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하나님의 권리

박이레 2023. 2. 16. 17:29

< 복음 : 하나님의 권리 > 23년 2월 12일 일요일 / 강성찬 형제님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저희가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버려두고 가니라"(막 12:1-12).

여기 주 예수님께서 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읽은대로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포도원을 잘 만들고 거기에 산울, 울타리를 만들고, 거기에 즙 짜는 곳도 만들어 놓고, 망대도 만들어 놓고, 그 포도원을 세로 준 것입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 그 경작을 잘 해서 소출이 났을 때에 얼마를 달라, 하였는데 정작 그 소출을 받으려고 주인이 종을 보내었더니 그 종을 죽이고, 또 다른 종들을 보냈는데도 다 죽이고, 심지어 그 주인의 아들을 보냈는데도 그 아들을 죽이고 오히려 그 아들이 상속받을 그 포도원을 아예 우리 것으로 만들어버리자,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시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이 종들을 죽이고, 소출을 주기 싫어서 종들을 죽이고 아예 그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서 그 아들도 죽인 이 농부들에게 어떻게 하는것이 마땅하겠는가?" 이렇게 물어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 이 주인이 한 것처럼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들도 그것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당연히 주인에게 소출을 주고 그렇게 해야지, 소출을 받으러 온 종들을 죽이고, 때리고, 심지어 그 아들까지 죽여서 그 포도원을 뺏으려고 하면 되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소출을 주기 싫어서 그 종을 죽이고, 그리고 그 주인의 그 아들까지도 죽이는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농사를 안지어봐서 모르겠는데요. 이제 농사를 하는 곳에 가보니까, 땅만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땅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농막을 딱 만들어 놔야 되더라고요. 거기에 농사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구도 놔두고 거기서 밥도 먹고 하는 것이죠. 그 논밭에 울타리도 잘 만들어 놔야 되고, 다른 짐승들이 와서 농사를 잘 하고 있는데 그것을 망쳐버리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울타리도 잘 만들어 놓고, 그 뿐만 아니라 이 안에 일하는 사람들이 일만 하는것이 아니라 좀 쉬고 식사도 하고 또 그 소출을 먹으면서 즐길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곳이 필요하더라고요. 여기도 즙 짜는 것, 포도원의 즙을 짜서, 그들도 그것을 마시고 또 포도즙을 만들어서 팔수 있게끔, 그런 것도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포도원을 잘 만들어 놓으시고 그 포도원에서 열매를 맺게 하도록, 그리고 그 열매를 맺으면서 또 즙도 만들고, 그래서 즙짜는 구유도 만들고, 그리고 그 포도원에서 쉬고, 그리고 포도원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나 살펴 볼 수 있도록 망대도 만들고,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울타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죠. 아주 작은 것에도 우리는 금방 병에 걸리고 마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연구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연약한 사람들이 이 땅 가운데서 잘 살수 있게끔 이 자연 환경이 놀랍게 세팅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온도의 변화에도 굉장히 못견뎌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온도가 내려가도, 심지어 대만에서는 온도가 5-7도로 기온이  떨어졌는데 얼어죽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뉴스를 보면 아니, 5-7도가 뭐가 춥다고 얼어죽나,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네팔에 갔다온 적이 있었는데, 그 네팔이라는 나라가 기본적으로 더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집에 난방 시설이 없습니다. 호텔에도 난방시설이 없습니다 난방 시설이 없다 보니까, 제가 갔을때가 십 몇도였는데 밤에 잘때 추워서 못자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간 모든 옷을 다 파카까지 다 꺼내서 입고 잤습니다. 사람은 불과 몇도만 떨어져도 추워서 못자는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울타기가 없으면 금방 말라 비틀어져 버리는, 다쳐 버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구를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지구는 특이하게 대기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기가 흐르는 것이죠. 차가운 것과 더운 공기가 서로 혼합이 되어서 공기가 어느 정도 계속 유지할 수 있게끔, 그리고 지구는 특별하게 물이 굉장히 많은 행성입니다. 70%가 지표면을 물로 덮여 있습니다. 물은 온도 변화에 버틸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느. 온도가 그렇게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잘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민감한데 우리의 마음은 더 민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더 민감하게 다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 때에 그 사람은 별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나한데 이렇게 말한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이 다쳐 버립니다. 굉장히 민감한 그런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우리 주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친구들, 그런 가운데서 보호받도록, 우리가 부모님과 형제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마음이 보호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혼자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그러한 사람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영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육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있고, 우리는 또 영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영은 더 민감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않아서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영은 우리가 죄를 짓는 것에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러한 부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러한 부분입니다. 굉장히 민감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 영이 다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을 다치는 것보다 더 쉽게, 여러분이 마음을 다치는 것보다 더 쉽게,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것과 상관없는, 오히려 죄악된 것을 보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 그 영이 다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영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소생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새롭게 고침을 받고 힘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 가운데 울타리를 만드시고, 또 즙을 짜서 그 포도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또한 높은 망대를 두시고, 그 견고한 망대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이 소생(소성?)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소출을 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하는 소출을 달라.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예, 하나님 당연히 드려야죠.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소출이 뭔데요?" 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뭘 드려야 되죠?" 성경 말씀 뒤에를 좀 읽어 보겠습니다. 한 서기관이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게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계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이렇게 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인데, 이게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드려야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소출이 뭡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9-31).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같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이웃을 여러분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되는 그 소출을 드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 그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지."라고 하는 대신에,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삽니다. 내 이웃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여기 보면,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고 계시는데 자신의 온 마음이 아니라, 마음의 일부분도 주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 농부들이 하나님께서 그 소출의 얼마를 달라고 하셨는데 전혀 주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 5: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에 충분한, 부족함 없는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그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울타리를 만드시고, 그리고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고, 그리고 그 안에 극상품, 제일 좋은 포도나무의 종자의 포도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하게 거기서 좋은 열매가 나왔어야 되는데 거기에 들포도가 맺힌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그런 사람들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선한 열매를 맺게하는 모든 것을 다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여러분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보호하시고, 여러분의 영을 인도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인은 그 농부들에게 종을 보냅니다. 보내는걸 보면 참 끈질기게 보냅니다. 한번 보내고 마는것이 아니라 여러번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요청에 지금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한테 그 하인을 보내서, 그 종을 보내서 그 소출을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그 요청을, 그 종을 보내셨으면 내가 줬겠지."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속적으로 보내고 또 보내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신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에게도 여러 전도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미, 많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저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아야 되는 마땅한 소출을 돌려드려라.' 그리고 여러분이 그냥 이 말을 듣고 아무런 변화 없이, 회개하지 않고, '아, 그래 그동안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살았구나. 마땅히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렸어야 되는데 그것을 드리지 못했구나.' 이렇게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 종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 종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전도자를 통해서,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이 받아야 되는 그 소출을 달라.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이 거절하는데도 계속 그 종을 보내는 것을 보면 비웃을 것입니다. "아, 저 사람들이 주겠어? 그 놀부들이 안주려고 하는데 주겠어?" 그렇게 말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보내고 계십니다. 심지어 그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 하인들을 모두 다 조롱하고 죽이기까지 했는데, 그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출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서 뭘 기어이 받아야 되겠다고, 우리가 그런 상황을 보면 "아, 저것은 받을 수 없겠네." 하고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딱 보고 저것은 더이상 받을 수 없으니까 당장 군대를 보내서 저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야 되겠다. 이렇게 하는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소출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여러분이 돌이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심판받지 않고 멸망 당하지 않고, 여러분의 죄를, 그 대가를 지금 당장 치루지 않고 여러분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을 보내고 또 보내고 계속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 이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되는 그 소출을 드리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무슨 권리가 있는데? 내 삶에 대해서, 아니 이것은 내 삶이고 내 인생인데, 왜 내가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려야 되는 거지? 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거지? 하나님께서 무슨 권리가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이것이 어리석은 말인데요.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 마가복음 12장에 앞, 뒤로 보면 누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이 내용을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앞부분을 한번 보겠습니다.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니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 11:27-33).

