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전의석 형제님(요약)

복음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박이레 2023. 3. 19. 13:08

< 복음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23년 3월 19일 일요일(요약1) / 전의석 형제님

1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17, 개역한글)

저번에 소개드린 것은 동방박사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부터 예수님을 거절한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위대한 한 질문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시뇨?"라는 사람의 질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아오시고 침례를 받는 장면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통해서 사람들의 질문에 하나님이 대답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에서는 '이는' 이 '너는'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꼐서는 아드님을 사랑하는 자임을 말씀했고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이루어 졌는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준비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침례요한입니다. 그는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좋은 옷이나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이나 영향력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겸손하고 낮은 모습으로 그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듣고자 나아오시는게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요한이 있는 곳은 사람이 많은 시장이나 광장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광야이고 사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당이나, 고귀한 미술품이나 그런 것을 보고서 믿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사람이 없는 광야로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많은 방해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의 죄를 자백하며 요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행위로 나왔지만 침례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그곳에 주변 사람들이 침례받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가서 한숫갈 얹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침례를 받는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계절이 바뀌어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시간이 바뀔수록 상황에 맞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신체적인 기능들이 떨어지고 사람은 결국 죽음을 향해서 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알수 있으며 실제적인 삶에서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3:10, 개역한글)

이 심판, 하나님의 이 결정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긴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과 죽음의 문제는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진노는 임박한 진노입니다. 나무꾼이 도끼를 손에 쥐어서 나무에 한번 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찍어서 나무를 부러뜨리기 직전인 것입니다.
이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 성경은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주님의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임박한 진노는 천사장은 언제든지 나팔을 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천사장에게 나팔을 불것을 명하시면 그 심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노에 대해서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3장은 또한 이어서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이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12절의 말씀을 소개하고 난 이후에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3:12, 개역한글)

이와 같은 경고, 임박한 진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침례요한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이 말씀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서 등장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경고, 두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은혜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아주 시원하고 밝히 보이는 이 길을 소개합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일을 행하기 위해서 침례를 받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죄와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물에 들어가서 죽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그러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고백할 죄도 없으시며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죄를 고백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3:14,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같이 낮아지셔서 사람이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으실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인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시고 고통을 대신 받으시고 종의 형체를 지시고 낮아지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3:15, 개역한글)

왜 침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침례요한이 함께 이 일에 더해졌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침례요한을 사용하셔서 사람들에게 이 침례의 의미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12:50, 개역한글)

사람이 받는 침례 말고 주님만이 받으셔야 할 침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께 받을 고난의 잔, 고난의 침례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요한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이를 허락하여 주님께 침례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에게 임하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는 낮 12-3시 입니다. 가장 밝을 때에 하늘이 어두워 졌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첫 사역인 침례를 받으실 때는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머리에 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주님께서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주님께서 하나님께 고백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때에 하늘은 빛을 잃고 하나님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그대로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침례는 주님이 받으실 고난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사람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에서 벗어나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을 누구를 염두해 두고 하셨으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증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굳이 이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떠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생각해 보면 큰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신 증거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증거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자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본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여러분들을 위해서 주셨고 영생을 얻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일이 여러분의 마음과 인생 가운데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