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박이레 2023. 1. 7. 10:49

<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 2023년 1월 7일 토요일(요약) / 강성찬 형제님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19-21, 개역한글)

예전에 청년들 야유회에서 성경퀴즈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얼마나 지었을까요?' 인데 이게 틀리게 하려고 한 내용입니다. 답은 46년인데 이것을 유대인들은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숫자들이 나옵니다. 어떤 숫자들은 굉장히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수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수는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를 우리는 금방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 갈 때에 그 배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276명이라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그 죄수들을 죽이자고 하고 그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영혼의 숫자, 생명의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한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몇년동안 병을 앓는지도 기록해 놓으십니다. 38년된 병자 12년된 병자, 저도 얼마전에 뇌경색이라는 심각한 병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장에 구멍을 막는 시술도 하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언제 그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납니다. 그 고침을 받은 병자도 기억이 잘 안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억하고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록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저의 셋째 아이가 영어 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영어학원 반 이름이 이렇더라고요. '스텐포드' '하버드' 그런데 둘째 아이도 영어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그 반 이름이 이상해요. '1.5' '2.5' '3.5' 왜 그럴까요? 배치고사를 봐서 1등급이 나오면 1.5 반을 가는 것입니다. 2등급이 나오면 2.5 반을 갑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내신이 중요해서 내신이 깡패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내신이 신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내신 등급이 가치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숫자가 왜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24:1-2, 개역한글)

제자들도 성전에 대해서 아주 자랑스럽게 주님께 말합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아름다운 큰 대리석으로 성전을 만든 것입니다. 그 건물은 그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건물 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23:37-39, 개역한글)

그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하나도 돌위에 돟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은, 그 성전에 주님이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떠나고 껍데기만 있는 성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46년동안 지었어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물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거절하였을때 하나님의 영광이신 주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성전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은 모든 것은 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않고 다 무너질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8, 개역한글)

우선 첫번째로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강조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사실입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그것은 단 하나의 것이지만 그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않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고 뺏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고 말씀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할때에 실패해버린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7, 개역한글)

안식후 첫날, 여기도 첫번째라는 숫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때에 안식후 첫날에 모여서 떡을떼며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안식후 첫날에 주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요일이 쉬는 날이어서 이것이 자연스럽지만 어떤 나라는 일요일이 쉬는 날이 아니기도 합니다. 네팔은 일요일이 쉬는날이 아니라서 일찍 일어나서 직장에 가기전에 모여서 주님을 기념하고 직장에 갑니다. 그것이 힘들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에 그것을 기념하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막8:19-20, 개역한글)

주님께서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일을 잘 알것 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배불리 먹고 떡이 남았고 그 남은 떡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일곱개로 사천명을 먹이셨을때 남은 조각을 모으자 일곱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 남은 수를 귀히 여기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왜 남았을까도 궁금합니다.
이런 캠프를 하다보면 학생들이 얼만큼 먹을 것인지를 예측해야 합니다. 모자라서도 안되고 남아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딱 맞출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충분히 그것을 예측하실수 있으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왜 남았을까를 생각합니다.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6:11-13, 개역한글)

11절에 "저희의 원대로 주신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의 원대로 주시기 위해서 남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집에 피자가 얼마가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원대로 먹지 않고 그 양에 맞춰 먹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원대로 주시기 위해서, 지금 무한정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희가 주는것은 정확하게 배분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자원을 잘 배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한정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그들의 필요대로 다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또 주님은 낭비하는 분이 아닙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남은 조각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은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제가 한가지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20대 청년 시절에 집회가 있으면 그 집회를 알리는 플랜카드를 걸었습니다. 종이를 잘라서 누구누구의 성도집회라고 적어서 붙여 놓는 것입니다. 한번은 외국 형제님이 저희 모임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드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이름이 영어고 이름이 철자가 길어서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만들다보니까 새벽 3시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체념하고 그런 가운데 또 주님께 도와 달라고 하고, 새벽 4시에 다 맞출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날 아침에 그 집회가 취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쓰레기 통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하라." 남은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그 글자가 사용되지 못했지만, 분명히 주님께서 그것을 낭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학생들도 그런 경험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임의 집회 가운데서 성경읽기를 할때에 말씀을 준비해 옵니다. 그런데 다른 연배 있으신 형제님이 내가 준비해 온 교제보다 더 좋은 교제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교제를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준비한것으로 다른 성도님들과 나눠지지 못했지만 그것이 주님의 광주리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버려지지 않고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주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모임생활 뿐만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신등급으로 여러분의 학교생활이 평가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학생생활 가운데 여러분이 주님을 의지해서, 주님과 말씀 가운데서 보낸 시간이라면 그것은 결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없어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의 모든 시간이 주님과 함께 보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숫자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위해서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