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그리스도를 찾은 동방박사 > 2023년 1월 7일 토요일(요약) / 이명인 형제님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 중에 일부분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개역한글)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외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받는자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받는 자들이 기꺼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닌데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개역한글)
이 세상에는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지만 참 신은 유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것이 구원이라 하셨습니다.
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12, 개역한글)
여기에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실때에 세 부류의 사람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한부류는 동방박사들이고 또 하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고 또 하나는 왕입니다. 이 세부류의 사람들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세 부류의 반응이 다 다릅니다. 참으로 중요합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구원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이 세부류가 다 알았어요. 그런데 이 아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구약 성경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아는것은 아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알려고 한 이유는 한 태양 아래 두 왕이 없다, 다른 왕이 태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여러분에게도 있고 저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뭐하는 마음이 실행으로 옮겨 집니다. 헤롯은 이 알지 못하는 이 왕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합니다. 그래서 찾습니다. 백성과 대자사장과 서기관을 모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어디서 나는지 뭍습니다. 그리고 금방 대답합니다.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2:5-6, 개역한글)
동방의 박사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빛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별, 새벽별이신 주님을 만나기를 예비했습니다. 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이들은 수개월동안 낙타를 타고 먼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 마굿간에서 탄생하시고 구유에 그 아기를 누였습니다. 그날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그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을 찾아가서 이 소식을 묻습니다. 그리고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박사들이 성을 떠날때에 또 별이 그들을 인도합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1, 개역한글)
집에 들어갑니다. 장소가 구유가 아니라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오는동안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어느 기간동안 부정하고 예루살렘에서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고 어느 장소에 거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물을 그분께 드립니다. 마태복음 2장의 중심은 아기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물을 아기, 메시아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분은 아기로, 사람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분께 엎드려" 다른 번역으로는 무릎을 꿇고입니다. 황금은 그분의 높으심, 주권자이심, 다스리심을 나타냅니다. 유향, 그분은 하나님의 향기를 나타내시며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몰약, 이것은 인성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죽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답할때에 또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주님께서는 거기서 더해 말씀하셨습니다.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3-34, 개역한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신것은 단번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말째 아들이었습니다. 많은 형들이 있었기에 사무엘이 올때에도 말째는 사무엘 앞에 세우지 않고 양을 치게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때에도 가족들이 주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주님이 부화랗신 후에 그들이 믿었습니다. 이처럼 다윗도 가족들에게 무시 당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사렘에 비하면 가난하고 작은 동네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성을 짓고 거기서 삽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에 오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것은 왕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천시 여김을 받았던 베들레헴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무리들을 보면서 목자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목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은 헤롯이 왕으로서 유대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사람이 아닌 에돔사람, 에서의 후손입니다. 당시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양떼를 돌아보고 있지 않고 자기 배를 불리는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양떼를 돌보시기 위해서 가난한 마을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3:17, 개역한글)
목자들이 주님께서 마굿간에 구유에 누워 계실때, 천사들의 기쁜 소식을 듣고 이렇게 얘기 합니다. "이제 가서 보자" "빨리가서"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찾았습니다.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눅2:15-16, 개역한글)
주님을 마침내 찾았나요? 이것이 괴거형인가요? 그래야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과거형이 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주님을 알현하고 경배하고 지시를 받고 다른길로 돌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구원받았나요?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 그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어릴때에 애굽에 내려가서 사셨습니다. 사실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할때 어떻게 했나요? 문 좌우 설주에 피를 바를뿐만 아니라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어린양의 피가 발라지고 뿌려져야 합니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2:23, 개역한글)
그런데 구약 어디에도 '나사렛'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22:6, 개역한글)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은, 멸시와 조롱을 받기 위해서 나사렛에 가서 사신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인 나다나엘까지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겠느냐?"라고 할만큼 나사렛은 근본도 없고 천한 곳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사렛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17-19, 개역한글)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맨손으로 와서 맨손으로 가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죄로 말미암아 포로된 자이고 심판받을 자였습니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우리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합니다. 눌린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오셨다. 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뒤에 또 있는데 주님께서 읽지 않으셨습니다. 그 뒤는 신원의 날, 그때까지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하여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초임은 여기에 대항하지 않았기 때문입닌다.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눅4:21, 개역한글)
사람들은 근본도 없고 천한 사람,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밀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11:20, 개역한글)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11:23-24, 개역한글)
주님께서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떡을 먹고 배불러서 주님께 온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개역한글)
그리고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십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을 배척하고 주님을 팔고 빌라도에게 넘기고 유죄 판결을 하게 합니다. 주님은 죄 없으신 분입니다. 빌라도가 그것을 증거했습니다. 헤롯은 죄를 찾지 못해서 나에게 보냈다 하고, 빌라도의 아내는 저 선한 사람과 연관되지 말라고 했고, 로마의 백부장은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왜 죽으셨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개역한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으로 끝난것이 아니라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개역한글)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수 있습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2, 개역한글)
"다른길로 가라"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 말씀에 순종합니다. 내가 아는 길, 익숙한 길로 가는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적에게 지지 않는 길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에 주님을 영접하고 남은 생애가 주님이 말씀하신 길을 끝까지 가기를 바랍니다. 걸어가는게 아니라 달려가는 것이죠. 이 남은 믿음의 길을, 순종의 길을 동방박사와 같이 달려가기를 소원합니다.
'특별집회 > 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년 학생캠프 질의 응답 (1) | 2024.01.20 |
---|---|
23년 학생캠프를 마치며.. (0) | 2023.01.07 |
복음 : 우슬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1) | 2023.01.07 |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0) | 2023.01.07 |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본 세명의 제자 (0) | 202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