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아버지를 떠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 22년 6월 26일 일요일(요약1) / 김보영 형제님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15:11-24, 개역한글)
이 말씀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 15장 말씀에는 세가지 비유가 나오지요. 앞서 한마리의 읽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리고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능동적인, 적극적인 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주님을 주님께서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볼수 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에게 돌아올 부분을 상속해 달라고 합니다. 저도 자녀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아직 건재한데 자녀들이 자기에게 돌아갈 재산을 나눠달라고 하면 대단히 기분이 나쁠것 같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재산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자녀를 키워낸 것도 자녀들은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에서 아버지는 둘째가 재산을 달라고 하자 재산을 줍니다.
그리고 며칠이 못되서 둘째아들이 재산을 모아서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먼나라로 갔다는 원어적인 부분을 보면 몸만 멀리 간 것이 아니고 마음까지도 아버지로부터 멀리 간 것입니다. 이제는 내 뜻대로 살고, 다시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서 그 재산을 다 창진했습니다. 이 둘째아들의 불행은 바로 아버지를 떠난 것 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죄악의 시작이요, 불행입니다. 탕자는 붕행을 선택하고 죄악을 선택애서 떠난 것입니다. 그는 죄악 속에서 많은 재산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더이상 사랑받는 부자의 아들이 아니고 가난에 처한 품군의 한사람으로 전락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버리니까, 돼지를 치게 됩니다. 그리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해도 그것조차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는 돼지가 인간에게 대우받는 것만도 못하게 추락합니다.
이제 굶주리는 아들이 아버지 집에서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얼마나 풍부한가? 나는 아버지의 집을 나와서 고통받는구나.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부름받을 자격이 못되. 그러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해. 아버지는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줄거야.' 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신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갑니다. 돼지를 치던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남루하겠습니까? 얼마나 냄새가 나겠습니까? 비참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초라한 아들을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당장에 뛰어가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환영을 합니다. 얼마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인가를 보게 됩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15:21, 개역한글)
그런데 아버지는 "너는 잘못했으니 아들로 여기지 않고 품군으로 여길거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소에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입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15:24, 개역한글)
여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재산을 달라고 할때, 그 아들이 어떻게 될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죠. 이 아이가 떠나가면 분명히 실패할거야.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간 후부터 매일같이 동구밖에 나가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왜 아들이 떠나는 것을 막지 않았을까요? 왜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줬을까요?
이는 아들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돌아올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4-6, 개역한글)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탕자가 아버지를 떠남으로서 죄악의 길에 빠져있는 그와같은 모습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탕자처럼 다 각기 제길로 갔습니다. 그 길은 죄악의 길이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허비했습니다만 그 재산과는 비교할수 없는 가장 값지고 보배로운 아들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내어주신 것입니다. 죄악의 길로 갔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우리의 허물을 인해서 그가 낄리고 채찍에 맞고 죽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는 겁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6, 개역한글)
주님이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죽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십자가 길로 가셨습니다. 그 자신을 우리를 위한 속건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괘씸한 놈, 너는 품군으로 살아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손가락을 끼우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15:24, 개역한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고 에베소서 4장 말씀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영이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찾으셨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사랑해 주십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그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속건 제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다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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