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그리스도 안에서 살수 있는 방법

박이레 2023. 5. 14. 12:40

덕언 말씀 : 그리스도 안에서 살수 있는 방법 / 23년 5월 14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5-10, 개역한글)

구원받은 성도지만 하나님 앞에서 전혀 죄가 없다고 하면 자신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범죄에 빠졌을 때, 먼저 죄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후회하는 가운데 죄 용서를 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우리는 항상 죄와 무관하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3:5-9, 개역한글)

이 말씀은 1장과 또 전혀 다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6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9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5:18, 개역한글)

여기서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1장 말씀과 연결해 볼 때, 사도 요한이 일구이언을 하는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나의 삶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죄를 짓습니까? 안짓습니까?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3장에서 범죄치 않는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왜 3장에서 범죄치 않는다고 말씀했을까요?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요한이 서신을 쓴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지식을 깨닳은 자는 육신에서 벗어나서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에대한 잘못됨을 지적하기 위해서 1장에서 현실적으로 성도가 죄를 짓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영지주의자들은 완전해졌기 때문에 어떠한 죄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3장에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서 범죄하다는 단어의 의미가 원어적으로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죄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같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그것을 고의적이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만 우리는 우리 안에 연약함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영생의 생명도 받았고 또한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히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주님의 인격을 받은 자답게 살지 못하는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데 어느 순간에 죄에 빠져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말씀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 빠져 있을 때는 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주님 안에서는 큰 죄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의 시작이며, 음란한 생각을 가지면 간음한 자입니다. 그렇기에 주님 뜻대로 살려면 할 수록 많은 양심의 고난을 겪습니다.
우리 안에는 새 인격과 새 생명만 있는것이 아니고 구원받기 전의 본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하게 주님 뜻대로 살수 없는 연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롬7:12-13, 개역한글)

우리가 주님 안에 들어오면 죽었던 양심이 꺠어납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자기를 자꾸 비추게 됨으로서 자신이 죄인임이 들어날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려면 할수록 더욱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7, 개역한글)

내 속에 거하는 죄는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계속 존재하면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가고 말씀을 좇아갈 때는 그것이 역사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좇아갈 때는 그것은 여지없이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무관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죄, 본성을 이기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는 내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고 말씀합니다.(로마서 6장)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6:3, 개역한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개역한글)

육신의 소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육신의 소욕이 일어날 때마다 죽은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되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분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가 분명히 돌고 있음에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이 본성 자체는 이미 처리한 것임을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내 마음 가운데 죄가 항상 존재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정죄받고 지옥에 가지는 앉지만 죄를 범함으로 생기는 착찹한 심정은 사망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 죄를 이긴다고 하는 자체는 먼저는 죽은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인 승리의 방법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새 생명, 새 인격으로 산다고 하는 그 자체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에서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이같은 우리 본성과의 싸움은 우리가 주님 나라 갈 때가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오늘 승리했다고 그 승리가 계속되지 않습니다. 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 교제된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삶에 적용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