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주님의 발 앞에 세번 나아온 마리아 > 23년 2월 5일 일요일(요약1) / 김윤철 형제님
주님의 발 앞에 세번 나타난 베다니 마리아에 대해서 교제하고자 합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향유를 붓고 예배를 드린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을 보고자 합니다.
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38-42, 개역한글)
베다니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이해 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을 따라 모임에 나와 말씀을 듣기 때문에 복음을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자리는 들음의 자리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은 들음의 장소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르다는 어떠했나요? 마르다는 분주하고 근심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인 마리아를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은가요? 여러가지를 염려하고 근심하며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 않나요? 그와 같은 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걸림돌이 되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42, 개역한글)
분주한 마르다에게 주님께서는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십니다. 마르다에게 필요한 한가지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한가지입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택할 것인가? 마리아는 그것을 택했습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이 시간 그냥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깨닫기를 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11:31-35, 개역한글)
우리는 요한복음 11장에서 마리아가 우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주님의 발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슬픔을 주님의 발 앞에 가지고 나와 엎드려 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무덤에 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나아갔습니다. 마리아는 참된 구주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11:32, 개역한글)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눈물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눈물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보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눈물과 슬픔은 오빠인 나사로의 죽음입니다. 나사로의 병듬에도 오지 않으셨던 주님께서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오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무력했습니다. 사망이 주인 역할을 하고 있을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시고 우시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대속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과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믿는 자는 이와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앞에 엎드릴 수 있고, 주님 앞에서 울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나아올때까지 기다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우심과 나사로를 살리심을 보고 더욱 더 깊이 깨닫습니다.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12:1-8, 개역한글)
이제 마리아가 드렸던 예배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죽으심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 자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주님이 구주이심을 아는 사람이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나온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입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에 양으로 죽으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것을 이해하고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습니다. 이 시기는 참으로 적절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잡히실 때에 다 도망갔습니다. 부활은 더더욱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베다니 마리아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요12:7, 개역한글)
마리아가 이 향유를 부은 것은 이 시체에 부은 것이고, 주님의 죽으심이 자기의 죄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주님의 죽으심에 감사드리기 위해서 이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계실때에 제자들은 도망가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여자들이 자기 가슴을 칠때에 이 베다니 마리아는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 중에 베다니 마리아는 없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늦게 주님께 향유를 가지고 갔습니다.
베다니 마리아가 드린 향유는 참으로 시기가 적절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죽으심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비싼 향유를 예비합니다. 그런데 그 오빠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 오빠를 위해서 그 향유를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서 예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머리와 발에 모두 향유를 부은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틀 전에 향유를 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7장에 나온 여인은 죄인인 여자라고 나와 있어서 베다니 마리아가 아닌 다른 여인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 주님의 죽으심을 알고 있던 마리마는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을때 다른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칭찬하셨습니다.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26:12-13, 개역한글)
마지막으로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3-27, 개역한글)
마르다는 잘못된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님께서 다시 한번 이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들도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신 일을 깨닫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는 일이 있기를 원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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