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가상칠언 중 첫번째, 주님의 기도 / 한봉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은 누가 복음 23장 34절 말씀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7번 말씀하십니다. 그중에서 이제 첫 번째 말씀 이 말씀을 통해서 잠시 교훈을 받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 앞에서 혹은 죽음 앞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죽음이 하나님과 교제를 막지 못합니다. 고통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며 모든 사건들을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7번 말씀하셨는데요.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한번 세보겠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데뇨,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 십자가 강도에게 말씀하셨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다음에 세 번째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보소서, 아들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 "네 어머니다." 이게 이제 세 번째 말씀이죠. 그다음에 네 번째 말씀은 한가운데죠. 7개 중에서 한가운데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다음에 다섯 번째 말씀이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렇게 하셨죠. 이 일곱마디 중에서 첫 번째 말씀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하나님을 부르십니다. 마지막 말씀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마지막 말씀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가운데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말씀입니다. 7번 중에 첫 번째, 중간, 그리고 마지막 말씀이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생애 내내 그리고 십자가에서도 죽는 순간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계셨다. 이게 첫 번째로 저희들이 받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잠깐 저를 돌아보 적용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가 물론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는 거죠. 저희는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루를 하나님께 부탁하고 또 저녁에 마지막 하루를 마칠 때 다시 성경을 펴고 말씀을 읽고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일과 중에 우리들의 삶 속에서 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점점 주님과 친밀해지기를, 자주 읽기를, 항상 읽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습니다. 아버지 하신 다음에 이렇게 두 번째 "저희를" 여기서 저희는 누구냐 그러면 첫 번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조금 확대하자면 십자가 곁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다음에 이거 잠깐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은 이렇게 끝났죠.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누어 제비뽑을쌔" 이건 군인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35절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며" 무슨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는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관원들, "관원들은 비웃어 가로되" 이와 같은 사람들, 주님을 십자가에 직접 못 박은 집행을 한 사람들, 마침 그 근처에 있어서 구경하고 있었던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을 계획한 관원들, 이 사람들을 "저희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또 알죠. 그리고 모든 세상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보시고, 십자가는 한 번 일어난 사건이지만 영원한 효과를 갖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를 주님께서 부르고 계셨습니다. "저희를"
그다음에 세 번째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해 주옵소서" 죄 용서를 빌고 계셨습니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교제하셨습니다.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 내용이 뭐냐?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고, 아버지여 저를 도우소서, 저에게 견딜 힘을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신 게 아니고 "저희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중보 기도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생각하셨다면 주님은 이 땅에 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생각하셔서, 죄인들을 생각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보시면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하는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또 주님께서 하신 위대한 기적들을 보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들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같은 일을 본 적이 없다." 이 주님의 말씀도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그리고 그게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십자가에서 주님처럼 기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스데반입니다. 스데반도 주님의 영광을 말하고 그다음에 돌에 맞아 죽습니다. 스데반도 두 가지를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내 영혼을 받아주옵소서." 스데반도 주님과 똑같은 기도를 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잠시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 맨 이제 뒤로 쭉 가시면요. 7장 맨 뒤에 59절, 60절에 스데반의 기도가 나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여기 차이가 있습니다. 스데반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냐면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내 영혼을 받아주옵소서." 그리고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입니다. 주님은요 거꾸로입니다. 제일 먼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기도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이지만 순서가 다릅니다. 이 같은 분을 우리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분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앞에 경배하고 그 귀한 주님의 인격과 사역 앞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주님은 이제 누가 복음에서 이렇게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잠깐 하나 찾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6장 27절을 보시면, 마태복음 같으면 산상수훈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건데요. 주님이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눅 6:27).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가르침대로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은 잘하지만 그러나 자기 삶이 못 따라갑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은 더디 하고,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을 할 때에도 겸손하게 하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게 마땅한 일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신 유일한 분이 계십니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실제로 원수를 사랑하시는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리고 말합니다.
"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뭘 모르고 있을까요? 이 사람들이 뭘 모르고 있을까요? 자신이, 피조물이 창조주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실은 자기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상 사단의 도구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입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들이 모르는 것, 사람들의 죄를 사용해서 하나님은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여기 기이한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의도를 이루시는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는 이 주님의 기도는 이사야서에서 예언된 기도입니다. 이사야서 53장으로 가셔서 어떻게 예언돼 있나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2).
"그러나 실상은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주님은 자기 죄로 십자가에 달리신 게 아닙니다. 온 세상 죄를 지고 계십니다. 그다음입니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서 53장이 메시아가 하실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600년 전에 그 예언의 말씀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메시아는 범죄자들을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신다라고 하는 예언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저희들 쪽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인데요. 각처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 지역 모임에서, "각처에서"는 각 지역 모임마다, 지역 모임이 세워진 모든 지역에서 지역 모임 성도들 가운데 남자들이, 형제들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모임에서 형제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선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냐 그러면 저희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 때 매일매일 어떤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어떤 상황을 만날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기도하셨던 이 모습을 보고. 저희들이 주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주님 다시 저희들이 다시 모일 때까지. 일주일간 저희들도 주님처럼 기도하는 삶을 살고 다시 모여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처음에, 하루의 마지막에 뿐만 아니라, 하루 내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 저희들이 기도하는 것은 구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역 모임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있지만, 책임을 다해야 되지만,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또 여러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구원받은 후에 구원이 다가 아니고 구원은 출발입니다. 이제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향기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힘주시고 보여주실 때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모임에서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성도님들에게 다 알려져서, 주님이 알려주셔서, 그 주님의 영광을 가지고 나와 주님께 찬양하는 예배 시간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는데요. 이 기도가 응답됩니다. 예배 시간에도 많이 나왔습니다만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을 때 누가 구원받느냐? 그다음에 십자가 강도가 구원받습니다. 한편 강도가 구원받습니다. 또 누가 구원받냐면 주님의 십자가를 집행했던 로마의 백부장이 구원받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과연 의인이었도다." 의인이다 혹은 다른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합니다. 이 기도는 응답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할 때, 실제로 응답을 우리가 경험하고 하나님께 더욱 찬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또 누가 구원받았느냐? 아리마대 요셉이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가 자기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담대히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개인 무덤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기로 결정하고 빌라도에게 찾아가 주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하고 이와 같은 성도의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도 구원받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게 뭔지 몰랐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이 말씀을 이제 그가 눈으로 본 것입니다. 주님이 들리셨구나. 십자가에 들리셨구나. 그리고 이것을 보는 자마다 광야에서 뱀에 물렸던 사람들이 낫는구나. 그는 말씀을 깨닫고, 성령으로 깨닫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가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주님의 시신을 백근대는, 왕이신 주님에게 향품을 가지고 와서 이제 주님을 묻는 이 놀라운 일들을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응답됩니다.
우리 기도도 응답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기도를 본받아 주님 허락하신 시간 동안 주님과의 교제를, 어떤 일이 생겨도 주님과의 교제를 끊을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기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낙심되는 일이 있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그 기쁨을 누리기 전에 그 기쁨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첫 번째 본입니다. 이분을 저희들이 따라가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들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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