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가상칠언 중 네번째 >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마 27:45-49).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1-3).
이 대목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시는 네 번째 말씀입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일곱 번 말씀하십니다. 그중에 네 번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은 가장 중앙입니다. 앞에 3개, 뒤의 3개, 그리고 이제 이 말씀.
이 말씀에 대해서 좀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어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9시에 못 박히십니다. 그래서 이제 시간으로 치면 6시간 십자가에 계시는데요. 9시에 못 박히셔서 12시까지 3시간 동안은 낮입니다. 이때 이제 주님이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고요. 그다음에 12시부터 3시까지는 어둠입니다. 그리고 어둠이 끝나고 그리고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나머지 세 번 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운명하십니다.
그래서 어두운 3시간 후에는 주님이 이제 금방 돌아가시는데요. 이제 여기서 보면 첫 번째로 이상한 것은 어둠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12시부터 3시면 가장 밝은 낮입니다. 환할 때입니다. 그런데 어둠이 있었다는 것, 그다음에 두 번째,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성경이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번역해 놓았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어놨습니다. 그래서이런 일들이 하나 특징이 있고요. 일단 먼저 설명을 드리면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서 모독하는 것, 그리고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옷을 제비 뽑는 것, 이런 것들이 다 보고 사람들이 기록도 하고 이렇게 돼 있죠. 그런데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벌어진 일들을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려버렸습니다. 어둠은 태양을 무엇인가가 가린 게 아니고요. 일식이니 이런 게 아니고 태양 자체가 비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다 모릅니다. 이제 내용은 이거죠. 주님이 죄인의 자리에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죠. 버림받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버림을 받으시고 외치시는 이 "나를 왜 버리십니까"라고 하는 이 말을 사람 언어로 번역했지만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는 특징적인 것을 보면 두 가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을 하실 때, 앞에서부터 이렇게 쭉 보면 전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도 자기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첫마디가 뭐였냐면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라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두 번째 주님이 하신 말씀은 옆에 있는 십자가 강도가 그가 회개했을 때 그에게 즉각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말씀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보소서. 아들입니다." 하고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돌볼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전부 주님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십자가에 죽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신 말씀들입니다. 이게 주님이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라고 하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일단 겉으로 보기에 주님 자신을 위하여 하신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게 정말로 주님이 자기 때문에 하신 말씀일까? 이걸 이제 저희들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두 번째는 주님은 복음서에서 보면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은 그분이 나의 아버지다." 늘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만, 여기서만,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왜 그러셨을까? 이 주님의 네 번째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두 가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왜 주님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디어 하시는가? 그 두 번째, 왜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계신가?
그리고 이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겉으로 보면 의문문입니다. '왜 버리십니까?'라고 질문하고 계십니다. 이 대목에 대해서도 저희들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전지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모르시는 게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묻고 계십니다. 그래서 왜 주님이 물으실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시편 22편을 읽어드렸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인용하신 것입니다.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그대로 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 이제 시편 22편을 이렇게 돼 있습니다.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면서 그 문장이 뭘로 끝나냐면 결국 이 말은 무엇을 말하고 있냐면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게 시편 22편 3절입니다. 그래서 1절에 말씀하시고 결론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뭐냐,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이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네 번째로 어둠을 통과하시고 말씀하신 게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렇게 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몇 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고요. 두 번째, 주님께서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위치가 아니고 죄인의 위치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자리에 서셨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사람의 위치로 서셨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어둠 속에서 하나님께 버림받고 있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고 계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래서 죄인을 용납하실 수 없다. 반드시 심판하셔야 된다. 이게 첫 번째로 나와 있는 거고요. 두 번째로 사람들은 자기들은 모르겠지만 죄는 무서운 것이다. 죄는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다. 죄는 사소한 게 아니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작은 죄도 반드시 하나님께 버림받아야 되는 죄다. 라고 하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입니다. 