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교회에게 주신 축복 > 2022년 11월 27일 일요일(요약2) / 전의석 형제님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7, 개역한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1, 개역한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17, 개역한글)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2:26-28, 개역한글)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3:5-6, 개역한글)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3:12-13, 개역한글)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3:21-22, 개역한글)
각 일곱개의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곱교회에 약속하신 주님의 일곱개의 축복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복을 허락하셨는데 내가 이것을 누리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복을 누리는 조건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잊었습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주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가지 축제들을 준비하고 거기에 마음을 쏟고 거기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저희들에게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지식이 될수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축복은 영원하며 이것을 지역교회에서 누리고 살때에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쁨이 있다는 것입닌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교회는 앞서 우리가 살펴 보았습니다. 허락받은 자들에게 영원한 과실을 주어 먹게해서 영원한 복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하신 약속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정녕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이기는 자'는 구원받은, 교회 가운데로 들어온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이기기 위해서 싸우거나 쟁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서머나 교회는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은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면류관이 있고 경기에서 이긴 자들에게 주는 상급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면류관은 죽도록 충성한, 상급의 면류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면류관이 다 이것입니다.
세번째 버가모 교회는 감추어진 만나입니다. 이는 항아리 속에 있는 만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 언약궤 안에 항아리에 담은 만나와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담대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는 문제가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에게 주신 축복음 우상의 제물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는 돌항아리 속에 있는 감추었던 만나를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저희들은 좋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만나, 썩지않는 만나입니다. 그리고 흰돌을 주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돌은 대부분 회색이나 거무튀튀합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보게 되었을때 저희들의 마음에 부담이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가운데 머물러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말씀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함이고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평안을 얻게하셨습니다. 흰돌에는 율법이 아니라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 이름을 받은 사람밖에 알수 없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사래가 사라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받았던 놀라운 축복과 이름이 흰돌 가운데 새롭게 적혀 있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잘 안다는 것입니다. 바울 형제님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그의 본 이름은 사울이었지만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바꾸시고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새벽별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계2:25, 개역한글)
주님이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곧 오십니다. 만일 이러한 소망이 없다면 저희는 절망 가운데 살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야만 온전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것을 주님께서 오실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쉽지 않겠습니다만 저희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새벽별을 붇잡음으로 아침이 온다는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제게 뭍습니다. 내가 새벽별을 붙잡고 있는가? 이러한 소망을 모든 형제 자매님들에게 주님께서는 허락하고 계십니다.
다섯번째는 사데교회입니다. 사도교회는 흰옷을 입히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바냐에 있는 말씀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물론 환상입니다만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을 입은 선 대제사장을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시켜서 그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으로 입힙니다. 하나님께서는 흰옷을 입을것을 말씀합니다. 저희는 때때로 일기나 여러가지를 종이에 씁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바래지고 색이 변합니다. 심지어 돌판에 세겨진 광개토대왕비도 비가오고 세월이 흐르면 많이 훼손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려지지 않는다고 하고 천사들과 아버지 앞에서 저희를 시인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높임이 아니고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이 세상을 운행하고 계신 분께서 저희들의 삶을 인정해 주신다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겠습니까?
여섯번째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언가를 나타내는 건물의 맡침이 된다는 것만으로 감당할수 없는 축복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기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건물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적인 보수공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건물은 완전하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 건물에 저희들이 기둥이 되고 그 기둥에 이름을 기록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다 환경과 그 능력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아는 가운데 동일한 섬김을 같이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인데요. 이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는데 이 교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1, 개역한글)
여기에 참 소망이 있습니다. 저희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축복이 다른 교회에 비해서 뒤쳐질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축복을 허락하시고 그에 못지않은 공평한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저희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시대에 살고있다고 많은 형제님들이 분별하십니다. 저희는 부자이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헐벗고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앉게하는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부르실 때가 있고 주님을 만날때가 분명히 다가옵니다. 저희들이 이것을 너무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축복을 생각하고 소망하는 삶을 산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더 잘 누릴수 있겠다고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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