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6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 6. 엘리야 : 엘리야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
엘리야에 대해서 쭉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8-18).
저희들은 지금 엘리야의 생애 중에 특이한 부분을 보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던 선지자가 갑자기 낙심해서 도망가버린 이 대목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볼 때에, '엘리야가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담대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던 엘리야가, 왜 지금은 도망가고 있을까? 그랬을 때, 가장 큰 원인을 찾자면 엘리야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내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가 제안한 것이죠. 바알 선지자들이 사백명 모이고 자기는 홀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하자. 그렇게 제안한 겁니다. 그리고 대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알신은 그가 아무리 불의 신이라고 주장해도 그날 만은 전혀 불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알은 가짜임을 입증한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있고나서 엘리야는 기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위대한 광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돌이킬 것이다. 바알을 숭배하지 않고 이제 참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참히 무너집니다. 왕궁에 갔더니 이세벨이 여전히 살기등등해서 엘리야를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그 위대한 광경을 본 아합왕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엘리야가 실망해서, 기대가 컷던 만큼 실망도 깊은 것이죠. 그래서 그가 피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결론을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은, 위대한 사건이 아니고, 감동적인 어떤 감동이 아니고, 세미한 음성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예를들면 저희들도 그렇지요. 수양회 같은데서 감동을 받습니다. 거기 성도들의 사랑과 말씀에 대한 감동, 그래서 이제 결정합니다. 이제 내가 주님을 잘 섬기겠다. 이제 하나님을 이렇게 섬기겠다. 이것이 복음서로 치면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을 따라간 세명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감동으로 가득차서 내려옵니다. 그러고 있는데 산 밑에서는 어떤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제자들한테 귀신좀 쫓아달라고 했는데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산 위에서, 수양회에서, 여러가지 감동을 받았지만 그것이 실제적인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저희들이 많이 경험하지요.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그 위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이스라엘을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변화시키는 것은 세미한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개인적으로 듣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게 큰 흐름이고요.
그리고 엘리야는 도망갔는데, 하나님이 엘리야를 어떻게 처리하시는지를 보고 저희들도 이렇게 배워 보겠습니다. 저희들도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 대해서 실망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헌신하고,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원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을때, 실망합니다. 또 교회에 대해서, 성도님에 대해서도 기대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면서 말씀을 이렇게 공급했는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은 내가 교회에 충성, 봉사 했는데, 교회는 알아주지 않습니다. 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올해 결심을 한 것이죠. 올해부터는 이렇게 하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경보고 또 일주일에 전도 몇번하고, 그런데 2월, 3월 들어가면서 그 열정들이 이제 꺾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합니다. 내가 왜 이럴까? 이렇게 우리가 기대가 크면 낙심도 큽니다. 이렇게 실망하고 있는 엘리야를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는가, 이것도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엘리야를 먹입니다. 마음이 우울하면 일단 육체적으로 건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먹입니다. 그리고 두번째입니다. 먹인 후에 그를 어디로 데려가느냐면 호렙산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두가지 방법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그를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만족을 시킨 다음에,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대화합니다. "너 왜 여기 있느냐?"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를 바꿔 가십니다. 항상 방법입니다. 우울하신 분은, 일단 그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단 식사를 잘 하고,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이 그 우울에 대한 치료책입니다. 일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드러누워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일을 맏깁니다. "너는 다시 광야를 돌이켜 가서 하사엘을 왕으로 세우고, 예후를 세우고, 엘리사를 세우고" 일을 주십니다. 그래서 항상 일이 우울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데요.
우선 한절 한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8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천사를 통해서 떡과 물을 먹이십니다. 지난번에 이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 떡과 물을 두번 먹이는데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기회를 계속해서 부여하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구원은 기회를 두번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은 성도들이 실패할 때에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께서 다시 한번 그가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요나가 불순종했지만 다시 그를 큰 물고기 뱃속에서 꺼내서 니느웨에 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망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가 도망갔을지라도, 그가 낙심해 있을지라도 그를 다시 먹입니다. 두번 먹이시고, 그 다음에 여기서 이런게 나오는 거죠. 이 먹은, 음식은 그를 사십일 동안을 호렙산까지 가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끼 먹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사십일을 견딥니다. 그래서 이 음식은 내적인 힘을 주는 것입니다. 속을 변화시키는 힘을 말하고 있는 거죠.
