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 강성찬 형제님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5-26).
여기는 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욥이라는 사람이 말한 거에는 놀라운 점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특별히 첫번째로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여기서 나의 구속자라는 것은 조금 있다가 자세히 설명 드리겠지만 구원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천년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살아계시니"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죽음으로 끝난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나의 구속자다. 나의 구원자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하고있는 고백의 첫번째로 놀라운 점입니다. 그리고 또 역시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지만 그분은 후일에, 여기서는 그분이 유일하신 궁극적인 구원자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여러 신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분이 맨 마지막 최종적인 분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땅 위에 서실 것이라.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서 26절에 보면 자신의 부활을 또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 가죽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또는 "그 육체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리라"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먼저 소개를 드렸는데요. 이 말씀을 들었을때 욥이라는 사람은 뭔가 성경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인가보다. 그러니까 이런 고백을,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고백을 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욥은 굉장히 옛날 사람입니다. 이 성경책이 다 기록되기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이 욥기가 성경책의 거의 앞에, 창세기 11장 정도 되는 그정도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성경책이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있었던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욥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 자기가 이것을 안다,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잘 믿는것을 보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인가 보다. 그가 하는 사업마다 잘되고 그가 낳은 자식마다 잘 큰 그런 사람인가보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잘 고백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살펴볼텐데요. 욥은 고난받은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그것도 이유를 알지 못하게, 까닭없이, 자기가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지도 모르게 어려움을 당한 그런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의 고난'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여러분도 그런 말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욥의 고난을 받는다." 이런 표현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욥은 고난받은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이 욥에 대해서 잠깐 앞으로 가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 1:1-5).
여기보면 욥이 큰 부자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겨리요" 오백쌍이 있다는 거죠.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것이 제가 소 한마리, 양 한마리 가격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것이 꽤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가 오백겨리, 양이 칠천, 굉장히 부자입니다. 동방사람 중에 가장 큰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는 처음에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자식도 많았습니다.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참 자식도 많은 그런 복을 누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 사람의 끝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렇게 부자고 자식 복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한날에 그게 싹 사라져 버립니다. 여기서 쭉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제가 다 읽진 않겠습니다만, 제가 말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한 날에 그 재물들이 싹 빼앗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날에 자기 자식들이 싹 죽에 되었습니다. 이런 큰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몸에도 병이 들었습니다. 고칠수 없는 병, 그러니까 완전히 망한 것이죠.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앞에 읽었던 그런 구원자에 대해서 "내가 구원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말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못믿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 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 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그러할찌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욥 21:7-16).
여기보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보면 의인이 잘 살고 복을 받고 살아야 될것 같은데 의인이 오히려 고난을 받고, 욥처럼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악인이 잘 살고 장수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잘 살뿐 아니라 그들의 씨가, 그들의 자손도 그렇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손이 잘 살뿐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들도 낙태하지 않고 새끼들을 낳고 계속 그 가축들의 수가 늘어납니다. 잔치하며 지내다가 죽을때도 병들어서 고생하며 죽는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죽게 됩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냐면은 "하나님이 누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겠느냐? 하나님께 기도한즉 우리가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이런 부조리한 일들을 보고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욥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와서 그것을 설명해줍니다. 욥의 친구들은 와서 "내가 생각해 보니까 네가 잘못한 일이 있을거야. 너 잘못한 일이 있으니까 이런일이 일어났지."라고 말합니다. 계속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욥은 그런일을 당할만한 잘못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앞에 읽은대로 욥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그 생일날 아이들이 생일 잔치를 한 후에도 혹시나 마음으로라도 하나님께 범죄하였을까봐 제사를 드리고 조심히 행하던 그런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성경도 그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욥에게 왜 이와같은 불행이 일어났는지 욥 자신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 욥기를 계속 읽어보면은 왜 그런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지금 여러분에게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도 끝까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욥이 그런 고난을 받는지, 왜 그렇게 순전하고 정직한 욥이 고난을 받는지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욥은 죽을때까지도 왜 자신이 그런 고난을 받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내가 아는게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받는지, 왜 의인이 고통을 받고 악인이 복을 받는지 그것은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아는것, 이거 하나는 안다. 그게 바로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신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시간 말씀들고자 하는것도 이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내가 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러한 일을 하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픈가? 그런 하나님은 내가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고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이유없이, 까닭없이, 고난받은 자가 욥입니다. 그러한 욥도 "나는 하나님을 알고있다. 내 구원자를 안다. 그분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실것을 안다."고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와같이 믿을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라고 하나님께서 이 욥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면, 어떻게 욥이 그와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었는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구속자'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구속자라고 하는것은 성경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특별한 단어입니다. 그 구속자에 대해서 나와있는 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창 48:15-16).