그런데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주님이 대신 받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죄를 심판하시고, 그러나 아들을 대신하여 심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는 말 속에 주님이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나 더 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나라 말도 말로도 약간 이해할 수 있는데, '버리셨나이까'라고 돼 있는데요. 이 단어가 과거 형입니다. 영어로는 현재 완료를 썼지만 원어로는 과거형으로, 부정 과거라고 하는 형태로 써져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되냐면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다 받으시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과거로 놓고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거거든요. 이 질문은 예수님이 죄 없는 의인임을 말합니다. 죄 있는 사람이 죄에 대한 대가를 받고 왜 나를 심판하셨습니까,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의 심판을 받으시고 나서 말씀하십니다. "왜 나를 버리셔나이까" 주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 심판을 받아야 될 이유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받으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서 주님이 죄 없이 이 땅을 사신 온전한 의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하나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엘리 엘리" 이렇게 했을 때 엘리야를 부른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입니다. 엘리하고 엘리야는 분명히 발음이 다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러고 나서 어떤 사람이 이제 신포도를 주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놔둬 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이렇게 하는 걸 보면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로마인들은 엘리도 모르고 엘리야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는 유대인들이 주님이 엘리라고 말하니까 엘리야라고 하는 말을 가지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입니다. 주님이 유대인 왕이라고 하니까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가시관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관이 아니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그다음에 갈 때 지팡이를 집게 하고 그리고 침을 뱉고 모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만 그런 게 아니고 이제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에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게 인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주님에 대한 대우입니다. 끝까지 조롱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 조롱 속에서 주님은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떤 심판을, 하나님은 어떤 무서운 심판을 어떻게 받으셨는지 어둠이 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서 죄 없으신 주님이 마땅히 형벌 받을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심판을 받으셨는지, 우리가 짐작하지만, 그게 얼마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사이에 그 버림받는다고 하는 그 기이함, 그 강도를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에게 묻고 영원토록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신비한 심판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주님은 그 같은 조롱을 받으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주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도 이 세상에서 주님과 재림과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비난하고 조롱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알지 못해서 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알고 있는 우리는 주님의 뜻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이 땅을 향하여 질문하신 게 하나 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사도 바울을 부른 거죠.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래서 주님은 두 가지 고난을 받으십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난을 받으십니다. 그다음에 하늘에 승천하신 후에도 주님은 고난을 받으십니다. 핍박을 받으십니다. 이 세상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핍박할 때 주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의 지체들에게 가해지는 핍박을 머리로서 느끼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고난을 받고 계십니다. 주님은 두 번 질문하셨습니다.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질문하셨고 하늘에서 땅을 향하여 질문하셨습니다. 주님은 두 가지 고난을 받으십니다. 우리도 이 복 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고난을 함께 받으신다는 사실 앞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를 하셨는데 그중에서 네 번째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주님은 다 아십니다. 왜 버림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다.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왜 버림을 받으셨죠? 답은 너무 명백합니다. 우리가 버림받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는 이제 히브리서 13장 말씀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도 아니하리라"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을 우리 안에 내주시키신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리가 버림받지 않도록 대신 버림 받으신 주님, 그런데 그 버림받았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참담한 것이었는지 계속 주님 앞에서 묵상하고 하늘나라에 가서 이야기하고 마치 모세와 엘리야가 자기들이 그림자로 예언했지만 실체 되신 주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보면서 같이 교제를 했듯이, 저희들도 주님의 십자가를 성경을 통해, 말씀을 통해, 진리를 통해, 믿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다시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해서 영원토록 찬양한 제목을 교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주님이 치르신 태도를 보면서 저희는 또 이 세상을 주님의 뜻을 위하여 고난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순종해가는 저희들이 되기를, 오늘 주님을 기억하면서 또 주님의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들이 저희를 그와 같이 이 땅에서 살게 하시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한봉래 형제님 > 가상칠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상칠언 : 여섯번째, 다 이루었다. (0) | 2024.01.17 |
---|---|
덕언 : 가상칠언 중 첫번째, 주님의 기도 (1) | 2023.12.01 |
덕언 : 가상칠언 세번째, 주님의 인성 (0) | 2023.09.23 |
가상칠언 : 기도의 응답, 하나님의 임재 (1) | 2022.10.06 |
가상칠언 : 주님의 기도, 성도의 기도 (1) | 2022.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