이게 어떤 내용이냐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와서 "아니, 당신이 무슨 권세로, 우리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 이렇게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침례 요한이 사역을 하였는데, 그 침례 요한이 말씀을 전하고 침례를 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하늘에서 보낸 선지자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에게 하늘로부터 온 권세가 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지도자들에게 "너희들이 내가 무슨 권세로 이러한 일을 하느냐? 라고 질문했는데 그럼 내가 한가지 질문을 하겠다. 침례 요한은 무슨 권세로 행했느냐?"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답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권세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늘의 권세로 행했다고 말하기를 싫어 했습니다. 그들은 침례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말을 했을 때도 듣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침례 요한이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침례 요한은 분명하게 회개하라고 할 권세가 있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분명하게 하늘의 권세가 있는데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권세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만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은 합당한 권세가 있으면, 내가 그 권세를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합당한 권세가 왔을 때는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권세 외에는 다른 어떤 권세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마땅히 침례 요한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인정해야 겠지만 그들은 그것을 인정 안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하는 말이 내가 원하는 말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마땅히 권위가 있으면 내가 그것을 하겠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권세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권세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막 12:13-17).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려고, 함정에 빠뜨리려고 사람들을 보냅니다. 어떤 거내면, 헤롯당이 있고,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이 두사람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롯당은 이 로마의 권력에 붙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아, 로마에 세금을 내야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로마에 우리가 세금을 내는게 맞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한편, 바리새인들은 "이 로마왕은 세상의 왕이고, 우리는 그래서 그 왕에게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의 사람들이 같이 와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주님, 세금을 내는 것이 맞습니까? 아닙니까?"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바리새인들이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야 되는데, 세상 왕에게 세금을 내면 됩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헤롯당에서 "지금 로마가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데, 세금을 내는게 맞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대답을 해도 어려운 상황에 둔 것입니다.
사람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권력을 따라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따르는 권력은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나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나를 위협하는 그 권력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것은 그들이 책 잡을 수 없는 그러한 대답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로마왕의 것이라면, 로마왕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께 바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답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리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래 누구에게 속했는지, 그 진리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주님의 대답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나를 위협하는 그 권력을 따라가지만, 주님께서는 이것이 원래 누구에게 속했는가, 그 진리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대로 우리가 그 권위에, 그 권세를 따르기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되는 것도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되는 것을 드리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이 타국으로 멀리 가 있어서, 주인이 보이지 않으니까 주인에게 세를 바치기 싫은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권리가 없는대로 불구하고 여러분 앞에 나타나서, 깡패가 나타난 것입니다. 깡패가 여러분 앞에 나타나서 돈을 달라고 하면 여러분은 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권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위협하는 사람에게 "당신 것입니다. 가져가십시요." 이렇게 갖다 바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권리가 있는, 하나님께는, 여러분에게 모든 권리가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단지 여러분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멀리 있으니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포도원 주인은 이 포도원을 경작하고 소출을 주지 않은 그 농부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까? 그 마땅한 권리가 있는 주인에게 소출을 바치지 않은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까? 농부들을 진멸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오래참고 여러번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진멸하게 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엄중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지 않습니까? 농부들이 잘못했고, 그 농부들이 주인에게 소출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마땅히 받아야 되는 것을 주지 않는 여러분들을 심판하시고 지옥에 던져넣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중에 하나님께 심판하실 때에 그것에 대해서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 주인에게 마땅히 드려야 될 소출을 드리지 않은 농부들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내가 잘못했구나,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고 싶습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막 12:10-11).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그냥 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빌려 주었는데, 그 주인은 농부들이 배신해서 소출을 받지 못하고 끝났다. 이야기가 이렇게 끝난다면 그냥 슬픈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죠. 세상의 많고 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런 배신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사람들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포도원을 빌려주고, 그리고 그 포도원에서 경작하게 했는데, 소출을 주지 않고 주인을 배신한 그런 이야기는 이 세상에 많고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배신 했는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사람들이 버렸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버렸는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하나님의 놀라운 부분입니다. 그냥 그 아들이 사람들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죽고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이 배반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만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5-1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고 그 후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 앞에 어떤 앉은뱅이 병자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다 그를 보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말하였고, 그가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불러 세워서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무슨 권세로 그 일을 행했느냐?" 항상 사람들은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 말고 다른 권위를 싫어하기 때문에 항상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로 했느냐?" 무슨 권세로 했는지 제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9-12).

