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가상칠언

가상칠언 : 여섯번째, 다 이루었다.

박이레 2024. 1. 17. 14:39

< 덕언 : 가상칠언 - 여섯번째, 다 이루었다 > 한봉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마 27:50).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요 5:3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6-37).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7번 말씀하셨는데요. 그 7번 하신 말씀들을 쭉, 덕언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지금이 여섯 번째입니다.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이죠. 이 말씀을 이제 생각할 때, 우선 전체적으로 이렇게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아침 9시에 달리십니다. 그리고 12시까지 3시간 동안 세 번 말하십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고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하시고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사도 요한을 가리키면서 "아들입니다." 이렇게 하셨죠. 이게 3시간 동안 밝은 3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님은 총 6시간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중에 3시간이 대낮 밝은 때, 그리고 12시부터 3시까지는 사실은 밝아야 될 때죠. 그런데 이때 3시간 동안 어둠이 임합니다. 그리고 이때 이제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으신 거죠. 그리고 그다음에 이제 어둠이 그치면서 주님이 네 번 말하십니다. 이제 밝을 때 세 번 네 번 말하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다음에 "목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다음에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 이 4개의 말씀은 그러니,까 이제 세 번 이렇게 하셨고 이 네 번의 말씀은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다만 약간 시간을 끈 곳은 "내가 목마르다." 했을 때 군인들이 신 포도주를 주고 이때만 약간 시간이 걸립니다. 그거는 연속해서 이제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요.