호렙산에 갈때, 첫번째, 사십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십일은 이제 성경에서 가끔 사십일이 나오는 데요. 이 사십일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는 상징이 있습니다. 일단 주님에게서 보겠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공생애를 침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첫번째로 하신 일이 광야에서 사십일간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새로운 사역으로 들어가실 때, 이것이 있었고요. 그 다음에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이 땅에 사십일을 계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이제 주님이 하늘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 새로운 국면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사역으로 들어가실 때, 지상 사역을 마치시고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광스럽게 사역하실 것을 위하여 사십일간 이 지상에 계십니다. 그래서 사십일이라고 하는 상징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입니다. 엘리야의 사역은 이제 달라집니다. 엘리야는 이제까지 혼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앞서서 싸웠습니다. 이제부터 엘리야는 사십일은 간 후에는, 이제 뒤로 갑니다. 앞에는 엘리사가 나올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그는 배후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일하는 사역으로 바뀔 겁니다. 그게 사십일이 의미라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두번째는, 두번째는 호렙산입니다. 호렙은 시내산인데요. 호렙산에 가게 한 것은 아마도 모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시내산, 호렙산에 갔었던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느냐면, 그가 율법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갑니다. 며칠간 있었느냐? 사십일간 있었습니다. 율법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사십일간 율법을 받고 하나님이 친히 손으로 돌판에 십계명을 쓰시죠. 그 돌판을 쓰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산 밑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뭐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라." 그렇게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려가라. "백성들이 타락했다. 내려가라." 그래서 모세가 돌판 두개를 가지고 내려오지요. 내려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그가 돌판을 깹니다. 돌판을 부셔버리죠. 그리고 모세가 이렇게 요구합니다. "여호와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냐?" 다 우상을 숭배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내게 나오라. 그래서 모세와 같은 지파, 레위 사람들이 나오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면서 형제고 친족이지만 다 죽여라. 그래서 이들이 자기 형제, 자기 친족을 죽입니다. 그래서 그날 삼천명이 죽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한 후에, 모세가 다시 시내산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이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주십시요. 이 삼천명을 죽인 헌신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이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려면 내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십시요."라고 모세가 기도했던 곳이 이 시내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를 구했던 모세,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차라리 나도 하나님의 이름책에서 빠지겠다고 하는 이 기도를 했던 모세가 호렙산에 있었습니다. 엘리야는요? 엘리야는 다릅니다. 엘리야는 지금 이스라엘을 고소합니다. 로마서 11장에 보면 이 사건을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표현하는데요.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비난합니다. "이들이 나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나만 남았는데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나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하나님." 이게 엘리야가 모세에게서 배워야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그를 호렙산 앞으로 끌고 온 것이고요.
그 다음에 그랬더니 엘리야가 호렙산에 왔으면 있어야 하는데, 어디로 들어가느냐면 굴로 들어갑니다. 굴로 들어간 사람,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입니다. 롯이 소돔의 심판을 피해서 그가 어디로, 피하라고 하니까 소알성으로 가게 해달라고 해놓고 결국은 굴로 들어갑니다. 두려운 거죠. 숨고싶은 거죠. 피해버린 거죠.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 혼자 골방에 들어가서 "아이, 나는 모르겠다."하고 숨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굴 안에까지 말씀을 주십니다. 뭐라고 하느냐면, 굴에 있는 엘리야에게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우리나라 말로는 '왜 여기 있느냐?' 이런 거고요. 영어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주님이 질문하고 계시는 겁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내가 갈멜산에서 그와 같이 놀라운 일을 하게 했는데, 왜 내 말도 없이, 그러니까 이제까지 엘리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합니다. 놀라운 사람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왕궁으로 갑니다. 그릿 시냇가로 갑니다. 사르밧으로 갑니다. 갈멜산으로 갑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았는데 와 있는 것입니다. "왜 내 말 없이, 왜 내 명령도 없는데, 왜 여기 와 있느냐? 그리고 왜 혼자 숨어 있느냐?" 이렇게 말하고 있는거죠. 그랬을때 엘리야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냐면, "주님 저는 이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상했는데, 이세벨이 나를 죽인다고 하고, 이스라엘은 변화되지 않아서 제 마음이 낙담이 되어, 이제 주님 일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되서 이제는 조용히 쉬려고 왔습니다." 그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물으신 것은, 그러니까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질문하신 이유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왜 여기 와 있느냐?'를 질문하신 것이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저는 열심이 특심한 사람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열심있는 하나님의 자손을 다 죽였습니다. 