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으로 그분을 알수있다

박이레 2022. 6. 22. 14:12

< 복음 :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으로 그분을 알수 있다 > 22년 6월 19일 / 강성찬 형제님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1-17).

여기 예수님께서 명절에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로치면 추석과 같은 큰 명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이죠. 그랬을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서로 수군거립니다. 서로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아니다.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서로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만먁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런 분이야."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이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 앞에 나타나셨다면,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그 하시는 일을 보고 "예수님은 이런 분이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나타나셔서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시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라면 나같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님을 만나 봤었다면 예수님은 바로 우리 사람들의 구원자라고 바로 알아봤을텐데,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희안하게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계속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도대체 이분은 누구야?" 이렇게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 예수님께서 그 이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수님을 보고, '아, 이분은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아 온 분이다.'는 것을 알아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나의 뜻을 행하려 한다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눈 앞에 있어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유대인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볼일 뿐인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니까요. 자기 생각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런이런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해주지 않으니까,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요 7:24).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합니다.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죠. 자기 눈으로,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에 맞아야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공의라는 것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이분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셨구나, 하는것을 우리는 금방 알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니까, 예수님을 계속 옳게 보지 못하고 '긴가, 아닌가?'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지, 그런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 하고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 그것을 알아보고 내가 이렇게 잘 하고 있는 것을 알아봐주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거리끼는 것으로, 부정한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지적인 우월함을 인정해 줘야 그 사람이 구원자다, 이렇게 합니다. 헬라인들, 그리스인들이 그렇습니다. 정말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이 정도 되야지, 정말 어느 한 사상을 만들고 그 철학적인 가르침을 해 줘야지, 그리고 우리가 그 정도로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인정해 줘야지, 그래야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류의 구원자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는다는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때, 자기의 도덕적인 기준, 자기의 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을때에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좋아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적인 기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적인 수준, 이게 좋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도 우리가 외모로 판단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눈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아마 중학생 정도 되었을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드라마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외국 드라마였던 것은데요. 잠깐 어떤 장면이 기억이 나는데요. 그 미래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의 모습인데 어두운 그런 모습입니다. 어떤 모습이냐면, 그 중에 하나가 방송국들이 굉장히 많아요.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국들이 많은데, 그 방송국들에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뉴스를 다 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가 진실인지를 알지 못하는 그런 시대를 다루고 있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게 인상이 깊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정말 그런 상황에서는 도대체 진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살고있는 지금 이 시대를 돌아봤을때, 제가 20년 전에 본 그 장면에 나온 것과 같은 시대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유투브를 보면, 이제 알고리즘이라고 하죠. 내가 좋아하는, 내가 듣고 싶어하는 소식만 잡아서 그것만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전부 자기가 듣고싶은 뉴스만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서로가 다 이게 진실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외모로 판단하는 것의 결국입니다. 자기 기준대로 사는 사람들의 결국입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더욱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방해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 듣고 싶은 것을 들려줄 수 있는, 그런 기술이 되는 시대인 것이죠.
여기도 그 사람들이 참된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은 계속 사람들이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야?" 하면서 수군수군 하면서 말하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뒷부분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요 7:40-52).

사람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또 한가지 요소가 여기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피상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사람들이 성경에 이렇게 나와있다고 말합니다. 자기들도, "나도 성경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온전한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온전한 지식이 아닌데도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결론을 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52절에 보면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였느니라" 여기 "상고하여 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너 성경을 한번 봐봐.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난적이 없어. 성경에 갈릴리에서 난 선지자가 있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갈릴리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성경을 보니까,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없잖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난 적이 있습니다. 요나가 그렇습니다. 유명한 선지자인데요. 요나가 어떤 면에서는, 그가 사흘날, 사흘밤을 큰 고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그런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를 구약성경에서 보면 그가 아밋대의 아들인데요. 열왕기하 14장 25절을 보면 그가 '가드헤벨'이라는 갈릴리 지역에서 난 선지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잠깐 소개가 되어 있지만 분명히 그는 갈릴리에서 난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 지역 가버나움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가버나움의 뜻이 '나움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나움'이라는 구약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갈릴리에서 난 선지자가 있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는 자기가 성경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들에게도 이와같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성경을 알고 있어. 성경이 이러이런 것을 말하고 있잖아." 그리고 그게 전부하고 생각하고, 나는 성경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이제 됐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성경은, 성경을 안다면 예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여러분이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정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구나, 알고, 인정하고, 그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기 전까지 여러분은 성경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여러분이 정직하게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요 7:42).

