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하나님의 증거

박이레 2023. 6. 7. 17:35

< 복음 : 하나님의 증거 > 강성찬 형제님

이번 시간에는 요한일서 말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6-12).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의 증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9절에 보면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지인대"라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대화 중에 특별히 어떤 것들은 증거하는, 증언하는 그런 말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간단하게 이제 학교에 왔을 때에, 또 집에 돌아왔을 때에 "엄마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우리 집 앞길에 어떤 사고가 난 걸 봤어. 엄마 그 앞에 갈 때 좀 조심해야 돼. 거기 좀 지금 문제가 있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 그렇구나.' 하고 그 말을 듣고 이제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거죠. 그 길로 평상시에는 다녔는데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간다거나 이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이걸 일상 생활 가운데서 많이 하는 그런 행동이지만 특별히 이런 증거하는 것,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행동을 바꾸게 하는 그런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증거가 기본적으로 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는 중요한 것입니다. 증거는 큰 것입니다. 나의 말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어떤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증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그런 증거도 큰 것이지만 하나님의 증거는 마땅히 더욱 클 것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제 법정에서 증거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이 판결이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유죄고 그래서 감옥에 가는 것이 결정이 되거나 아니면 무죄고 그가 풀려나는 것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증거가 갖는 그 무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사람들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증거를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크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크냐면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리처럼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큰 증거입니까?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증거라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이것이 큰 증거라는 것은 우리는 이 증거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증거가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증거하고 계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참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마땅히 겸손하게 만들어야 되는 그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증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다 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마땅히 명령하실 권세가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러분에게 증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제가 배를 만드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조선소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소에는 어떤 문화가 있습니다. 조선소 기업 문화가 있는데, 그 조선소를 세우신 회장님이 그런 성격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선소는 굉장히 권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는 거기는 그냥 시키면 한다. 이거 이게 문화입니다. 그리고 하면 된다. 이게 기업 문화입니다. 그래서 거기는 무조건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제 요즘 세대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이제 공부를 많이 했고 또 이렇게 명령을 받으면 "왜 그런데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요?" 이렇게 물어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납득이 돼야지 하는 그런 성향이라서 그렇게 물어보는 거죠. 근데 이제 상사들이 친절하게 설명을 안 해줍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말 안 하고 "그냥 시키면 다 하는 거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정당한 권위라면 그냥 설명을 안 해줘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맞는 겁니다. 정당한 권위라면, 그리고 그것이 오른 말이라면 그대로 하는 것이 또한 맞는 것입니다. 참된 말이라면, 그런데 하나님은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으로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라, 사실 설명 안 하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충분한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하시는 모든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렇게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그렇게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설명을 하십니다. 증거를 대십니다. 납득할 수 있도록, 오히려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합니다. 사람들은 "아, 내가 시켰는데 해야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말이 맞아." 다른 증거 없이 그냥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증거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설명을 해서 믿을 만한 증거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증거는 큰 것입니다. 참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증거를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증거가 큰 이유는 양이 많기 때문입니다. 양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도록 그 증거를 조금만 주고 보물 찾기처럼 어디다 숨겨놓고 찾아서 알아봐라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마어마한 증거를 주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는 지금 당장의 밖에 있는 이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보기만 해도 그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드실 수 있는가? 