그다음에 이제 이 여섯 번째 말씀은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요한복음이 이렇게 기록돼 있고요. 아까 제가 찾은 마태복음은 그러니까 마태, 마가, 누가, 이 세  복음서에서는 이렇게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7번 말씀하시는데, 크게 말씀하신 것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게 크고요. 그다음에 "다 이루었다." 이게 이 두 개가 크게 소리를 지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그러니까 이제 공관복음서는 주님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고 요한복음은 그 큰 소리로 말씀하신 내용을 적어놨습니다. 다 이루었다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제 공간복음서에서는 다 크게 말씀하셨다라고 하는 것은 공간복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할 수 없이 죽고 그리고 끝이 아니다입니다. 주님이 죽는 순간에, 특별히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크게 하신 것은 십자가는 승리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다. 십자가는 인간이 승리한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이다. 이걸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이다. 이걸 이제 십자가에서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이루셨는데 "다 이루었다." 이게 우리나라 말로는 다 이루었다 이렇게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게 이제 성도님들 아시는 대로 원어는 한 단어입니다. 단어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데요. 뭐가 없냐 하면 목적어가 없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지 그 목적어가 안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그게 이제 요한복음 5장입니다. 5장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일들" 그 일들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제가 아까 찾아드린 36절에서는 주님께서 뭘 이루셨냐면 기적들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이라고 하는 단어가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자연을 통제하시고, 이와 같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같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그 기적적인 일들을 하셨습니다. 하신 이유가 뭐냐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그것을 사람들로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스스로 오신 게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이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루신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스스로 온 게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 하나님이 보내서 왔기 때문에 내가 하는 기적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이 보내서 온 사람인 것을 너희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주님이 이루신 일들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 4장에서는 이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온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왔다." 이때는 이 뜻이 아버지께서 주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다 했을 때 이 일은 '단수'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주셨을 때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 임무가 크게 말하면 하나입니다. 그것을 이루셨다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할 것을, 그리고 그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이 어떤 비참한 상황 속에 떨어지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때 막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보내서 대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걸로 인해서 이제 구원받은 자들이 다시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기쁨으로 순종하도록 하는 인간을, 새로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뜻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로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구속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내셔서 대신 죽게 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는 첫 번째,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셨답니다. 두 번째 '성경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찾은 게 양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보면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쪽의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을 받았죠. 그런데 그다음 날이 큰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이 안식일의 시신을 못 두게 돼 있습니다. 원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하루 만에 죽는 처형이 아닙니다. 이건 오랫동안 걸립니다. 심지어는 막 일주일까지 걸립니다. 피를 계속 흘리면서 죽어가는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 안식일이고, 신명기에 어떤 사람의 죄로 인해서 나무에 달거든 안식일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 전에 시체를 내려야 된다라고 하는 율법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뼈를 꺾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뼈를 꺾으면 빨리 피가 내리고 빨리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군인이 와서 뼈를 꺾습니다. 한 강도 뼈를 꺾고, 주님이 가운데 있으니까 그다음 주님을 꺾어야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군인이 가운데 계신 주님을 놔두고 반대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쪽 강도의 뼈를 또 꺾습니다. 그리고 가운데로 옵니다. 와 보니까 주님이 이미 숨을 거두신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은 뼈를 꺾을 필요가 없네. 뼈를 꺾었다고 하는 것은 빨리 죽게 하겠다고 하는 건데 이미 죽었으니 뼈를 꺾을 이유가 없죠. 그래서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래서 주님의 뼈가 꺾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거죠? 성경을 이룬 것입니다. 성경의 유월절 양은 그 뼈를 꺾지 않게 돼 있습니다. 주님은 유월절 양으로 죽으십니다. 그래서 이제 성경을 이루신 거죠. 그래서 이제 주님이 성경을 이루기 위하여, 성경이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또 성경을 이루시기 위하여 "내가 목마르다" 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한 번 이루어져야 되는 성경이 있다. 그게 뭐냐 하면 "찌른 자들이 주님을 볼 것이다." 주님을 창으로 찔렀죠. 이제 주님의 죽음이 확인됐죠.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셔서 영광의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창으로 주님을 찌른 사람, 그 사람도 다시 주님을 볼 것입니다. 이게 이 주님의 말씀이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지금 요한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이루신 것, 아버지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남김없이, 실패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다 이루셨다. 이걸 말씀하시고 두 번째 주님이 성경을 이루었다. 메시아에 관련된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많은 예언들, 약속들,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로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성경을 이루심으로써 이제 일어나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이 이를 이루심으로 힘을 잃어버리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 사망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돼 있죠. "사망하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하죠.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죽은 후에 이렇게 어떻게 될지, 죽음도, 과정도 두렵지만 죽음 이후에 이게 이제 죽으면 어디 가나, 어디 뭐가 있나, 뭐 이런 게 두려운 거죠. 사실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이걸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죽음이 그리스도에게는 두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막 외칠 수 있는 거죠.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어떻게 되죠? 빌립보서 1장에 있는 대로, 바로 영광의 주님 앞에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죽는 게 더 선호하는 일입니다. "내가 죽어서 주께 가는 것이 훨씬 나으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죄입니다. 심판은 왜 있는 거냐 하면 죄 때문입니다. 죄는 왜 있는 거냐 하면 율법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고, 그러니까 이제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이제 죄에 대해서 우리가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이죠.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다시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 유혹이 되지 않고 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능히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사망의 힘을 잃어버리고, 사망을 가져온 죄가 힘을 잃어버리고, 그다음에 세 번째 사단이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단을 멸하셨습니다. 사단은 사실 천사가 타락한 것이고 굉장히 강력한 존재죠.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단을 무시하거나, 사단에 대해서 경멸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단을 대적하라"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사단을 대적하면 그가 피하리라"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그 결과 세 가지가 우리에게 무능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주님이 여섯 번째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에 대해서 저희들이 교훈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주님이 십자가에서 크게 외치시고, 승리를 외치신 이 외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 놀라운 주님의 선물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죄를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단의 유혹, 사단이 이제 세상을 사용하고 우리의 육신을 사용해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겠죠. 지금도 여전히, 그때 우리는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걸 우리들이 누리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은혜의 혜택을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이걸 저희들이 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그냥 태어난 것 같아도 배후에 주님께서 우리를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서, 어느 집 안에서, 몇째로 다 태어나도록 예정하시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 가운데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게 하시고, 그리고 복음을 듣게 하시고, 주님을 믿게 하시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구원받아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받게 하시고 대전 중구 모임이라고 하는 지역 모임에 넣어두신 것은 주님이 의도를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고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지막에 이 땅을 떠나 주님께 가야 될 그때 우리 심령 속에서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일을 이루었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계속 말씀을 통해 교회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지체로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계속 강조해 온 것은 구원받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생명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은사를 주셔서 이 은사를 사용해서 교회를 세우고 그리고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가 무엇인지, 또 은사를 사용할 때 얼마나 영적으로 사용해야 되는지,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교회가 세워지고 주님이 영광을 받도록, 그 은사를 사용하는 원칙들이 무엇인지를 너희들이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일들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었나이다, 말할 수 있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 모임으로써 우리가 함께 그 일을 격려하고 낙심한 사람이 있으면 위로하고 또 믿음으로 자라고 있는 분이 있다면 감사하고 함께 그 일을 이루어내고 이게 이제 저희들이 지역 모임으로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같은 일들을 올 한 해에도 저희들을 통해서 이루시고 영광을 얻으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