나만 홀로 남았는데 나도 죽이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문법적으로 보면, 주님이 질문하신 것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하는 현재를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느냐면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이려고 한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그가 지금 이 동굴 속에서 뭘 하고 있느냐? 왜 현실을 도피하고 자기 생각에 갇혀서 우울해 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느냐? 이것을 질문을 하신 거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문에 자기를 살피고, 그래서 대답이 나가는 것이 아니고 엘리야는 자기 생각에 갇혀 있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굴에서 나와라. 그리고 내 앞에 서 있어라." 호렙산이라고 하는 장소에 서 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서라."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조금 문제인데요. 그러면 엘리야가 나와야죠. 이제까지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바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굴 안에서 나와라. 잘 안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측정하는 방법이 뭐냐 그러면, 말씀이 있으면 즉각 순종하는가? 엘리야는 여기서 즉각 순종 안합니다. 바로 안나옵니다. 엘리야를 끌어낸 것은, 세미한 음성이 끌어냅니다. 나중에 보시면요. 세미한 음성 때문에 그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여기서 나오라, 라고 하는 말을 순종 안합니다. 망설입니다. 순종하기를 두려워 합니다. 이게 엘리야가 처해 있는 영적인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이 지나갑니다. 굴 속에서, 굴 안에서 나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지나가십니다. 처음에는 바람으로, 그 다음에 지진으로, 그리고 불 가운데로, 이게 하나님이 쓱 나가십니다. 이렇게 나가고 계신 이 하나님의 현상을 따라서 그도 나와야 합니다. 안나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세미한 음성이 들리자, 13절 엘리야가 나옵니다. 엘리야 자신도, 사람을 바꾸는 것은, 우울하고 낙담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지진도 불도, 바람도, 불도 아니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그를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갈멜산에서의 위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제부터 들리게 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개인적으로 듣고, 그 하나님의 음성이 그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하나님이 묻습니다. "엘리야야 왜 여기 있느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한번 질문 하셨는데, 두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유가 뭐냐? 첫번째 대답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대답해 봐라. 다시 내가 한 말을 잘 듣고 내가 뭘 물었는지, 왜 물었는지 생각하고, 다시 정확하게 대답해라." 라고 또 한번 똑같이 질문하십니다. 그가 14절에 똑같이 대답합니다. 이것을 뭐라 그러느냐? 강팍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집스럽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라고 하는 뜻입니다. 정답은 뭐냐?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서 숨어 있습니다. 이것 저것 다 피해서, 나만 생각하고, 내 감정만 생각하고 실망과 우울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정답니다. 하나님이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라고 하는 질문은 이런 뜻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냐?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냐? 너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개를 위해서 수고한 자가 아니냐? 너는 너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성도를 위해서 살고,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냐?" 이렇게 질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왜 갑자기 너만 생각하고, 너의 감정만 생각하고, 여기 깜깜한 굴 안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단 말이냐? 너의 시간을, 너의 능력을, 이 깜깜한 동굴 안에서 낭비하고 있을 것이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제가 제 자신에게 갇혀서 내 감정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과 다르면 그것을 못받아들이고 깜깜한 동굴 안에 갇혀 있습니다. 주님, 저를 여기서 꺼내주십시요. 제가 여기서 변화되고 싶습니다. 다시 옛날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제가 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열심이 있는 사람이 동굴 속에 있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과거형입니다. 과거에 열심이 있었지요. 그리고 나만 남았다, 이것도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칠천명이 있다. 나만 남지 않았습니다. 누가 있었느냐? 오바댜가 있었고, 그가 숨겨준 선지자 백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나만 남았다. 이제 하나님이 칠천명을 사용하시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엘리야는 배후로 놓고, 이제 다른 선지자들이 사용되는 것이, 그 다음 장을 보시면 이제 다른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 엘리야에게 새로 말씀하시는 데요. 세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아람왕으로 세워라. 그 다음에 두번째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으로 삼아라. 그 다음에 세번째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로 선지자를 삼아라. 라고 일을 주십니다. 이 세가지를 하시는데요. 이 세가지는 다시 생각해 보면 뭘 의미하느냐면 첫번째는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이제까지 계속 하나님께서 임무를 주셨지요. 왕궁에 가서 내 말이 없으면 우로가 없을 것이다라고 선포해라, 이렇게 하셨지요. 그 다음에 어떤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지 내기하자고 하셨죠. 그러듯이 이제는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그래서 다시요. 우울해 하고 자기에게 갇혀 있는 사람은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동굴 안에 있으면 안됩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입니다. 이 세사람을 세우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이것은 지금, 엘리야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심판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은 심판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두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목격합니다. 