여기서 보면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건지다'고 되어 있는데, 앞에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이 '구속자'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부분이 이 48장 16절,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입니다. 그래서 구속자라는 것은 우리를 환난에서 건지시는 분입니다. 이게 구속자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야곱이 이 말을 하고 있는데요. 누구를 가리켜서 건졌다고 말하고 있느냐면 하나님을 가리켜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여호와의 사자에 대해서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분, "나를 건지신 것처럼 나의 자손들도 그렇게 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속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여러분을 모든 환난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참으로 구원하실분, 우리를 참으로 구속하실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처음부터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그러한 지식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있지는 못했지만 제일 중요한 이 한가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속자이시다.' 그리고 그것이 욥도 가지고 있었던 지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도 알기를 원하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다른 많은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야 된다. 하나님이 꼭 이것은 알아야 된다고 우리에게 계속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범하였을 때, 그 사단의 미혹에 속아서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알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감추거나 모르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실 것을 바로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여자의 후손"이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정녀 마리아, 그 여자를 통해서 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는 거룩하신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도록, 죄는 항상 우리에게 어두움을 가져다 줍니다. 항상 우리가 알지 못하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가운데 우리에게 분명한 빛을 던져주십니다. 우리가 많은것들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이 구원자에 대해서 알아야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구원자를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우리의 대적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그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멸하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비록 그 사단은 구원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그 사단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지만 그분의 발꾼치를 상하게 살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패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사단의 종 되었던 가운데서 해방시키시고 영광으로 이끄실 것을 분명하게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처음부터 우리의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욥이 그것을 알고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맹목적으로 믿는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내가 그것이 다 이해되어야지 믿겠다."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입니다. 참으로 저희 인생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 여러가지로 우리 마음을 방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잠시 내어두고,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이해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너무나 중요하게 보였던 인생의 큰 문제들이 그 나라에 가서는 사소한 문제구나. 그냥 지나가는 장면이었구나, 라고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이것을 내가 아는것이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구나, 그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속자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그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 팔린 후에 그를 속량할 수 있나니 그 형제 중 하나가 속하거나 삼촌이나 사촌이 속하거나 그 근족 중 누구든지 속할 것이요 그가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속하되"(레 25:47-49).
여기보면 48절에 "속량하다" 그리고 49절에 "속하다" "속할 것이요" 이게 한자어라 좀 어려운데요. 이게 우리가 앞에 계속보고 있는 '구속자'와 같은 단어입니다. '건지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돈을 주고 그를 풀려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이제 어떤 사람이 파산하게 된 것입니다. 돈이 하나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빛을지게 되서 자신의 몸을 팔아서 노예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로서 종으로 일을 하고 있을때에, 자신의 친척 중에 누군가가 '근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친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돈을 내고, 그 사람의 몸값을 내고 풀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속량하다.' '건지다.' '구속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야곱이 "나를 모든 화난 가운데서 건지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환난 중에 하나가 자신이 파산하여서, 경제적으로 파산해서 자신의 몸이 팔린것을 말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특별히 중요하게 언급이 되고 있느냐면, 이게 우리 인생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경제적으로 파산한 경험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분입니까? 아니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보여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까?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있지 않고, 오히려 많은 빚 가운데서 허덕이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까? 성경은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때에 죄에게 우리가 팔려서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지을때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거짓말하고 또한 정직하지 못하게 다른 사람에게 불의하게 이득을 취하고 또한 성적인 다른 범죄를 저지르거나, 결혼관계가 아닌 다른 성적인 관계를 가져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렇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는 하지 않았어도, 마음 속으로도 음란 생각을 하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간음죄를 저지른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저것을 내가 가졌으면 좋겠는데, 나도 저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탐심을 했어도 그것은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둑질한 것과 같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를 범하는 것은 굉장히 값비싼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가볍게 그러한 말들, 그러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엄청난 손해를 끼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다른 사람의 차를 부딧쳐서 망가뜨린다면 여러분은 그 값을 물어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그 값을 물어내야 되는데 그 값이 여러분이 갚을 수 없을만큼 큰 것입니다. 성경은 그 죄의 대가가, 그 구속의 대가가 너무나 커서, 재물을 아무리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런 사람도 그것을 갚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그렇게 큰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의 값이 얼마인지 알고 있습니까?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은 죄의 대가는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내야지만 갚을 수 있는것이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의 값이 비싼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 인생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죄로 말미암아 파산한 존재입니다. 이 죄를 갚을 수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로 말미암아 파산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 구속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 죄의 값을 치뤄주고 나를 건져내야 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와같은 우리의 형편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 구속자가 어떤일을 하는지, 이것을 레위기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단지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파산한 상태인지를 알고, 여러분을 갚주고 그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람, 그 사람, 그 구속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도록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이제 앞에 말씀드린대로 이 구속이라는 것이 죄 사함을 받는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제가 말씀을 읽어 드렸습니다. 여기서는 분명하게 구속이라는 것이 단지 우리가 파산하는데서 건져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구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구속하였음이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이제 여러분의 죄도 그와같이 깨끗하게 사해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해지는 것을 바라고, 간절히 구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렇다면 내가 너의 죄를 이와같이 깨끗게 하리라고 말슴하시면서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참으로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파산하고 누군가 나의 죄를 깨끗게 해줄 구속자를 필요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깨끗게 해주실 것입니다. 또 이 구속자에 대해서 성경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속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욥은 특이한 말을 합니다. "내가 알기에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그리고 "후일에"라고 말합니다. 이 '후일'이라는 것이 여기 나와있는 것처럼 마지막이라고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속자에 대해서, 그분에 대해서, 그분은 마지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후일'이라는 것과 '마지막'이라는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라는 표현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구속하실 유일하신 분입니다. 다른 어떤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신이라고 불리는 많은 존재가 있지만 그것은 모두 우상이며 유일하게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한분 뿐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에 대해서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