우리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볼 때마다 이것은 저절로 생겨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이 땅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시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인류의 역사에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시고, 그리고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한 짐승을 희생시키시고 그들에게 가죽 옷으로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게 되는 그 놀라운 복음을 처음부터, 그 역사의 첫 사건부터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록되어 있는 그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게 될 때, 특별히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시고 복음을 증거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증거의 양이 많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기에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무관히, 별로 관심 있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증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증거에 양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 증거는 큰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은 이 증거의 양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만 그 증거를 듣고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게 하나님께서는 증거하고 계십니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믿지 않으려고 굳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왜 이 하나님의 증거가 큰지 네 번째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증거의 주제가, 그 증거의 내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법정에서 다루고 있는 그런 증거들은 아주 중요한 것들을 많이 다릅니다. 어떨 때는 이제 우리의 많은 재산에 대해서 다루는 그런 내용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죠. 어떨 때는 어떤 한 기업에 대해서 그 기업의 존폐를 다루는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주제죠. 어떨 때는 어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증거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 이 세상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만물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제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과목들이 있지만 물리가 가장 큰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물리가 이 온 우주가 어떻게 생겼고 또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다루는 내용을 보면 이제 굉장히 핵심적인 모든 만물의 위치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그런 주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제 물리로는 조금 부족한 게 이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또 물리가 말을 해주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또한 저는 역사가 큰 주제라고 또 생각이 됩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간에 상호 작용을 하고 그런 것들이 흘러왔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역사가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총 망라하는 그 주제가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사실 물리도 추측만 할 뿐이지 이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역사도 이 인류가 어떻게 어떻게 살아왔다고 말할 뿐이지, 그 인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사람들이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사람들이 역사에서 전혀 배우지 않고 있다는 그거 한 가지 그것만 역사에서 배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계속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배우지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거죠. 아, 배워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문제점에 대해서 고쳐내지를 못하는 거예요. 계속 똑같은 일을 어리석게 반복하는 것이 인류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은 이 모든 만물이 어떻게 시작됐고, 사실 그분이 이 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어떻게 끝날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실 그래서 여기 보면 그 증거의 내용에 대해서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의 증거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 그러면 그 영생이 뭐냐? 그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영생을 어떻게 봤냐?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소유한다면, 다른 말로 한다면 아들을 믿는다면 영생이 있고, 이 세 가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게 첫 번째고, 두 번째로는 그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그 생명이다. 세 번째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그 영생을 얻는다. 이 세 가지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그 생명입니다.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고 계셨던 그 생명, 우리는 성경을 보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생명을 가지고 계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생명을 가지고 계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시고 기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신 그 생명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이기심 없이 온전히 그들을 위하셨던 그 생명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으면 얻게 되는 생명이 바로 이 생명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죽고 나서 하늘나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생명을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얻냐?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서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서 이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여러분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증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6-7).