맞는 이야기 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고,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나올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성경은 이분이 나사렛 사람이며,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났지만,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부르신 것을 또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런 부분들을 모르고 이제 예수님에 대해서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성경을 온전히 알고 주님을 믿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성경을 제대로 아는 분들은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을 아는데 방해되는 것들이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요7:48).

당국자들, 바리새인들, 이 사람들은 그 유대인의 인도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공부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니까, 이 인도자들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높은 사람들 중에,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니? 잘 생각해봐. 예수님은 미혹하게 하는 사람이야. 우리의 구원자가 아니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잘못된 권위에 속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어떤 다른 종교적인 권위를 가진, 세상적인 명성을 가진, 어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말에 우리는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높은 명망있는 이름을 가진 어떤 교회 목사인가?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선택을 인도하고 계신가? 둘 중에 어떤 것인가? 우리는 단지 사람의 이름만 가지고 결정했을때,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이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중에 아무도 그를 믿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사람들의 말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 여기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유대인의 인도자들이 우리 중에 아무도 그를 믿는 자가 없다, 라고 그를 믿는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하니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요 7:51).

"우리는 그 사람의 하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행한 것을 안 다음에 판단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보고, 그리고나서 판단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냥 우리가 '아니야.'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라고 제대로 말한 것입니다. 참, 공의로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떤 말을 하셨는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이 듣고,이와 같은 반응을, 아주 흥미로운 반응을 보인 것을 먼저 보겠습니다. 45절, 46절에 다시 한번 보면, 유대인들의 인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자신의 하속들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냥 왔습니다. 그래서 "아니, 왜 그냥 왔느냐?"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요 7:45-46).

예수님의 말에 대해서 그들은 이렇게 반응한 것입니다. 참 놀라운 반응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경험할 수 없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군대라고 생각해 보았을때, 자신의 상관이 누구를 잡아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이 잡으러 가는거죠. 한명도 아니고 여러명이 갔습니다. 쉽게 분위기에 휩싸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갔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여러분 같으면 그것을 듣고 '아, 못잡겠다.' 하고 돌아오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 그들은 쉽게 그분의 권위를 거스려서, 그 말하는 것을 중단시키고, 그분을 잡아가지고 끌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빈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참 이세상에서 들리는 무수한 그 거짓 뉴스와 달리 그분의 말씀은 스스로 증명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성경을 읽을때에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우리에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권위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힘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거스려 내가 붙잡을 수 없는 그 힘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참,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그 내용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성경에서 계속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7장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 7:6).

우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 정곡을 콕 찌르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어떠한 존재인지, 우리는 정말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우리 때가 항상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만 하면 그냥 합니다. 다른게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것을 고려하지 않고, '아, 나 저게 하고 싶어.'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때에 움직이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는, 내 자신의 뜻보다 더 높은, 다른게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데 뭐, 내가 그렇게 계획을 세웠는데.' 그러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를 말해주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한 7절 말씀, 그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요 7:7).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세상적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참 주님께서 증거하신 것처럼, 세상은 악한 것입니다. 세상은 철저하게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러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있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분명하게 악하다, 라고 평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서로 "아,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네가 좋아하는 것인데,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지." 서로 악하다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서로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장려합니다. "너를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적인지를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요 7:19).