여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곧 산자라" 이것은 욥이 이와같은 고백을 했던것과 같습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그분은 곧 산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중이니" 여기서도 우리 주님께서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사역을 온전히 완성하셨기 때문에, 그 후에 다른 누가와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더할일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 후에 와서 내가 당신의 구속자라고 말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구속자는 아무나 될수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제한 조건이 있는것이 이 구속자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읽은 것처럼 구속자는 첫번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모든 환난에서 건지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우리의 가까운 근족이어야 됩니다. 우리의 형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까 레위기에서 누가 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냥 돈 많은 아무나 와서 빚을 갚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근족 중에 형제 중에 하나가 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속이라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대신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돈만내고 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내가 대신한다. 저 종으로 팔린, 파산한, 저 죄인인 사람을 내가 대신한다는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가까운 근족이, 그 사람의 형제가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한 군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6-18).
여기 기록된 말씀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러 오셨는가? 천사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와 같은 혈육을 입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오셔서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 몸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리에 대신 서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앞에서 제가 죄의 값이 비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죄의 값은 여러분의 생명을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지불해야 되는 그 값을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사람으로 오셔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바로 여러분은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판받아 죽어야 되는 그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를 흘리시고 여러분을 구속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구속의 의미와 그 구속자가 누구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가지를 여러분에게 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구속자가 있어도, 구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여러분을 구원하기를 원해야 됩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여러분에게 돈을 주기를 원치 않는다면, 여러분을 구원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심지어 여러분이 "나는 구원받을 필요가 없어. 내가 왜 구원받아야 돼?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그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하여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가지 이것에 대해서 구약성경으로 가서 한 군데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룻 3:12).
여기서 ;기업을 무르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보고 있는 '속하다' 구속하다' 이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속하려고, 구속하려고 하고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룻 3:12-13).
여기서 뭘 말하고 있느냐면, 그 구속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친척이 여러명 있지요. 그런데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구속할 수 있는 자격을 먼저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빚을 갚아주고 싶은데 나보다 자격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먼저 행할 수 있게 해야된다. 그것이 규칙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먼저 그 빚을 갚아주면 그 사람이 하게 하겠다. 그런데 그 사람이 원치 않는다면, 그러면 내가 분명히 맹세하지만 내가 하겠다. 나는 그것을 정말로 하고싶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격이 있는, 더 가까운 친척이 그것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손해가 있으니까, 빚을 갚아준다는게 손해가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희생해서 그것을 해야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고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나는 그것을 꼭 하고 싶다. 왜냐하면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재산에 손해가 나도 나는 그것을 꼭 하고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 부분을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손해가 있어도 너를 꼭 구속하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너를 꼭 구속하겠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하고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갚을 치루셨냐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까지도 여러분을 구속하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 이 욥처럼 동일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그분은 산자요, 그리고 나중이다." "그분이 유일한 나의 구속자다." "그가 이 땅에 서실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나처럼 사람으로 오셔서 이 땅에 서실 것이다." 여기서 서신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선다는 것은 그냥 일어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대신해서, 이 파산한 사람을 대신해서 내가 그 사람의 법적인 대리인으로서 법정에 선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대신해서 내가 모든것을 감당하겠다. 그 사람이 받아야 되는 모든 법적인 책임을 내가 대신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 구속자가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여러분을 위해서 이제 그 모든 송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시고 모든 죄값을 치루시고 여러분을 대신해서 말해주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놀라운 구속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구속자가 있어도 여러분이 욥처럼 "나의 구속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욥은 그냥 구속자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끝난것이 아니라 이분은 나의 구속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내가 알고있는 것은 이거 하나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신다." 여러분도 이와같이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래,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이런이런 일을 하셨어."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속자다. 나를 위해 살아계신다. 나를 위해 대신 서실 것이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나를위해 모든 죄 사하는 희생제사를 치루셨다." 라고 말씀하시면 참으로 이 구속을 누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욥의 고백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은 죽었지만 욥이 고백한 것처러 그는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 고백을 한다면 부활하여 죽음이 여러분을 더이상 주장하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또한 이 땅에 있을때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놀라운 영광의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이와같은 고백으로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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