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물과 피로 임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어떤 말씀인지를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구원자가 오실 때에, 여기서 "임하셨다"라는 것은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자가 여러분에게 오실 때에 정말 이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다면 어떻게 오셔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 유명한 사람들이 이제 다른 나라에서 한국을 방문할 때에 전용기를 타고 와가지고 레드 카펫이 깔리고 그 위를 걸어서 이렇게 오고 많은 환영 인파가 환영하는 그런 오는 장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 영생을 줄 수는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와야지 여러분에게 영생을 줄 수 있습니까? 물과 피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한 아기로 태어나시고 그리고 약 30세가 되었을 때에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공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그 공적인 사역의 시작이 물로 특징되어집니다. 우리가 나중에 살펴보겠는데요. 그리고 그 공적인 사역의 끝이 피로 특징이 되어집니다. 3년 동안 사역을 하셨는데 그 사역의 시작은 물이였고 그리고 그 끝은 피였습니다. 그리고 그 물과 피로 사역을 시작하시고 마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실 때에 참으로 이분이 나에게 영생을 주시기에 능력 있고 합당한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게 되실 것입니다. 우선 마태복음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보금 3장입니다. 여기서는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역을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6-12).

여기 '침례'가 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성경에는 '세례'라고 되어 있을 텐데요. 제가 특별히 '침례'라고 고쳐서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사람들이 어떻게 세례라는 것을 받았냐면은 물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물 속에 잠기는 침례가 더 정확한 용어입니다. 왜 이 사람들이 그 물 속에 들어가냐면 이 침례라는 것은 그들이 죽는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장사될 때에 그의 몸이 흙 속에 묻히는 것처럼 그의 몸이 물 속에 장사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 물이라는 것이 침례를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침례요한은 왜 이러한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를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까? 왜 사람들은 그 침례를 받으러 나오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자기들이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보면 침례 요한은 사람들의 죄를 당신들이 죄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죄를 짓고 있냐면은 하나님을 마땅히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마땅히 그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고 없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그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죄를 지적하면서 회개하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는 데 단순히 내가 어떤 한 가지, 두 가지 것을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되는 죄인이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잘못한 일을 하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손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손이 문제입니까? 손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손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침례 요한은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가 좋지 않은 열매를 맺으면 어디가 문제입니까? 그게 줄기가 문제입니까?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그 줄기를 도끼로 잘라버리면은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게 아닙니다. 저도 집에서 이제 화초를 키우고 있는데 그 입이 말라서 썩어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항상 그 뿌리가 썩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말을 하고 이런 모든 것들은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 내 근본적인 내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뿌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뿌리가 도끼에 맞아서 잘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거를 하나 고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죽어야 되는 죄인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한 사람이 그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제 13절부터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3-17).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도 그 침례를 받으러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인으로써 우리가 그 침례를 받기에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죄를 생각해보신 적도 없는 분입니다. 그 안에 죄 자체가 없는 분입니다. 그분이 오셔가지고 침례를 받으려 나오신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그것을 보고 즉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왜 당신이 나한테 침례를 받으러 오십니까? 당신은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주님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단지 주님만 으로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기를 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혼자만 의로우신 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우리의 자리에 서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서야 되는 그 죄인의 자리에, 그 죽음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 주님이 받으신 침례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의롭다함을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그분이 침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는 내 기뻐하는 자다."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내려서 그분 위에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또한 이분이 거룩한 분임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물과 성령이 함께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예수님의 그 사역의 시작은 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죽음의 자리에 서신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사역의 끝은 피로 끝나게 됩니다.마태복음 또 뒤로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7장입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5-46).

