 삽니다. 지금 저희들의 평균 수명이 70-80이죠. 그런데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생애가 이와 같은 것을 알고 우리의 날을 계산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애를 계수하고 거기서 지혜를 얻게 하옵소서." 이것이 모세의 시편 90편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일순간에 지나갑니다. 우리의 생애는 슬픔과 수고 뿐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 슬픈 인생을 살면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무슨 지혜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있는가? 이 허무한 인생 가운데 사람이 누리는 참된 기쁨은 무엇인가? 그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이 많은 날동안 엘리야는 배웁니다. 그 삼년이라고 하는 세월동안 그는 배웁니다. 비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입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사렙다 과부를 통해서, 그는 변함없이 먹이셨습니다. 이 허무한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저희들도 이 많은 날동안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돌보신다, 라고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 3년동안 엘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준비를 합니다. 그 세월동안 그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가 자기를 먹이는 것을 보면서 온 천하의 주인이 주님이신것을 배웁니다. 사렙다 과부의 집에서 그는 아들을 살려냅니다. 사렙다 과부의 믿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많은 날동안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많은 날동안 엘리야는 인내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는 한, 그는 일어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어나 가라고 할때, 그는 갑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게 에릴야가 많은 날동안 한 것입니다.
저희들도 주님 앞에서 저희들의 생애를 계산하면서 영적인 지혜를 배울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어두운 시대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되고 예배는 사라져가는 이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예배 드리고 섬기는 것으로 채워지는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기를,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사울왕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을 못기다립니다.  칠일간 기다리라,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못기다립니다. 그리고 왕의 자리에 폐위됩니다.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시고 필요한 때에 일하실 것입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그가 독수리같은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엘리야가 경험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주님께서 동일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