"무슨 권세로 이렇게 했느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들이 버린 돌이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다. 너희들이 죽인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12절에, "구원을 얻을 만한 그 이름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을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이 집을 볼때에 그 집을 견고하게 떠 밭치고 있는 한 돌이 있습니다. 서양은 건축이 동양과 조금 다릅니다. 동양은 집을 만들때에 한 기초석이 있는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구조물이 서로 연결되어서 세워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관리를 안하는 집을 보면 집이 전체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 구조물을 보면, 어떤 아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아치의 가운데 돌이 있어서 그 돌이 그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돌을 빼면 순간적으로 무너져 버립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그 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건축물의 하중을 받치고 있는, 그 돌이 빠져 버리면 그 집이 무너져 버리는 그 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을 버려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이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 것입니다. 유일하게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인지 기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을 드리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하나님의 아들께서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고 그 십자가에서 그 형벌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께 범한 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심판하고 여러분을 지옥에 던져넣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사람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죽인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놀랍게 사용하셔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시는 화목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가 어떻게 나았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다. 죄인들이 어떻게 죄 용서함을 받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을만한 유일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마땅히 소출을 드려야 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마땅히 소출을 드려야 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도한 이제는 한가지 이유가 더 생겼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에게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장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삶을 사시겠습니까? 마가복음에 보면 그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1-44).

이 12장 마지막은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람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 12장에서는 시작은 "아, 하나님이 무슨 권세가 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데?" 소출의 일부를 달라고 하는 그 주인에 대하여 오히려 그 종을 죽이고 그 아들을 죽이는 농부로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그 구속을 감사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한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의 액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큰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모든 마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으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만드셨고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께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