예수님의 이 사역의 마지막은 피였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굉장히 특이한 그런 형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사형 방법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목을 교수형을 하는 경우가 있고요. 어떤 경우에는 이제 단두대라고 해가지고 목을 자르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라는 것은 그 죄수를 나무에다가 그 손과 발을 못을 갖다가 박아가지고 나무에게 달아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별히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게 만들어가지고 한꺼번에 그냥 확 죽이는 것이 아니라 피를 계속 흘리게 만들어서 죽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피로 얼룩진 그러한 사형 방법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피를 흘리면서 천천히 죽게 만드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이제 오랜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러 오신 이 구원자께서 이 피로 얼룩진 이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까? 왜 이 피가 필요한 것입니까?
다시 한 번 성경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 17장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지고 계셨던 이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 죄를 속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피가 죄를 속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가는 항상 그 죄를 지은 자의 생명을 요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뭘로 갚아야 하냐면 여러분의 생명으로 갚아야 합니다. 다른 그에 못 미치는 것으로는 여러분의 죄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죄는 아주 비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그 피를 흘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죄 없는 사람의 피만이 이 죄를 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피로는 여러분의 죄 값을 치룰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죄인으로서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신의 형벌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 없는 분만이 그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만이,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그분만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피를 흘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대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거하실 수 있는 그분만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그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지적할 수 있는 분은 많습니다. 당신은 이런 이런 죄가 있습니다. 당신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사람이 죽어야 되는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분은 피로 끝나셨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피를 흘리시면서 그분은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분이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의 자리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참 이것에 대해서 믿을 만한 증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잠깐 사도행전 말씀을 한 곳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이제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살리십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증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기 어려운 그런 증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읽은 요한일서 5장에서도 이 증거가 참된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물과 피가 그리고 성령이 합하여 하나라고, 이것이 이 세 가지 증거가 일치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기회가 있으면 이제 경찰이나 검사나 판사들이 여러 가지 증거가 있는데 그 증거가 참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판단하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떻게 판단하냐면 여러 가지 증거가 일치하냐, 일치하지 않냐, 이거를 보고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한 가지 증거만 거짓으로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여러 가지 일들은 서로 연결돼서 일어납니다. 그래가지고 어떤 한 가지만 바꾸면 사실 다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다 바꿀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에 어떤 한 가지 증거를 조작하면은 티가 납니다. 사람들도 그걸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재판을 하게 될 때에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딱 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 여러 가지 증거가 다 일치하게 됩니다. 판사가 그걸 보고 "아, 이 증거가 다 일치하는구나. 그래서 이 사람 말이 맞다." 이렇게 판결을 내립니다. 검사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하나 다른 증거랑 안 맞는 게 딱 나오면은 이 사람이 하고 있는 말이 거짓말이구나. 이렇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5장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증거가 일치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물의 증거가, 이 피의 증거가, 이 성령의 증거가 일치한다. 바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 놀라게 되는 것이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쓰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 이 성경은 오랜 세월을 거쳐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성경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냥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애무새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한 성경책은, 한 성경 기록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다른 성경에서 다른 성경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면을 말하고 있지만 그 두개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차이가 있지만 그 두 개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증거를 볼 때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 믿음이라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 증거를 보고 믿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영생이라는 아주 귀한 선물을 주나 보다. 이렇게 잘못 생각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셔서 믿기 쉽게 하십니다. 많은 증거를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이 말씀을 이 증거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책에서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 이야기는 산신령이 나타나가지고 굉장히 믿기 어려운 말을 해줍니다. 저기 산에 가면 놀라운 약초가 있는데 고생스럽지만 그 약초를 가지고 오면은 너의 아픈 어머니가 그 약초를 먹고 낳을 것이다. 믿기 어려운 말인데 그 효자는 그 믿기 어려운 말을 믿어요. 오랜 고생을 거쳐서 그 약초를 가져옵니다. 산신령이 칭찬해줍니다. 아휴 믿기 어려운 것인데 너가 그렇게 내 말을 잘 믿어가지고 좋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하고 계십니다. 많은 증거를 주고 계십니다. 증거가 일치합니다. 우리는 이거 증거를 보고 이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믿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증거 세 가지가 또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전도서에 나오는데요.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 이것은 여러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있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떤 게 영원한 것이고 어떤 게 영원하지 않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 속에 희미하지만 그래서 여러분에게 허무감이 드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보게 될 때에 그것을 아쉬워하고 뭔가 영원한 것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볼 때마다 이게 다는 아닌데 이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증거를 가지고 어떤 것이 영원한 것인지 영혼하지 않은 것인지를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또 두 번째 중요한 증거는 양심이 있습니다. 이것도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두신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가지고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 이것도 희미하지만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못 배운 사람도 그 감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악한 거야, 이건 이기적인 거야, 이게 옳은 거지, 이렇게 판별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믿는 사람에게 그와 같이 또 주시는 세 번째 중요한 증거가 있습니다. 요한 1서로 우리가 읽은 말씀인데요.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5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세 번째 증거입니다. 이건 믿는 자에게만 주시는 증거고 놀라운 증거입니다. 믿는 자에게 이제 성령님을 여러분 안에 내주하시고 그리고 이제 성령께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참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계속 여러분은 마음 속에서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이 믿을 때 누리게 되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그런데 믿을 때 놀라운 증거가 있는가 하면 여러분이 믿지 않을 때에 굉장히 무서운 결과가 또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5장 10절에 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10).

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이 하나님의 증거를 받지 않는 것은 단순히 아유 못 믿겠어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당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말을 믿을 때에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어떤 말을 할 때 그걸 믿는다면 단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믿으니까 그 사람의 말을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인격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당신은 거짓말하는 존재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증거가 이렇게 많은데 믿지 않는 것은 왜 믿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당신을 거역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무서운 죄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당신은 거짓말쟁이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그런 죄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 마음 속에 증거가 있는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구원의 복을 누리는 그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