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6장 : 사람의 연약과 하나님의 돌보심 > 2022년 11월 13일 일요일(요약2) / 전의석 형제님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이었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8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창16:1-16, 개역한글)
형제님께서 덕언 시간에 아브라함의 긍정적인 믿음을 나타내는 모습에 대해서 교제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히브리서도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제일먼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바로 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과정이 필요했고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고나서 바로 큰 믿음을 나타낼수 있는가 하면, 주님의 도우심이 있다면 그럴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러가지 실패과 어려움을 통해서 그런 과정을 겪게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16장에서 하갈과 사래의 일을 보면서 되어지는 일을 보고자 합니다.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여종이 있는데 애굽사람이고 이름은 하갈입니다. 사래가 생산치 못한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처해진 환경이 다르기에 우리들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소원과 눌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여러가지 시도들을 할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래가 갈대아우르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머물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셨지만 그들이 연약하기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은 세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애굽의 왕이 여러가지를 아브라함에게 허락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겼을때에 그 재물을 소돔왕에게 다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애굽에 있는것을 놓지않고 가나안 땅으로 가지고 왔는가를 생각할때에 저희들에게 많은 교훈이 됩니다. 저희들은 구원받고 세상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따로 부르사 교회에 더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애굽에 있는 하갈과 같이 저희들이 세상에 있는것을 가지고와서 뭔가를 이뤄보고자 하는 도전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래에게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16:2, 개역한글)
나는 이미 틀렸고, 그 약속을 이룰수가 없으니, 어째든 이 여종을 통해서 후사를 얻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제법 지혜로운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은 생각이고 그가 실패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사래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들을때에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실패입니다.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창21:9-11, 개역한글)
아브라함이 사래의 말을 듣지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사라와 아이를 가졌다면 이러한 근심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상황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의 결정은 아브라함이 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고안해서 그들은 행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멸시가 생겼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 개역한글)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16:6, 개역한글)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따라서 행했을때에 그 가정에 멸시와 학대가 생깁니다.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해 놓고는 왜 그 잘못이 아브라함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했을때 잘 되면 그것은 자기의 덕이고 잘못되면 그것은 아브라함의 잘못이라고 우기는 완고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 가운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생각하게 됩니다.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다윗에 대한 굉장한 불만과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손녀, 자기 자손을 그런식으로 대접하고 행했던 왕을 하나님께서 그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마음 가운데 그는 판단하고 다윗을 반역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대하시는가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때로는 저희가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 앞에 펼쳐질수 있습니다. 저희의 생각과 이해대로 삶을 사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어느 시점에서 말씀하시는 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고 진정한 순종입니다.
사래는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약속을 받았을 것이지만 이러한 잘못으로 그는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전주에 교제드린 리브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죽을때까지 보지 못하게 됩니다.
저희들의 생각을 바꿔서 하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여주인을 멸시했습니다. 그러자 학대를 당하고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창16:8, 개역한글)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이 네번 언급되어 있는데 그가 첫번째로 언급되었을때 하갈이 어떠한 자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입니다. 그는 여주인을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저희들은 여러가지 다툼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만 하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을 피하지 말고 돌아가서 인내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후 15년 정도 후에 이스마엘과 하갈이 떠나게 됩니다. 그때까지 하갈은 자기 여주인을 섬기는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위치였기 떄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성도님들을 보고 나는 왜 그렇게 안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위치인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이 아니었지만, 그도 하나님께서 열두 방백의 수장이 되게 하셨고 아브라함이 죽었을때 이삭과 함께 장사합니다.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0-11,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에게 축복하시고 또한 하나님께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그 가운데 네 고통을 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과 우리의 슬픔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다 알수 없지만 그 고통과 슬픔을 아십니다. 이것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여기계신 성도님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갈은 다시 자기 여주인에게 돌아가게 되고 이스라멜을 낳았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창16:16, 개역한글)
형제 자매님들께서 아시는것과 같이 하갈이 이스마엘을 데리고 광야로 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래가 함께 유업을 받을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목이 말라서 죽게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두번째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꼐서는 저희들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가까이서 저희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동일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이러한 위로와 필요가 공급된다는 것을 교훈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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