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회개

박이레 2023. 5. 28. 13:44

덕언 : 회개 / 23년 5월 28일 일요일(요약) /김보영 형제님

오늘은 많이들 쓰는 회개에 대해서 살피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회개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회개인가를 살피지 않을수 없습니다.
회개라는 단어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관계가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도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합당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합당한 성도의 삶을 살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57:15, 개역한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통회해서 죄에 대해서 깨끗한 상태로 예배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고 그 예배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깨끗하기를 원합니다만, 회개하지 않고서 경건의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사58:3-5, 개역한글)

금식을 한다고 하는 자체는 이를 철저히 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며" 금식은 육체를 매우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금식하는 태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오락을 하는 것처럼 즐겁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가 하면, 금식을 하면서 자기가 하기 싫은 온갖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익것은 악한 일입니다. 금식하면서 싸움을 하며 주먹으로 쳤습니다. 금식하는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8:6-7, 개역한글)

진정한 금식을 하는 사람은 그 삶이 선하고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진정한 회개를 했다면 죄의 자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경건한 삶으로까지 나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1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3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느9:1-5, 개역한글)

이들은 먼저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릎쓰고 금식을 하면서 죄를 자복합니다. 이 말은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슬픔을 나타낸 것이죠. 그뿐 아니라 이방 사람과의 절교를 합니다. 이방 사람을 통해서 죄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방 사람과 구분해서 성도는 살아야 함을 이 말씀들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우리의 죄는 점점 더 살아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했습니다. 또 죄를 자복했습니다. 죄를 자백한다고 하는 말씀 속에는 '완전히 돌아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개라고 할때, 어떤 사람은 회개는 자기 자신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완전한 자기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라는 말씀 속에는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완전히 돌이키다'입니다. 반드시 죄로부터 내가 돌이켜서 하나님 앞으로 와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이 이 회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처럼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7-10, 개역한글)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자신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죄는 원어적으로 성도가 짓는 모든 죄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백하는 것은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해서 사실 그대로, 진솔하게 자백해야 하는 의무를 말씀합니다. 그럴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내 마음 속에 죄를 품은 채로 예배를 드렸다면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겠습니까?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성도들 또한 주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 주님을 계속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허물과 잘못을 주님 앞에 계속 자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