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로마서 7장 11-13절

박이레 2023. 2. 26. 15:44

성경읽기 : 로마서 7장 11-13절

성경읽기 : 로마서 7장 11-13절(요약)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롬7:11-13, 개역한글)
 
 
- 11절부터 율법에 대한 쓰임과 그 율법이 선한것이냐, 악한것인가를 더 보충해서 말씀하고 있다. 율법에 내 자신을 비추어 봤을때 7장과 8장에 있는데까지 나아간다.
 
'나를 속이고' 를 생각할때 창세기에서 하와가 뱀에게 꾀임을 당해서 속아서 선악과를 먹은것을 생각하게 된다. 선악과를 하와를 죽인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하와가 계명을 깨뜨림으로 그 죄로 죽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율법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킬수 없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을 비췸받을수 있다. 계명이나 하나님의 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것이 문제이다.
 
- '속이고' 이는 원어로 미혹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이기 때문에 사단이 미혹하지 않는다고 할수 없다. 사단의 미혹은 오늘날도 계속 된다. 계속 공격해서 믿는 성도가 원치않는 죄를 짓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지만 감사할수 있는것은 율법에서 벗어났을뿐 아니라 사망에서도 구속받았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정죄에서 자유할수 있다.
 
'나를 죽였는지라' 이는 넘어짐을 말하는 것이지 완전한 파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단은 우리를 죽일수 있는 권리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7:12, 개역한글)
 
율법과 계명은 원어적으로 같은 단어이다. 율법은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다.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을 총칭해서 뜻한다.
율법과 계명이 선하고 거룩함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거룩하며 선하시며 의로우심을 말씀한다.
'의로우심'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다루심에 있어서 절대적인 공의로 행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선하도다' 선함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Q. 13절에서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을 명확하게 해석해 주실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듯 이해가 되면서도 또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롬7:13, 개역한글)
 
A. '그런즉 선한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라고 시작한다. 사도는 지금까지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것이라고 계속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율법을 우리 자신에 비춰보면 어떠한가? 율법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을때 더욱더 자신이 더럽고 초라한 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율법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지어서 사망에 처하게 되는것은 아니라고 하는것이다. 인간이 사망에 처하는것은 인간이 가진 죄 때문이다. 율법은 죄가 죄답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때 자신이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인간의 죄의 실체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게 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어떤 측면을 가지고 노력한다고 해도 벗어날수 없는, 자신이 심각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줌으로서, 하나님의 자비하심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가게 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수는 없지만 인간의 죄를 심각하게 드러나게 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찾을수밖에 없게 한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라는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율법이 있음으로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분명한 죄인이고 사망아래 있는 자라는것을 드러내는 구절로 생각할수 있다.
 
- 3장에서 바울 형제님께서는 인생이 의롭게 되는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언급되었다. 그 증거가 4장에 제시되었고, 5장에서는 이 구원이 얼마나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말씀한다. 그렇다면 생각할수 있는 질문들이 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죄를 지어도 무방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할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을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라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율법이 우리를 거룩하게 될수 없고 은혜로 거룩하게 되는것을 말씀하고 있다. 7장에 와서는 그렇다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율법은 그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율법을 통해서 인생이 구원을 얻을수 없다. 율법을 지킴으로 거룩함에 이를수 없음을 7장을 말씀하고 있다.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이와같은 표현방식을 통해서 바울 형제님은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씀할때 이에 반대하는 질문을 할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대답하고 계시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12절) 원인은 율법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죄를 가진 인생에게 있다. 그래서 구원받기전의 우리를 한글자로 표현한다면 죄라고 할수 있다. 아무리 거룩한 인생을 추구한다고 한들 다 죄를 짓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을 알게 해주는 역할이 율법의 역할이다. 13절에서 나오는 질문은 '율법이 선하다면 선한것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사망이 오는가?' 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율법 때문에 사망이 이른것이 아니고 죄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재판장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그 판결이 집행되어 죽었다. 그가 죽은 이유는 법 때문이 아니라 그 선고를 받을수 밖에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저희가 성경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죄의 개념을 이야기 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규범을 기준을 가지고 행한다. 그러나 그 기준은 다 다르고 일관되지 못하고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와 보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율법이 있고 율법앞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알게하는 것이다. 이 죄에 대해서 알게 한다는 것이 세상에서 논하는 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죄가 죄되게 한다' 곧, 자기 자신을 죄임임을 율법을 비추어서 알게되는 것으로 보인다.
 
- 11절과 13절을 약간 다르게 생각할수 있다. 11절은 계명 때문에 죽은것처럼 얘기하는데 13절은 선한것 때문에 사망에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한다.
'죄가 더욱 죄 되게 한다'라는 구절을 생각해 볼때, 우리가 날이 더울때 누구나 날이 덥다고 느낀다. 그러나 정확한 더위를 알기 위해서는 온도계와 습도계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은 이와같은 온도계와 습도계와 같다. 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도구이다.
율법과 계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명확하게 볼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죄 때문에 죽을수밖에 구제받아야만 하는 멸망할수밖에 없는 사람임을 명확하게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13절에 대한 관주가 누가복음 20장 16절의 예가 나온다.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기고 주인이 타국에 갔고 세가 받을때가 되서 종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이 세를 바치지 않고 종들을 때리고 죽였다. 
이 관주 말씀과의 연관성을 생각할때 볼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합당히 받을것을 요구하시지만 그에대한 반응이 농부들과 같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7:14, 개역한글)
 
'죄 아래 팔렸도다' 이 시점이 언제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 7절에서는 탐심을 언급한다. 8절에서는 발전되어 각양탐심이 된다. 죄는 들어오면 그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한다. 동일하게 11절에 죄는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하는데, 속임으로 말미암아 사망으로 인도한다. 죄의 배후에 있는 사단의 속성이 속이는 것을 알수있다. 또한 육신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때, 혹은 안다 하더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수 없다. 그러나 죄는 우리에게 '아니야 너는 율법을 다 지킬수 있어.'라고 속이는 것이다.
 
13절 이하는 영어성경으로 과거시제가 사용되었지만 14절부터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14절의 시작이 for로 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의 시작임을 알수 있다.
곧, 율법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정말로 선하게 하느냐고 말하고 있다. 만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다 지킨다고 한다면 그것은 겉으로만 율법을 지키고 눈에 보이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개처럼 무시하게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누가복음에 나온다. 율법의 기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참된 율법의 기능에 내가 순종하고자 할때 발현이 되는 것이다. 14절부터는 사람의 내밀한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14~15절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율법의 기능이 기능하고 있는 사람임을 알수 있다.
 
- 구원받고 죄인이라는 사람이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자신이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을 인식할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