사람들는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연고없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악마적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귀는 이유없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비기고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귀를 따르는, 마귀의 종된 사람들이 또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연고없이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 예수님께서는 짦은 말씀이지만 우리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우리가 얼마나 세상적인지, 우리가 얼마나 마귀적인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정체를 드러내실뿐만 아니라 그렇게 우리가 계속 살다가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요 7:33-34).

그런 인생들, 자기 중심적이고,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그런 인생들,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와같이 살고 있다가, 그들은 이제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할것이다." 주님께서 계신 그 복된 하늘나라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지금 돌이킬 기회가 있지만, 그것은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있다가" 그들에게 기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을 따져보면, 이제 주님께서는 6개월 후에 하늘로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얼마 안있다가, 이제 그 예루살렘은 심판을 받아서 로마 군대에 짖밟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조금 있다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죄악 가운데 살고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돌아갈 날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교회에 나와서 복음말씀을 들으니까, 이렇게 있다가 언젠가는 구원받겠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조금 있다가" 조금이라고 분명하게 굳이 넣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에게 시간이 언제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지금 이때에, 참으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주님께로 돌이키기를 주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그리고 또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7-38).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아시고 그 가운데서 있다가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참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이해하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목마른 자로 아시고, 목마른 자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그 목마름을 아셨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참 부족함이 없는 분이신데, 어떻게 그 목마름을 아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마름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진 그 사람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어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그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목마름을 아시고 목말라 하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참 이것이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으로 몇장 뒤로 가셔서 보겠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이땅 가운데 계실때에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낫게 하시고, 그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그리고 오병이어를 가지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자신을 드리고, 십자가에 자신이 죽으시는 그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행하신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일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28-30).

여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놀라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앞에 읽은대로, 목마른 것은 죄인인 사람들이 목마른 것입니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에서 떠나 그들은 그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안에는 그 죄가 있어서 그러한 죄가 계속해서 사람들을 목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목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 내부에 있는 나의 이기심,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그 자기 뜻, 세상적인 정욕, 여러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더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을 끝끝내 거부하는 그 순종하지 않는 마음, 계속해서 우리로 목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놀랍게도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와 같이 죄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에 목마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지만 바로 우리의 죄를 그분이 대신 지시고 이제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시면서 그분이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또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참, 사람에게서 들을수 없는 놀라운 말씀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사람 중에 누가 죽을때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고 죽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그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다 이루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죽음 앞에서 자신이 이제까지 이룬 업적이 허물어지고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사람의 만든 일입니다. 하지만 이분은 죽음으로서 다 이루었다고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속죄 사역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 값을 다 치루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 아들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분 앞에 나아와서 그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분앞에 나아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신다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8).

여기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해결책을 아시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그 정체를 아시고 그 운명을 아시고 경고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초청하시고, 이제 필요한 모든 일을 이루시고, 다 이루셨다고 말씀 하시고 이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이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속의 죄가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성령님이 활동하시고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복이 계속적으로 우리 가운데서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믿는 것입니다. 38절에 나와있는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이 구원의 놀라운 선물을, 이 성령님의 선물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종 복음을 들으러 나오시는 분에게 하늘나라 가실 수 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믿으려고 해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나라 가실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때 "열심히 믿을려고 해요." 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믿는다는 것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을 자기가 종교적인 행위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계속 나오고 헌금을 많이 내고, 그런것을 열심히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뭔가를 해야 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자는" 이라고 했을때, 그것은 단순하게 그 앞에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나 목말라서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이것을 나를 믿는자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저는 정말 목마릅니다. 정말 이 죄 가운데서 고통하며 이 죄의 문제로 그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것을 다른데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인 것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 대신 그 죄의 형벌을 지시고 목마르시고 다 이루셨다고 하시니, 그 예수님을 의지해서 나아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약속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것은 3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참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을 믿는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과 그 일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하신 말씀과 그 일을 보고 이제 공의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참으로 이 복된 소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