첫번째, 기근으로. 자기들이 바알을 숭배했을 때, 하나님이 삼년반 동안 비가 안 오고, 이슬도 맺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압니다. 두번째,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림으로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인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두가지 경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이제 심판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엘리야가 주장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시고요. 두번째, 엘리야에게 새로운 위로를 주십니다. "이제 네 말대로 심판할 것이다."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심판합니다. 어떻게 심판하느냐? 아람이 침략해 들어와서 이스라엘을 죽일 것입니다. 그때 살아남은 자 중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예후가 왕이 되어서 또 한번 죽일 것입니다. 구테타가 일어나는 거죠. 구테타가 일어나서 또 한번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살육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그 다음에 예후가 구테타를 일으켜서 많은 사람이 죽는데, 그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엘리사가 또 죽일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네가 시작한 심판을, 네가 나에게 구하고 있는 그 심판을 내가 한다." 그래서 엘리야게 새로운 임무, 새로운 위로. 그래서 엘리야의 사역이 변화되는 데요. 이제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체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버리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망할 것입니다.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남은 자들을 돌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방식이 변화되는, 그것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도 보면 일곱교회가 있는데요. 이 교회마다 문제가 있죠. 그래서 교회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고 이런 구절들이 "이기는 자에게는" 이기는 자, 항상 믿는 자가 승리합니다.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이 이기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무엇을 주겠다. 이것이 일곱개의 교회에 다 주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세개, 네개로 나누어 집니다. 첫번째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교회 성도들이 다 듣습니다. 그런데 뒤로 가면, 첫번째 네개의 교회는 그렇게 가고요. 뒤에 나오는 세개의 교회는 교회에게 하시는 음성이 뒤로 나오고, 이기는 자가 먼저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가운데 남은 자들에게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게 주님이 하시는 사역이 변화됩니다. 처음에는 전체를 대놓고 하시다가 그들이 계속 불순종합니다. 이제 주님은 그들 가운데, 믿는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을 주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것으로 일이 변화 됩니다. 여기서도 이스라엘을 다루실때, 이스라엘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버립니다. 그 중에서 남은 자들을 주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가 새로운 위로입니다.
그 다음에 새번째가 새로운 동행자를 주십니다. 이것이 엘리야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동행자, 누구죠? 엘리사입니다. 이제부터 엘리사는 죽을 때까지 엘리야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나만 남았다 말하지 못합니다. 이제 그의 옆에는 항상 엘리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게 저희들이 교회로 적용하면, 히브리서 10장 24-25절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하지 말고 오직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라고 하는 그림자로서 적용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임무를 주시고, 새로운 위로를 주시고, 그리고 새로운 동행자를 주시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다시 그가 낙심했을지라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대와 달라져서, 자기 생각과 달리 상황이 전개되자, 실망과 낙심과 절망 속에 있는 엘리야를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느냐? 첫번째, 먹이십니다. 그 육체를 일단 회복시키십니다.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그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가 호렙산 앞에 오게 합니다. 그리고 아마 엘리야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호렙산 앞에서 모세가 어떻게 행동 했는지, 그 패역한 이스라엘,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데,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모세가 어떻게 일했는지, 그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 자기를 살피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대화 하시는 것입니다.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너 여기서 뭐하냐?" 이렇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하나님이 일을 주십니다. 일해야 한다. 이 세가지가 낙심한 성도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저희들도 우리 가운데, 저 자신을 포함해서 낙심할 수 있습니다. 수고에 비해서 결과가 없거나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안하고 싶습니다. 그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만두어 버립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우선 육체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는게 마땅한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가?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고 있는가? 그리고 세상에 있는 믿지 않는 분들에게 빛이 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낙심에 빠진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과정입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두도, 이와 같이 업 다운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저희들이 낙심되었을때 주님께서 동일한 방법으로 저희들을 다루실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원리를 알고 저희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을 수습하고 다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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